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의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미국>편을 먼저 읽게 된 이유는 「필경사 바틀비」와 「에밀리에게 장미를」때문이었다. 그 단편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친구들을 통해서 혹은 다른 책들을 통해 들어왔었던지라 매번 찾아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하고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마침, 창비에서 단편집이 나왔고 읽고 싶어하던 단편 두 개가 같이 들어있었다. 나로선 횡재맞은 기분이었다나. 

내로라 하는 다른 미국 작가들의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맨 마지막에 있는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먼저 읽었다. 언젠가 친구가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어보라며 건네주고선 나중에 꼭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도 같이 읽어보라고 했다. 포크너와 함께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카슨 매컬러스의 작품이 포크너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읽어보니 과연 왜 그 친구가 같이 읽어보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는데 다른 전개를 펼치지만 비슷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에서 미국의 남부에서는 혹시 그런 일이 허다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컬러스의 작품이나 포크너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사랑은 자폐적이다.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의 여부를 떠나 에밀리와 아밀리아(이름도 비슷하다)의 사랑은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인데, 그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이라는 『슬픈 카페의 노래』에 나오는 글처럼 가슴 아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딱한 에밀리!" 

또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 I would prefer not to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그 내용이 너무나 독특하여 꼭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책이었다. <미국>편에 나오는 다른 작품들도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지만 <미국>편에선 역시「필경사 바틀비」가 제일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코믹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해지고만 이 작품은, 해피엔딩이었다 하더라도 '바틀비'라는 인물에게 동정이랄까, 도대체 왜 그가 그런 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증이 생기면서 측은함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속에서 그녀가 언급한 '바틀비'는 에드워드 호퍼의 <소도시의 사무실>이라는 그림에 나오는 한 남자를 연상하게 만든다고 했다. 책을 읽다보니 정말, 희한하게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랐는데 사무실 자기 칸막이에서 기숙을 하는 바틀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는 대답할 때 말고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상당히 있는데도 독서하는--아니 심지어 신문을 읽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오랜 시간 동안 칸막이 뒤쪽의 어슴푸레한 창가에 서서 막다른 벽돌벽을 내다보곤 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개인적으로 「필경사 바틀비」처럼 수수께끼를 던진 듯한 글을 좋아하진 않지만 허먼 멜빌의 글솜씨 때문일까, '바틀비'라는 인물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음이 즐거웠다. 정말, 그는 왜 그랬을까? 

이외,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와 샐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점점 미쳐가는(!) 화자의 긴장감 넘치는 독백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겹치면서 흥미를 돋우었다. 「검은 고양이」와는 다르게 가부장제 아래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누런 벽지」는 거의 호러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머릿속으로 그녀의 행동이 마구 상상이 되는, 으스스한!) 마지막에 '나'가 기어가면서 내뱉는 말엔 어느 누구라도 기절을 하고 말 것이라는. 더 읽을 거리에 나온 길먼의 『여자만의 나라』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면 무겁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읽어내기에는 벅차다고도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무겁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모두 그 시대상이었다. 그 나라의 역사였다. 그 시대상을 이해하고, 역사를 알고 나면 전혀 무거운 작품들이 아니었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부분의 고전들은 현대 소설들의 모티프가 되었다. 단편들도 그렇고, 다른 세계문학 장편들도 그런 것 같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온 전개와 결말들, 알고 보니 모두 고전 속에 있었던 것. 아무튼 창비의 세계문학전집 덕분에 고전의 재미를 톡톡히 알게 되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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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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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마치 내가 누경이라도 된 양 감정이입. 아, 이런.   

"너를 참고 있는 마음이 맑고 낮아서 소중해."

이제는 사랑 그 정도는 다 안다는 듯이 누경을 향해 계속 속삭였어. 잊어버려, 잊어버려, 잊어버려. 너에겐 기현이 있잖아. 근데 아뿔사! 누경의 기현에 대한 마음은 진짜였나봐.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뭐지. 누경, 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현이 있는데, 기현을 만나야 너는 비로소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 같은데...근데, 넌 다시 또... 그래, 사랑은,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고, 기현에겐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래서 기현에게 넌 그러는 거라고. 알아, 네 맘 알아. 하지만, 하지만 말야....   

