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말한 것처럼 '전쟁은 평화가 되고 거짓말은 진실이라는 식으로 세뇌당'하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라고 주장한다. 문명은 신화가 되고 이를 거부하는 행동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배제된다. 이는 경제 체제를 넘어선다. 리프킨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도 인간의 능력으로 물질의 풍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_「유토피아와 엔트로피」중에서 : 『100인의 책마을』

 
   

 오래 전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를 읽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 SF를 즐기지 않는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들추다가 호기심에 읽은 책이었다. 미래의 세계가 철저히 감시당하는 사회가 될 거라는 건 조지 오웰의 소설만 봐도 알 수 있고, 점점 디지털화 되어 가는 사회를 보면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 소설 『시녀이야기』는 또 다른 사회였다. 통제와 폭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지식을 차단 당한 채 그 사회의 사람들이 겪는 세상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특히 '씨받이'로 전락한 여자들의 미래는 같은 여자로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는. 미래사회가 과연, 어떤 세상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설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 이미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의 등장으로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추천(!)받는 세상이고 보면 상상하지 않아도 미래는 무서울 지경이지만 그래도 예상은 하고 있어야 하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진 책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래의 책은 『100인의 책마을』책수다에 소개된 책들입니다.)    


링크_A.L 바라바시 지음 
과학 문명 발달의 대표 주자인 컴퓨터의 네트워크 구성을 인간 세계에 적용시키면서 보편적인 법칙을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즉,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결 고리인 네트워크의 법칙이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경제, 사회 등의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술패랭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_클레이  서키 지음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를 움직이는 역동과 혼란은 하나의 뿌리에서 분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조직이 없이 조직된 상태'를 유지하는 새로운 대중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조직이 없이 조직된 상태, 주모자와 주동자가 없는 시위대, 얼마 전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구르믈버서난달처럼)  


불가능은 없다_미치오 카쿠 지음
웜홀 이론과 연관시켜 시간 여행과 시간 역설이라는 문제점을 밝힌다.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염력이나 텔레파시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부터 로봇이나 투명체 같은 물질, 외계인과 시간 여행, 평행우주 같은 시공간의 문제까지 아주 다양한 면들을 만날 수 있다.(여유로움) 


부의 미래_앨빈 토플러 지음
앨빈 토플러가 정의 내리는 부의 혁명은 컴퓨터 하드웨어, 인터넷의 놀라운 힘, 단순한 경제적인 개념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 잇다. 부의 혁명은 사회, 제도, 교육, 문화, 정치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과거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그리고 현재의 지식혁명에서 다가올 제4의 물결의 열쇠가 될 부의 혁명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나스카)  


야만과 문명, 누가 남을 것인가?_잭 웨더포드 지음
미국의 인류학 교수 잭 웨더포드는 이 책에서 당연하다고 믿어지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잣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문명이 지향해야 할 구세주이고 야만은 배척해야 할 루시퍼라는 믿음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인지를 밝히면서 이분법적 판단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jmh5000)   


북극해 쟁탈전_크리스토프 자이들러 지음
이미 시작되었다. 수많은 에너지 자원이 잠재된 북극해를 점령하려는 수많은 국가들의 쟁탈전은 마치 제3차 세계대전을 불러올 태세다. 북극해 개발이 어떤 부작용을 가지고 올지에 아랑곳없이 자국의 이익에만 눈이 멀었다. 북극해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보존해야 할 땅이란 것을 그들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깊은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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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삼총사 창비아동문고 258
김양미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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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은우만한 조카가 있는 나는 이 책을 읽고 놀러온 조카에게 이 책을 권했다. 속으론 당연 이 조카가 이 책을 읽었을 것이라 예상은 하면서...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읽었댄다.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재미있었단다.  어느 부분이 재미있었냐고 하니 그 또래 녀석들이 대답하기 귀찮으면 하는 말 "다아~"  물은 내가 바보였다.

따로 또 삼총사』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어쩌면 나만 그 아이들을 어리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나도 오래 전 초등 4학년때엔 다 컸다고 생각했으니까.), 엄마를 잃고 아버지하고만 사는 은우를, 자폐아 동생을 둔 형빈이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싶은데 책속에 나오는 은우, 형빈, 찬기 이 세 아이를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다.

아이라면 늘 해맑고 천진스러워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나로서는 엄마를 잃고도 씩씩한(속으론 외로워하지만 겉으론 꿋꿋하게 사는) 은우나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폐아 동생을 돌보는 형빈이,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는 찬기를 보면서 작가가 아이들의 삶을 너무 힘들게 하는구나 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름대로 너무나 씩씩한 아이들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그 아이들이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나보다 더 철이 든 것 같다는 생각. 다르게 보면 꿀꿀할 수도 있는 상황을 아이들답게 너무나 예쁘게 그려냈다는 생각...  

