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라지만 하나 같이 어찌나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지 소설 좋아하는 내가 소설은 내팽개치고 그림책에 홀딱 빠지게 만든 책들이다. 『황금별 토끼 찬찬이』는 다섯 마리 토끼 형제가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으며 포기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화사하고 밝은 수채화로 그린『꼬끼오네 병아리들』은 따뜻한 이야기 속에 수의 원리를 가르쳐주며, 안데르센의 명작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펴낸 『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은 환상적인 그림과 신비로운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엄마 옷 입어보기를 통해 할머니들이 입던 옷을 코믹하고 재미있게 소개한『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옷』은 할머니들의 옷을 통해 우리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  그럼, 책들을 한번 살펴볼까?
 

안데르센 원작의 책을 새롭게 편집하여 펴낸 『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중국의 황제와 신비로운 정원,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나이팅게일 새와 순수한 힘으로 슬픔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민첩한 소녀의 이야기 입니다.

‘공기에 몸을 기댈 수 있는 여자아이’로 불리는 소녀가 황궁으로 들어와 생활을 하죠. 소녀는 황제가 만든 최고의 정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나이팅게일의 노래라는 시를 들은 황제가 나이팅게일을 궁금해 하자 친구인 나이팅게일을 황궁으로 데리고 와 노래를 들려줍니다. 나이팅게일의 아름다운 노래는 천하의 황제가 허리를 구부리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하죠. 황제는 이제 나이팅게일을 곁에 두지만 나이팅게일이 외로워하자 나이팅게일과 똑같은 황금조각상을 만들어주고 같이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나이팅게일과 황금으로 만든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어울리지 않았고 계속 노래를 부르게 하자 살아 있는 나이팅게일은 지쳐버리고 말아요. “하지만 황금으로 만든 나이팅게일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요. 매번 같은 노래를, 매번 완벽하게요.” 그리고 사람들은 황금으로 만든 나이팅게일의 마법에 걸려서 진짜 살아 있는 나이팅게일을 잊어버리고 황제는 슬픔의 병에 걸리고 맙니다.

“사람들은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게 되면, 그 뒤에도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아픔을 느끼곤 해요. 여러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아픔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답니다. 아픔은 슬픔과도 같아요. 슬픔은 자라나 우리를 끝없이 지치고 또 지치게 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너무나 커져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정도로 말이에요. 아픔이 너무나 커지면, 그것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게 돼요.”

슬픔의 병에 걸린 황제로 인해 세상이 어둠에 잠기자 소녀는 다시 한 번 나이팅게일을 찾으러 갑니다. 과연, 소녀는 나이팅게일을 찾고 황제의 병도 고치고 어둠에 잠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요?

 

'장난꾸러기 병아리 열 마리와 함께 배우는 재미난 덧셈 뺄셈' 
플랩북으로 되어 있는『꼬끼오네 병아리들』은 아빠 꼬끼오와 엄마 꼬꼬댁, 열 마리의 귀여운 병아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수의 원리와 함께 덧셈, 뺄셈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책입니다. "꼬꼬댁은 열심히 알을 낳았습니다. 한 개를 낳고 세 개를 낳고 또 세 개를 낳고 두 개를 더 낳았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을 한 개 더 낳았어요. 알은 모두 몇 개나 되었나요?"와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유도합니다. 밝고 화사한 수채화로 그린 그림은 꼬끼오와 꼬꼬댁, 병아리들의 몸짓과 표정들이 장난스러우면서도 귀여워 숫자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그림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플랩북은 답을 말하며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꼬끼오네 병아리들』의 꼬끼오 가족을 보면 수의 원리를 떠나서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그림들이 따듯해요. ‘눈도 없고 코도 없는 이상한’ 알을 낳은 암탉 꼬꼬댁의 어리둥절하는 표정이나 알을 낳는 꼬꼬댁의 출산의 고통(!), 열 개의 알에서 저마다의 행동과 모습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들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이 보아도 미소를 머금게 하죠. 또 솔개가 나타나자 암탉인 꼬꼬댁의 깃털 사이로 저마다 숨는 병아리들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이 장면이 위급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큭큭 웃음 짓게 합니다. 물론 그 뒤에 나오는 수탉 꼬끼오가 솔개를 물리치는 장면에서의 병아리들 모습은 더욱 귀엽지만 말예요.

