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써틴13』을 들고 열심히 읽다가, 오에 겐자부로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가 나를 쳐다보고 있기에, 무거운 『써틴13』을 들고 다닐 수 없어 그건 잠자리용으로 두고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반 정도 읽고 나니 같은 일본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이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거다(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는 중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읽은 후에 읽겠다고 자꾸만 눈길 가는 것을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주말에 그만,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푹! 빠졌다. 역시 미시마 유키오 짱!이라고 혼자 외쳤다.  

 

한동안 책 읽는 게 싫더니 요즘 들어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늘어난다. 집에 내려가 가지고 온 책도 한 무더기인데, 신간들도 자꾸만 눈에 띄고 남의 책상에 있는 책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읽고 싶다고 찜해 놓은 책도 여러 권! 언제 다 읽을 것인가, 리뷰는 또 언제 쓰냐 말이지. 올해도 리뷰 쓰기는 틀려먹은 것 같고, 페이퍼라도 올려 읽은 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책들!! 내 눈에 들어온 몇 권의 책들!!  

이 책이 왜 내 책상에 있었는지 몰랐다. 신간인 줄 알았는데 도무지 봤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발행일을 찾아보니 작년에 나온 책이었다. 웬만한 책들의 정보는 알고 있는데 이건 처음본다 싶었다. 알고 보니 앞에 앉은 분의 책이었다. 어쩌다 내 책상으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른 척하고 슬쩍(!)할려고 했는데 일부러 구매한 책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1월 말에 있을 저자 강연회 땜에 산 책이란다. 문득, 저자 강연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서울 토박이가 아니다. 서울 온지 20년이 되어가긴 하지만 서울은 늘 새롭다.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풍경 화첩』을 펼쳐보니 그런 서울의 풍경을 이야기 한다. 그것도 내가 좋아라 하는 수채화로 그림을 그렸다. 내가 살았던 곳의 풍경도 있고, 궁금해하던 곳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곳도 있고 지금하곤 너무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글 속에서 서울 곳곳의 풍경들이 느껴진다. 물감, 연필, 목탄이 섞인 그림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지금, 여기, 서울!! 



그림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좋아하기는 하나보다. 5권의 책 중에서 유독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 서점과 뉴스에는 <세한도>에 관한 기사들만 보이지만 나는 <구운몽>이 궁금했다.

구운몽, 오래전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을 자주 꾸었다. 아침에 일어나 기억나는 꿈이 있으면 해석을 해봤다. 찝찝한 꿈을 꾸면 하루 종일 뭔가 찝찝했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꿈을 꾸면 괜히 그 좋은 일을 기대했다. 그러다가 프로이트의 꿈이야길 읽었는데 내겐 조금 어려워 던져버렸고, 뜬금없이 <구운몽>문고판을 샀더랬다. 그 당시엔 책도 많이 안 읽는 데다 읽는 책이라곤 누구나 다 읽는 베스트셀러 소설들 뿐이었기에 그 책이 제대로 읽힐리가 없었다. 읽긴 했으나 내가 왜 그 책을 읽었을까, 생각했다. 그러곤 잊었다.

이 책 『구운몽도』를 보는 순간! 이제 읽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한데 알고 보니 이책은 구운몽은 구운몽이되 그림으로 보는 구운몽이다. 구운몽에 관한 그림을 20여년 동안 전국 방방고곡 찾아다닌 저자가 그림을 보고 구운몽에 대해 풀어놓은 책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렴 어떠랴~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구운몽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도 아니었는데 그림도 보고 이야기도 들으면 그게 더 좋은 거지. 우선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가 마음에 든다. 그림이 많고 그림을 보며 설명을 해주는 형식이라 어렵지 않아 술술 넘어간다. 근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세한도』에 눈길이 간다.  

 

지난 주에 <아바타>나 <아마존의 눈물>을 보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아무 생각없이 그냥 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근데 환경론자도 아니고 지구를 끔찍하게 위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괜히 이 책을 보고선 '이런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해!'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환경책이냐? 그렇지도 않다. 그저 진짜! 알래스카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저자인 이레이그루크는 신흥도시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외가 쪽 친척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전통적인 이누피아트 족의 방식에 따라 살았단다. 그건 그의 원주민 조상들이  수천 년간 영위해온 반유목민적인 생활이란다. 그곳에서 자란 저자는 어린 시절을 '석기 시대의 황혼'이라고 부른단다. 왠지 흥미진진해지는 기분이다. 

