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음악과 그림, 영화. 또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책 속의 주인공을 공유하고 작가를 공유한다. 이런 공유는 의외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너와 내가 통한다는 의미도 있고 내가 던진 말에 알아듣는 말로 대답을 해 준다는 의미에서. 문득 책과 공유한 것들을 찾아봤다. 썩 훌륭한 독서가가 아니라 많은 공유물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이런 책도 있었군! 하고 놀란 책도 있었다.

 

그림책과 음악

조카가 태어나고 한동안 그림책은 내가 읽어대는 책들 중에서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 전엔 그림책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림책이란 단순히 아가들이나 읽는 ‘유치한‘ 그림들로 가득한 그저 그런 책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카와 단계별로 그림책을 읽어대면서 그림책이야말로 그 짧은 글과 그림에 인생의 깊이와 의미를 함축한 멋진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우습게’ 보던 그림책에 홀딱 빠져들어 좋은 그림책을 보면 조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 모으기도 했었는데,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의 작가 김영욱은 그런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림책을 읽으며 음악을 떠올리는 일이다. 이건 음악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생각해보니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더구나 그가 추천하는 그림책들은 하나 같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추천하는 음악은 옳거니!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동안 그림책을 많이 읽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그림책은 언제 있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좋은 그림책이 많았으며 어찌 이 그림책을 읽고 그 음악을 떠올렸을까 싶어 재능도(!) 많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여기에 소개하는 그림책들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직동과 통기타, 꽃과 왈츠, 뜬금없어 보이지만 어딘지 어울리는 망태할아버지와 핑크플로이드, 마리오네트 인형과 들국화. 빨간 고양이와 카르멘까지.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림책과 음악이 공유한다. 더불어 조금씩 소개되는 책이야기와 영화까지. 뭔가 어수선해 보일 것 같으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글이 부담스럽지 않게 읽힌다.

‘찬란한 우리의 생을 축복하는 음악과 그림책의 앙상블!’ 잊고 지내던 그림책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이 찬란하고 축복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살짝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책과 그림

그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림의 깊이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헤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우연히 보게 된 그림을 내 식대로 해석하고 바라볼 줄은 안다. 그런 까닭에 그림을 보여주는 책들을 좋아하고 그림이 나온 책들을 가끔 찾아 읽고 있는데 그런 내 구미에 딱 맞는 책을 그림 ‘볼’줄 아는 여자 곽아람이 소개한다. 그녀가 읽은 수많은 책들과 공유한 그림들을 보노라면 공감이라는 두 글자가 무수히 많이 머릿속에서 떠돈다. 어쩜 이렇게 그 책에 딱 맞는 그림을 골라낼 수 있을까. 따라하고 싶어지지만 그림을 ‘볼’줄 몰라 이내 포기를 했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는 “문학과 그림이라는 두 장르의 예술을 함께 즐김으로써 삶에 자그마한 위안을 얻은 한 개인의 체험기”라고 저자가 말했다. 누구나 책을 읽다가 다른 장르의 공통점을 찾기도 하는데 곽아람은 그 공통점을 그림에서 찾았다.

허먼 멜빌의 『바틀비』를 읽고 에드워드 호퍼의 <소도시의 사무실>이란 그림을 떠올린 그녀, 글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I would prefer not to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란 말을 던지고 묵묵히 제 일만 하는 바틀비의 모습이 호퍼의 그림 속 남자와 무척이나 닮은 것이 그보다 더 맞는 그림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에밀리를 위한 장미」에서 죽은 애인과 40년 동안 같이 지낸 에밀리의 모습과 영국 시인 엘리자베스 베릿 브라우닝의 시 「궁정의 여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렸다는 아서 휴즈의 <그건 피에몬테 사람이었네>는 여자의 무표정한 듯 애절한 눈빛에서 에밀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니 그야말로 적절한 책과 그림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아무나 그림을 상상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곽아람이 보고 느끼고 기억해내는 책과 그림은 그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리와 책

나도 요리라면 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요리 뿐만 아니라 음악도 좋아하고 영화와 그림에도 관심이 많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한 모든 책들에서 보여준 주제들을 한번쯤 생각해봤음직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다. 영화를 볼 때면 영화만 보고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만 듣는다. 물론 책을 읽을 때는 당연히 책만 읽는다. 한데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요리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고 음악도 나오는데 그것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나도 책 한 권 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번 책은 책 속에 나오는 요리를 소개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요리를 다룬 책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평범한 나와 같은 독자들은 그 요리를 그 책 속에서만 보고 만다. 한데 『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쓰기』의 저자 차유진은 그렇지 않았다.  

