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런 책이 한두 권이겠어요. 하지만 책을 읽은 후 이 좋은 책을 독자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죠.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마구 추천을 한답니다. 추천을 받은 친구 중에 취향이 같으면 정말 좋다! 고 말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겐 이게 뭐? 하는 소리 듣기 쉽상이죠.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엔 아까운 책들이 있기 마련, 그아까운 책 세 권을 추천할까 합니다.

누가 말을 죽였을까』 이 연작 소설집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많은(!) 친구들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에 잘 모르는 출판사,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처음 추천을 한 친구가 정말 재미있다고 강력 추천을 했음에도 귓등으로 흘러 넘겼다. 근데 책을 읽어본 친구들마다 별 다섯 개 운운하며 재미있다고 추천을 했다. 안 읽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재미있다고 하는데 혼자 모른 척하고 있긴 싫었기 때문이다.(암튼 엉뚱한 자존심은 있어서 말이지;) 뭐 어쨌든 그리하여 마침내 읽게 되었다. 시쳇말로 완전(!) 재미있었다. 책을 두고 재미를 운운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렸으니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물론 내용상 짠 한 부분도 있고, 기가 막힌 이야기들도 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문체가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인지라 고향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투리를 읽는다는 것만으로 고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줄곧 고향에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의 대화를 생생하게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또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처하는 어르신(!)들의 행동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현실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가 농촌의 현실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고향에 내려가면 듣게 되는 아버지의 일상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고향이 농촌이든 도시든 간에 우리 아버지나 엄마 연세가 되는 분들의 생활상 그대로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정겹고,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하는 거다.  

빈틈없이 잘 짜인 이 연작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은데 그건 여느 작가들과 다르게 작가가 이야기로 글을 풀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 <전원일기>의 한 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여기에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책을 읽으면 바로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큰 출판사라면 마케팅 하나는 끝내주게 할 텐데, 그런 마케팅이 들어갔으면 필시 이 책도 떴을 텐데 싶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독자들이 유독, 한국작가에 한해서는 아직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 작가 이름 알리기조차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랬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내가 마케팅의 실무를 잘 모르니 하는 소리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아까운 책이었다는 것만은 말하고 싶다는!!

또 한 권의 ‘아깝다 이 책’은 죠 메노의『유령비행기』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성향을 보면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그런 까닭에 단편이 아무리 좋아도 후한 점수를 안 주게 마련이고 단편이라 하면 읽기를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편집이라는 단점에 듣도 보도 못한 미국작가라는 것과 소설인데 일러스트가 들어가 어딘지 모르게 가벼운 느낌마저 주었으니 진지한(!) 소설 독자들의 시선에 외면당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더 안타깝다. 사실 읽어보면 이 작품집은 굉장히 독특하다. 일상적인 이야기, 그 속에 존재하는 비극, 좌절, 상처들. 그렇다고 해서 독자를 꿀꿀하게 만들지는 않는 죠 메노만의 문체가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게 처리되어 읽는 재미와 함께 아련한 잔상을 남기게 하기 때문이다. 위트와 때로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이다.  

또한 짧은 단편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특유함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죠 메노가 보여주는 것은 좌절과 상실감. 그 상실감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이게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팝 아트 소설가 죠 메노 단편의 장점인 것 같다. 안 그래도 단편은 싫은데 스무 편이나 되는 단편이라니, 두 손 드는 독자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편의 묘미는 한꺼번에 다 읽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한 편씩이든 사이를 두고 천천히 읽든 단편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많은 생각거리, 그 재미에 빠져들면 단편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다. 가끔 원서로는 호평을 받은 책들이 의외로 번역되어 나오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종종이라기보다는 일상다반사일 것이다.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분명 좋은 책임을 알지만 외면당하는 책을 보면 안타깝기 마련이다. 물론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 상황에선 당연한 소리지만 말이다. 『유령비행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는 그의 후속 작품을 기다리고 있지만 한번 외면당한 책에 또 투자하는 그런 출판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깝다. 이 책!! 

