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어디로 간 걸까요? 더운 여름이 늦도록 떠나지 않고 있더니 갑자기 찾아온 이것, 가을인가? 느낄 새도 없이 후덜덜, 떨리는 날의 연속. 오늘 어느 곳엔 얼음이 얼었다고 하던데. 가을 나들이는 할 수나 있을련지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세 권의 책! 시기도 비슷하게 나와서 독자들의 책 욕심을 자극하고 유혹하여 급기야 장바구니만 가득하게 만든 책들, 소개합니다. 실종된 가을, 탓하지 말고 책 속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을 권합니다!!
책 한 권에 439권의 책이 들어 있다는 이 놀라운 책,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고 글 잘 쓰는 전문가도 아닌데 여기저기 소리 없이 번지고 있는 이 책. 바로 『100인의 책마을』입니다. 다년간 독서가로서 생활한 나로서는(^^) 아주 구미 당기는 책인데, 그건 책 속에서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나처럼 문학이나 여행서로만 편식하는 독서쟁이에겐 그 분야 말고도 이렇게 훌륭한 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길라잡이인 셈이다.
국문과 교수님이 들려주는 우리나라 고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추천해주는 교육에 관한 책, 현직 목사가 들려주는 종교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은 책, 환경 활동가의 인상적인 책, '먹기 좋은' 과학책을 일목요연, 조목조목 알려주는 국어 선생님의 추천 책 등등 다양한 직업에서 다양한 분야로 또 다양한 책들을 소개해주어 독서 편식 확! 뜯어고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고전문학의 연대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아래의 책들을 소개한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유희춘의 『미암일기』를 바탕으로 정창권이 새롭게 풀어 쓴 책으로 개인의 일기이면서도 사료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16세기 양반 가정의 일상생활은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주를 비롯한 유형, 무형의 생활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이황과 기대승이 장장 13년에 걸쳐 교환한 서신을 엮은 책으로 26년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할 만큼, 서로에 대한 존경이 가득하다.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책. 또한 두 성리학 대가의 치열한 학문 논쟁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대표적 고전소설 『운영전』을 현대적 시각에 맞춰 새로 쓴 작품. 운영과 김 진사의 비극적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반 독자들은 물론 중고생까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고쳐 쓴 번역은 사랑받는 고전 번역의 좋은 예이기도 하다.
『책 읽는 소리』정민 교수의 고전 독서 에세이. 옛글에서 볼 수 있는 옛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오롯이 되살리고 있다. 옛 선비들은 어떤 책을 읽고, 책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실천하려 했을까? 그들의 속뜻을 되새겨 보고,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두 번째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책은 로쟈로 유명한 이현우의 서평집『책을 읽을 자유』이다.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통해 그가 얻은 두 권의 책 중 한 권인 이 책은 최근 3년 동안 쓴 서평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을 자유'는 최소한의 자유이지만 동시에 최고급의 자유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내게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돼야 한다."라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역량'은 하나쯤이라도 있을 터이지만 짧은 생각으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만날 수도 있으니 그 '책을 읽을 자유'를 맛보기 위해선 이 책을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
인문학을 좋아하는(!) 저자인지라 대체로 인문학 서적이 많지만 나처럼 문학에 빠진 사람을 위해 밀란 쿤테라나 나보코프, 푸슈킨, 고골 같은 작가의 책도 있으며 김훈이나 기형도에 관한 언급도 들어 있다. 저자는 소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책들을 모았다. 그 중 한 주제 '고전은 왜 읽는가'에 나온 책들이다.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기존의 햄릿과는 다른, 신을 꿈꾸었으나 인간의 한계를 깨달은 인물인 햄릿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책이다. '우유부단하고 불완전한 인물'로 알려진 『햄릿』이 정말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 대한 복수극'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 시대의 눈으로 분석한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제대로 풀린 적 없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과 함께 햄릿이 명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지함 평전』 저자가 이지함 평전을 집필한 의도는 '남명 조식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아 그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이지함의 삶과 사상을 제대로 조명하고자' 하였고, 두 번째로는 '이지함을 통해서 조선의 16세기 사상계의 성격을 재인식하고자' 펴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지함이 상식과는 다르게『토정비결』의 저자가 아니라는 사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토정비결』이 이지함 사후에 유행하지 않고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을 고려할 때 토정이라는 이름을 빌려 썼을 것"(『책을 읽을 자유』87쪽)이라는 점. 그럼, 이지함은 왜 토정이라는 이름을 빌려 썼을까?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방식으로 서술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서서히 드러나는 이지함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소개할 책 속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은 이현우도 책 속에서 언급한 장정일의 독서일기『빌린 책/산 책/버린 책』이다. '기존의 독서일기가 독서와 무관한 일상의 이야기를 포함한, 거의 매일 쓰인 전형적인 일기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개인의 일상은 배제하고 책읽기의 방법이나 읽은 책의 성격와 주제에 따라 묶었다고 한다. 문학 좋아하는 나로서는 문학의 비율이 줄고 인문 사회과학의 책이 많이 소개 되어 아쉽지만 차례를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는. 장정일은 책 한 권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도 하고 주제어와 맞는 몇 권의 책을 엮어 읽기도 했다.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본 책들이 다수 포함되었는데 그만큼 다양한 책을 장정일은 읽었다. 모두 83권의 책에 대한 74꼭지의 글을 읽을 수 있다. 83권의 책 중에서 내 관심을 끈 책은 아래와 같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브라질 중부 아마존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피다한 원주민들의 경이로운 삶에 관한 기록을 담은 책으로 '30년에 걸친 그의 아마존 탐험은 언어에 대한 탐험으로 이어지고, 인간에 대한 탐험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이 책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자, 인류학적이며 언어학적인 지적 탐험이다. 또한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문화를 통해 우리의 삶과 가치관, 세계관을 다시금 돌아보게하는 환상적인 회고록'이라고 한다.
『그림과 눈물』'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책은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눈물의 원인을 추적하는 한편, 역사를 되짚어 눈물이 마르게 된 다양한 계기를 찾아낸다.' 책을 사두고도 아직 읽지 않았는데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다.





그리고 "노년에 대한 감동적인 정의"를 내린 세 권의 책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창녀』『모두가 창녀다』는 '창녀'라는 단어가 들어간 세 권의 책이지만 장정일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마르케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를 자기 소설의 첫 문장 제사로 쓴 것을 읽고 두 권의 책을 비교하여 글을 썼는데,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오래 전에 헛으로 읽고 던진 기억이 있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와 함께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책을 소개(?)하는, 책에 대한 책은 많은 정보를 전해주긴 하지만 정보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서평이나 독후감을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정말 궁금한 책이거나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서평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는 일따위는 잘 하지 않기 때문이죠.(아,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이므로 서평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 것을 고려하고도 책에 대한 책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어쩌면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좋은 책'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적인 책, 혹은 아까워서 읽을 수가 없는 책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은 왠지 미안하거든요^^ 임금님 귀가 멋진 귀든 당나귀 귀든 알고 나면 떠들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데, 이렇게 감동적이고 멋진 책을 어찌 혼자만 알고 있겠어요. 우리 다 같이 읽어봐야지. 그래서 어쩌면 저도 허구한날 페이퍼를 써대며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햇볕 좋은, 며칠 후면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이 가을에 나름 소개해준 책들 꼭 한 권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책 속에 길이 있든 없든, 어쨌든 책을 읽고 나면 답은 보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