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로버트 스윈델스의 책을 읽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작가가 누군데? 할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제목만 대면 알 만한 작품을 쓴 작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가를 운운하는 것은 그가 쓴 세 권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차례차례 번역이 되었고 그 작품이 나올 때마다 내가 읽었으며 읽고 나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0대들을 위해 글을 쓰는 청소년 작가란다. 청소년 작가인데, 그가 쓴 작품들을 읽으면 이게 과연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영국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의 작품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며 놀랍다. 소재도 그렇지만 스토리 역시 그렇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 눈에 띄었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눈독 들여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작품인 <사라지는 아이들>에서 그는 가정 폭력에 못 이겨 가출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소년은 가출하여 노숙자가 되었고 연쇄 살인범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1993년 로버트 스윈델스가 이 책을 펴냈을 당시 영국인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가출 청소년과 홈리스 청소년들을 대하는 시선에는 냉대와 혐오만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기보다는, 싸잡아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 비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문화가 다를 것이라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청소년들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나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룬 작가의 소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책은 그해에 카네기 상을 수상했으므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는 딱 좋았을 테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훈적이거나 읽고 나면 어떤 깨달음을 받을 수 있는 소설들을 좋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외였다. 가출 한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하여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며 외면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노숙자가 된 가출 소년 링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느끼는 감정들에서 청소년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누더기 앤>은 심각한 왕따를 당하던 마사가 그 왕따의 근본적인 원인이 부모의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강제로 훈육당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친구인 스콧을 만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실상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약간의 스릴러 형식의 소설로 로버트 스윈델스의 책 중에서 가장 긴장감을 준다. 이 책은 종교에 빠진 부모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라지 못하는 마사를 통해 어린 아이일지라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시 청소년 소설로서 많은 부모들이 꼭 민감한 아이들에게 꼭 그런 부모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부모들이 책을 고름에 있어서도 아이가 악하거나 아이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내용의 책들은 다들 기피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역시 착한 청소년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집안의 엄격한 규율과 혐오라는 비밀에 짓눌려 살아가던 딸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마사의 용기는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어린다는 이유로 당하고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인 <땅속에 묻힌 형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핵전쟁이 터지고 ‘운 좋게’ 살아남은 형제의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쯤은 핵폭발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길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영화로도 우린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황.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이기심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재난을 목격했다. 살아남은 자들 속에서 권력이 재등장하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누어지며, 뺏고 뺏기며, 사람의 죽음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세상. 단 하나의 희망조차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 정녕 미래는 없는 것일까? 좌절하게 만들고 마는 그런 세상.
로버트 스윈델스는 핵전쟁으로 망가진 지구의 삶을 보여주면서 미래에 이 지구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핵전쟁이야말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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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tndud1400 2011-08-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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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출판편집자코스를 다닌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긴 했어도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책하고 관련된 공부를 배우리라곤 상상조차 한 일이 없던 때였다. 스스로도 어리둥절하면서 다녔다. 한번도 출판 관련 일을 해보지 않았으니 아니, 구경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배우는 과정 내내 열심히 헤맨 기억 또한  난다. 겨우 참고로 읽을 만한 책은 <편집자 분투기>가 다였고 나머지 추천해주는 책도 일본 책들이었다. 아무리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상황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나처럼 뜬금없이 편집자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다들 나름대로 이해를 하면서 배웠겠지만 혼자 독학을 해야 하는 나에겐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럴 때 이런 책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이 책이 나온 것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부터 했다.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가 낸 이 책은 부제처럼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책이다. 편집과정을 이수했으나 편집하고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터라 사실 구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목차를 보니 살짝 호기심이 도졌다. 그래,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 뭐 그런 생각도 좀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받고 일단 훑어보니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이 되어 있다. 이게 과연 실전에서 일을 하고 있는 편집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특히 베테랑 편집자들은 콧방귀를 뀔 수도 있고. 하지만 나처럼 왕초보들은 우와! 이 책 한 권만 마스터하면 책 한 권 낼 수 있겠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참으로 대책없이 긍정적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책이 오늘 내 손으로 들어왔다. 관심이 가는 책이었기에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 

