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둥지를 틀고 서울 시민은 아니어도 생활인이 되었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일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였다.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정말 그랬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내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나가면서 버스를 기다릴 일도, 혹은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을 일은 더더구나 없었던 것 탓이다. 그런 까닭에 서울와서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이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일이었다. 그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낄만큼 지방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늘 풍족하고 멋있었다. 문화적 혜택이라든가, 세련됨이 서울로 진출(?)하지 못하던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었다.
지금이야 정보통신의 발달로 서울에 있든 제주도에 있든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서울이 주는 문화적 혜택은 아직까지도 서울 중심이다. 주택이 부족하고, 교통이 혼잡하여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할지라도 거대한 쇼핑몰과 볼거리, 먹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서울, 그 서울을 다룬 몇 권의 책을 찾아봤다.
먼저 그런 '화려하고 물질적인 배경 이면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모순과 사회 문제'를 통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문학 속에서 다룬 『문학 속의 서울』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60년 이후의 '문학 속의 서울'을 그리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에 동참하며 돈을 벌기 위해 이주해온 농민들, 그들에 의해 70년대 서울의 영역 확대와 서울 변두리가 서울의 부심으로 새로이 공간 배치되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서울 시민들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삶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힘들며 우울하다. 일손 많은 농촌을 버리고 서울 시민이 되기 위해 산업화에 동참한 많은 이농민들은 고향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왔지만 서울살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무나 괴로운 나날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도록 과거로의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 그런 힘든 시대가 있었고 그런 시대에서 살아온 서울 시민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서울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이런 모습을 담은 서울만 담았을까 싶어 아쉽기도 했다. 설마, 그런 문학이 없는 걸까? - -;
과거 서울에서 삶의 모습은 칙칙하고 우울한 과거였지만 요즘 한국 문학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활기차다. 몇 년 전과 다르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또다른 서울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 속의 서울에서 보여준 사람들의 삶은 현재의 우리가 디디고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것이 미래의 서울에 대한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 한다. 앞으로 그려질 문학 속의 서울 모습이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더이상 우울하거나 칙칙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게 경제적 발전과 풍요로움 때문일 수 도 있으나 아픔만큼 성숙해진 시대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서울로 온 지(지금은 서울 위성도시로 흘러 들어왔지만)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지하철에서의 독서를 좋아한다. 서울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연방 나의 목을 죄어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울이 주는 풍요로움 때문에 쉽게 떠나지를 못한다. 서울 중독증이다. (오래전 써놓은 리뷰 부분 인용)
언젠가 친구와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남쪽, 너른 들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 친구는 넓고 푸른 곳으로 가서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했고, 나는 서울의 한복판, 종로나 을지로에 바늘 하나 세울 만한 공간이라도 찾아내 그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무척 상식적인 사람이므로 나의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의 친구도 무척 상식적인 사람이었기에 나를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종의 객기로 치부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 p.14
위의 글을 보다시피 여기 서울 중독증에 걸린 사람이 또 있다. 『서울 풍경 화첩』의 저자들이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을 탐독하고 저자 강연회에 다녀왔었다. 후기를 써보고자 사진까지 찍었으나 쓰지 못했다. 몹시도 게으른 탓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나 역시 저자의 친구처럼 넓고 푸른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나 과연 내가 그곳에서 일주일을 버틸 수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학 속의 서울』을 읽으면서 느꼈듯이 서울이 주는 문화적 혜택을 포기하며 살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고 보니 『서울 풍경 화첩』의 저자는 진심으로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이어서 서울을 고집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서울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뭐 어쨌든^^;
『서울 풍경 화첩』의 저자는 건축가부부이다. 건축가가 쓴 글이라 몹시 딱딱한 게 아닐까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직업이 건축가일 뿐 건축에 관한 이야기로 서울을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좋았다. 어려운 건축이야기로 서울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하고 그리워하는 서울의 곳곳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말하는 서울의 구석구석엔 서울에 갓 올라와 신기해하며 돌아다니며 거닐었던 골목이 있었고, 내가 그리워하던 동네도 있었다. 또 그곳의 풍경을 부부는 맑고 투명한 수채화로 그려내기도 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골목 혹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네들 등등. 편하게 사진을 찍어 올렸다면 쉬웠을 터인데 이들은 굳이 그림으로 수채화로 그려 올렸다. 만약 수채화가 아닌 사진을 실었다면 이만큼 서울의 추억이 되살아났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 또 한 권의 서울 관련 책이 있다.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서울의 여성 작가들이 서울을 주제로 썼다는 소설집이다. 이 책에 나오는 단편들 속의 서울은 우울하다. 각자 자신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 아픔이 존재한다면 무조건 떠나고 싶을 터인데 이 작가들은 한결 같이 그럼에도, 서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 이내 서울이 그리워졌고 돌아오면 안도했다. 서울이 전적으로 태평하고 무사한 도시여서가 아니었다. 대개의 삶이 그렇듯, 그런 날은 일부에 불과했다. 안도감이나 그리움은 서울을 벗어나 있을 때에나 가능했다.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서울은 나와 가장 닮은 도시이기 때문이다.”(편혜영, ‘작가의 말’에서)
편혜영 작가의 말처럼 서울은 나를, 그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문학 속의 서울』을 읽고 나서 그때는 그랬지만 당대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문학 속의 서울'은 어둡지만은 않다고 큰소리 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꼭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서울은 '우울과 몽상'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달라졌다면 오래 전 서울의 풍경은 먹고 살아가기 위한 도시였지만 지금의 서울은 그보다는 인간적인 삶에 대해 더 고민을 하게 하는 서울이라는 점이다. 벌레와의 사투, 친하지 않은 이웃과의 감정, 좌천된 후 다시 돌아가게 된 서울에서의 불안한 기대감 등등 먹고 살기 위한 생활보다는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은 면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이곳에서 살아보지 못한 자들만 가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방에 있으면서 느꼈던 문화적 빈곤감을 지방 사람들이라면 모두 느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이미 서울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은 이제 매력적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그럼에도 '우리의 아름다운 지옥 서울'의 매력은 영원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