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래도 아직 한낮은 뜨겁다. 뜨겁게 뜨겁게 햇빛이 내려쬐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햇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 모든 만물의 기를 불어주어 건강하고 알찬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도 영글어 갔으면 좋겠다. 

선물 상자가 도착했다. 코알라가 읽던 책을 정리해서 보내주셨는데 상태는 너무 깨끗하다. 책들도 모두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3학년 조카에게 먼저 빌려줄까하다가 내가 먼저 읽고 싶어서 망설이는 중이었다. 책 보내신다기에 책만 보낸 줄 알았는데 여자아이들이 봄 가을에 신을만한 반스타킹과 동요 CD도 함께 보내주셨다. 현수가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노래 틀어주니 신나했다. 알록달록 예쁜 스타킹은 너무 예쁘다며 신어보았는데 아직 조금 큰편이었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처럼 선물 상자를 풀어보니 기분이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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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논술수업이 있어서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두고 다녀왔다. 아이들이 수학공부방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늦게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약속한 시간보다 많이 늦게 데리러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잠이 들 것 같아 친정에서 샤워시켜 가려는데 여태 아무 말 없던 현수가 울먹이며 귀가 아파서 씻기 싫다고 했다. 소파에 잠깐 누웠다가 어찌하다보니 떨어졌는데 옆의 탁상 모서리에 부딪혀 귀바퀴 안쪽에 상처가 심하게 났다. 친정 엄마는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셨는데 피가 줄줄 흘렀다.  

아이가 아픈대도 난 우선 씻기고 보겠다며 아이들을 우선 씻기고나서 차분히 앉아 보니 상처가 깊다. 약솜으로 살짝 닦아내고 다시 연고를 바르려는데 아프다고 울어댔다. 

매사 조심성이 없는 현수는 잘 넘어지고 잘 부딪친다. 우리 집에 있었다면 다치지 않았겠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은근히 묻는다. 언제까지 수업할 생각이냐고. 아직은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니 차마 그만두겠단 소리를 못하겠다고 했다. 

친정에 잠깐씩 맡기는 일도 쉽지가 않게 되었단 생각에 씁쓸하다. 

잠을 자면서도 자꾸만 운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아이가 아프니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하다.  

 

논술 수업하러 가는 차안에서 박학기의 비타민을 들었다. 딸아이와 함께 부른 이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을 생각하며 갔었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몸의 힘을 복돋아주는 원동력이니 말이다.   

현수야, 이제 곧 괜찮아지겠지. 얼른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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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선물 상자네요! 진짜ㅡ, 8월의 크리스마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이상하게 늘 죄책감이더라구요. 자기 잘못이 아닌 걸 알아도, 미안하고 불편하고 안쓰럽고, 그런 식으로.. 현수가 빨리 낫길 바라요. 하지만 수업은 계속하시길요!

꿈꾸는섬 2011-08-25 00:42   좋아요 0 | URL
섬님 아이에 대한 책임감때문인 것 같아요. 잘 보살펴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현수가 얼른 낫고 수업은 계속하도록 해야겠죠. 고마워요.^^

yamoo 2011-08-2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마고님의 선물이 한아름이군요!! 정말 좋으셨겠어요...저런 상자를 받는 즐거움은 받아본 사람만이 알지요..와~~마고님 완전 센스쟁이인데요~ㅎㅎ

꿈꾸는섬 2011-08-26 15:40   좋아요 0 | URL
마고님은 센스쟁이 맞아요.^^

무스탕 2011-08-25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산타님이 우리 주변에 계셨군요 ^^
이제 현수 괜찮아요?

꿈꾸는섬 2011-08-26 15:40   좋아요 0 | URL
현수가 이제는 아프진 않은가봐요. 다행이지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마녀고양이 2011-08-2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점점 더 미안해지는걸요.... 이긍.

현수가 이젠 아프지 않다구요? 다행이예요. 꿈섬님 마음 아팠겠어요.
아이들에게는 조금만 잘못해도, 항상 미안해요, 그죠.. ㅠㅠ

꿈꾸는섬 2011-08-26 21:29   좋아요 0 | URL
언니, 현수가 이젠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네요.
그래도 샤워도 잘하고 머리도 잘 감고 했지요.ㅎㅎ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씩씩한 현수라 괜찮아요.ㅎㅎ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했다. 오전 시간에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았다. 보고 싶은 영화들은 모두 오후 시간에 배정되어 있었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최종병기 활>이었다. 

