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학교 보내고, 다음달부터 보육교사로 일을 하게 된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친구같은 사람인데, 앞으로 자주 못 볼 것을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일 시작하기 전에 함께 점심이나 먹자고 했더니 기동성있는 한 엄마의 제안으로 두물머리와 세미원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현준이가 아기때 가보고 오랜만에 갔더니 많이 변했다.

두물머리로 들어가는 길도 잘 정비되었고, 두물머리와 세미원이 배다리로 연결되어 두 곳을 모두 둘러 보기 쉽게 되었다.

하지만 세미원은 공사중이고, 8월말이라 연밭에 흐드러지게 핀 커다란 연꽃은 볼 수 없었다.

 

 

 

 

 

 

 

 

 

 

 연밭에 커다란 연잎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일도 나쁘지는 않았다. 토토로가 생각나기도 하고, 저 연들처럼 부대끼며 살아도 서로가 상처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어떤 잎은 유난히 크고, 어떤 잎은 아직 여리고 작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연밭의 연잎들, 다른 사람의 흉을 들춰내서 자기합리화하려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평화로워보이고, 자연스러워보였다.

 

사람들은 간혹 상대가 자연스럽게 보인 치명적인 실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말하고 행동했던 것들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전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믿기에 충분하다. 말하는 사람을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가 좋다가 나빠졌다고해서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마구 떠들고 다니는 사람의 자질이 난 의심스럽다. 결국 그 사람을 믿었던 한 사람은 그 사람이 말하고 다닌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된다.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한 언니에 관한 떠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많이 안타까웠다. 그 언니가 가장 좋아한다던 다른 언니가 그 언니와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다녔고, 결국 그 이야기는 당사자의 귀에가지 들어가게 되었다. 대체 어쩌자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하게 지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진다고해서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 사람들과 계속해서 교류해나가고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그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세미원 곳곳에 독특한 분수대가 많았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장독 분수대, 우리나라의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장독의 매력을 담고 싶어 분수대로 만들었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안과 밖이 공기가 통하는 장독처럼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내 안에 담아놓은 것들이 장독 속에서 잘 발효되듯 잘 숙성되어서 그래도 나름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세미원 안에 세한도를 본뜬 세한정을 새로게 만들었다. 2013년 8월 1일 준공식이 있었단다.

추사 김정희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아 조성했단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우리 어느 곳에서 살아와서 지금 여기 모였을지 모르지만,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려해주면서 아이들 함께 잘 키우자. 그리고 우리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해나가자. 사진 카톡으로 보내며 오래된 친구처럼이라고 했지, 우리들 서로 아직 잘 모르고 서로의 생각과 다르게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자. 오늘 참 좋았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서 우리가 점점 나이들어가는구나했지만, 그래도 우린 참 행복한 사람들이란 생각했어. 또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돌아가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도 우리들에게 소중한 순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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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29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시간 보내셨네요. 두물머리 오래전에 가본곳인데 참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두 물이 만나는 곳......
장독 분수대 아이디어 좋군요^^

꿈꾸는섬 2013-08-29 18:12   좋아요 0 | URL
세실님 두물머리 와보신적이 있으시군요. 정말 멋진 곳이죠.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이 나오고요.
세미원엔 독특한 분수대가 정말 많았는데 장독 분수대가 인상적이고 멋졌어요. 세미원이 완공되고나면 더 멋진 곳이 될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와보셔요.^^

2013-08-29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9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8-2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여름 기나긴 두물머리 싸움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쫓겨난 농민들 때문에 늘 아픔과 쓸쓸함으로 기억될 이름이네요.
성실한 농민들이 오랫동안 땀흘려 일군 소중한 유기농 단지를 갈아엎어서
고작 자전거 도로와 생태학습장을 만든다고 하던데,
얼마나 제대로 만들지, 얼마나 제대로 운영할지 모르겠네요.

아, 소풍 다녀오셨다는 글에 이런 댓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꿈꾸는섬 2013-08-30 17:42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긴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정말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땀흘려 일군 유기농단지를 잃은 농민들은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요? 그 현장에 끝까지 함께 하셨다니 정말 좋은 일 하셨네요. 라고 밖에 말씀을 못 드리니 저도 안타깝네요.
하지만 그곳에 생긴 생태학습장은 올 봄에 아이들이 현장체험학습으로 다녀왔어요. 장수풍뎅이 애벌레도 가져왔었죠. 그곳에서 곤충에 대한 학습받고와서 집에 있던 책들 펼쳐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는 다음엔 우리 가족 다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댓글을 달아주신 덕분인거죠.^^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3-08-31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물머리~ 정약용
내 기억 속의 풍경화가 많이 변했네요.
개발이란 논리로 밀려나는 이들은 늘 약자들이죠.ㅠ
사람들의 관계가 쉽지 않지만 상처를 받기보다 나는 상처를 주는 쪽에 설때가 많은 거 같아 심란하네요.ㅠ

