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이발관 이석원이 산문집을 냈다. 『보통의 존재』노란색의 표지가 눈길을 끈다. 책을 받고 몇 장 넘기다 보니 이 남자, 꽤 독특하면서 왠지 멋지다는 느낌이 든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언니네이발관의 노래가 뭐였지 생각해봤다. <불우스타> 그 많은 노래 중에 왜 이 노래가 유독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사를 음미해보니 공감이 무쟈게 가더라는. 이석원이 그 특유의 표정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 정말 꿀꿀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암튼, 사진 한 장 들어가지 않고 글로만 책을 낸 이석원, 예판때부터 인기몰이하더니 지난 주 있었던 어느 사인회에서 장장 두 시간이 넘도록 사인을 해댔단다. 대단. 이 책에서 맘에 드는 것은 일단, 김연수의 추천 글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과(누군가는 이 추천사를 보고 김연수는 어쩜 추천사도 이렇게 잘 쓰냐고!)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서른여덟 살의 이석원이 내보이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삶을 대하는 진지함과 더불어 속을 다 내보이듯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남의 일상을 엿보는 것은 어떤 면에선 흥미롭지만 또 다른 면에선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석원의 문체에서는 그런 일상에서조차도 은근 위안을 받는다. 이석원과 관계없이 이 책이 개인적으로 좋은 점은 또 하나 있다.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동안 너무 작은 글자들만 보다가 내 눈에 알맞은 글자 사이즈를 만나니 눈이 다 편하다. 그리고 연예인의 글인데 사진이 없어도 이렇게 멋진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쨌든 이 말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자꾸만 내 맘에 파고든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가 완전 완역본으로 나왔다. 너무나 멋지고 생생한 일러스트가 들어간 이 책은 청소년 용으로 나왔는데 소장가치 100%다. 두께와 가격이 살짝 허걱,하게 만들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하루 만에 다 읽어치울 정도로 재미있다. 하긴 쥘 베른의 소설인데 오죽하겠냐마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초고학년생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아이들 안 그래도 SF나 추리 소설에 관심이 많아 편식을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모험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140년 전엔 어떠했을 지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고전은, 알게모르게 그 어떤 책들보다 많은 깨달음을 준다. 당시에는 잘 몰라도 어릴 때 읽은 명작들을 조금 더 자라 완역본으로 읽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유수의 출판사에서 고증된 일러스트와 함께 완역되어 나온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는 조금 지루했던 고전들 사이에서 흥미와 모험 가득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멋진 소설인 셈이다. 더구나 책을 읽고 나면 쥘 베른이야말로 과연 ‘SF문학의 아버지’라는 명칭이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다. 일러스트 들어간 소설, 나름 즐겨하고 좋아하는 데 『해저 2만리』, 추워지는 날씨에 따뜻한 방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 옛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한번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이제는 『해저 2만리』에서 말하는 미래가 된 지금과 그 상상력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지식 e』그 다섯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이젠 지식e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을 하는데 이번 책의 키워드는 '인간人間과 인생人生'이다. 그동안 지식e에서 다룬 인물과 삶의 이야기에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같이 수록하였다. 예술인으로서 브라운관으로 캔버스를 대신한 백남준과 팝 아티스트 낸시 랭, 평범했던 한 어머니 케테 콜비츠의 판화와 판화가 이철수의 인터뷰에서부터 용산철거민과 뜬금없이 아랍인 테러리스트가 된 인도인 보노짓 등 현 시대의 예민한 사회적 이슈를 던져주며 생각을 하게 만든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식 e』는 지금 당장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많은 사연들을 들려준다. 그들은 각기 아픔, 설움, 분노를 담고 있지만 그 속에 작은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케테 콜비츠의 말처럼 "단 한 번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천천히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책이 나올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지식 e』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필독서라는 사실 이번에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엔 외국 에세이 한 권, 서른 살 뉴요커가 요리로 인생을 바꾼 이야기 『줄리& 줄리아』이다. '나이 서른에 임시직을 전전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전망도 없던 한 여성이 자기만의 도전을 시작하며 지리멸렬한 일상을 이겨내는 과정'을 다룬 이 책은 어느 날 전설적인 프렌치 세프 줄리아 차일드가 쓴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에 나오는 524가지 요리를 365일 동안 다 만들고 블로그에 올리겠다는 무모한 도전이 이루어낸 인생 바꾸기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부터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를 열었다가 이른바 유명해지는 블로거들이 많아졌다. 그건 줄리처럼 성공에 대한 기대도 유명해지고 싶다는 바램도 없이 그냥 우연히 시작하게 된 블록질로 인해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줄리에게는 덧없이 흘러가는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몸부림이었지만 그녀만의 진솔하고 도발적인 이야기가 없었다면 공감하는 독자들이 없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올리기 위해 소뼈를 사러 뉴욕 전역을 헤매고, 바닷가재를 산 채로 죽여 토막을 내야 하는 끔찍함도 이겨낸다. 그런 노력이 미국 전역에 있는 블로그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마침내는 인생도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블로그로 인생 바꾼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듯. 이 책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든 노라 애프런이 영화로 제작중인데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다고 한다. 노라 애프런, 나에겐 감독이라는 명칭보다『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독특한(!) 책을 써서 날 웃겼던 작가로 기억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