극장에서 포스터를 집어 들고서야 박해일, 류승용, 문채원이 나온다는 걸 확인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니 우선 안심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병자호란. 

청에게 온갖 굴욕을 당해야만 했던 치욕스러운 조선의 역사를 배웠다.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왜 해야만 하는 것일까?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복수를 갚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터에서 수없이 죽어 간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평화로운 마을에 갑작스럽게 들어닥친 군사들에게 짓밟힌 사람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힘없고 약한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전쟁은 결국 우두머리들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던가. 

재미와 흥미의 요소를 가미한 상업 영화라고 혹평을 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두루 갖추어진 영화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와 흥미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 할지라도 분명 생각할거리가 많았던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목숨을 부지하는 일, 그것 이상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수없이 날아드는 화살촉을 피해 피로 물들어진 창 칼을 피해 목숨을 부지해서 살아 남는 일, 그것처럼 쉬운 듯 어려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활을 쏘는 목적이 죽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남이. 그의 목적은 그럼 무엇인가? 살기 위해 활을 쏘는 것이 아닌가. 

살아도 그냥 살지 않고 죽어도 그냥 죽지 않겠다던 자인. 그녀처럼 살아가고 죽어가야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배워 온 역사의 기록은 결국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누가 승리했는가의 기록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로 기록되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기록들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하는 한 개인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치욕스럽게 끌려가던 누이들, 함께 끌려갔어도 구해줄 수 없었던 남정네들, 그들 모두 그 전장 속에 있었을테니 말이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숨어 적들이 물러가기만을 바라고 있었을까? 적에게 끌려간 백성들 생각은 했었을까? 전쟁이 일어나며 가장 먼저 도망가는 사람이 바로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6.25전쟁에서도 수많은 피난민을 뒤로하고 다리를 폭파했던 일을 기억한다면 전쟁의 피해자는 역시 힘없는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언제나 사랑이 함께 한다. 그것이 가족간의 정일 수도 남녀간의 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모두가 하나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역적으로 몰려 죽어가던 아버지의 절규를 뒤로하고 두 손 꼭 묶고 사지의 현장을 도망치던 오누이에게는 살아야한다는 것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했겠는가 말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들은 자연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자연 상태란 누구에게도 지배를 받지 않고, 법에 의해 구속받는 일도 없으며, 오로지 개개인의 의지에 의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키지요. 즉 인간들은 스스로 법을 세워 평화를 유지하고 자유를 정착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끼리 만날 대는 법은 온데간데 없고 야만적인 관계가 되고 맙니다."(p.105)  

"용서는 용서를 낳고, 평화는 평화를 낳는다. 복수를 거부하는 이에겐 망각이 피어난다. 그 망각은 우리의 사악함을 잠재운다. - 막스 루케트"(p.111) 

"서로 맞붙어 살아가느느 인간들에게 존재하는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칸트"(p.104) 

역사 속 전쟁이야기에 단순히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핍박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한다. 미친 전쟁은 이제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는 일은 이제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다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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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4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자호란 이야기였군요...
지난 주에 조선의 역사 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관한 부분을 공부했거든요.
꿈섬님 말씀처럼 지난 역사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도 있지만, 지금도 무수히 반복되는 저 역사들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어요. 아이들은 여전히 과거의 역사로만 공부하고 있지만, 이 아이들이 커서 바라보는 세상도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면 얼마나 마음 아플까요.
자신은 남한 산성에 숨고, 두 왕자들은 강화도에 보내는 동안,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싸웠던 사람들은 가난한 농민과 승려들과 의병들이었죠. 그들은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그랬던거예요. 그것이 인간의 역사며 인생의 일이라지만 도대체 생명보다 소중한 것, 그들의 전쟁 명분은 무엇일까요?