마지막 한 권의 책은 제목도 근사한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이다. 과연 제목처럼 이 책을 읽으면 내 인생이 구함을 당할까?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뭐 그런 생각을 한두 번은 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인생을 구하는 책이란 말인가? 그것도 ‘당신’의 인생을 구한다니! 평점을 보니 이게 뭐? 하는 독자들도 있고, 제목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다. 취향이니 각각이다. 이래서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잘 하니까. 근데 설마 이 책이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제목을 썼을까? 내가 봐서는 그렇지 않다. 인생에서 ‘구함을 당한’ 사람이 이 책에선 적어도 셋 이상은 나오므로. 근데 책을 읽었는데 내 인생은 왜? 라고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거야 독자들 사정이고.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는 주인공 리처드 노박에게서 일어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동안의 일들을 풀어놓은 책이다. 그 한 달 동안 노박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읽어보면 안다.(아, 이런 무성의한 글이라니;;) 대충 말하자면 이렇다. 어느 날 문득 노박에게 ‘그것’이 찾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으로 인해 노박은 이제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전혀 다른 삶이란, 그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과는 반대의 삶이란 뜻이다. ‘혼자만의 규칙’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아왔던 노박에게 그 규칙을 깨야만 하는 삶인 셈이다. 또한 ‘그것’이 찾아와 응급실로 실려 간 노박에게 전화 한 통 할 곳이 없다는 자괴감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인생 헛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기 마련. 그때 한낱 도넛가게 주인이었던 앤힐이 그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이 노박의 인생을 구한 것이다. 이 책에서 구함을 당은 사람은 노박 뿐이 아니다. 앤힐에게 구함을 당한 노박은 이후 놀라운 일들을 겪는다. 고속도로에서, 집 앞에서, 또 슈퍼에서 울고 있던 신시아는 노박이 내민 손을 잡고 자신의 인생을 살 작정을 한다. 그것은 요가 선생 시드니, 가정부인 세실리아에게도 그렇다. 앤힐에 의한 노박의 변화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란 의미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우연히 구해진 인생. 의도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이 변하는 것. 그런고로 어쩌면 이 이 책을 읽은 그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구했을 지도 모르겠다. 

첫 부분에선 조금 지루한 감을 느끼지만 이내 독특한 문체에 빠져들게 된다.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이 책은 도대체 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걸까?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고 나면 그제야 뭔가 뿌듯한, 알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내 인생이 구해졌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책을 읽은 친구와도 얘길 했지만 리처드 노박을 떠올리면 꼭 잭 니콜슨이 나왔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생각난다. 이유는 모르겠다. ‘혼자만의 규칙’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무튼 이 멋진 소설을 아직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세 권의 책을 아깝다 이 책으로 추천하고 보니 공통된 것이 보이네요. 바로 일상이라는 주제입니다. 이시백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그야말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농촌에서 분명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위트있게 풀어냈고, 죠 메노의 『유령비행기』 역시 포스트모던한 이야기들 속에서 있을 법한 일상을 그려냈다는 것과  A.M. 홈스의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역시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니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일상?!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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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0-2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책 제목이 정말 좋군요. 읽어보고 싶어지는데요.^^

readersu 2009-10-21 18:16   좋아요 0 | URL
설마 저 책을 읽고 구함을 당하고 싶어서???ㅎㅎ

머큐리 2009-10-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게 만드는 페이퍼에요...찜해 둡니다,,

readersu 2009-10-22 10:13   좋아요 0 | URL
와! 그렇다면 성공한 걸요.^^ 이 좋은 책들 많은 사람들이 많이많이 읽어주면 좋겠습니당~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다, 표지에 실린 글을 읽는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 그 의문은 책을 넘기면서 사라졌다. 살아 있는 도서관 <리빙 라이브러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읽은 소설집에서 <리빙 라이브러리>에 관한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단편을 읽을 때만 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읽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사람도 읽을 수가 있는 거구나.’ 다르게 생각하면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기에 이런 기획이 나왔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긴 과거라고 해서 소통이 잘 되었거나 대화가 통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놀라운 것은, 이 기획은 영국에서 시작된 거다. 영국이라면 어쨌든 동양에 사는 우리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의사소통이 잘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조차 편견의 틀에 갇혀 산다는 거다.  