책을 한 권 읽어도 그 속에 담긴 요리들을 찾아냈다. 하루키의 책에서 샌드위치와 햄버그를 레이먼드 카버의 책에선 계피빵을, 현진건의 책에선 설렁탕을 기억해냈다.

또한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은 나도 읽었지만 차유진이 말하는 대목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이럴 수가! 어쨌든 차유진은 『사랑의 갈증』에서 에쓰코가 멍 때리며 만든 고구마(감자?) 요리을 기억하며 미시마 유키오의 이력을, 요리 학교에서 겪은 한 일본 여자 아이의 ‘에쓰코스러운‘ 일상을 술술 풀어낸다. 감자가 들어 간 일본 요리 ’니쿠쟈가‘의 레시피는 덤이다. 또 김연수 작가의 『꾿빠이 이상』에 등장하는 이상의 마지막 가는 길에 멜론인지 레몬인지 먹고 싶었다는 부분을 인용하며 지금도 먹기 힘든 멜론을 그 시대의 과연 먹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의문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눈 후 돌아가신 외숙모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외숙모의 제육볶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렇듯 책을 읽으며 각자가 느끼는 생각들은 다르다. 어쩜 자기 기호에 맞게들 떠올리는지. 더불어 우리 같은 독자는 좋기만 하다. 내가 읽은 책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같이 공감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책도 읽고 싶고, 요리도 만들어보고 싶다면 이 책,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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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9-11-24 10:2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재니스 리가 아주 소탈하고 재미있었답니다.
그리고 저 말은 칭찬이죠?ㅎㅎ감사합니다.
 
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했었다. 그건 아마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들의 모델은 항상 그들의 아이들이었을 테니 다양한 장소에서 포즈를 취하게 하는 아버지 덕분에 언제나 늘 사진은 찍히는 거라 생각했었을 거다.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도 실물보다 사진이 덜 예쁘게 나왔으면 찍힐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사진을 찍으면 항상 실물보다 더 잘 나왔다. 그래서 남들은 안 찍으려는 사진을 친구들의 카메라 앞에서 무수히 많이 찍혔다. 나중엔(지금이야 디카가 있어 저장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사진을 정리하는게 겁이 날 정도였다. 매해 앨범이 두어개씩은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는 조금씩 사진 찍히는 걸 거부하기도 했지만 디카가 생긴 후로는 또 다시 친구들의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민다. "한 장의 사진은 단숨에 세월을 되돌려 자신과 힘겨워 싸움을 벌였던 그 순간으로 이동시켜준다." 라는 조세현 작가의 말처럼 그 사진 속에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은 추억들이 자리잡고 앉아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의 그 세월로 나를 데리고 가기 때문인데 가끔 사진을 보며 회상에 잠기다보면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살짝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조세현의 얼굴』을 읽으면서 사진에 대해 새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디카의 보급으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조차 구별하기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진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문가의 마인드는 다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찍는 게 아니라 그 사진 속에 그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전문가라는 것을 『조세현의 얼굴』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소수민족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찾아간 중국 시안의 사람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을(백인도 흑인도 아닌 우리하고 별반 차이가 없는 중국 사람의 얼굴을) 찍은 책이 뭐 그리 멋지겠냐마는 그의 사진엔 상대의 마음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고추를 파는 상인의 해맑은 웃음에서, 아이를 목에 태우고 웃고 있는 아버지의 까만(!) 손톱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 거리의 미용사의 수줍은 미소에서, 다음에 만나면 친구가 될 거라며 호탕하게 웃고 있는 버스 차장의 모습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조세현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사진이 갖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사람은 삶의 준말이라며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그는 안 그래도 요즘 사진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진 내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연예인의 인물 사진이나 찍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상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이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은 입양을 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수년 째 찍어왔고, 소수 민족이나 지적 장애우들의 사진을 찍어준다는 이야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사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나는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볼 줄 몰랐던 모양이다. "사람의 표정을 담는 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데 이젠 나도 사람의 얼굴을 사진에 담을 때는 그 사람의 삶을 상상이라도 하며 담아봐야 하겠다. 문득 어릴 때 찍은 사진을 지금 들여다 본다면 그땐 보이지 않던 그 무엇을(그게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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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가급적이면 책을 구입하지 않으려는(점점 장식이 되어 가고 있는 나의 책들에게 무한한 미안함을 느끼면서 이젠 너를 좀 읽어주마 약속하였기에) 나의 마음을 매일매일 흔들어 놓는 신간들.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건만, 신간만 나오면 어김없이 흔들리고 마는 내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한다는. 그래서 결국 또 구매 버튼을 누르고야 만 슬픈 이야기. 도대체 어떤 책이었기에 내 마음을 흔들었냐고? 바로 이 책들! 