꿈꾸는섬 2011-08-24 22:49   좋아요 0 | URL
병자호란이 배경이에요.
무수히 반복되는 역사를 어찌해야할까요?
이런 저런 생각은 많았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 좀 어설프네요.ㅜㅜ

yamoo 2011-08-2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상업영화에 이러한 리뷰를 쓸 수가 있군요^^ 잘 봤어요~ 섬님^^

꿈꾸는섬 2011-08-26 15:41   좋아요 0 | URL
상업적이지 않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싶어요.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책을 읽었다. 이중섭의 소 그림이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는 그림에 사로잡혔다.  

 

  

  <돌아오지 않는 강>, 1954년 당시 인기를 끈 영화에서 그림들의 제목을 따왔단다. 

 

'돌아오지 않는 강'은 흔히 말하는 세월이 아니겠는가.
그가 원산을 떠나올때 건넜던 강을 다시 돌아가지 못했듯
우리는 이미 강을 건너가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문밖에 광주리를 이고 오는 여인이
그가 기다리는 여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그녀도 그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눈이 쌓이고 꽃이 휘날리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그녀는 오지 않고
그는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그의 얼굴은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 가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을까? 아니면 더 멀리 바다를 건너갔던 아내를 생각했던 것일까? 기다림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살림살이가 궁핍해지자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가셨다.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시면서부터 엄마가 언제 돌아오실까에 대한 생각으로 조바심을 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해가 저무는 것 같으면 엄마가 오실때가 조금이라도 지나면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불안으로 나를 자꾸만 두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림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엄마를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창턱에 기대어 앉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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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8-2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중섭과 기형도~~~~~ 그림과 시가 잘 어울리네요.
유년의 윗목처럼...

꿈꾸는섬 2011-08-24 22:51   좋아요 0 | URL
그림을 보다가 제 유년시절이 생각났어요. 제 유년시절을 생각나게 했던 시가 기형도의 <엄마걱정>이었구요. 그림 속 인물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그 생각에 자꾸 그림을 들여다보았네요.

아이리시스 2011-08-2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뭐예요, 저 육감적인 영화 포스터는. 시가 좋아요. 가을이 오려나 봐요. 저 뭐더라 백석 시인의 [여승]을 완전 좋아하거든요. 느낌이 비슷해요.

백 석 -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주제는 좀 다르지만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은 얘기라고 오랫동안 생각했거든요. 그림이 물컹거려요. 꿈섬님, 수요일이에요. 뭐하실 계획이세요?^^

꿈꾸는섬 2011-08-24 22:52   좋아요 0 | URL
백석의 <여승>도 참 좋지요.
수요일 오후에 논술 수업하고 왔어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 오늘 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걸까요? ^^
우리...... 무언가 이쁜 것을 기다려요, 아주 이쁜거~

꿈꾸는섬 2011-08-24 22:52   좋아요 0 | URL
아주 이쁜 것이 와주었다면 좋았을텐데......갑자기 우울한 밤이 되었어요.ㅜㅜ

노이에자이트 2011-08-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릴린 몬로와 로버트 미첨의 저 유명한 영화에서 제목을 땄군요.조용필 노래에도 돌아오지 않는 강이 있습니다만...

꿈꾸는섬 2011-08-24 22:53   좋아요 0 | URL
조용필 노래에도 <돌아오지 않는 강>이 있군요.
 
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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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만져 주었다 
나를 어루만지듯 
(p.91 그래도 괜찮아 중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때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아"하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때가 있다. 전셋돈은 무섭게 오르고 집을 보러 다니지만 썩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이때 말이다. 통장은 바닥을 드러내고 공과금 등 자동이체로 무섭게 나가는 것들을 막아보려고 이 은행 저 은행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벤치에 앉아 아픈 발을 내려다 보았다. 전세 구할 큰돈도 필요하고, 생활비에 쓸 자잘한 돈도 필요한데 남편이 받아야할 돈의 20%를 받지 못해서 갑자기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8월 15일즈음이면 나머지 20%도 넣어주겠다던 업체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나머지 돈을 입금하지 않고 있다. 매일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새벽이슬 맞으며 번 돈인데, 돈을 입금해야할 당사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언제쯤 입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만 한다. 결국 아이들 정기예금통장을 헐어서 생활비의 일부로 대체했다.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사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게 "그래도 괜찮아"하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 자신에게 아무리 '괜찮아'라고 되새겨도 그건 나의 자조일뿐이니 말이다. 