12살이라는 나이는 어린이에서 소녀나 소년이 되어 가는 경계선이고 어른들의 세계를 어렴풋이 알아갈 시기이며, 혼자가 좋은만큼 책임감과 인생의 '맛'도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이다. 그래서 혼자여도 좋고 우정을 알아가고 셋이어도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한다. 

김양미 작가는 그런 성장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주변의 따뜻함과 혼자이지 않다는 안도감, 형빈이와 함께 만드는 신문을 통해 이웃들과의 소통까지도 보여주며 건강한 삶의 방식을 들려준다.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어떤 깨달음을 알게 해주려거든 말로 잔소리처럼 떠드는 것보다는 『따로 또 삼총사』처럼 따듯한 동화책 한 권 슬쩍 건네주는 것,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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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2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2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민규 작가의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공감하고선 박민규 작가의 팬이 되었습니다.
《카스테라》는 읽으면서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단편이 그저그래서 그다음에 나온 <핑퐁>도 그냥 넘겼습니다.
한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선 또 빠졌습니다.
박민규는 역시 장편인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죠. 

그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내고 이벤트를 할 때
여기저기 쫓아다녔습니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그는
다음 책을 내고선 복면을 쓰고 나올거라 예고했습니다.
그후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서 복면을 쓰고 나타났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멋지다! 문학상 시상식에 복면을!!^^

 

근데, 핫!
그가 이번에 출간한 단편집을 보며 정말, 박민규스럽구나 했습니다.
박민규가 아니면 이런 단편집을 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사실, 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런 조금은 날라리(!) 같은 책을 내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죠.
박민규가 아니었다면...

더블》은 더블입니다. 단편집을 두 권으로 side A, side B 같은 앨범 형식으로 묶었습니다.
보통 책으로 나오면 상, 하로 나뉘는 것을 음악앨범처럼 묶은 거죠.
직접 복면을 쓰고 표지 사진을 찍었고 
시디 안에 들어 있는 가사집처럼 일러스트 화보집까지 넣었습니다.
이게 책인지 시디인지... 이미지로만 보면 구별이 안 갑니다.
독특하다는 느낌이 일단 드는 것은 당연. 

 

《더블》에는 2009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은 <근처>를 비롯하여 모두 18편의 단편을 담았답니다.
박민규 작가가 5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고 박민규식 유머와 글이 단연 돋보인다 합니다.
추천사 같은 것은 없고 오히려 화보집에 한 줄 짜리로 그 단편에 대한 간단한 헌사를 적었습니다.

<축구도 잘해요> - 이 작품은 '자전소설'이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굿모닝 존웨인> - 이 작품은 모든, 자부동(ざぷどん)애 앉아 계신 분들을 위해 쓴 것이다.
<루디> - 이 작품은 버락 오바마 이후에 나타날 미합중국 대통령을 위해 씌어진 글이다. 지구는 사실 사공이 많은 배가 아니다. 그 사실을 당신은 알아두어야 한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이 작품은 소설가 천명관 형에게 주는 글이다. 원래 영화배우 존 굿맨에게 주기 위해 쓴 글인데 글을 쓴 바로 직후, 작업실에 놀러온 천명관 형이(바톤 핑크)야말로 마치 내 인생을 얘기한 듯한 영화였어! 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龍龍龍龍> - 이 작품은 '한국인'이란 직업을 가진 모두에게 주는 글이다.
 



이제 그의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박민규니까, 실망을 하진 않으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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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책 속의 책을 발견하는 일은 늘 재미있다. 글이 재미있으면, 그래서 그 책을 읽은 독자가 구입하고 싶게 만든다면 글을 쓴 작가로서는 독서진흥(ㅋ)을 위해 한 몫 단단히 한 셈. 또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책을 다 찾아보는 독자 역시 용하다(나 같은 사람 꼭 있다^^). 물론 다 구입을 하진 않겠지만 이렇게 기록해두었으니 기억하고 있다가 누군가 또 여기에 있는 책을 한 권 추천하거나 언급을 한다면 당장 사러 가겠지. 아무튼 아래의 책에서 나를 유혹케 한 책은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였다. 내용이 많이 언급되기도 했고 문장들이 아주 맘에 들었다. 한데 책이 없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리라! 