꿈꾸는섬 2013-08-31 16:5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말씀이 맞아요. 상처를 주는 쪽에 설때가 많아요.ㅜㅜ

소나무집 2013-08-3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물머리가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군요.
한번 가보고 싶네요.^^

꿈꾸는섬 2013-08-31 16:53   좋아요 0 | URL
두물머리, 경치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차장도 넓어지고, 길도 확장되어 다니기 좋게 되었더라구요. 위의 사진들은 세미원 사진이 대부분이에요. 지금은 공사중이니 완공되면 한번 다녀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3-08-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수대가 너무 멋지네요...
ㅇㅇ,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그냥 느낀 것을 그럴 수도 있구나 인정해주었으면 싶구요.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하고픈 마음도 저도 그래요.

두물머리, 참 아름답네요.

꿈꾸는섬 2013-08-31 17:0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전 언제 다 크려나 싶은 생각을 할때 헛웃음이 날때가 있어요.ㅎㅎ 웃지요.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지 않은 어른이 될거에요. 우리는요.ㅎㅎ(자신감이 넘치죠.)

두물머리, 좋아요.^^
 

1. 서울 상상나라

 

 

2.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3. 터틀랜드

 

 

 

3. 아쿠아조이

 

 

4. 캠핑

 

 

5. 공연

 

(붓바람공연과 얌모얌모 콘서트는 다음에서 가져옴. 공연 보다 사진 찍는 걸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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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8-27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을 재밌고 즐겁게 보냈네요~ 현수랑 현준이도 부쩍 자란 거 같고요!^^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죠~ 신나게 놀면서 크는 아이들!

꿈꾸는섬 2013-08-29 00:35   좋아요 0 | URL
현수랑 현준이가 많이 자랐어요.
내년이면 현준이는 3학년이 되고, 현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요.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 전적으로 공감이요.^^
 

정말 올 해는 바쁜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바쁜척하느라 책도 제대로 읽지 않고 시간만 흘러 어느새 8월말이다.

2월부터 읽기 시작했던 레미제라블을 이번달에야 마무리를 했다. 책을 잡으면 금새 읽게 될 것처럼 이번달까진 꼭 읽어야지 했는데 다짐처럼 책읽기는 수월하지 않았다. 이번달, 이번달 하던 것이 결국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서로를 위하여 과감하게 생존하거라. 서로를 한껏 귀애하거라. 우리들이 너희들만큼 사랑하지 못하여 광증에 거꾸러지도록 만들어라. 서로를 우상 섬기듯 하여라. 이 지상에 있는 모든 환희의 가닥들을 너희들의 부리로 물어다가 너희들이 살 둥지를 틀어라. 정말이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젊을 때는 그것이 아름다운 기적이니라! 그것을 너희들이 처음으로 고안해내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나 역시 꿈꾸고 몽상하고 한숨지었느니라. 나 역시 달빛 같은 영혼을 가졌었느니라. 사랑이란 나이 육천 살 된 아이이니라. 사랑은 길고 하얀 수염을 가질 권리를 가지고 있느니라. (......)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곤경을 극복해 왔느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그는 마귀가 자기에게 끼친 해악보다 더 많은 이로움을 자신에게 끼쳤느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그는 마귀가 자기에게 끼친 해악보다 더 많은 이로움을 자신에게 끼쳤느니라. 그러한 교묘함은 이미 지상낙원 시절부터 발견되었느니라. 나의 벗들이여, 고안된 지는 오래되었으되, 그것이 여전히 새롭다. 그것을 한껏 이용하거라. (레미제라블 5, 빅또로 위고, 펭귄클레식, p.302) 

사랑에 관한 글은 어디에서 만나든 좋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랑없이는 살 수 없을테니까.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 신간 소설 <28>이 출간 되었다는 소식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선뜻 책을 사지는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내 책을 사는 일보단 아이들 책을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몇달을 속끓이다가 결국엔 애들 책 주문하면서 <28>도 함께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던 날부터 꼬박 3일, 틈틈이 책읽기에 몰두했다. 역시 정유정 작가의 흡입력을 거부할 수 없다.