"마음속의 빈 상자들이 젖어서 모두 무너졌어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너의 마음을 흔드는 누군가 나타났다는 것은 어쩌면 '그'를 잊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는 거니깐. '그'를 평생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왠지 가슴 아픈 일이니까.  

"힘들 땐 어떻게 하세요?"
"그냥 견뎌. 끝까지 견디는 거야."
인생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 말했다. 누구나,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그럴까?


그, 누경의 일기장 속에 숨어 있는 그 남자. 그는 '답답할 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까다로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심지어 약간 수줍어하는 내성적인 남자'였어. 누경이 가진 고통의 트라우마를 씻어준 사람이었지만 또 다른 아픔을 간직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지. 더 깊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 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랑은, 그래 사랑은, 같이 나누어야 하는 거야. 마음 속에 품어두고 이 생애에서 너와 인연이 아니었다면 다음 생애를 기약하지, 따위는 말짱 필요 없는 거지. 혹은 그가 말했듯이 지금 같이 살려고 애태우지 않으려고 전생에서 같이 살아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따윈 그래, 말일 뿐이야. 현재는, 지금 바로 이곳에선 그와 누경인 같이 있지 못하니깐.   

그 환멸의 정체는 어떤 이 주일을 보냈든, 그것은 각자의 것이라는 진실이었다. 각자의 고뇌, 각자의 귀로, 각자의 그리움……
그러나 그는 알까. 다른 풍경이 또다른 풍경을 그토록 사랑해서 세상 모든 발소리를 세며 오직 그 하나만 기다리는 것을, 다른 세상이 또다른 세상을 그렇게도 생각해서 피부가 갈라지는듯 가뭄 드는 것을. 눈이 너무 깊어져 두려운 나머지 자꾸만 뒤로, 매일 뒤로 물러나야하는 것을…

주말 내내 누경의 가슴 뻐근한 사랑이 너무 절절하여 내 맘 마저 싸~하게 아파왔어. 당분간 달달하든 콕콕 쑤시든, 사랑 이야긴 안 읽으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만 누경의 일기장을 봐 버렸고, 누경의 아픔을 알게 되었지. 주말 내내 실연 당한 여자 같았어. 어느 누구든 내게 따듯한 말 한마디로 위로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 뭐야.  

"세상도, 삶도,우리 마음도,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심연의 외줄 위에서 안간힘을 다해 현재를 제어하려는 아둔하고 흐릿하고 가냘픈 의식의 줄타기뿐이야. 야윈 불빛 깜박이는 그가난 속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그 가난 속에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것이 젊음의 마지막에 빠져들었던 내 사랑의 이야기라 해도, 있었던 일 그대로 좋은 시간이었어. 난 괜찮아. 이렇게 가깝고도 먼 근처에서 당신을 바라볼게. 누경, 그러니 웃어. 당신은 편안하게 웃어……."

사랑이 지나가면, 또 다른 사랑이 오는 거래.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순간엔 까마득하게 잊고 만다지. 그러니 사랑 앞에선 누구나 속물이어도 괜찮아. 사랑할 때, 그때 만큼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아. 남들이 뭐라 하든 그 사랑은, '내' 사랑은, 진실이니까. 누경!  

