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입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오로지 어느 못생긴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라고만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열아홉과 스무 살 무렵의 나름 성장(!)소설이더군요.(막 끼어 맞춘다.ㅎㅎ) 그동안 수많은 스무 살을 읽어왔어요. 내용들도 대부분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아픔을 겪으며 진정한 어른, 다시 갈 수 없는 청소년기의 시절을 보내버리게 되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무 살이나 서른 살, 십 년에 한 번씩 세대를 넘을 때마다 동지의식을 느끼며 읽게 되는 많은 책들 중에 왜 마흔이나 쉰을 넘을 때 읽을 만한 책은 없는 것인가?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건 아마도 마흔이나 쉰이라는 나이는 삶에 지쳐 혹은 사느라 바빠서 그런 배부른 고민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른이 지나면서는 마흔, 그런 나이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줄 알면서 살고 있을 테니 말이죠.
청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긴긴 인생에 있어 유일하게 추억거리와 아픔이 많고 그래서 생각하기도 싫으면서 막상 되돌아가고 싶다면 제일 많이 돌아갈 그 시절, 스무 살 언저리. 추억에 잠겨보세요. 그 때 그 시절!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이 되거나 스무 살 언저리에 있는 세대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이 문구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스무 살』중 표제작에 나오는 구절이다. 스무 살이란 나이는 그만큼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들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나이든 그렇지 않을까마는 특히 스무 살이란 나이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약간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스무 살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회고적 문장으로 시작되며 80년대와 90년대 그 사이에서 어느 세대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세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생에서 단 한 번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낸 박민규의 최근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무대로 한다. 인간관계에서마저 거부받을 정도로 모두가 꺼려한다는 못생긴 아가씨와 잘생기고 나무랄 데 없는 남자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화자이며 여자를 사랑한 남자 ‘나’는 20살 생일에 못생긴 그녀로부터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담긴 LP판을 선물 받는다.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잘생긴 아버지는 배우였고 못생겼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 못생긴 여자의 비극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작가 박민규는 독특하다. 전체적인 주제와는 다른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스무 살은 만약 ‘나’가 스무 살 언저리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는 거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단 하나의 풍경.” 'beer'을 'bear'로 'hof'를 'hop'로 적기 일쑤였던 그 시절에 난데없는 hope, 희망이 그토록 가까이에 있던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던 시절, 바로 그 무렵이다. 스무 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세상의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폼 잡고 다녔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행복한 고민들이었던 그 시절 바로 스무 살이다. 공선옥 작가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나오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보면 너무나 불안하고 너무나 안절부절, 그래서 세상에 혼자뿐인 것처럼 더없이 외롭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말이다. 작가는 주인공인 해금이와 여덟 명의 수선화 그룹(!)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 예뻤던 스무 살 무렵의 청춘 시절을 이야기 한다.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있게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상처와 추억을 가질 시절의 이야기지만 시절이 시절인 만큼 해금이와 여덟 명의 '청춘'들이 살아내야 했던 그때만큼 쓸쓸하면서 달콤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무 살, 누구에게는 개인적인 고민과 상처로 아픈 시기였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시절이 주는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바로 스무 살이다.
“스무 살이 간직했던 비밀과 스무 살이 품었던 흥분으로 써 내려간 타블로의 소설.” 가족과 소통, 성장과 사랑까지 다양한 면들을 이야기 한다. 문체는 건조하고 희망 또한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것은 글 속에 묻힌 타블로만의 따뜻함 때문이다. 앞서 말한 김연수 작가의 스무 살과 타블로의 스무 살은 세대가 다르다. 또한 문화가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고민하고 아파하며 넘어가는 스무 살의 이야기는 세대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그래서 스무 살인가 보다. “10대의 끄트머리와 20대의 시작 지점에 썼던 글들을 20대를 보내며 정리하는 일은 참으로 묘하다.”라고 그는 책의 서문에 적었다. 형용사를 쓰지 않고도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며 열아홉과 스무 살 언저리의 세대를 제대로 표현해준 『당신의 조각들』타블로와 같은 스무 살을 겪은 세대들이 몹시도 공감할 소설이었다.
이제 막 수능을 치룬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대학도 앞으로의 미래도 아니다. 오로지 여자친구 서영과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열아홉, 어쩌면 진로에 대한 고민 따위보다는 이성에게 관심이 훨씬 많은 그 또래의 마음을 박현욱은 유쾌하고 경쾌하게 표현해냈다. ‘동정’을 잃어야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십대의 끄트머리에서 오로지 동정을 버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청춘을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누군가는 그 무렵에 만나는 ‘여자’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로 인해 인생을(!) 배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동정을 버리고 ‘어른‘이 되었을까? 시니컬하기만 한 열아홉, 스무 살이 지겹다면 연민과 냉소가 교차하는 ’성장 없는 성장 소설‘ 『동정 없는 세상』을 만나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