 

보통의 책이 드디어 도착했다. 읽은 책은 별로 없으면서 책이 나오면 무조건적으로 사고보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인 알랭 드 보통, 그가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을 한단다. 책을 펼쳐보니 막, 읽어보고 싶어 읽어보고 싶어,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헤엄치고 다닌다. 표지도 맘에 들고 본문 속의 사진들도 마음에 든다. 이젠 문체와 글이 내 맘에 들면 성공작이다. 아직은 그의 소설밖에 읽은 책이 없어 에세이 형식의 이 글이 어떤 식으로 내게 와서 반응을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부디 마음에 들기를 바라고 있다. 문득 든 생각은 이런 거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들은 감성적인(!) 면이 없다. 물론 그의 소설도 읽어보면 좀 그런 편이다. 근데도 그의 문체는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밑줄을 그어야 할 문장들이 많고 공감가는 글들이 많다. 또 그의 책제목을 보면 굉장히 인문학적이다. 옮긴이가 말을 했듯이 '기쁨과 슬픔'이란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제일 적절한 것이다. 근데 '일'이란 지극히 인문사회적(?) 단어를 사용하여 제목을 지은 것. 물론 옮긴이의 생각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작품 <여행의 기술>도 그렇다. '여행'과 '기술'이라는 단어가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묘한 느낌을 준다. 해서 김연수 작가의 <여행할 권리>를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안 어울릴 듯하면서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제목이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거나말거나, 완전 기대를 하는 작품 중에 하나되겠다.

 

지난 번에 <순례자의 책>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소설 중 한 이야기가 바로 '사람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 이야길 읽으면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사람을 빌리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뒷부분에 설명이 나오고 그런 이야길 쓰게 된 동기도 나오지만 자세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거다. 그런던 차에 이 책에 관한 이야길 어렴풋이 들었다. <순례자의 책>에 나오던 '살아 있는 도서관'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난 주 책이 도착했다. 책을 훑어보니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완전하게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짜 '사람 책'이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을 없애 줄 책(사람)인 셈이다. 내가 만나볼 수 없었던 편견 저 너머의 사람들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책이나 신문 사설에서나 접하든 사람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가졌던 편견들을 그들을 대출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우리가 몰랐던 지식을 얻듯이 그렇게.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 책들은 우리가 평소에 많은 편견을 가지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동성애자, 싱글맘, 우울증 환자, 아주 심한 채식주의자 등등. 그들이 그렇게 살게 된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감이 가면서 이해하게 된다. 살아 있는 도서관, 사람 책을 빌리는 도서관, 꽤 흥미롭다!! 또 문득 떠오른 생각!! 남의 이야기 잘 들어준다고 소문난 나는, 그곳에 가면 빌려야 할 책이 무진장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편견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한 사람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몇 권의 책을 읽는 것만큼의 황홀함이다."이란 편집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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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2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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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 년 전에 읽은 바 있다. 서평도서로 받아서는 훑어본다는 것이 그만 그 자리에서 두 권을 날름 해치웠다. 시간여행이라기보다는 '시간 여행 유전자(time-traveling gene)'라는 희귀한 병을 가진 한 남자의 기구한 삶을 그렸고 애절한 로맨스는 덤이었다. 헨리는 겨우 다섯 살의 나이에 시간여행을 경험하고 자신이 시간 여행 유전자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알몸이 되는 헨리는 그런 상황 때문에 소매치기, 도둑질, 주택 침입은 물론이고 때로는 폭력도 일삼는다. 경찰에 쫓기고 예측불허의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운명적 사랑인 클레어를 만나 위안을 삼기도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질 줄 모르는 시간 여행자에게 사랑이라니! 하지만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헨리와 클레어에겐 상관 없다. 시간의 차이 따윈 그들에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에겐 항상 바로 지금,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헨리와 클레어는 자신의 딸이 똑같이 '시간 여행 유전자(time-traveling gene)'라는 병에 걸리는 걸 지켜봐야 한다. 헨리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니 이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클레어다. 남편인 헨리의 그런 상황으로 인해 과거에서 현재에서 미래에서도 평생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딸마저 시간 여행 유전자에 걸려버렸으니. 그 어린 것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니!  