이렇게 따뜻한 가족애가 넘치는『꼬끼오네 병아리들』, 자칫 지루해할 수의 원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더욱 즐겁게 배울 수 있답니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 동화를 한번도 써보지 않은 작가가 투병을 위해 들어간 병원의 어린이 병동에서 만난 한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첫 동화이자 유작이 되었대요. 특히 그림을 그린 화가 또한 병원에서 만난 오른팔이 부자유스러운 화가라네요. 암 투병을 했던 작가, 오른팔이 부자유스러운 화가, 어린이 병동에 장기입원 중이었던 소녀. 그 셋이 풀어낸 생명과 희망의 빛이 『황금별 토끼 찬찬이』에 들어 있습니다.

엄마토끼 뱃속에 있을 때 하늘에서 아름답고 고운 소리가 들려 다섯 형제를 이끌 운명임을 알았던 찬찬이. 왼쪽 귀 끝에는 황금빛 별 표시가 있으며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죠.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토끼 찬찬이는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형제 토끼들이 찬찬이가 외롭지 않게 마음을 써주었어요. “나 때문에 신경 쓸 거 없어. 난 이 세상에 무사히 태어난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 너희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잖아.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 밖으로 나가면 내 생각 말고 신나게 놀아!” 하지만 찬찬이는 곧잘 시무룩해지기도 했죠. 어느 새 다 자란 형제토끼들은 먹이를 찾아 숲으로 나가게 되면서 집에만 있는 찬찬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어요. 비록 뒷다리는 형제토끼들이 도와주고 앞다리만 걸어 다녔지만 숲은 즐거운 장소였죠. 그러던 어느 날 형제토끼들은 굶주린 사자와 마주치게 되고 다들 겁을 먹지만 힘을 합칩니다. ‘하얀 뱀 찬찬 호’로 가장하여 사자와 지혜 겨루기를 하게 되는 토끼형제들! 과연, 찬찬이와 형제토끼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찬찬이는 비록 뒷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엄마토끼의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태어나야 해’라며 포기하지 않았어요. 또한 사자를 만나고서도 ‘반드시 모두를 구해 낼 거야.’라며 믿었죠. 매일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에요. “하고 싶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포기를 모르는 우직함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광고 문언처럼 『황금별 토끼 찬찬이』는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준답니다.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어릴 때 엄마의 높은 구두를 신어보거나 옷을 입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헐렁한 엄마의 원피스는 아이에게 드레스가 될 것이고 화장대에 놓인 화장품들은 아이를 숙녀(!)로 만들어줄 마법의 물건이겠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옷』은 그런 아이의 마음을 시간여행이라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개항기에서 선사시대까지 할머니들의 옷을 돌아보며 우리 옷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에 감탄하게 합니다.

“어, 팬티가 다 보이게 생긴 이 치마는 누구 거지?” 알고 보니 할머니의 치마였어요. 할머니가 이런 치마를 입고 다녔다고? “내가 젊었을 때 입던 치마란다. 나도 그땐 멋 좀 부렸지. 짧은 치마 입는다고 어른들한테 혼도 많이 났지만 말이야.” 우리가 보기엔 멋있어 보이지만 그 당시 어른들에겐 방정맞은 차림이었다네요.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할머니의 할머니의 시대로 가면 할머니들의 옷은 점점 더 몸을 감싸게 되고 그 당시의 어른들은 지금이나 똑같은 말로 그런 옷을 입었다고 한마디씩 하십니다. 또 점점 달라지는 옷차림을 보면서 아이들은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입었던 옷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죠.

지은이는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꼼꼼히 재현해냈어요. 뒷부분에 시대별로 분류해 놓은 ‘할머니들이 입던 우리 옷 이야기‘는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옷』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르는 사람의 일기를 읽어보는 일은 소설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주변의 일이 아니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이기에 그게 비록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간에 그럴 수도 있구나! 라는 공감 아닌 공감 한마디 던지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일기를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몇 방울 떨어뜨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참으로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뭐야. 이거, 내 일도 아닌데 웬 눈물? 