첫 단편(!) 싱글맘인 크리스틴을 읽어보니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십 대 중반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남자와 관계를 가져 아이를 갖고, 그걸 알게 된 엄마의 반응이나, 그런 관계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는 당연하다는 듯이 삐끗거리고, 헤어져 혼자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지극히 평범하여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그런 일들이 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어린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받았을 크리스틴의 상처.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상처를 딛고 일어선 크리스틴의 현재 모습이다. 모든 책들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지만 싱글맘 크리스틴의 책은 어쨌든 해피엔딩. 싱글맘을 겪어보지 않은 독자야 그 맘을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들은 별 다섯 개짜리 리뷰를 쓰지 않을까 싶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 사는 것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싱글맘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대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즈비언과 혼혈, 휴머니스트와 나이 예순이 되어서야 새 인생을 찾겠다고 가출한 할머니, 신체 기증인과 완전채식주의자 등등 너무나 대중적인 혹은 너무나 독특한 사람책들이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대출하고 싶었던 책은 바로 휴머니스트였다. 휴머니스트, 과연 어떤 사람이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걸까? 알고 보니 전반적으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휴머니스트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대출을 기다리던 휴머니스트 한나는 종교에 반기를 드는 무신론자이다. 무신론자. 그렇다. 영국에 사는 ‘휴머니스트’들은 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교회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파워가 강력하기 때문에 생긴 셈이다. 한나가 생각하는 사회란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개인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할 때 훨씬 긍정적인 사회가 된다”고 믿는데 영국 사람들은 종교에 너무 얽매어 산다는 거다. 그렇다면 아직도 종교가 없는 나도 휴머니스트?^^ 내가 생각했던 휴머니스트와는 많이 달랐지만 인권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이 단편의 별표는 네 개!^^ 

책을 읽고 나서 만약 내가 <리빙 라이브러리>에 간다면 어떤 사람책을 대출하고 싶을까? 생각해봤다. 편견을 가진 사람책을 대출해야하니 부자들? 정치인들? 이기주의자들? 목소리 큰 사람들? 뭐 그런 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런 사람들은 대출하고 싶지 않다. 읽고 나면 편견이 사라지기보다는 짜증만 생겨서 별 하나 찍고 말아버릴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대출하고 싶은 사람책은 내가 편견을 가진 사람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극히 소심한 A형에 게자리인 나는 별자리나 혈액형 따위의 결과를 보면 항상 남 얘기 잘 들어줘서 카운슬러가 제격인 사람이라고 나온다. 그런고로, 감성적인 사람, 아픔이 많을 것 같은 사람, 겉으론 완벽한 척하면서 속은 뭔가 쓸쓸한 그런 사람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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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연극표를 미리 사고,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피크닉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헴스테드 히스로 수드하를 데리고 갔다. 데이트를 했던 남자 중에 약속에 절대 늦지 않고, 전화 하겠다고 했을 때 꼭 전화를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수드하는 머지않아 그가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능력을 가진 남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먹는 걸 좋아했고 요리를 즐겼다. 일찍 일어나 좋아하는 제과점에 가서 갓 구운 페이스트리를 사다가 수드하를 올라게 할 줄도 알았다. 셰퍼즈부시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함께 보낸 아침, 그는 쟁반에 아침식사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았지만 때가 되니 기꺼이 삶을 오픈할 줄도 알았다. 열쇠를 만들어 주었고 자기 옷장의 서랍을 내어주었고, 화장실 캐비닛의 유리 선반 하나를 비워두었다. 젊었을 때 화가가 되고 싶어서 첼시아트스쿨에 들어갔지만 선생님에게 대성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부터 캔버스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게 인생의 행로가 바뀐 데 대해 그는 한을 품지도, 누굴 원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었고, 이는 수드하와 비슷했다. 동시에 그는 잡지에 엄격하고 냉철한 비평을 썼고 레스토랑에선 최고로 좋은 자리를 잡을 것을 언제나 고집했으며 와인이 좋지 않을 땐 돌려보냈다. 수드하처럼 술은 적당히 마셨다. 언제나 와인을 병으로 주문했지만 한두 잔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p178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중 표제작에 나오는 대목이다. 가을이라서 그랬을까? 마땅히 만날 남자도 없는데 이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직 책을 읽는 중간이라 그 남자가 끝까지 좋은 남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살면서 나와 비슷한 종류의 능력을 가진 남자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그것만으로도 이 남자의 스타일이 맘에 들었다. 또한 수드하의 성격 중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공감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수드하가 장녀라는 점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부모의 기대도 부모가 내게 동생들을 위해 뭔가를 해 줄 것을 요구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그들의 삶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혹은 현재의 우리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 완전 좋다! 내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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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는 나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죠. 저도 예전에 조카랑 같이 살 때는 그림책을 꽤 많이 읽었어요. 모르는 그림책이 없을 정도였는데 조카가 자라고 저들이 읽을 책은 스스로 알아서 고르는 나이가 되니 그림책 찾을 이유도 없어져버렸네요. 이젠 한번씩 좋은 책이다 싶으면 골라서 읽어보라고 건네주기만 할 뿐이고…  한동안 그림책이 전해주는 깊은 뜻에 감동 받아 예쁜 그림책들을 사모으기도 하고 했는데 요즘은 내 책 사서 읽기 바쁘다는^^;;; 그래서 오늘은 눈에 띄는 그림책을 두 권 골라봤어요. 한 권은 아이의 마음이 담긴 그림책이고 또 한 권은 엄마의 마음이 담긴 그림책이랍니다. 그림책의 경우는 그 어떤 분야보다도 많은 신간들이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에 추천하는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취향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죠.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들은 수채화 그림이고, 귀여운 그림들이에요. 바로 아래와 같은 그림들이죠.  