아래의 글들은 강영숙 작가가 <라이팅 클럽>에 쓴 글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책만 달랑 올리기 뭐해서 그 책이 언급된 부분의 글들을 같이 실었다. 강영숙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맘에 들었다나^^; 나의 트윗 친구이기도 한(그래서 알게 된 작가였다-.-;; 그제야;) 그녀가 얼마 전에 <세설>을 읽고 싶어한다는 나의 글을 보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추천해주셨다. 오늘 그 책이 도착했다. 표지와 편집만 보고도 지금 난 그 책에 빠져들었다. 아, <세설> 주문해야쥐.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를 들고 다니면서 삼십이 되면 자살할 거라고 떠들었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예수의 나이는 넘기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어디 나만 그랬겠나! 유치하고 진지한 성품의 문학청년들은 사실 다 그랬다.

우리는 같은 책을 정해 같은 날부터 읽기 시작했다. 동성애자였다는 토마스 만이 쓴 <마의 산> 같은 난해하고 긴 작품들일수록 감상을 나누고 토론하기에 정말 좋았다. 우리는 그 소설의 공간인 황량한 결핵요양소 시나토리움의 단골 고객이었다. 우리는 늘 외국 문학 작품들만 선택했고, 말이 토론이지 무조건 훌륭하고 감동적이라고 추켜세우기 바빴다.

그때 내가 읽다 말고 탁자 위에 올려둔 책은 프랑스의 노동운동가이면서 철학자인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였다. 사실 뭘 알고 샀던 건 아니었다. 단발머리에 수척한 얼굴, 안경 너머로도 엿보이는 따뜻하고 선한 눈빛, 칼라 깃이 둥근 블라우스를 입은 저자의 모습이 매우 철학적이고 멋져 보여서였다. 책을 고르는 이유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니었고 겨우 그런 거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언제 그런 인간이 있었는지, 그가 남긴 모든 아우라가 머릿속에서 통째로 사라진 뒤 어느 날 갑자기 그 손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미술사학자인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이라는 책을 머리맡에 두고 읽고 있었다. 책 끝의 부록인 _손을 예찬함_이라는 글을 읽을 때 글짓기 교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그의 손이 불쑥 떠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소원은 하인리히 뵐의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더 이상 끔찍한 가난의 숨결"을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 소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난에 대한 통렬한 인식이 강도를 더해가며 드러났다. 나도 가난에서 조금만 벗어나게 된다면 앞으로 다 잘하겠다고 다짐도 했고 기도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걸 보면 세상의 그 어느 신도 내 기도를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내친김에 여관 갈 돈이 없는 가난한 연인들 사이에 "사랑을 나눌 우리들만의 방이 필요해"라는 말을 유행시킨 폴란드의 소설가 마렉 플라스코의 <제8요일>이라는 소설을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방이 필요해, 방이 필요해"라고 떠들고 다니면 왠지 근사해 보였던 것 같다. 아무 대책 없는 청춘 남녀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방이 갖고 싶었다. '8요일'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날인 동시에 자신들이 사랑할 수 있는 날인 것이다. 두 사람이 바르샤바의 이곳저곳을 떠도는 며칠 동안의 사랑 이야기, 아니 세상과의 싸움에서 진 청춘 남녀의 이야기였다.

글쓰기 모드의 필요조건이라는 게 있을까. 금방 생각나는 건 일단 날씨가 너무 더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닥터 지바고>의 유리 지바고를 상상해보면 좋겠다. 날씨와 소설은 무가 뭐래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되고 너무 배가 고파도 안 된다. 배가 부르면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소리 때문에 글 쓰는 데 지중을 못 한다.
 
K와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었나.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녀를 ‘울프 여사’라고 불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서름이 넘어서 읽은 <댈러웨이 부인>을 더 많이 기억한다. “꽃은 자신이 직접 사겠다고 댈러웨이 부인이 말했다.”로 시작되는 1920년대의 영국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꽃을 사기 위해 집을 나와 런던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걷는다.

R은 당당하게 말했다. “삼만 원만 갖고 나와.” 나는 소년원에 들락거리는 애들이 주인공이라는 <티보 가의 사람들>이란 프랑스 소설책을 사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 들고 종로로 나갔다. 후회하게 되더라도 R을 만나고 싶었다.

접수원이 뭔가를 기록하는 동안 눈을 돌려 그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책을 보았다. 책 표지는 요나의 고래 뱃속 같기도 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 그림 같기도 했다. 굉장히 거친 판화 그림이었는데 책 제목은 <강철군화>였다.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작가인 잭 런던이 1908년에 발표한 소설이었다.