요즘 서울의 기온이 영하 15도를 오르내린다. 그것도 아이고, 춥다고 엄살인데 알래스카와 같은 곳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 더구나 자기 부족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추울 때 생각하는 그런 따듯한 집은 아닐 텐데...알래스카로 제대로 된 여행을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기대된다.  

 

이라면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맡고, 먹고, 보아온 탓에 웬만해서는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상하게도 빵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또 엄마가 빵집을 그만 두고 난 후부터는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면 어김없이 빵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빵이라 만만해서 그런 걸까? 어느 날 선물로 산 롤케익을 들고서 나는 생각했었다. 빵이야 말로 제일 뽀대나고, 맛있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물이라고! 

아직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책인데 어떤 책일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제목을 읽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코에선 구수한 빵 내음이 지나간다. 목차를 훑어보니 저자가 소개하는 빵집들이 한가득이다. 전국의 유명한 빵집들은 다 나와있나보다. 우리 동네에 있는 빵집도 보인다. 문득, 아뿔사! 이런 책이 나올 줄 알았으면 울엄마 빵집 그만두려할 때 나라도 그 가게 인수받아 빵집을 하고 있을 걸 그랬나보다 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이 책은 일본 동경 제과학교에서 빵을 배우고 파티시에로 현장 경험을 쌓은 저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맛있는 빵집 탐방기란다.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전국의 맛있는 빵집은 다 알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이 책에 나온 빵집들 이젠 대박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아, 한때 빵집딸이 아니었으면 가질 수 없는 마인드!!) 또 이 책에는 제과제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빵과 과자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정보도 넣었단다. 그나저나 정말 군침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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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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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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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여인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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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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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3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1-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게 좋은가요??

readersu 2010-01-13 13:23   좋아요 0 | URL
ㅎㅎ취향입니다. 저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체를 사랑합니당~~ㅋㅋ
스텔라..님은...훔..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웽스북스 2010-01-13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시마유키오 금각사 읽고 반했어요

readersu 2010-01-13 15:37   좋아요 0 | URL
<금각사>는 아껴두고 있어요.ㅎㅎ
<가면의 고백> 읽었는데 정말! 좋으네요..
<파도 소리> 읽어보려구요.^^
 
탐구생활 혼신의 신혼여행 1 - 서울에서 마라도까지
메가쑈킹만화가 부부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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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번밖에 없는 신혼여행(아, 물론 두어 번 내지는 서너 번 가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이 나이가 되도록 못 가보는 사람도 있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멋들어지게 다녀오고 싶은 맘이 5톤 트럭을 채울 만큼이나 가득할 것이다. 한데, 조막만한 발에선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고, 동남아 원주민 같은 피부에다 여기저기 피멍이 들고 사이클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허벅지는 점점 튼튼해지는 경험을 하며 신혼여행을 다녀온 부부가 있다. 바로 만화가 메가쑈킹(정말 메가가 쑈킹할 일!)과 그의 아내 금보!!! 작정을 하고 덤빈 메가쑈킹이야 둘째치고 상황판단 대충하고 따라나선 금보의 인내심은 정말 본보기가 될 법하다. 존경스럽기까지 하다.(언젠가 차를 끌고 친구와 함께 열흘 정도 전국을 헤맨 적이 있었다. 차를 몰고 다니면서도 그 피곤함이란 처음 떠날 때의 마음과 달라지는 법인데 자전거를 타고!! 그 아무리 쉬엄쉬엄 다녔다 하더라도 말이다. 해서 메가쑈킹은 모르겠고, 같은 여자로서 금보의 여행엔 박수를 쳐주고 싶다는!^^ 장하다, 윤금보!!^^)  