두권을 묶어서 세트로 구매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28>의 Book Soundtrack Alum이 함께 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니 훨씬 드라마틱하다.

 

 

 

 

 

 

 

 

  링고는 화해하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스타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시간이 좀 흘렀으니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는 배를 깔고 엎드린 자세로 스타에게 기어갔다. 촉촉하게 젖기 시작한 그녀의 코에 코를 맞댔다. 입술을 핥고 귀를 비볐다. 스타는 으르렁대지 않았다. 얼굴을 돌리지도, 밀쳐내지도 않았다. 화해 요청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링고는 스타와 얼굴을 맞대고 엎드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안도와 온기가 그를 감쌌다.(28, 정유정, 은행나무, p.244~245)

 

  링고는 한 발짝 앞으로 다리를 내디뎠다. 머리로 철장을 들이받으며 분노를 드러내고 의사를 전달하려 애썼다. 제발 스타를 거기 놔두라고.

  대장은 가방 옆에 몸을 낮추고 앉아 지퍼를 열었다. 잿빛 그림자 밑에 스타가 누워 있었다. 목에 흰 붕대를 감고, 머리와 몸을 옆으로 눕히고,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불에 덴 것처럼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꽉 막힌 목 밑에서 신음이 끓었다. 링고는 주둥이를 창살 사이로 내밀고 발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을 쳤다. 철장에서 나가고 싶었다. 스타 옆으로 가고 싶었다.

  "링고 가만 있어."

  대장은 가방을 철장 문 앞으로 끌고 왔다. 링고는 스타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철장 쇠살 틈으로 주둥이를 내밀고 스타의 냄새를 맡았다. 스타의 차가운 입술을 핥았다. 코를 맞댔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콧등은 말라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잿빛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링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간절한 심정으로 대장을 올려다봤다.

  스타를 산막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예전처럼, 쉼터에서 산막으로 스타를 데려왔던 첫 밤처럼, 상처를 핥고, 코를 맞대고, 몸을 붙인 채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p.304~305) 

 링고의 스타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에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아팠다. 인간이 동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신의 부인이 개떼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은 안 기준으로서는 링고와 스타가 혹은 그 어느 개라도 죽여야만 했을 것이다. 젊고 예쁜 아내와 어린 딸이 개떼의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링고가 사람이었다고해도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를 수 있었을까?

화양에서 발생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사람들의 대처에 대해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본다. 도시에 살고 있는 개들을 모두 살처분하는 장면은 어찌나 잔혹한지, '살려주세요'하고 외치는 개들의 소리가 내게도 들려오는 듯 했다. 그래도 그 안에는 다른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수진, 기준, 유반장 등)의 모습이 있고,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준이, 그리고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윤주가 있다. 

  "욕망이 없다면 잃어버릴 것도 없어. 잃을 게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드림랜드에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잃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적어도 그때보다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재형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발부리를 내려다봤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승아의 목소리가 들려서. 선생님 어디 있어요, 자꾸 물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때 이후로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았는데, 꿈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왜 또 나 혼자 남았는지 어리둥절해서."

  윤주는 계단을 올라갔다. 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가서 알려주고 싶었다. 두 사람이 남았다고. 재형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의 두 손을 잡아다 가슴에 댔다. 벌컥벌컥 뛰는 자신의 심장을 만질 수 있도고, 움찔하는 그의 손을 양손으로 덮고 가만히 눌렀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재형의 시선이 그녀의 눈을 더듬었다.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있어."(p.347)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 살아가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다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함께 팔짱을 끼고 식장을 걸어나오던 그 어느 날처럼, 화려한 꽃가루도 폭죽도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없지만, 함께 살고 아이들을 낳고 서로가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끝내 소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듯 말한다. 남겨진 사람들은 과거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어떤 무게로 다가올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함께 살아가며 보듬어 줄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소설을 읽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되지는 않을까?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가끔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초콜릿을 달고 살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만큼 이제는 단 것이 싫고, 불편한 것은 이제 피하고 싶어 한다.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라고 생각하며 산다. 나는 이제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얼마 전 아무 생각없이 남편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보러 갔다가 인간이 지닌 폭력과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살기 위해서 치뤄야할 어쩔 수 없는 규칙,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끔찍했다. 종렬로 늘어설 수 밖에 없는 기차, 마지막 화물칸에 살고자 올라탔던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기차의 균형을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처럼 취급되었다. 그들의 목숨을 이어오게 했던 단백질 블록의 진실, 기차안의 균형을 위해 반란마저도 조작되었다는 사실의 충격, 어느 한편 이것이 이 사회의, 이 세계의 규칙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가슴 아파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딜가나 가난할 수 밖에 없고, 늘 가진 사람들의 소모품처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열심히 욕을 해댔다. 나쁜 것들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인 것도 슬프다.