수채화로 그린 그림을 저는 좋아합니다. 특히 이 그림책의 그림은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만으로 그림을 그렸대요. 알록달록 화려한 채색 스타일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삼원색 수채화는 흔치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기교가 없는데도 그림을 들여다보면 열무의 귀여운 모습이나 빨간 비옷을 입은 동물들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고 유쾌해지기도 한답니다.(전 개미들이 빨간 비옷을 입고 춤추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열무한테는 신기한 주머니가 있어요. 주머니를 뒤집으면 예쁜 비옷이 되죠. 그 예쁜 비옷이 생기니 열무는 매일 창밖을 보며 비옷 입을 날만 기다려요.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어." 하고 말이죠. 기다림 끝에 마침내 비가 내리죠. 열무는 신이 났어요. 예쁜 비옷을 입고 "타닥타닥 통통통" 내리는 빗속으로 뛰어나가죠. "비가 많이 와도 열무는 괜찮아." 내리는 비를 혀로 살짝 맛보기도 하고, 물웅덩이 속을 첨벙 들어가보기도 해요. 또 손을 뻗어 비를 만져보기도 하며 빗속에서 신나게 놀고 있죠. 그때 공원 벤치 밑에서 비를 피하던 고양이가 그런 열무를 보고 부러워합니다. "열무는 좋겠다. 열무는 좋겠어. 빨간 비옷을 입었으니까." 그 말에 열무는 신기한 주머니에서 빨간 비옷을 꺼내 고양이에게 주었어요. 빨간 비옷을 입은 고양이는 그제야 벤치위로 올라와 잠을 잡니다. 이젠 비가 내려도 괜찮거든요. 열무처럼 빨간 비옷을 입었으니까요.   

아이들은 그런 것 같아요.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죠. 동생이 없는 아이에겐 곰인형이 동생이 되고, 장난감이 없어도 종이를 잘라 장난감을 만들어 놀고, 놀이터에 가면 미끄럼틀도 친구가 되고, 나무하고도 대화를 하는… 매일 매 시간이 판타지의 세계예요. 그런 아이들의 상상력 세계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어요. 신기한 주머니를 가지게 된 열무가 동물친구들에게 으쓱해하며 비옷을 건네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는데 그 비옷을 보니 저도 이런 말이 절로 나오네요.  "열무는 좋겠다. 열무는 좋겠어. 빨간 비옷을 입었으니까." 열무가 제게도 비옷을 하나 꺼내주겠죠? 아, 빨리 비가 내리면 좋겠어요!! 

 

 이 그림책은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그림책입니다. 내 아이에겐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질리지가 않죠. 저 역시 조카들을 볼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 나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들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지능이 발달한다고 해요. 그런 아이들은 사회성이나 학업에 있어서도 그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더군요.^^ 이 책의 작가는 이미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랍니다. 그 후속작으로 나온 그림책인데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가 정말 다양해요. 하긴 그 이유를 대자면 끝이 있을까요? 아마도 끝이 없을 거예요. 그만큼 엄마의 사랑이 깊으니까 말이죠.

고양이가 따뜻한 창가를 좋아하듯 너를 사랑하고, 아주 오래 전에 공룡이 이 세상을 품었듯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또 달님이 반짝반짝 작은별을 꼭 안아주는 것처럼 너를 사랑하고, 지구가 해님 둘레를 끝없이 빙빙 도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을 해요. 지구, 공룡, 해님 반짝이는 별까지… 적은 듯하지만 알고 보면 어마어마하게 사랑을 하는 거죠. 포근한 문장과 따뜻한 그림이 책을 펼치는 순간 "사랑해"라는 말이 나오게 합니다. 세상 엄마들의 마음이 모두 담긴 책,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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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집에 내려간다. 책 읽을 시간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뭘 읽어야 하나? 고민이 안 될 수 없다. 책을 고르는 시간,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서 읽어봐야 두어 권이면 뻔할 텐데 그 두어 권을 고르지 못해 챙기는 책이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3박 4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무거운 가방을 줄이기 위해 미리 택배로 책을 집으로 보내는 거였다. 이번 추석엔 택배 보낼 기회를 놓쳐 그것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도대체 뭘 들고 가야 하는 가? 나와 같은 고민에 빠진 분들에게 추천한다. 이번 추석에 읽을 만한 내 취향의 책들. 