안오일 시인의 청소년 시집을 읽으며 위로를 받은 셈이다. 

미술 숙제가 아버지 발 그려오기다


술 마시고 곯아떨어진
아버지의 발을 그렸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을 자세히 봤다


새끼발가락 발톱이 깨진 거
굳은살 박인 발뒤꿈치
무좀으로 갈라진 발바닥
조금씩 휘어진 발가락들
지독한 고랑내


아버지가 숨 가쁘게 뛰어다녔을
세월이 느껴졌다
이 발로 지탱해야 했을 가족의 무게가
쿵! 느껴졌다
(p.11 아버지의 발 전문)

가끔 밤마다 남편은 발을 만져달라고 한다. 신혼때 보고 처음 본 듯 생경한 남편의 발을 보다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느낄때가 있다. 곱상한 듯 예쁘게 보였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굳은 살이 박인 뒤꿈치며 꾹꾹 눌러줘야 그제야 잠이 스르르 들어버리는 모습을 볼때면 그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숨 가쁘게 뛰어다니고 있을지가 보인다. 

책을 읽다가
쏙 들어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누군가 밑줄 그어 줄
내 마음도 있었을까?
(p.27 밑줄 전문)
 

누군가 내마음을 알아준다는 일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는가. 누군가 나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은 어디가서 자잘한 이야기로 밤새 수다를 하고 싶은 날이다. 이래 저래 마음이 뒤숭숭한 날이다. 해는 내리쬐고 땀은 줄줄 흘러 내리고, 어디로 가야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이 오전내내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시집 한권 손에 들었는데 그게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위로를 건넨다.  

"그래도 괜찮아" 

하고 말이다. 

그래, 정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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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을 꿈섬님께 시원한 차 한 잔 드리고 싶네요.. 나이가 들면서 다른 이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할 때가 더 많아요. 내 마음도 누군가 알아주었음 좋겠는데 말이죠...다 괜찮을거예요. 지나고 웃는 날이 올거예요^^

꿈꾸는섬 2011-08-23 01:57   좋아요 0 | URL
지나고 웃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제 맘을 알아주시는 현맘님^^ 시원한 차 한잔 마신 느낌이에요.^^

2011-08-22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3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08-2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그래도 괜찮아요. 1년 뒤에는 지금 힘들었던 일들을 그때는 그랬었지 회고하게 될 정도로 모든 일들이 잘 풀려져 있을 겁니다. 암요.

꿈꾸는섬 2011-08-23 01:59   좋아요 0 | URL
ㅎㅎ힘이 나네요. 괜찮아지겠죠.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을거에요.^^
화이팅!!!

2011-08-2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있는 저에게도 그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그래도 괜찮아."
꿈섬님도 저도 괜찮을 거예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하루일 거고요.^^

꿈꾸는섬 2011-08-23 01:59   좋아요 0 | URL
섬님께도 "그래도 괜찮아"가 필요하시군요.
섬님도 저도 모두 괜찮을겠죠.ㅎㅎ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기다려야겠어요.^^

후애(厚愛) 2011-08-23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괜찮아질거에요!!^^
그러니 힘 내세요!!

저도 요즘 누군가 제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럼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꿈꾸는섬 2011-08-23 16:40   좋아요 0 | URL
후애님 고마워요.^^
후애님도 고민이 많으시군요. 그래도 후애님은 옆지기님이 많이 이해해주시니 부러운걸요.^^

소나무집 2011-08-2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거예요. 벌서 서늘한 기운이 도네 겨절이 왔네요. 좀 기다리면 집문제도 잘 해결될 거예요. 저희도 기다리고 있어요. 때가 오길...ㅎㅎ

꿈꾸는섬 2011-08-23 16:41   좋아요 0 | URL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졌어요.
네, 기다려야죠. 집문제가 잘 해결되겠죠. 그저 마음이 조급해서 말이죠.ㅜㅜ

순오기 2011-08-24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괜찮아~~~~~~요."
한밤에 꿈섬님께 보내는 러브레터에요!^^

꿈꾸는섬 2011-08-24 22:53   좋아요 0 | URL
한밤의 러브레터를 이제야 보았네요.
순오기님 고마워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전세대란에 이사기간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번에 겹쳤네요... 하지만, 앞으로 좋아질거야 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진짜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꿈섬님,,, 뽀뽀 쪽~ 어제 문자 답글 못 했어요, 교육 듣는 중이었거든요.
새거 선물로 못 드리고 코알라 쓰던거 자꾸 보내드려서 조금 죄송해요, 그래도 쓸모있었으면 좋겠어요.