 이 남자, 이석원의 책을 읽으며 주책맞게 또로롱~ 눈물 한 방울 흘렸다. 도대체 어느 문장이 나도 모르게 나의 감정을 건드렸을까? 책을 되돌리니 온통 밑줄투성이다. 헉, 이거 내 일기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게 좋은 남자, 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스스로 아메바처럼 여겼던 남자, 연애란 이어달리기와 같다는 남자, 서른여덟 생일날 존재의 본질을 깨달은 남자,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남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비애(!)를 아는 남자, 그 비애(!)를 너무나 능청맞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리는 남자, 나이 마흔에 칠순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부끄러워하는 남자, 그러면서 엄마의 동문서답에 짜증부리는 남자, 효심도 깊다면서 엄마가 말을 걸면 화부터 난다는 남자, 지금의 얼굴이 전생에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라는 말에 설마, 이 얼굴을 하며 믿지 않았던 남자,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말하는 남자, 남들도 다 외롭다는 사실마저 위로가 되지 않으면 책을 읽으라는 남자, 결혼하고 싶을 만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비는 남자, 엄마의 믿음에(!) 따라 노란 옷은 절대로 안 입을 거라 해 놓고선 노란색 표지로 책을 펴낸 남자,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라고 말하는 남자, 거절 당하는 걸 두려워하는 남자, 컴플렉스란 숨겨도 솔직해도 어쨌든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알고 있는 남자.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보통의 존재이며 우리가 그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렇게 밖에 기억되지 않는 존재라고 말하는 남자.

분명 내 이야기가 아니고 한번도 만난 적 없고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의 이야기인데 공감, 공감, 공감을 했다. 분명 이름이 있는 가수인데 도무지 스타 의식이 없어 보이는 보통의 남자. 어쩌면 꾸밈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기 때문에 보통의 존재들일 수밖에 없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남의 사생활에 이토록 관심을 갖다니 나 좀 이상한 거 아냐? 뭐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찌나 공감스러웠던지... 

우중충한 겨울, 쓸쓸함이 밀려온다면 이석원의 일기를 훔쳐(!) 보길 바란다. 그의 일기 속에서 나의 마음을 발견하고, 그 마음으로 인해 '나'를 다시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쓸쓸함이 사라지고 말테니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ch 2009-12-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공감이 돼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readersu 님 덕분에 더 좋아졌어요.

readersu 2009-12-02 11:07   좋아요 0 | URL
Arch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이석원의 책은 정말 공감덩어리라서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꼭 나를 되돌아보는듯한..ㅎㅎ
Arch님의 멋진 리뷰 기다릴게욤~^^

Arch 2009-12-02 13:13   좋아요 0 | URL
반갑단 인사도, 잘 지내냔 말도 다 좋은데 멋진 리뷰를 기대하면 곤란해져요^^ readersu님 만큼 리뷰 쓰려면 제 페이퍼 10개(100개로 쓰려다 자존심은 있어서ㅋㅋ)로도 모자라요.

readersu 2009-12-02 15:20   좋아요 0 | URL
에이~겸손하시긴요.
제가 Arch님의 실력을 모르는 바가 아닌뎅~~ㅎㅎ

2009-12-03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4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7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저장
 
 전출처 : readersu > 『위험한 독서』김경욱 작가를 읽은 날

작년 9월 소설집『위험한 독서』(문학동네) 펴내고 2009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경욱 작가의 낭독회를 다녀왔다. 책을 낸지는 일 년이 지났지만 올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가인데다 김경욱 작가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아 마련한 자리였다. 평소 바깥출입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암굴왕’이란 별명까지 가졌다고 했는데 의외로 유쾌하고 즐겁게 낭독회를 이끌어갔다.

문학동네 마케팅 직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낭독회라는 자리에 걸맞게 낭독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인사말에서 김경욱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하다고 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의 글을 읽은 분들을 만나고 싶었고 다음에 글을 쓸 때, 독자의 목소리와 얼굴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글에 인용하겠다는 말도 했다.(훔, 난 좀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진짜 인용될지도 몰라) 그동안 작가들의 여러 낭독회를 다녀봤는데 이번처럼 적극적이고 유쾌한 낭독회는 처음이었다. 미리 신청을 받은 독자들의 낭독도 낭독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낭독을 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작가의 낭독은 소설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을 읽게 마련인데 김경욱 작가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말>을 낭독했다.