앞으로 연휴 때마다 추천을 해도 모자라지 않은 김연수 작가의 책. 그의 자랑스런(!) 4만 독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읽지 않았거나 망설이고 있다면 이번 연휴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이라면, 특히 소설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던 선배는 세계의 끝이 그 끝이었냐? 하면서도 잘 읽었다 하고 친구 한 명은 읽고 나니 이 책과 불륜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달콤했다고도 한다. 나 역시 아까워(예전에 읽기도 했었지만) 마지막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지 않고 남겨두긴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세계의 끝과, 그 달콤함을 무수히 느끼면서 읽었다. 워낙 호불호가 뚜렷한 작가의 책이라 아무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어려운 책이지만 그 어떤 책보다도 공감하는 문장 많고 재독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하고 싶다. 믿기 어렵다고? 읽어보라니깐!  

오늘 문득 떠오르는 맘에 드는 문장 하나! "처음에는 비구름이, 그 다음에는 바람이, 그리고 저녁이, 또 계절이, 그렇게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 불쑥 이 책이 내게 왔다. 기대도 안했던 책이었다. 아직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대략 난감해하면서 표지 뒷부분을 보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성경 속 최초의 존속살인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숨겨진 인류의 비밀을 파헤치는 작품으로, '카인의 징표'라는 은밀한 상징과 기호를 둘러싼 숨 막히는 음모, 이를 쫓는 추격전” 이라고 적혀 있다. 호기심 발동! 그 자리에서 막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읽고 있던 <일큐팔사>에 밀려 아직 읽지는 못했다.  

연휴엔 왠지 무거운(!) 책보다는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만 되면 방송되는 성룡의 영화 같은 느낌 때문일까? 뭔가 스펙타클하고,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암튼 이 책은 그런 책인 듯하다. 내 기대에 부응을 해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두께는 장난아니게 두꺼우나(요즘 책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두꺼운지-.-;) 읽게 되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다리던 책이었다. 김경의 쉬크함을 좋아하는 탓에 얼른 읽어보고 싶었다. 제목에서 말하는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도 고위 신하들에게 3년에 한 번 꼴로 한 달 남짓의 유급 독서휴가를 주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5편을 정독한 뒤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여기에서 ‘셰익스피어 휴가’란 말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책을 펼쳐보니 군데군데 사진도 보인다. 문장가 빽빽하지 않고 쉽게 읽힐 것 같다. 더구나  “음악이나 책, 영화가 돈보다 중요한 사람, 나는 찾았다.”라는 마지막 글을 보니 마구 궁금해졌다. 그녀는 1년이라는 짧지 않은 휴가를 다녀왔단요. 그동안 책에서 보았던 수많은 도시들을 떠올리며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났었단다. 그 추억들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마법 같은 만남도 있었다고 하니 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 기대가 된다. 어쨌든 남들은 추석 연휴에도 여행을 떠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책으로 여행을 떠나련다. 뭐 나쁘지 않다.-.-;; 
 

여성의 눈으로 결혼제도의 DNA를 풀어낸 책이란다. 남성우월주의 결혼 방식이 뭐가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내려온 건지, 성과 관련하여 결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유머 있게 알려준다고 한다.  

“멀고 먼 옛날 한 양치기가 암양들을 지켜보다가 깨닫게 된 ‘창조의 비밀’에서 시작해서 ‘남성들에 의해’ 성녀와 요부로 규정된 성서 속 여성들을 거쳐, 성매매와 남근상에 몰두했던 아테네 남성들, 온갖 핑계를 갖다대며 1년의 절반 이상은 부부관계를 막은 중세 교회, 실용적 자기계발서의 시초라 할 아내(와 딸) 길들이기 비법, 귀족부인과 기사들의 위험천만한 불륜 게임,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 매뉴얼, 섹스리스 부부, 비로소 결혼과 사랑을 한데 묶고 자신도 결혼한 파계 수도사 루터에 이르기까지, 결혼이라는 개념과 제도가 시대별로 문화와 정치와 종교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날카롭고도 재치 넘치게 그려낸다.” 이 문장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확! 밀려오는데 남자들이 덮고 싶어하는 결혼의 역사가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파악하고 결혼에 대해 고민 좀 해봐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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