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나의 첫사랑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59
프리드리히 아니 지음, 이유림 옮김, 정문주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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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성에게 눈을 뜬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지몬과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 유독 마음에 들었던 남자 친구 앞에서는 말도 한마디 못하거나 혹은 괜히 심술궂은 소리나 해대던 그 시절. 『열두 살, 나의 첫사랑』을 읽으며 내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웃음 지었다. 사랑(!) 앞엔 누구나 바보가 되는 것 같다. 그게 어린 아이들이든 나이가 든 어른이든 다를 바 없다.  

이 책은 세상에 태어나 그 사랑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열두 살, 지몬을 통해 일주일 동안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두근거리고, 괜스리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목소리도 안 나오고 숨도 제대로 못쉬더니 결국 잠까지 설치는 이 사랑의 과정을 보여주며 지몬이 어떻게 생애 처음 만나는 이 사랑을 배워나가는지 보여준다.   

사랑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아버지가 말한다. 머릿속이 복잡한 지몬은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긴 힘들겠지만 아마도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비록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몬의 아픔(!)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웃긴다. 이제 첫사랑을 맛 볼 조카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책!^^  

땀이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혼자서 생각했다. 내 심장이 호텔까지 뛰겠구나. 30분 거리를 지나서 뛰겠구나.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문을 지나 안나레나가 묵는 층의 복도를 지나 그 애의 방문을 두드리겠구나.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날 밤 내 심장은 그토록 큰 소리로 뛰었다. 분명하다.  그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심장이 왜 이렇게 세차게 뛸까? 그리고 왜 한밤중에도 멈추지 않는 걸까?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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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베리 - 세미콜론 그림소설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포지 시먼스 글.그림, 신윤경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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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만화을 넣어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말 그대로 만화가 그려진 이 만화소설은 책을 읽는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단순하게 스토리가 있는 만화이기보다는 그림만큼 글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글과 함께 이미지까지 머릿속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마담 보베리』는 19세기 사실주의 소설가로 알려진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현대판으로 패러디한 작품이다. 구성과 스토리 전개는 비슷하나 배경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의 등장이 있는 점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화자로 등장하는 빵집 주인 주베르의 스토커적인 보베리의 관찰은 그가 엠마 보바리와 젬마 보베리를 동일시 하여 일어나는 사건들을 유추하면서 과연, 젬마 보베리가 플로베르의 소설 속 엠마 보바리와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인가?'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스포일러일 수도 있겠지만 포지 시먼스가 내리는 결론은 소설과 다르다는 것만 알아두자.^^ 

이 책의 재미는 마담 보바리의 패러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지 시먼스라는 작가의 그림에도 있다. 표지의 그림은 밤마다 에르베의 성으로 가는 젬마의 차림새이다. 핫백을 들고 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인데 알고보면 꽤나 선정적인 모습이다. 포지 시먼스가 그린 그림엔 위트가 보인다.(물론 글에서도 그 위트는 재미를 준다.) 젬마가 싫어하는 패트릭의 특징을 요약한 장면(그 중 하나로 책을 다 읽으면 쓰레기통에 버린단다.)이나, 패트릭과 같이 간 레스토랑에서 혼자 떠들고 있는 패트릭을 같잖다는 듯이 메뉴판  너머로 쳐다보던 젬마의 표정, 젬마를 관찰하며 한숨짓는 주베르의 표정 등등 글로만 읽었으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었다.  