<작가의 말>이야말로 그 자신에게 하는 말로 책을 낸 그 당시의 느낌과 소감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작가의 말을 잠깐 옮겨보자면,

“이번에는 당신이 읽을 차례야. 나를 읽어봐. 당신의 독서를 위해서라면 나는 스스로 책이 되는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으니까.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위험해지는 것뿐이니까. 그러니 평안하고 또 평안한 수만 번의 아침저녁이여 안녕.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위험한 독서』는 2005년 ~ 2006년 동안 쓴 작품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그 책엔 그 시기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한다. 그동안의 김경욱 작가의 책 제목들은 길고 외국적(!)인 제목이었지만 이번에 좀 다른 원칙을 세워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외국어가 들어가면 안 되고, 제목이 길면 안 된다. 『위험한 독서』의 다른 단편들 제목들이 서로 경합을 벌였는데 그 중에 가장 그 원칙에 맞는 제목이 바로 ‘위험한 독서’였다.

독자들은 김경욱 작가가 글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드러내는 방식이 읽는 사람과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란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작가의 고백(!)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묘사만으로 글쓰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고민했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책이 『위험한 독서』이다. 이 책에선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드러내지 않고도 ’나’를 묘사하는 것으로 내면에 투영되는 방식의 글쓰기 인 셈이다.  

김경욱 작가는 작가의 작품에서 작가의 의의를 찾는 것은 곤혹스럽다고 한다. 작가가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독자가 그 책을 사서 읽는다면 그 책은 독자의 책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해석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 책을 어떤 독자가 읽든 그 독자에게 어떤 형식으로 다가와서 그 글을 완성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도대체 이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인가 따위의 궁금증은 불필요한 것이라 했다. 작가가 그 의도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 글은 불쌍해지고 마는 거란다.

작가의 낭독이 있은 후 독자의 낭독이 이어졌다. 처음엔 미리 신청한 세 분의 낭독이 있었고 마지막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낭독을 한 독자들이었다. 작가의 낭독도 좋았지만 독자들의 낭독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독자의 낭독은 질문과 번갈아 가며 진행되었고 그때마다 작가는 유쾌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글쓰기에 관한 질문과 문학의 다양성에 대한 답변, 소설 기계라는 호칭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위험한 독서』에 관한 여러 궁금증들, 그리고 글쓰기의 행복과 고통에 관한 답변까지 질문들도 끊임없이 쏟아졌다. 한시간 반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사인의 시간. 집에 있는 책을 들고올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두고 온 탓에 그날 판매하고 있던 『황금사과』를 샀다. 장편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던 지라 마침, 잘 되었구나! 했는데 뒷편에 보니 발문을 김연수 작가가 했다. 둘은 등단을 같은 해 작가세계로 했단다. 김경욱 작가는 소설로, 김연수 작가는 시로. 괜히 더 반가웠다는.^^ 그리고

지난 해 『위험한 독서』가 나온 후 김경욱 작가를 오붓하게 만날 수 있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얼굴을 마주보며 앉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표지 사진으로만 봤던 그 날카로움을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소탈하고 유쾌하고 재미까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자 세 명과 가졌던 인터뷰 자리였던지라 성숙하지 못한 질문들을 던졌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성의 있게 답변을 해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그때의 첫인상이 원래 그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일 년이 지났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이는 모습. 이젠 ‘암굴왕’이라는 별명을 벗어던질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술 2009-12-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경욱 작가 사진 바로 왼쪽 문단은 제 생각이랑은 많이 다르네요. 전 제 뜻대로 독자들이 해석해주지 않으면 속상하던데. 제 눈에 김경욱 작가는 신선이나 도사처럼 세평을 초탈한 거 같네요. 난 언제 그런 경지에 다다르려나?

readersu 2009-12-04 10:58   좋아요 0 | URL
신선이나 도사라서 아니라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이 쓴 작품의 완성은 독자가 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작가의 의도가 이러하니 이런 식으로 읽으라고 하면 그 책을 읽는 독자의 생각은 사라지고 마는 거죠. 그럼 독자는 책 읽는 재미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그 책을 읽고 내 식대로 읽어주길 작가들이 바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게 옳다고 생각하구요.^^