SF따윈 지루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나 그렇고 그런 진부한 사랑에 질렸다면 클레어와 헨리의 길고 긴 사랑에 동행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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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리플레이 판타 빌리지
켄 그림우드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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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날 내가 죽었다. 43살, 아직은 죽을 나이가 아니지만 권태로운 삶과 숨 막히는 일상이 심장마비를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죽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까? 천국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지옥행? 한데 눈을 떠보니 어이없는 삶이 펼쳐진다. 스무 살로의 귀환(!), 전생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로 작가는 내가 존경에 마지않는 스티븐 킹의 『미저리』을 제치고 세계판타지상 대상을 수상했단다. 가끔, 아니 어제도 ‘스무 살’에 관한 글을 쓰면서 ‘스무 살’을 그리워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죽어서 전생의 ‘스무 살’로 되돌아간다. 이런, 행복한 작자라니! 하지만 과연 그게 행복한 일이기만 했을까?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만 하다. 하지만 재생된 스무 살 이후의 삶은 어쨌든 처음 되돌아간 그 인생만큼은 새롭고 놀랍고 경이로웠다. 전생에서 해보지 못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을 되돌아보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하지만 그런 것은 잊었다. 이제 그에게 '가지 않은 길'따윈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 길을 가보기도 한다. 한데 전생을 잊을 만할 때, 전생의 그 죽음의 날에 그는 또 다시 죽는다. 다시 한 번 리플레이! 헉!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자, 이쯤 되면 그 아무리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유혹이 있더라도 더 이상의 재생은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이건 누군가의 조작인가, 아님 꿈을 꾸는 것일까? 어쨌든 그건 읽는 사람의 마음대로다! 믿든 안 믿든.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쓴 작가의 죽음이다. 그는『리플레이』의 후속 작품을 쓰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다시 한 번 리플레이』의 제프처럼 라디오 방송국 뉴스 팀에서 일을 했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으며 은둔자적 기질이 있었단다. 문득 그가 전생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이건 실제의 일을 쓴 게 아닐까?  그도 어쩌면 이 생을 리플레이, 반복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이 소설의 화두는 "인생 별 것 없다"는 것. 앗! 스포일러 일지도 모름! (네 번의 반복으로 부자로, 자유럽게, 평범하게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고 해 왔으나 처음 생과 비교했을 때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결국, 첫 생의 삶이, 고달프고 우울하고 짜증이 나도 제일 낫다는 것. 인생 서너 번 살아보니 그게 그거다. 별 것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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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이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입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오로지 어느 못생긴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라고만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열아홉과 스무 살 무렵의 나름 성장(!)소설이더군요.(막 끼어 맞춘다.ㅎㅎ) 그동안 수많은 스무 살을 읽어왔어요. 내용들도 대부분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아픔을 겪으며 진정한 어른, 다시 갈 수 없는 청소년기의 시절을 보내버리게 되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무 살이나 서른 살, 십 년에 한 번씩 세대를 넘을 때마다 동지의식을 느끼며 읽게 되는 많은 책들 중에 왜 마흔이나 쉰을 넘을 때 읽을 만한 책은 없는 것인가?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건 아마도 마흔이나 쉰이라는 나이는 삶에 지쳐 혹은 사느라 바빠서 그런 배부른 고민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른이 지나면서는 마흔, 그런 나이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줄 알면서 살고 있을 테니 말이죠.

