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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당신 - 정영 여행산문
정영 지음 / 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참 이상하다. 이 책은 <때로는 나에게, 쉼표>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 분명 공감하면서 읽은 책이었다. 한데 주말에 우연히 책꽂이에 있는 책을 꺼내 펼쳤다가 빠져들고 말았다. 글들은 분명 낯익었으나 전에 느끼지 못한 묘한 떨림이 있었다. 지난번에도 이 글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는데 지금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 번 읽은 책은 여간해서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이 책은 그날 밤 나와 함께 보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런 형식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다. 여행서다운 여행서도 즐기지만 여행서같지 않은 여행서도 나와 같은 감성의 글이라면 공감을 하니까. 사실은 이 책을 다 읽고 왜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감을 지금은 더더더 많이 하는 걸까, 생각해봤다. 딱 떠오르는 이유는 그거였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사람을, 나라를, 여행을 봤었다. 한솥밥을 나누는 루앙프라방 사람들에 대한 글을 읽으며 언제가 티비에서 보았던 탁발의 장면들을 떠올렸고, 이족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 그 교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순박한 아이들의 웃음 띤 얼굴을 보며 오래 전에 교생하러 갔었던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떠올랐을 거다. 또 쿠바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낯설지만 친숙한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이국적인 쿠바가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을 것이다.
한데, 이번엔 달랐다.
세계를 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지구 곳곳의 풍경과 낯선 이름들 속에서 나는 작가의 마음을 보았던 것 같다. 내 감성과 똑같은 그런 것. 해서, 어랏? 이게 뭐지? 지난 번엔 왜 이 글을 읽고도 내 마음이 냉냉했었지? 하고 알 수가 없었다는.
한 장 넘길 때마다 밑줄이었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도시를 설명하는 그 중간 중간 불시에 튀어 나오는 문장들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가을인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게 아니면, 한 쌍의 의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세상의 그늘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데, 나와 똑같은 울음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올 때, 나처럼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일 것이다.
공감하는 글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마음이 따뜻하고 내 편이 생긴 것 같다. 덕분에 주말 내내 나는 든든했다. 지구 반대편에 '내' 당신이 꼭 존재할 것 같았다. 그래, 그래 가끔은 책꽂이에 꽂힌 읽어버린 책들을 유심히 보기도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