심술 2009-12-07 14:2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아무나 작가 하는 게 아닌가 봐요.
댓글저장
 
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엔 '사실'인 천지의 죽음이 못마땅했다. 왜 청소년 작가들은 뻑하면 아이들을 죽이기만 하는 걸까, 그동안 읽어온 책들에서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죽어갔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내 마음이 '선입견'이라는 걸 알았다.겉만 보고 판단하고 믿어버리는 나쁜 생각.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도 엄마들의 마음도 잘 모른다. 천지와 같은 또래의 조카가 있지만 그 조카의 마음 역시 어떠한지 잘 몰랐다. 요즘 한참 예민해져서 집에만 오면 방문 걸어잠근다는 소릴 들으면서도 그 아이의 마음 한번 알아보려 하진 않았다. 사춘기니까, 그 또래 아이들은 다 그러니까… 한데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아이를 보내고도 너무나 '씩씩한' 엄마가 괜히 얄미웠고(엄마의 그 마음은 뒤에 가서 알게 되었지만), 동생과 같이 지내면서 천지의 마음 하나 제대로 몰랐던 만지도 미웠다. 그보다 더 미운 것은 '우아한 거짓말'로 천지를 놀려(!)먹은 화연이보다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을 대신한 천지였다.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왜? 언니나 엄마에게 좀 더 손을 뻗어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좀 더 견뎌내면 되지 않았을까. 부질 없어 보여도 그.래.도.

『완득이』로 독자에게 짠하면서도 많은 웃음과 희망을 전해줬던 김려령 작가가 이번엔 가슴 아픈 이야길 풀어냈다. 천지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던 작가였기에 좀 더 실감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 책에서 피해자는 누구일까, 모든 일이 그렇듯이 각자의 입장이 있었고 그들에게 그 이야길 들어보면 모두 맞는 소리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닐 것이다. 너희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라는 것일 테다. 천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화연이가 천지에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미라는 또 왜 방관하고 있었는지.  

그 아이들 모두 그저 따듯한 시선으로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바르고 예쁘게 잘 자라고 있을 거다. '내'가 잘못되길 바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진심으로 깨달았다면 나쁜 것인 줄 알면서 하지도 않았을 테고 죽음을 생각하지도 않았을 테지.  

뜬금없이 조카에게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잘 지내느냐?"고.
김려령 작가를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붙잡았다던 그 말이, 진실이 담긴 작은 말 한마디가 어쩌면 이런 저런 어른들이 모르는 많은 고민들과 사춘기라는 굴레에 얽혀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조카에게 가장 따뜻한 말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그동안 화장실(!)에 두고 읽었던 책을 드디어 교체했다. 정말 오래도 읽었는데 딴엔 짧은 글이 들어 있는 책을 둔다고 했지만 조금 길었다는 느낌이 들어 그것보다 더 짧은 이야기가 있는 책을 고르기로 했다. 어떤 책을 두면 좋을까, 책장을 훑어보니 눈에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었다. 바로 파올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이었다. 짧은 글들이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들, 화장실에 딱 어울리는 좋은 컨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화장실에서 읽는다면 코샘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딱 좋았는데^^;; 읽어보니 내용마저 좋았다. 

"'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상대의 눈을 맞추십시오.' 그의 말대로 한 다음부터는 좋은 일만 생겼습니다. 세상의 어떤 소통 방식보다도 눈을 맞추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에게 원고를 받을 일이 생겼다. 내가 하는 방식은 메일을 보내거나 좀 더 친근한 척하며 문자 혹은 전화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분들을 직접 만나 눈을 마주보며 부탁을 할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다들 안면이 있는 분들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굳이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 싶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렇다하더라도 만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엔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다. 또 이런 글 "그러나 나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단 하나의 힘인 그럿을 결코 버릴 수 없다. 모든 것이 절망적일지라도 슬프고 무기력한 감정이 나를 짓누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확신이 내 마음을 지배할지라도.(…) 희망, 그것은 아침부터 우리 곁에 머물다가 상처투성이의 하루를 보낸 뒤, 저물녘에 숨을 거둔다. 그리고 새벽 여명에 다시 살아난다." 아, 희망에 대해 이토록 멋진 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튼 요즘 나는 매일 아침 파올료 코엘료의 멋진 문장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셈인데, 그 덕분에 그날 하루를 가끔은 행복한 웃음으로 보내고, 가끔은 살아 갈 힘이 불끈 솟아나기도 하며, 또 가끔은 괜히 즐겁기도 하다. 그게 바로 글의 힘인 셈이다. 