『그림이 그녀에게』로 내 마음에 와 닿은 그녀의 글. 이번엔 그림과 책을 이야기 한다니 안 사고는 못 배긴다. 이것 필시 오프에서 제대로 확인을 해야 하건만 '곽아람'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냥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으~ 그림때문인가? 폰트 넘 크고 행간격 넘 넓어 맘에 안 드는데 가격이 꽤 비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꽂혔으니. 담날로 온 책을 바로 읽었다. 서평에 그와 어울리는 그림을 하나씩 넣어 글을 썼다. 표현력이 없어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 딱딱하고 볼폼 없는 책인 듯하여 글머리에서 가져온 글을 옮겨본다. “이 책은 그 모든 기다림의 순간에 내가 읽은 책들과, 그 책 속 이미지들이 불러낸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문학과 그림이라는 두 장르의 예술을 함께 즐김으로써 삶에 자그마한 위안을 얻은 한 개인의 체험기이기도 하다. ……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림을 책갈피 삼아 조금 더 아름다운 독서를, 문학을 액자 삼아 조금 더 풍요로운 그림 감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딱, 맞는 얘기다. 가끔 나는 책을 읽다가 그림보다는 과거의 어느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림을 많이 본 그녀는 책을 읽으며 그림을 떠올린다. 그 글과 그림은 처음 만나는 자리임에도 미리 서로를 위해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안성맞춤으로 어울린다. 목차를 보니 읽은 책 반, 안 읽은 책 반이다. 역시 난 문소가 아니었던 게다. 곽아람은 어릴 때 다 본 책을 나는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으니. 읽지 않은 책을 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딜레마에 빠지며 또 나를 흔드는 구매욕구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어쨌든 제목이 근사하다. 나 역시 모든 기다림의 순간에 책을 읽고 있으니...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책과 무엇' 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주제에 맞게 책을 찾다보니 또 한 권의 책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신간이 아니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지난번 알라딘에 중고로 올라와 있기에 사려고 폼 잡다가 놓쳐버린,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던 책이다. 바로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이다. 근데 결국은 새 책을 구매했다. 곽아람의 책이 그림과 책이라면 이 책은 영화와 책인 셈이다. 어쩜 다들 소리소문 없이 이런 책들을 내는 것일까. 나도 영화나 드라마보며 책이 나오면 무쟈게 관심을 가지는데 누구는 그런 걸 보고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낸다. 이런 기획 정말 부럽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를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제법 본 영화도 많은데 어쩜 영화 속에 나온 책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영화 속에서 책을 찾은 게 아니라 음악을 들었나보다., 좋은 음악이면 그 음악이 뭔지 찾아본 것 같으니까 말이다. 뭐 그렇다고 그 역시 열심히 찾은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볼 때는 영화에 집중해야지. 무슨.,켁! 그렇더래도 이젠 앞으로 영화를 보면 책을 찾아봐야겠다. 앗! 이 책의 제목에서 조제를 떠올리니 나도 기억이 나는 책이 있긴 있다. 조제가 보던 사강의 책. 영화를 보다가 그 책이 나오는 걸 보고(하긴 조제가 그토록 열심히 읽은 책인데 그걸 기억 못한다면 내가 바보지) 그 책을 꼭 사서 읽어야지 했는데 읽지 못했었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 곽아람의 추천 책과 함께 내 장바구니가 또 꽉 채워지겠지?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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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11-1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고 중고책으로 '모든 기다림의 순간....'이 올라왔길래 질렀어요..
잘한거죠??