어쩌면 그즈음에 내가 빠져 있던 책이 시몬느 보봐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책 표지에 굵은 타이포로 찍힌 아홉 개의 글자는 사실 사람들이 볼까 봐 공공장소에 들고 다니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은 한자로, ‘모두가’는 붉은 글자로 인쇄되어 있어서 굉장히 유치했다. 그냥 혼자서 술을 마실 때나 정독도서관 앞마당에 있을 때 보면 딱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아 나만의 긴장 푸는 방법을 찾았다. 그때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책, 아니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책 <돈 끼호테>를 읽는 것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거리로 나선 늙은 남자. 본명이 께사다인지, 끼하나인지 하는, 왠지 앞머리칼이 뭉텅이로 빠지고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우스꽝스러운 남자가 등장해 온갖 해괴망측한 일을 다 벌이고 다니는 이야기였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김 작가가 한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 <파울라>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파울라, 엄마 얘기를 들어보겠니.” 그러나 파울라는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고 엄마는 딸이 깨어나길 바라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누워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김 작가였지만 언젠가 잠결에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발로 이불을 걷어차며 이마에 손을 얹은 책 분명 그랬다. “야, 내 얘기 좀 들어봐.”


 위의 글 인용은 모두 강영숙 작가의 <라이팅 클럽>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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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1-1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영숙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 관심 많은데
혹시 오피니언에 글 올리면 받을 수 있을까요?ㅋ

readersu 2010-11-17 16:11   좋아요 0 | URL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래욤.
소설이에요. 한데 재밌어요^^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며 책을 몇 권씩이나 들고 가는 짓은 어리석다 하고
누군가는 책 두어 권도 없이 어떻게 그 긴 여행을 떠나느냐고도 합니다.
그럼, 나는 어떤 유형일까, 생각해봤죠.
이건 뭐 여행이 먼저냐, 책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은 차이인지라
여행과 책,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저로서는
가능하면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오래오래 읽을 수 있게 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려봅니다.^^; 

 

이번에 『여행자의 독서』를 펴낸 이희인 저자는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고 합니다.
어느 책에선가도 그런 글을 읽은 것 같아요.
미리 그 도시에 관한 책을 읽은 후에 그 나라, 그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구요.
물론 이런 경우는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야 가능하겠죠?
한데 이희인 저자는 '책을 읽기 위해' 그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네요. 

오늘 소개하는 『여행자의 독서』는 이십여 년 여행을 하며 깊은 독서를 해온 저자가
'여행자의 독서'를 테마로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들을
그의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과 함께 구성한 독서에세이
입니다.
책과 여행, 우리가 책으로만 읽었던 그 책의 고향에서 직접 그 책을 읽는 기분은 어떨까?
정말 체험해보고 싶은 일인데,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네요.
 



이 책 『여행자의 독서』의 목차를 보니
아, 나도 이제 다양한 책을 좀 읽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취향의 차이겠지만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어찌나 많은지
저자가 다녀온 나라들을 갈 때에는 반드시 이 책들을 읽거나 가져 가야겠다 맘 먹게 되더군요.
책에 관한 책은 늘 그렇듯이 너무 주관적 혹은 책소개나 하는 책일 수도 있는데
이 책은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읽을 땐, 일부러 내가 읽은 책이 나오는 부분부터 봤습니다.
모르는 책을 읽으면 뭔소리인지 못 알아들을까봐(-.-) 근데, 그럴 필요가 없더라구요. 


 
 

하나 예를 들자면,
_아름다움이 나를 배신한다 라는 목차에서 소개하는 일본의 교토,
일본을 가게 되면 꼭 교토를 가리라 마음먹은 제게 이 책은
아직도 읽지 못한 미시마 유키오의『금각사』를
그리고 이름만 들어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소개하는데
교토도 교토지만 그가 소개하는 이 책들에게 마구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
그건 아마도 제가 일본의 근대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은 탓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쩐지 『세설』이나 『금각사』를 읽고 나면
그 책 때문에라도 교토를 다녀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오래 전에 읽었던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은
칠레를 떠올리면 저 역시 늘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일한 책인데
굉장히 인상깊게 책을 읽은 탓이겠죠
(아마 비슷한 시기에 메릴 스트립이 나온 영화도 같이 봐서 인 듯해요).
루이스 세풀베다나 로베르토 볼라뇨, 시인인 네루다, 노벨문학상 작가인데도
내 머릿속엔 별로 떠오르지 않는 마르케스까지
그들을 제쳐두고 말이죠.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찾는 재미는 역시 좋습니다.
그 글이 지루하지 않다면
소개되는 몇 권의 책은 책 한 권으로 얻게 되는 일종의 보너스인 셈이죠.

 

 

이 책 『여행자의 독서』는 책은 물론 세계 여러 곳의 도시를 다닌 저자의 여행기와 
이국의 풍경들이 담긴 사진과 그곳의 이야기가 담긴 책까지 소개를 하니 
한 권의 책으로 세가지 즐거움
을 누릴 수 있게 합니다.
 

저도 앞으론 여행지를 선택하고 가지고 갈 책을 선택하는 즐거움을 꼭 맛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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