청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긴긴 인생에 있어 유일하게 추억거리와 아픔이 많고 그래서 생각하기도 싫으면서 막상 되돌아가고 싶다면 제일 많이 돌아갈 그 시절, 스무 살 언저리. 추억에 잠겨보세요. 그 때 그 시절!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이 되거나 스무 살 언저리에 있는 세대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이 문구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스무 살』중 표제작에 나오는 구절이다. 스무 살이란 나이는 그만큼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들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나이든 그렇지 않을까마는 특히 스무 살이란 나이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약간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스무 살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회고적 문장으로 시작되며 80년대와 90년대 그 사이에서 어느 세대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세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생에서 단 한 번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낸 박민규의 최근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무대로 한다. 인간관계에서마저 거부받을 정도로 모두가 꺼려한다는 못생긴 아가씨와 잘생기고 나무랄 데 없는 남자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화자이며 여자를 사랑한 남자 ‘나’는 20살 생일에 못생긴 그녀로부터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담긴 LP판을 선물 받는다.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잘생긴 아버지는 배우였고 못생겼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 못생긴 여자의 비극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작가 박민규는 독특하다. 전체적인 주제와는 다른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스무 살은 만약 ‘나’가 스무 살 언저리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는 거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단 하나의 풍경.” 'beer'을 'bear'로 'hof'를 'hop'로 적기 일쑤였던 그 시절에 난데없는 hope, 희망이 그토록 가까이에 있던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던 시절, 바로 그 무렵이다. 스무 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세상의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폼 잡고 다녔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행복한 고민들이었던 그 시절 바로 스무 살이다. 공선옥 작가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나오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보면 너무나 불안하고 너무나 안절부절, 그래서 세상에 혼자뿐인 것처럼 더없이 외롭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말이다. 작가는 주인공인 해금이와 여덟 명의 수선화 그룹(!)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 예뻤던 스무 살 무렵의 청춘 시절을 이야기 한다.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있게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상처와 추억을 가질 시절의 이야기지만 시절이 시절인 만큼 해금이와 여덟 명의 '청춘'들이 살아내야 했던 그때만큼 쓸쓸하면서 달콤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무 살, 누구에게는 개인적인 고민과 상처로 아픈 시기였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시절이 주는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바로 스무 살이다.

 

 “스무 살이 간직했던 비밀과 스무 살이 품었던 흥분으로 써 내려간 타블로의 소설.” 가족과 소통, 성장과 사랑까지 다양한 면들을 이야기 한다. 문체는 건조하고 희망 또한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것은 글 속에 묻힌 타블로만의 따뜻함 때문이다. 앞서 말한 김연수 작가의 스무 살과 타블로의 스무 살은 세대가 다르다. 또한 문화가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고민하고 아파하며 넘어가는 스무 살의 이야기는 세대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그래서 스무 살인가 보다. “10대의 끄트머리와 20대의 시작 지점에 썼던 글들을 20대를 보내며 정리하는 일은 참으로 묘하다.”라고 그는 책의 서문에 적었다. 형용사를 쓰지 않고도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며 열아홉과 스무 살 언저리의 세대를 제대로 표현해준 『당신의 조각들』타블로와 같은 스무 살을 겪은 세대들이 몹시도 공감할 소설이었다.



  

이제 막 수능을 치룬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대학도 앞으로의 미래도 아니다. 오로지 여자친구 서영과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열아홉, 어쩌면 진로에 대한 고민 따위보다는 이성에게 관심이 훨씬 많은 그 또래의 마음을 박현욱은 유쾌하고 경쾌하게 표현해냈다. ‘동정’을 잃어야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십대의 끄트머리에서 오로지 동정을 버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청춘을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누군가는 그 무렵에 만나는 ‘여자’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로 인해 인생을(!) 배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동정을 버리고 ‘어른‘이 되었을까? 시니컬하기만 한 열아홉, 스무 살이 지겹다면 연민과 냉소가 교차하는 ’성장 없는 성장 소설‘ 『동정 없는 세상』을 만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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