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늘 독서 일기를 썼었다. 책을 읽으면 가능한 모든 책에 대한 리뷰를 남기려고 했고 매달 읽은 책의 리스트를 올리기도 했었다. 한데 몇 년 전부터 그런 게 시들해졌고,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리뷰를 남기는 일이 장난아니게 힘들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서 요즘은 책을 읽어도 거의 리뷰를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심해지고 있는 건망증 환자로서 심각한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읽은 책임에도 가물거리고 머릿속에 남은, 정말 감동받은 책이 아니면 내가 뭘 읽었는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던 것. 그래서 작년 말에 다짐을 했더랬다. 2011년엔 열심히 책을 읽고 다시 리뷰를 쓰는 독자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지만 내 다짐은 작심삼일만에 끝이 나고 책 읽기가 무섭게 리뷰 쓸 생각은 안하고 다른 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요즘 내 맘에 들어온 책들이다. 읽어줘야 할 책이 몇 권(몇 궈어언?) 있지만, 인간은 늘 소유한 것보다는 소유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는 법. 내게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책들, 바로 이런 책들이다.
'아주 섬세하고 예리하게 늙음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이 책 『이탈리아 구두』는 북유럽이라는, 요즘 내가 한참 심취해 있는 지역의 소설이라는 것부터 나를 이끌었다. 스산한 풍경의 나루터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과 제목이 주는 공통점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스웨덴 어느 섬에서 홀로 산다는 '괴팍한' 주인공을 떠올리면 뭔가 굉장한 사연이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이 책을 쓴 작가 헤닝 만켈은 처음 들어본 작가다.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인데 이 책은 추리 소설이 아닌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한다.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나 죽음, 외로움을 무척이나 잘 표현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읽고 싶은 두 번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인간의 심리는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니까.
그리고 책소개를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급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건 추리 소설을 쓴 작가이니 아무래도 이야기 속에 비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 그런 것 같기 때문이다. 옛 애인이 주인공이 사는 곳에 나타나고 40년 만에 밝혀지는 비밀. 과연, 그게 무엇일지!
언젠가 친구가 이 사람의 이야길 하며 내게 그의 작은 사진집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이었고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친구에게 이 사진 작가가 요절을 했다는 이야길 들었어도 역시 그랬구나, 하고 말았는데, 그의 사진이 묶여 나왔다. 친구가 블로그에 소개한 글을 보니 언젠가 티비에 나와서 "인생에 나중은 없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직접 티비를 통해 들어보진 못했지만 그 말이 내게도 아프게 와 닿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은 일본의 홋카이도가 배경이다. 영화 <러브 레터>에 나왔던 그곳이다. 그 당시에 이미 간암 투병 중이었던 사진작가는 치료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곳으로 떠난 그에게 홋카이도에서의 14일은 '외로움과 쓸쓸함' 자체였을 것이다. 돌아와 책을 내기 위해 진통제를 먹으며 작업을 하던 그는 결국 책의 출간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에 다녀와서 다행"이라며 홋카이도로 떠나는 걸 만류하지 못한 이들에게 말했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너 혼자 올 수 있니』는 그 사진 작가 이석주가 담은 아름다운 눈의 풍경에 시인인 강성은이 감성적인 글을 풀어냈다. 겨울, 그리고 눈의 풍경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쓸쓸함이 배여나오지만 세상에서 마지막 여행이었을 그의 마음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과 관련한 책은 언제 어디서나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매번 보는 그림인데도 다른 시선으로 보일 때가 많고, 각자의 느낌에 따라 그림을 바라보는 해석은 색다르다. 독특하다. 나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또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니 그림은 지루함을 느낄 사이가 없는 듯. 이 책 역시 그렇다. 그림을 전문으로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 좋아 그림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그림에 폭 빠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경지가 대단하다. 누구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전문가가 되기 마련.
『그림 너머로 여자를 말하다』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일상을 엿보는 1장에서 보여준 주제별로 묶은 그림들이다. 다양한 주제다. 비가 내리는 풍경, 커피와 차, 그림 속의 또다른 그림, 엄마와 딸, 소녀, 학교 등등 많은 화가들의 다양한 그림을 같은 주제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저자가 그림을 보면서 느낀 그녀만의 사색들,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볼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저자처럼, 나도 당신도 좀더 자신을 알게 된다. 아, 또하나! 그림 관련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정말 세상엔 많은,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그렇지만 너무나 훌륭한 그림들이 많다는 사실. 그런 그림들을 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도 좋다.
온라인 서점에 올라와 있는 이 책을 우연히 봤다. 책소개에 나온 "유행가 가사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껴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큼 대중음악이 불가항력적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순간, 그 찰나의 전율과 환희를 완벽하게 짚어내고 있다."라는 꽤나 대중스러운 책소개를 보면서 오홋, 재미있겠다 생각했다. 나 역시 음악의 가사에 심취해서 이 책의 소개처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위의 소개만으로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빌리 할러데이에서 데이빗 보위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대중 음악이 배경이 된다고 하니, 더욱 당기더라는.
한 가지 더, 아이폰을 가지면서 혼자 있을 때면 음악을 듣지 않는 때가 없는 나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통해 자신만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였으나 오히려 전 세대보다 더 외로워지고 소외되어가는 현대인"에 당연 속한다고 생각하니 작가의 "속 깊은 이해와 위로"를 받아보고 싶었다나. 좀 두꺼워보이지만 흥미로울 것 같다.
"잘나가는 광고 감독 줄리언 도나휴는 심각한 '중년의 위기'에 빠진 남자다.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매일 아이팟으로 듣는 음악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브루클린의 클럽에서 케이트 오드와이어라는 아일랜드 출신 밴드 보컬의 노래를 듣게 된다. 줄리언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자신의 삶을 통째로 읊조리는 듯한 음악에 빠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