주말에 뜬금없이 아껴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눈길이 갔다. 마침 읽던 책을 다 읽고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왠지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꽂이에 있던 달콤한 소설들을 훑어보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래, 내가 왜 너를 사랑하는지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매우 철학적으로 말이다. 해서 토요일, 그날 따라 조금 외롭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다가오던 그런 날에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말해 뭐하겠냐마는 어김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아, 알랭 드 보통! 난 이 남자를 사랑하고프다!ㅋㅋ 

'내'가 클로이를 만나 그녀에게 접근하기까지 이 남자가 고민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다. 나름대로 대단한 분석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 보지만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어느 것도 분석적이질 못한다. 모든 것이 자기합리화다. 그 누가 뭐라해도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결론은 피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클로이가 그의 '갈망'의 대상이 된 이상 '삶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이' 가더라도 혹은 '전화 고문'(!)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도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그렇다고 말을 못한다'고 믿었음에도 사랑 때문에 '불구'가 되고 말았지만 그들은 '애들'이 아니었다.  

책을 정신없이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분석은 그야말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모든 글이 밑줄이다. 내 이럴 줄은 알았지만 정말이지 너무하다 싶다. 외로웠든 주말이 드 보통의 책으로 행복해졌으니 말이다. 아, 사랑이 이런 거였지. 맞아! 드 보통은 어쩜 사랑을 이렇게 분석적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공감 백배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외로웠지만 드 보통때문인지 그 누구 때문인지 모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던 주말(이런 말장난 같은;). 외롭다고 느낀다면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 가장 깜찍한 말은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

아마도 내가 이 글을 올리면 내 친구들은 그럴 것이다. "네가 외롭긴 참 외로운가 보다." 그래, 알면 됐다. 친구들!^^    

어제 저녁,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몇 페이지 남겨두고(왜냐, 아껴 읽어야 하니까!) 김려령의 신작을 읽기 시작했다. 『우아한 거짓말』, 개인적으로 아이들의 자살이야기나 우울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왠지 이 책은 끌려버렸다. 내게도 이제 중1이 된 사춘기에 접어 들어 무진장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조카가 있으므로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사춘기가 무슨 큰 벼슬이나 된 것처럼 부모나 어른들과 '통'하지 않으면 말부터 닫아버리고 마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도 어른이 되어 어른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역시, 그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우아한 거짓말』에 나오는 천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직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결심을 했는지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괜히 아이를 죽여버린 작가가 살짝 미워지기도 한다. 꼭 죽였어야 했을까 싶기도 하고. 

"애들이 자꾸 나만 술래 시켜." 
"안 한다고 해."
그렇게 얘기해봤어요, 엄마.
"그래도 자꾸 시켜."
"그럼 걔들이랑 놀지 마."
그럼 나는 누구랑 놀아, 언니?
그날부터 입니다. 친구에 대해 더 이상 엄마와 언니에게 상의하지 않게 된 때가.
 

아, 이 글을 읽는데 뭔가 가슴에서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이들이란, 별 것도 아닌 말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천지의 마음이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 뒤에 있는 정유정 소설가의 말이 조금은 안심을 시킨다. "냉철하고 강인하고 뜨거운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 소설이니까 당연히 그래야겠지. 

그리고 읽을 예정인 몇 권의 책!  

중국 소설, 『복사꽃 피는 날들』특히 이런 류 소설 좋아한다. 앞부분 살짝 읽었는데 역시 나의 스타일이다. 기대 만땅이다.  

독일 문학, 『아우스터리츠』여기저기서 추천을 두 개이상 받은 책이면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고로, 언제 읽을지 모르겠으나 구입! 조만간 읽을 생각이다. 

라틴 소설, 『광기』이미 읽어본 친구들이 추천을 눌렀다. 읽어보고 싶다하니 책을 보내주었다. 고마운 친구 같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