일찌기 외삼촌네 자전거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자전거를 독학으로 배워 한 손으로 타기, 양 손 놓고 타기 등등 서커스에서 보여주는 묘기를 제외한 모든 기본 동작을 섭렵한, 딴엔 운동 신경 발달했다고 자부하는 나도, 그 어떤 것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공포스럽게 경험하는 엉덩이의 아픔을 아는지라 두어 시간은 옥삼바리! 외치며 신나게 즐기지만 그 이상은 절대적으로 노우!를 선언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들 부부의 자전거 신혼여행을 따라다니다 보니(정말 내가 그 일정을 같이 소화한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우 만화를 봤을 뿐인데 느껴지는 이 피곤함과 뿌듯함이라닛!)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남편감을 잘 꼬드겨서 자전거 신혼여행, 꼭 해봐야겠다는 어이없는 결심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런 결심을 하게 한 것은 이들이 친구가 아닌 부부였기때문이다. 그것도 갓 결혼한 부부라면 그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여행도 그 아무리 찌지고 볶고 싸우는 일이 허다해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배려심없다고 누누히 강조하는 메가쑈킹의 딱 그만큼의 배려와(화난 금보 앞에서 저질(!)댄스로 웃겨주기, 뻑하면 울컥(!)하며 침울해지는 금보 눈치보며 달래주기 등등) 힘든 줄 뻔히 알면서도 남편의 뜻에 따라 선뜻(물론 금보 나름의 전략이 있었겠지만!ㅎㅎ) 자전거 신혼여행에 동참하여 메가쑈킹보다 더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며 부부일심동체란 이런 거다며 신혼초부터 알려준 금보의 심성이 내게 그런 결심을 가질 수 있게 유도한 것이지만 말이다. 아, 물론 메가쑈킹과 같은 남자를 만나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암튼, 텍스트로 만나는 숱한 여행기와 달리 만화로 보는 <탐구생활 혼신의 신혼여행 1,2>은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전국일주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바타처럼 3D 영상처럼 다가오진 않았지만 내게 있어선 거의 입체적인 풍경들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그들과 같은 경로를 차로 다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가는 도시마다, 그들이 느끼는 여행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것이기도 했으므로.  

또한 <탐구생활 혼신의 신혼여행1,2>을 읽으면서 즐거웠던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애드립을 보는 듯한 부부의 대화와 눈에 그려지듯 보이는 만화, 여행지의 풍경들을 찍은 사진과 간간히 나오는 그들 부부의 재미있는 모습들이 만화를 읽는 재미를 더욱 흥미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메가쑈킹과 금보가 나누는 대화들은 처음으로 메가쑈킹의 책을 읽는 나에겐 너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섬진강 가의 아름다운 길을 달리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아름다운 길을 꼽으라면 바로 이 길이 아닐까 싶어요."라는 메가쑈킹의 말에  " 337박자로 장구치면서 미디엄템포로 판소리라도 하고 싶은 분위기네요."라는 금보의 대답. 이 뿐만 아니라, 제주 송악산의 절경을 보며 "산신령이 MP3  들으며 조깅이라도 할 분위기"라거나, 맞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금보가 "천하장사가 뒤에서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라고 투덜거리는 말, 식탐(!) 많은 금보가 저녁을 대거 먹은 후 체해서 내뱉는 "뱃속에서 누가 위장을 샌드백 삼아 두드리며 창자로 줄넘기하는 것 같아요"와 같은 말은 이들 부부가 정말 이런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며 사는걸까. 의심스러워지면서도 낄낄거리며 웃게 만들어줘서 만화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것 같다. 아무튼 말빨 없는 모범생(!) 스타일의 나로서는 이런 대화를 하며 부부 생활을 한다면 정말,  싸울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했대나 어쨌대나...ㅋㅋ(난, 변식이 동생 변태야! 와 같은 말도 왜 그리 웃기든지-.-;;;)  

어쨌거나, 마침내 혼신의 힘을 다해 전국을 일주한 메가쑈킹과 금보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메가쑈킹의 말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공존하는 자전거 여행이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니 일찌기 그런 경험을 해온 그들로서는 앞으로의 인생은 저 먹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그 둘은 앞으로도 티격대고 재미있게 여행하며 나와 같은 처자들 약올리면서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메가쑈킹의 탐구생활, 처음이지만 재밌었다!! 아무래도 다른 책도 찾아서 챙겨봐야겠다. 제목들이 심상찮아서 마구 호기심을 당기니까. 특히 그들의 신혼여행에 보탬이 되고도 남은 <애욕전선 이상없다> 제목이 은근 당기잖아.ㅋㅋ  

자, 그럼!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메가쑈킹과 금보와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해 떠나는 신혼여행에 동참해보시면 어떨지! 나도 모르게 옥삼바리! 외치며 신이 날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여행은 생각나지 않을지도... 왜? 피곤하잖아! 힘들어, 자전거 여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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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디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2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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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아요. 그런데 이건 내 방송이에요. 내 목소리예요. 나라고요. 내가 찾는 건 1980년대에 방송된 비슷한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은 후부터는 갈피를 못 잡았다. 이젠 다 알았다는 예감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혼란스럽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다 알았다고 하는 순간부터 다시 헷갈리기 시작한 셈이다. 할 수 없이 다시 펼쳐서 다시 읽었다. 그래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너 번의 재 반복 후 내 나름대로 해석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소설이란 읽는 사람 마음이니.

