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판타스틱한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더구나 띠지에 쓰인 "절대로,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이라는 홍보 문구는 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주말 저녁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펼쳤다. "내 뱃속에 이 책의 싹을 틔운 당신, 아카시타에게"라는 헌사를 보는 순간, 그리고 두어 장 넘긴 후 왠지 모를 차가움이 내 마음을 싸하게 만드는 것만 같은 일러스트를 보는 순간, 이 책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묘하게 들어맞았다.
처음 미친 여자인지 의사인지 모를 매들린이 '마치 임산부 놀이를 하는 어린 소녀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눈송이 같은' 잭의 심장이 얼어붙었다며 나무로 된 오래된 뻐꾸기 시계를 심장 대용으로 잭의 가슴에 부착할 때만 해도 ‘이건 판타지 소설이잖아’ 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시적이고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문장들을 볼 때마다 나는 밑줄 긋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런저런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사랑,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알고 있는 그 사랑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날 심장이 꽝꽝 얼어버린 채 태어난 아기 잭, 잭을 살리기 위해 '미친 여자'라 불리는 매들린은 잭의 가슴에 시계를 이식한다. 그리고 태엽을 감는다. ""똑딱" 시계가 소리를 내자 "쿵쿵" 심장도 화답했다. 곧 내 동맥에 불그스레 화색이 돌았다. 똑딱 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쿵쿵 소리도 빨라졌다. 똑딱. 쿵쿵. 똑딱. 쿵쿵" 이제 잭은 아침마다 열쇠로 시계의 태엽을 감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잠들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명과도 같은 사랑의 시작,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날 태어난 잭이 세상에서 가장 더운 날을 맞이하던 그날, 두 팔은 마치 나뭇가지 같았고, 굽슬굽슬한 검은 머리칼에 플라멩코 무희 미니어처 같은 소녀의 매혹적인 노래가 잭의 심장의 뻐꾸기를 우렁차게 울게 하고 불덩이처럼 몸이 뜨거워지게 만들자 매들린은 "절대로,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사랑에 빠지면 심장시계의 긴 바늘이 잭의 몸을 뚫고 나와 뼈는 산산이 부서지고 심장의 시계장치는 다시 고장나고 말 테니까.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런가? 이미 불덩이처럼 몸이 뜨거워지는 순간 소녀는 이미 잭의 마음에 편안히 자리잡아버린 것을.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를 가진 소설『심장의 시계장치』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홍보 문구에도 쓰여 있듯이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인 셈이다. 운명처럼 만난 한 소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를 찾아 떠나고 마침내 그녀를 만나지만 너무나 뻔한 '진실'과 '믿음'과 '오해' 속에 갈등을 겪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잭을 보며 우리는 지나온 사랑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사랑, 앞으로 겪을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뻔하고 식상한 스토리지만 그 스토리를 이토록 상상력 넘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몽환적인 내용에 어울리는 일러스트는 읽는 재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도 한다. 나른한 봄날, 내 마음에 자랄 작은 사랑의 씨앗을 아름답게 키우고 싶다면 심장의 시계장치를 달고 다니는 잭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