또한 플로베르의 시대에는 비난을 받았을 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선 너무나 별 일 아닌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젬마가 말하듯이 "서로 진짜 좋아하지 않고 비밀만 잘 유지된다면, 바람피우는 것도 괜찮다." 는 말에 은근히 공감을 하면서, 바람으로 인해 활력이 생겨 남편에게 더 잘해주게 된다면 젬마의 변명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리라. 엠마와 젬마를 비교하면서 책을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젬마 보베리라는 인물과 화자인 주베르의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소설에 살짝 싫증이 났다면 이 만화소설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마지막 이사간 보베리네 집으로 이사온 '제인-에어', 포지 시먼스의 위트가 절정을 이룬 문장이었다.^^ 그녀의 작품이 더 나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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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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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던 정한아가 첫 소설집을 펴냈다. 전작의 따뜻함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내리 읽었다.  표제작인 「나를 위해 웃다」를 시작으로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삶에 대한 따뜻함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특히 표제작인 「나를 웃다」에서 ''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독특하면서도 꽤 매력적인 단편이었다.  

불행해보이지만 전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인생, 독자인 나로서는 읽으면서 내내 어이없는 일들에 화가 나, 너무나 무덤덤하게 대처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휴, 정말'하곤 혼자 분노했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알 수 없는 체념과 무관심이 마지막에 "이제 엄마도 혼자가 아니었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아,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들 모녀가 동시에 느꼈던 "편안함"을 나도 같이 느끼고 말았다.  

이러한, 아프고 힘들었겠으나 앞으론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거라는 자기 암시의 긍적적인 글들은 다른 단편들에도 나타난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버려지다시피한 ''는 '온종일 창밖으로 목을 내밀고 길거리를 내려다보며' 아버지를 기다렸으나 그 아버진 ''의 존재를 보류한 채 새 가정을 이룬다. 유리 조각으로 아버지의 등을 찔러 집을 나온 후 찾아든 사창가에서 ''는 나를 찾는 어머니의 소식을 접하지만 이별한 종은 다시 합쳐지지 않는 것을 믿으며 과거의 끈을 놓아버린다.(「아프리카」), 불구에 변변한 직업도 없는 아버지 대신 직장을 다니던 노곤한 엄마가 다른 남자에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도 말없이 잡아주며 '품위'를 유지하던 아버지, '품위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아버지는 옳았다.'고 말하던 딸의 생각에서 가정의 지키기 위해 엄마를 감싸 안아주는 아버지로 인해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삶에서는 그 어떤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댄스댄스」)    

그 외, 이상한 동거를 하고 있던 ''는 남자의 아내와 아이가 찾아오는 주말엔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은 늘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단다. 나는 항상 내가 절름발이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기억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이해가 돼. 구겨져서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라고 말하며 "나는 구름처럼 높은 곳에서 나를 바라본단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존재가 가늘어지는 진짜 외로움을 느끼며 ''는 남자와 이별을 준비한다.(「휴일의 음악」)   

 이렇듯 과정으로 보면 「휴일의 음악」에서 할머니가 느끼듯이 '삶 어딘가 텅 비어 있는' 듯 해보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결국 인생이란 나아갈수록 이해가 되고, 그 이해로 인해 「나를 위해 웃다」의 모녀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정한아의 소설들은  버려지거나, 혹은 이별하거나 불행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삶을 다시 받아들이겠다는 씩씩한 의지가 느껴져서 좋다. 더불어 그녀가 표현하는 인간관계의 소통 방식은 무덤덤하고 아픔을 내보이지 않으면서 그 아픔을 전달하기에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성숙해지며 깊이가 보인다. 그래서 정한아만의 따뜻한 문체와 함께 바라보는 삶의 긍적적인 태도는 '아무런 목적이나 가치가 없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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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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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소설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 코미디? 추리? 공포? 내가 봐서는 이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어느 장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도 없다. 눈을 떠 보니 엘리베이터 안, 이건 공포다. 누구나 눈 떠보니 포근한 침대 속이 아니고 엘리베이터 안이라면 공포감부터 들 것이다. 문득, 눈 뜨니 어느 방 안에 쓰러져 있던 영화 <쏘우>가 생각난다.(아, 그러나 그 정도의 호러는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이건 풀어야 할 숙제이므로 추리다. 더구나 모르는 남자 둘과 여자까지 있다. 이 장면에선 영화 <큐브>가 생각난다.(물론 공포보다 밀실이라는 점으로 인해) 근데 웬 코미디? 앞의 이야기들하고 심하게 다른 장르인데… 이유는 이렇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주고받는 대화가 가관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나가기 위해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과정에서 이들은 온갖 단어를 다 댄다. ‘사람 살려’는 기본이고, ‘불이야!’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도망쳐!’도 이해하겠다. 하지만 ‘호랑이’라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하긴 마키하라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호랑이라니.  

