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나 말고 다른 사람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답지. 자신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질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아름답구나. 환이 때문에. 해금이 너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는지도 몰라. 네가 울기 전보다 지금 별이 훨씬 반짝이잖아." p212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맞아 그땐 내가 예뻤을 거라는 걸 몰랐다. 세상의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폼 잡고 다녔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행복한 고민들이었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처럼 너무나 불안하고 너무나 안절부절, 세상에 혼자 뿐인 것처럼 더없이 외로워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 가장 행복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
공선옥 작가의 장편을 처음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리라 생각만 하고선 아직까지도 읽어보질 못했다. 그동안 읽은 작품은 단편집 두 권, 남들이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하는 작품들이다. 그 두 작품은 비루하고 초라한 삶 속에서도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책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하여 공선옥 작가의 전작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의 삶이 그러했으므로.
그런 작가의 이야기가 다분히 자리잡고 있는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인터넷 카페에서 연재할 때 건성으로 읽어대다가 단행본으로 나오고서야 진득하니 읽게 되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과연 먹힐 만한 소재일까? 독자인 주제에 은근히 걱정을 하면서도 이렇게 가슴 시리고, 또 이렇게 아름다운 '청춘'들을 말하는데 그들 '청춘'들이 모를 리 없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작가는 해금이와 여덟 명의 수선화 그룹(!)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 예뻤던 스무살 무렵의 청춘 시절을 이야기 한다.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있게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상처와 추억을 가질 시절이었을 테니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그 나름대로들 남아 있겠지만 해금이와 여덟 명의 '청춘'들이 살아내야 했던 그때만큼 쓸쓸하면서 달콤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흉 좀 봤다고 교사를 잡아가던 시절, 아무 죄없는 아이가 어느날 들이닥친 군인들의 손에 죽고, 그 충격에 또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그때, 공장 노동자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이 절정을 이루던 그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그들 '청춘' 이니 그 어떤 '청춘'들이 그들의 쓸쓸한 삶을 흉내라도 내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쓸쓸하다고 해서 내용 전체가 슬픔에 찬, 비루한 인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아무도 그때가 가장 예뻤을 거라는 걸 몰랐던 것처럼, 그런 삶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과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론 뭔지 모르게 미소가 머금게 하는 '청춘'들이 있다. 그래, 모든 청춘이 그렇지 않겠는가?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작가는 책에서 <목마와 숙녀><눈이 나리네>, 조앤바이즈의 노래와 탱자나무와 음악다방, 야학과 『선데이 서울』 등등 이제는 기억도 가물거리는 그 시절의 모습들을 기가 막히게 재현하여 마치 지금 그 시대로 되돌아 간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그런 때가 있었는데…
공선옥 작가는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잘 있으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그 시절과 이별을 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너무나 아쉽고 서러워서 이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라는 슬픔에 빠져 있었다. 분명 그 시절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데 책 속의 모든 내용 속에 현재의 상황들이 오버랩 되면서 과거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제는 너도나도 민주화된 사회에서 억울한 죽음 없이, 부러진 꽃처럼 그렇게 죽어버리는 청춘들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라 착각하며 너무 잊고 살았나보다. 내 슬픔이 아니었는데 내 슬픔처럼 자꾸만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