readersu 2009-11-18 15:15   좋아요 0 | URL
헉! 중고로 말입니까? 나온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중고가 =.=
책은 저처럼 빽빽하고 행간 좁은 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초큼 실망스러울지도 모릅니다만;;; 잘한거죠? 라고 물으시니..중고로 사신 것은 잘하셨다고!^^
 

(…)  
"이번 여행을 위해서 이년 동안 일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아깝지 않았습니까?"
"뭐가요? 여행하는 게요?"
"네."
"아뇨, 뭐.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 계획을 하게 되었습니까?"
"어려서부터 미국 음악과 책을 좋아했어요. 그중에서 잭 케루악을 좋아해요."
"잠시만, 당신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1950년대 작가인데 『길 위에서(On the road)』라는 책을 쓴 잭 케루악이요."
"당신이 잭 케루악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구요?"
"네.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것도 그 영향 때문이에요. 『길 위에서』의 주인공이 갔던 길을 따라서 가는 여행이요."
"믿을 수 없군요."
"뭐가 믿을 수 없어요? 잭 케루악을? 아니면 나를?"
"아닙니다. 그럼 당신, 어떤 음악을 좋아합니까?"
"음악을 다 좋아하지만 요즘은 그레이플 데드와 스티브 밀러 밴드를 좋아해요. 운전할 때 들으면 정말 좋은 배경음악이거든요." 
(…)  
김동영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중에서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에 속하는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가 번역이 되어 나왔다. 오래 전 젊은 김연수 작가에게 번역의 지루함과 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우치게 한 소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번역을 끝내고서 소설 속 두 청년이 뉴욕을 떠나 보스턴, 덴버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던 것처럼 친구 둘과 7번 국도로 달려가게 했다던 그 소설. 결국 김연수 작가의 번역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잭 케루악을 아는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던 그 소설이다. 생선으로 불리는 김동영 작가는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고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나 잭 케루악이 다닌 그 길을 답습하여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란 미국횡단 여행산문집을 펴냈다. 또 그의 여행길에서 9.11로 민감했던 미국의 고압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게 해 준 것도 잭 케루악이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1950년 히치하이킹을 하며 미국을 종횡단한 두 청년이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삶에 대한 풍경들을 그린 작품으로 그 시대 미국 사회의 반문화적, 혹은 혁명적, 저항적 청년 세대인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비트'란 beatnik이란 뜻으로 냉소와 허무주의자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단다. 그런고로 기존의 제도권에 대한 반발이 많은 20대에 미국 문학을 한번이라도 접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 중에 하나였다. 

나야 이젠 20대를 훨씬 지나버린 탓에 제도권에 반발하기보다는 끌려다니기 바쁘지만 전설(!)처럼 들리던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한글판으로 마침내 읽을 수 있게 되어 기뻐다는. 한데, 지금 읽어도 공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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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9-11-18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초 영어로 읽었는데 제 감수성이 잘못된건지 그리 큰 감동은 못 받았어요. 다시 읽어 볼까나? 그럼 다르게 느껴질 지도.

readersu 2009-11-18 11:03   좋아요 0 | URL
영어로 읽으면 훨씬 그 감동이 더 할 것 같은데요. 심술님 감동을 받지 못했다면 혹시 연세(!)가?(ㅋㅋ농담입니다.) 저도 곧 읽어볼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도 과연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지만 무척 궁금하거든요.^^

심술 2009-11-2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8년 3월생입니다.

readersu 2009-11-23 10:21   좋아요 0 | URL
아하하;; -.-;;;
일단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근데,젊으시군요!ㅎㅎ
 
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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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포일러!!!

아무런 이유없이, 제목이 주는 매력 때문이었다. 매년 11월이 지날 무렵 "앗! 또 못 읽었네." 하기를 두어 번. 올해는 왠지 11월이 되기도 전에 이 책이 생각났다. 그리고 11월이 되자마자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연애소설이거니 하고 책을 펼쳤다. 