아무튼, 모두 네 명의 화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풀어 놓는 이 어이없는 상황극은 처음엔 공포로 시작되다가 이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기가 막혀서 참내, 하다 보니 이건 또 뭔 일이람! 그들의 비밀이 장난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끝나려고 하는 이야기인가 머리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죽는다. 헉!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마지막이다. 반전이다. “무엇을 예상하든 100% 빗나갈 것이다”라고 아마존재팬 독자가 말했다는데 맞다!  

어쨌든, 결과는 결과이고 이 소설은 그야말로 악몽이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나래도 이게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꿈이라면 깨고 싶고, 시간이라면 되돌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이게 악몽이 아니면 뭐겠는가?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보니 군데군데 힌트들이 있었다. 추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눈치를 챌지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빠져 있다가 아! 하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느끼는 스토리의 재미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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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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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나도 우리나라 고전을 한번 읽어보겠다고 서포 김만중의『구운몽』을 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왜 뜬금없이 『구운몽』을 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내 구매 습관으로 봐서는 그 당시 기사나 칼럼에서 『구운몽』과 관련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고전의 문체나 옛 글의 어려움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스토리만 듣고 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겨우 두어 장 넘기고 아직도 책꽂이 구석에서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 그에 비하면 이 책에도 짧게 소개가 되지만 5권짜리 『옥루몽』은 꽤 흥미롭게 읽은 셈이다. 요즘으로선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한 십대 중반 아이들의 판타스틱한 무술 실력과 철저한 권선징악, 그리고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다섯 선녀들. 한마디로 스펙타클하면서 문체가 주는 즐거움이 나름 재미있어 즐겁게 읽었던 거다. 그러고선 실로 오랜만에 읽은 고전되겠다.  

『옛 소설에 빠지다』, 소설 좋아하는 나로선 ‘옛 소설‘이라는 제목에 ’혹‘해버렸다. 옛날 소설들은 과연 어떨까? 현대의 소설처럼 흥미롭고 재미있을까? 궁금증이 더했다. 책을 받자마자 첫 이야기인「이생규장전」을 읽으면서 나는 제목 그대로 옛 소설에 빠지고 말았다. 귀신과 사통하는 소설이라니, 현대로 따지면 공포 스릴러 소설 정도 되겠지만 고전에서 보는 귀신은 아름다울 뿐이다. 얼마나 남편이 걱정되었으면 죽어서 나타났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된 남녀의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오싹하면서도 흥미로웠던 작품은 「강도몽유록」이었다.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목숨을 잃은 여인네들의 통곡에 가까운 한은 그야말로 으스스했다. 역사적 사건을 두고 도망가고 제 한 몸 건사하기에 바빴던 관료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인네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꿈이라는 걸 빌어 이런 이야길 했을까 싶다. 

또 「오유란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면서 코믹하고 유쾌했고, 「적성의전」이 보여준 형제의 선악구조와 인과응보는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갔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었다.  

이렇듯 남녀의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전쟁, 그 시대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양반들의 행태와 당대의 날카로운 풍자까지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옛 소설에 빠지다』는 현실적인 이야길 다룬 것은 물론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저자가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담백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놓아 훨씬 읽어내기가 수월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비슷한 다른 이야기들을 읽어보도록 유도함으로써 고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주고 궁금증을 심어주었다. 

책을 덮으면서 우리가 고전을 멀리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도 어렵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려운 고전이라도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문체를 사용한다면 베스트셀러로도 충분히 나올만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간만에 우리의 고전에 푹 빠져 보낸 며칠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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