나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회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해를 덮은 달처럼 몸 가장자리가 홍염의 불꽃을 일으키며 파들파들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검게 타는데도 고통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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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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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내게도 파란만장한 시절이 있어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도 필연적으로 내게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건 되돌아보면 어느 순간 곧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돌고, 돌고, 돌아 이제야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이 삶으로 곧바로 가기보다는 그 삶이 내게로 오기를 기다렸기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책에 나오는 그들만큼이나 내 삶에 대해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은지라 어찌나 공감을 하며 읽었는지. 그들에 비하면야 진짜, 별 것도 아니지만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누구라면 어느 누구의 인생인들 그들만 못하랴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구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또 다른 이는 피하고 피하였건만 자꾸만 다가오는 일을 뿌리치지 못해 살아가기도 한다. 또 나처럼 돌아, 돌아서 결국은 하고 싶었던 일이 이것이었구나! 생각하며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그 중 어떤 것이 옳은 인생이고 제대로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나름대로 각각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기사를 하다가 뜬금없는 잡지사 발행인이 된 안건모 씨나 독일 유학을 갔다가 독일 여성과 한국 여성의 삶을 비교하는 책을 내다가 페미니즘 잡지를 출간하게 된 김신 명숙 씨,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미술치료사가 되어 있더라는 박승숙 씨 등등 다들 자신의 삶에서 '나는 꼭 이 삶을 살고 말 거야!' 작정을 하고 덤벼든 사람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삶에 대해 꾸준하고 진지하게 궁금해하며 살아오다 보니 지금의 삶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삶에서 정답을 찾으려기보다는 공감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라고들 한댄다. 살아보니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 앞의 삶도 잘 모른다. 그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불필요한 고민따위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열심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답이라 느껴지는 삶에 다가가는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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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 품에 들어온 두 권의 책이다. 기다리던 두 작가의 책이다. 두 권 다 온라인 서점에서 연재를 하던 책이었고, 온라인 연재라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서사'를 이야기 하고 또 한 권의 책은 사랑, '예고된 위험마저 받아들인 '그 여자'와 그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벌써부터 찌릿, 어느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또 어쩐다. 신간은 늘 이렇게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다. 기다렸던 책이니 일단 읽어야겠다. 미안하다. 밀린 책아! -.-;;
  

 

2008년 봄, 한 소녀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며 "주 템므, 마리"라며 휴대폰에 대고 첫 마디를 던지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소녀 '지오'는 열다섯 살이며 캐나다 깊은 오지마을에서 왔다. 지오는 '자연의 감각'을 가진 신비로운 소녀다.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십여 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특이한 다문화 소녀라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친구들이 지오를 맞아 서울 대탐험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 2008년 촛불 정국이 있다. 그리고 그 촛불 집회에서 소를 데리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과연, 어떤 사건인가? 

시인인 김선우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다. 예스24 문화웹진 <나비>에서 연재한 이 소설을 처음에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매일 들어가 찾아 읽었다. 하지만 역시 온라인 연재의 벽은 시간이 없을 때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는 거다. 결국 포기했다. 언젠가는 책이 나올 테니 나는 기다릴 테다. 작가에겐 하루하루 달리는 댓글이 힘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마침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다. 드디어! 마침내! 나오는구나!! 

김선우 작가는 시인이다. 시인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감수성이다. 전작인 『나는 춤이다』에서도 그랬지만 시인의 글은 아름답다. 시인 만의 독특한 표현과 시적 감수성이 독자를 자극한다. 읽으면 읽을 수록 되새김을 하게 만든다. 특히 김선우 작가의 문체는 더 그렇다. 다소 딱딱해보일 수도 있는 글들이 그녀의 손에서 부드럽게 바뀐다. 이 책에는 어떤 글이 그럴까? 궁금해서 펼쳐보니 이런 글이 나온다. 맞다. 바로 이런 글이다.  

"은빛 솜털날개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을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

"숨 쉬는 바다가 숨결처럼 파도를 일으키는 거. 생물체 같은 파도의 움직임. 물결의 감촉... 가다가 막히면 방향을 두고 의견이 나뉘고, 파도가 깨지듯이 흩어져 물보라를 날리기도 하지." 

김선우 작가는 5년쯤 전 최승희의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영화를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보다 무제한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첫 소설을 쓰고 나자 그녀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작가는 드라마틱하고 예술적이며 문화적이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이 소설을 통해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성장할 수 있을 거란다. 

 

시 사랑이다. 사랑이 뭘까,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의 본질일 것이다. 사랑의 감정, 사랑이 주는 아픔 등등 이 소설은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 마음까지 온통 깨어지기 쉬운 유리의 그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라고 말한다. 맞다. 공감이다. 대공감. 

전경린 작가의 『풀밭 위의 식사』역시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에서 연재를 했다. 그쪽 동네는 처음부터 잘 다니지 않은 곳이라 아예 읽을 생각도 못했더랬다. 간간이 전경린 작가의 소설 이야기만 전해들었다. 사랑이라니. 그것도 '내 사랑'만큼은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건 가장 순결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야기라니.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매일매일 그다음을 기다리기 싫어서. 이제 책이 내 앞에 있다. 사랑에 빠질 차례다. 책을 펼치니 이런 글이 나온다. 