분명 그렇게 오래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일단 스쳐 지나가고 나면 계속 그리워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른 어떤 것도 그 순간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니, 내가 한 말 같았다. 내 목소리가 그대로 메아리쳐 되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다른 말을 했다면 그것은 전부 거짓이었다. 나는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를,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편의 회사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은 베르톨트를 처음 본 것은 시상식 파티에서였다.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어떤 운명에 이끌린 사람처럼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날 밤 마리안네는 베르톨트를 따라 집을 나선다. 남편도 자식도 모두 남겨둔 채. 

이건 뭘까? 마리안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베르톨트가 한 저 말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말 한마디에 처음 본 남자를 따라갈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걸까?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그 운명적인 관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결국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시아버지의 편지를 받고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전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그러려니, 막연히 모든 일이 잘 풀리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잘못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할 시간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간단했다. 사람들은 말하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는데, 그렇게밖에 더 되겠어? 그건 범죄나 다름없다구. 인간의 도리에도, 이치에도 어긋나는 거쟎아. 벌을 받아 마땅하지.
나는 사람들의 편견을 알고 있었고 항상 그런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 역시 내가 결코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때때로 한없이 슬퍼지리라는 것, 그 슬픔의 끝까지 가리라는 것을. 슬픔은 어느 정도 견딜만 하다. 하지만… …

마리안네는 후회를 한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행복할 수 없어. 둘은. 하지만 베르톨트와 마리안네, 그들은 행복했다. 베르톨트는 마리안네에게 최선을 다했으며 마리안네 역시 베르톨트와의 생활이 좋았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마리안네는 시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아름다운 얘기면 돼요. 다른 생각을 좀 하게요. 가을이라고 했죠?"
"무슨 말이야?"
"당신이 일을 끝내는 때 말예요."
"날 못 믿는 거야?"
"내가 왜 안 믿어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늦어도 11월에는……"
"그 다음엔?"
"11월에 개막 공연을 할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건가요?"
"그래.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냐. 나로서는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그 다음엔?"
"글쎄…… 공연에 참석해야겠지."
"저도 같이 가나요?"
"무슨 소리야! 당신이 주인공인데. 당신은 로얄석에 앉아 있을 거야. 모두들 당신을 쳐다보겠지. 연극이 끝나고 나면 무대 뒤로 올라가 함께 인사도 할 거야. 그때 입을 당신 새 옷을 마련 할 거야."
(…)
"그리고 그 다음엔요?"
"그 다음? 그 다음에 우린 다시 자유로워질 거야."
"그리고 나서는요?"
"우린 여행을 떠날 거야. 오늘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 아직 시간은 많아. 연극이 성공을 하면 우린 폭스바겐도 하나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어."
"그리고 그 다음엔요?" 

늦어도 11월에는 베르톨트가 자길 데리러 올 것이라 마리안네는 믿는다. 오직 그 믿음만이 그녀를 살아게게 한다. 집으로 돌아온 후 느끼는 그녀의 감정들. 그 아무도 그녀에게 '그 일'에 대해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도대체 그녀에게 뭘 원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간 후 마리안네는 부단히 노력한다. 이제 그들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해보이며 하지만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베르톨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내 무릎을 꼭 잡고 있었다.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어딘가로 날아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고통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연애소설도 이쯤 되면 이건 예술이구나" 옮긴이의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지극히 통속적이다. 그럼에도 옮긴이의 말처럼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안네의 감정을 표현한 부분들이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마리안네가 느끼는 심리적인 감정들을 작가는 너무나 리얼하게 표현해냈다. 그래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마리안네의 행동과 남편인 막스의 태도, 그리고 시아버지의 마음까지 뒤로 갈수록 서서히 이해가 되어간다. 그럴 수 있다. 맞아, 그럴 수 있지.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며 다가온다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 남자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조금은 쓸쓸한 11월, 가슴 아픈 두 사람의 사랑. 늦어도 11월에는 꼭 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한번 빠져보길 권함. 

그 일은 어쩌면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된 일인지도 몰라. 어쩌면 어느 순간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운명적으로 마련되어 있던 것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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