주말 오후, 제목과 표지의 으스스함이 나를 당기긴 했지만 슬쩍 훑어본다는 것이 빠져들고 말았다. 흥미로운 책들은 늘 그렇다. 훑어보다가 읽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이 책에선 짧은 장들이 빠져듦을 자극한 셈이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잡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스트 라디오>의 청취자가 되었다. 그건 그 누구라도 이 라디오를 듣는 순간 애청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인데 <고스트 라디오>에 소개되는 청취자들의 경험담들은 한번쯤은 어디선가 들었던 괴담들인데다 어린 시절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혹은 우리가 공포 영화를 볼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영화를 감상하듯 무서워하면서도 들을 것은 다 듣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심과 두려움을 이야기하려고 우리에게 전화해. 마음속으로 상상한 것이나 실제로 자신에게 벌어진 일, 혹은 벌어지길 바라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이야기가 재밌으면 모두가 즐겨. 설령 시시해도 최소한 전화 건 사람은 가슴이 후련해지지. 그리고 청취자들이 바라는 건 그런 이야기가 주는 놀라움이지. 자발성의 힘. 예측불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 선사하는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들 말이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공포를 귀로 들으며 내가 아님을 안도해하는 마음. 혹은 너의 이야기가 무섭지만 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놀라움은 어릴 때 부모를 사고로 잃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마저 잃고 살아가는 호아킨의 비밀스런 과거를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마치 청취자의 괴기스러운사연을 듣는 것처럼. 

고스트 라디오』는 그런 재미와 흥미를 보여 준다. 이게 현실인지 상상인지, 또는 호아킨인지 가브리엘인지, 지금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아무도 모른다. 고대 중남미를 지배했던 부족 톨텍의 전설이 등장하고, 펑크 밴드의 으스스한 가사와 고스족의 패션을 하고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즐기는 여자가 나오는가 하면 제목이 보여주듯 섬뜩한 해적방송 <고스트 라디오>의 생생한 라이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배경에서 펼쳐지는 『고스트 라디오』는 청취자들의 기이한 사연 속에 호아킨이 경험하는 더 기이한 현상을 느끼며 책을 덮은 후에도 뭔가 찝찝한,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제대로 책을 읽은 게 맞는 거야? 뭐 이런.

그러거나 말거나, 『고스트 라디오』가 정말 존재한다면 한번쯤은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에 있는 라디오 주파수 찾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던 북한(!) 방송처럼 스릴 넘칠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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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5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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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 동안 제 책상 옆에는 이철수 님의 그림 달력이 걸려 있었습니다. 매달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새로운 그림과 새로운 글을 읽으며 한 달 동안의 건투(!)를 빌곤 했죠. 올해 12월이 되어 달력을 넘겨 보니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시집을 읽다가 
-우편배달부는
늘 늦는 것이다- 하는
대목을 보았다.
그로써
온 나라의 배달부가 다
늦게 다니는 것을
알았다.  

'궁금한소식' 

그러곤 밑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사람의 그림이 있습니다. 사실 별 것도 아닌 내용인데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철수 님의 그림과 글은 그런 것 같습니다. 짧은 글과 그림에서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활짝 웃게 되는. 일을 하다가 조금 지친다 싶을 때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미소 짓다가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글과 그림을 이철수 님은 그리는 것 같습니다. 

새 책이 나와 책을 펼쳐보니 첫 글이 '다시 시작하는 새날'입니다. 2009년도 이제 이틀이면 과거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2010년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시즘에 이 책을 만나게 되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철수 님의 '다시 시작하는 새날'로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기분!^^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해가 떠오르고, 하루 사셨지요?
하루 제일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을까요?
달이 떠오르죠, 하루가 흘러 버렸지요?
내일로 가져가야할, 짐이 될 일이 뭐 있으신지요?
오늘 못할 일이야 있겠지요?
저도, 새기다 둔 판화를 다 잊고 이어 새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내일 일입니다. 다 잊고 다 내려놓고 쉬어야지요.
짐꾼도 지고 있던 짐 내려놓아야 쉬게 되듯, 마음에 안고 있는
짐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늦도록 그림 그리고 나면 신경이 지칠 법한데  
곤두서서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데 서툴다는 뜻입니다.
깊이 쉬고, 다시 시작하는 새날을!
 

그래요, 2009년 못한 일도 많지만 굳이 안고 있지 않을래요. 푹 쉬고 새날에 다시 시작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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