"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나요? 눈을 감으면, 당신 눈 속의 눈동자가 내 눈 속에 고인 물처럼 흔들려요. 당신의 속눈썹이 내 속눈썹을 덮어요. 여린 속눈썹 아래서 이슬처럼 떨리는 이 집요한 시선......" 

어이쿠! 난 이제 당분간 같은(!) 이야기 안 읽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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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빵집
이병진 지음 / 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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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으로는 살 수 없다. 오래 전 선배가 내게 저 문장을 적어 보냈었다. 처음엔 뭔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제과점을 하던 우리 집 간판을 두고 하던 소리였다. 우리 집을 볼 때마다 그 어떤 것보다  ''이라고 쓰인 빨간색의 간판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가보다. 딴엔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던 건가? 어쩌면 궁금해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것 같기도 했는데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고 유독 그 선배의 그 문장만이 생각난다.

이 말은 예수가 한 말이라고 검색 결과 나온다. 그땐 그랬겠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을 거라고, 빵집 딸인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은 빵만 먹고도 살 수 있다.(물론 다른 의미가 있지만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세상엔 얼마나 다양하고 맛있는 빵들이 많은지 과연 그 빵들을 모두 맛보고 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루에 한번 빵을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지, 하루라도 빵을 먹지 않으면 빵중독에 걸린 사람마냥 빵빵거린다. 집안 가득 빵내음으로 진동을 했을 때도 이렇게 중독 증상을 보이며 빵빵거리진 않았는데 점점 갈수록 빵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런 내게, 이런 책이 나타났다. 『맛있는 빵집


오 마이 갓! (이 소리가 왜 나오는지 새삼 알겠다.) 
 
한밤중에 절대로 읽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던 것 같은데 그만 펼쳐보고 말았다. 하지만 첫 번째 나온 올리브가 박힌 <블랙올리브빵>을 보며 '앗! 이것은 내가 먹어 본?' 안심을 하고(그 맛을 알기에) 리치몬드 과자점의 <바움쿠헨>도 '오호! 먹어봤지롱' 혼자 키득거리다가 <명란젓 프랑스>를 읽으며 '이 빵을 못 먹어본 사람은 정말! 불행해!!' 하며 혼자 신났었는데...어이쿠! 나의 행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알고 보니 앞서 나온 빵집들은 죄다 홍대 근처에 자리한 빵집들. 빵 좋아하는 내가 안 다녀볼 리 없었던 곳들이었다.=.=;
 
그러나,

다음 빵집부터는 이름만 들어본, 혹은 가 본적은 있었으나 먹어보진 못한 빵들만 나왔다. 나의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빵굼터의 <보스턴 소시지> 사진은 왜 그렇게 잘 찍었으며, 기존의 딱딱한 타르트하고는 전혀 달라보이던 듀 크렘의 <몽블랑 타르트>는 보기만 해도 입에서 살살 녹고, 이거이거 <마카롱>은 또 어쩔거야. 생각해보니 오래전 우리 집에서도 <마카롱>을 만든 적이 있었다. 시골 제빵사였지만 나름 이름이 있는 것들은 만들었던 것.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마카롱>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 맛있어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한데 언젠가 『빵빵빵, 파리』에서 읽었던 그 <마카롱>부터 또 언젠가부터 계속 내 눈 앞에 나타나는 <마카롱>을 맛 볼 기회가 없었는데 그 밤에 <마카롱>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와플 하면 벨기에, 아이스크림 얹어주는 <벨기에 와플>과 치즈가 듬뿍 들어갔을 것만 같은 <모찌모찌 크림치즈빵>, 추억의 <야채빵>과 팥이 한가득 들어 있는 <단팥빵>, 내가 좋아하는 감자로 만든 <감자빵>은 물론이고 <너츠 쇼콜라>는...
 
정말이지, 이 책은 그 어떤 요리책보다도 더 나를 자극한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 왜 다들 제과점 순례를 하는지 알고도 남음이다. 이 책을 보면 전국방방에 있는 그곳(!)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나처럼 빵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온갖 빵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난 출근 길에 제과점에 들러 빵을 샀다. 한 입에 들어가는 소시지가 들어간 페스츄리는 아침 식사용으로 딱 좋다. 빵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행복하다. 이제 인간은 만으로도 살 수가 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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