그래도 그 안에 분명 사랑은 있었다. 딸을 지키려던 아빠, 꼬리칸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커티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며칠 전 갑자기 오전에 일이 취소되어 시간이 많은 남편과 영화 한편 봤다.

남편은 <투 마더스>를 보자고 하고 나는 <나우 유 씨 미>를 보자고 했다. 서로 영화 정보 확인해보고 결국 <나우 유 씨 미>를 봤다. 엄마의 친구를 사랑하는 아들들의 이야기가 불편하고 싫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상과 그들의 사랑이 매혹적이라고 해도, 이제는 불편한 것은 피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유쾌하지 않은 영화는 이제 피하고 싶은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울적하긴 했다. 결혼전이었다면 봤을만한 영화였는데, 이제는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나우 유 씨 미>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는 영화다.

마술이 가진 신기함,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그런 영화였다. 화려한 영상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푹 빠졌다. 사실 가기 전에 남편은 조금 투덜댔다. 하지만 보고 난 후엔 재밌었다고.

 

 

 

 

 

 

 

어제 인터넷 뉴스에서 40대주부가 7살, 6살 아이들과 자살한 기사를 봤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에 걸린 주부, 결국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 산다는 것이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에 한참 속상해했다. 형편은 어렵지만 삶을 즐기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나를 손가락질한다. 보고 싶은 영화, 읽고 싶은 책, 먹고 싶은 음식 다 누리고 산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산다고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없다는 좌절, 슬픔, 속상함, 나는 왜 이러고 사는가 하는 우울함. 나는 그런 것들을 불러 들여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고, 그래야 남편도 행복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소비하는 시대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자꾸만 유혹한다. 사라고, 즐기라고, 그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는 없어도 내가 즐거워하는만큼, 내가 우울해하지 않을만큼의 소비는 필요하다고 본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든. 살아야 한다. 고통스럽게 비참하게가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의 손을 이끌어주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 옆에는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편과 의젓하게 자라는 아들과 조잘조잘 예쁘게 떠들어대는 딸이 있다. 그들의 삶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으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세상에 사랑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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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8-2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굿모닝.

좌절, 우울함, 슬픔, 속상함.... 그런 것을 애써 불러들일 필요가 전혀 없지요. ㅇㅇ, 잘 하시는걸요.
그리고 사랑에 관한 글귀는 언제나 좋구나 하는 문구, 완전 공감이예요.
제 곁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너무 많은 부분을 똑같이 생각하는거 아녜요? 만국 공통 소원인가.

불편한 일, 귀찮은 일은 슬슬 피하고 싶어요.
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정의감 넘치지 않는 면을 그다지 탓하지도 않게 되었는데,
나도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필요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정의감 넘치는 일에만 힘 쓰려구요.
우리는 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그죠? 좋은 한주 되셔요, 와락~

꿈꾸는섬 2013-08-26 12:2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ㅎㅎ

우리 너무 많은 부분을 똑같이 생각한다는 말에 왜 눈물이 핑도는지......

오랜만에 찾아와 글 올리는데 바로 댓글 달아주시고 공감해주시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좋은 한주, 마찬가지로 되셔요.^^

 

알라딘 서재 10주년 축하해요! 알라딘 서재에서 좋은 책도 소개받고, 좋은 분들도 만나게 되었죠. 이곳에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소통하며 위로와 위안을 받았죠. 알라딘 서재는 친정같은 곳이라 늘 편해요. 한동안 뜸하다가 다시 찾아와도 언제나 반겨주는 알라디너들이 있어서 힘들땐 와서 주절주절 이야기 나누고, 속풀이도 하고 그런 공간이었네요. 계속해서 알라딘 서재에서 좋은 일들 가득하면 좋겠어요. 다음 10년뒤에 20주년 축하메세지 또 남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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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8-1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

다크아이즈 2013-08-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치요. 알라딘이 좋은 점은 방치했다 들러도 충견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는 점^^*
그래도 너무 믿고 방치하면 안 된다는 점 ㅡ 흐흐~~
꿈꾸는 섬님은 안 더우세요? ^^*
 
할머니, 어디 가요? 세트 - 전4권 옥이네 이야기 시리즈
조혜란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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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세밀한 그림도 마음에 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옥이의 일상생활로 재미나게 이야기해주는 책. 현준이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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