꿈꾸는섬 2011-08-24 22:54   좋아요 0 | URL
집 문제로 뒤숭숭해요.ㅜㅜ
좋은 일이 생기겠죠.
코알라가 쓰던 것이지만 너무 깨끗하고 좋던걸요. 코알라의 알록달록 양말을 현수가 너무 좋아라하며 신어 보았어요.ㅎㅎ
 
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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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보통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좋다고 평가한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요즘은 김애란의 <두근 두근 내인생>이 인기 폭발이라 얼른 읽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내 손길은 전석순의 <철수 사용 설명서>로 향했다. 

198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작가는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이 흔하지 않지만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면 그 믿음은 더욱 견고하다. 그리고 그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새로운 작가가 선보인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정말이지 롤러코스터를 탈때만큼의 흥분과 신남 그리고 즐거움이 함께하는 일인 것 같다. 

특이한 제목 <철수 사용 설명서>,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철수 사용 설명서'이다.  

 

스물 아홉 청년 철수의 인생이 어느 날 돌이켜보니 불량인 것도 같고 고장난 것도 같아 쓰기 시작한 사용 설명서. 철수에 대한 Q&A, A/S까지 마련되어 있다. 취업모드, 학습모드, 연애모드, 가족모드의 사용하기와 관리하기의 설치방법, 전원공급, 청소방법 등 상세하다. 거기에 덧붙여 주의 사항까지 꼼꼼하게 만들어진 사용 설명서라고 하겠다. 

일종의 스물 아홉 청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제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는 아직도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고, 변변한 애인도 없다. 연인관계로 발전하려고해도 긴장하면 나나타는 손등의 오선지와 열때문에 모든 것이 쉽지가 않다. 주변의 또래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모두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불량은 아닐까? 고장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즐겁고 신나고 재미나게 이 책을 읽긴 했지만 씁쓸하고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 돈을 주고 산 가전제품에 비유되고 있으니 말이다. 냉장고에게 빨래를 하라고 시킬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의 적나라함이라고 해야겠다. 인간을 사물화하여 상세한 사용설명서를 붙인다는 사실만큼 슬픈 현실을 대표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가 말이다.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떠나서 제품의 고장이나 불량으로 인간을 취급하게 만든 지금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것들을 모두 다 똑같이 잘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하기를 강요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철수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한다. 또 사용중 불편한 사항을 고객센터로 연락바란다고 한다. 

   
 

   다리미를 아무리 수리해 봐야 음악은 들을 수 없고, 라디오도 빨래를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오디오와 세탁기를 사는 편이 모두에게 훨씬 낫다. 철수는 엄마에게 나 말고 누나에게 기대를 하든지, 아니면 공부 기능을 갖춘 아이를 새로 낯아 보는 게 어떠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철수는 엄마에게 제품 보증기간이 훨씬 지나서 환불도, 반품도 할 수 없는 물건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떄도 그 정도의 상활 감지 센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으니까.(p.53)

 
   

다리미로 음악을 듣고 라디오로도 빨래를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다리미는 옷을 다려야하는 것이고 빨래는 세탁기로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대체 인간을 한가지만 수행할 수 있는 전자제품 취급을 하다니 이럴 순 없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인간이라고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ㅡ어젯밤 지켜 줘서 고마워.
  오류가 아니라 기능을 만들어 준 건가. 철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그녀의 문자를 보며 의미를 곱씹고 있는데, 그새 문자 한 통이 또 들어왔다.
  ㅡ나 말고 평생 지켜 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나.
별점은 계속 깎여 나가고 있었다.(p.122~123)

 
   

철수의 별점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매겨진다. 그가 유용하게 쓰였는가 아닌가에 의해 그의 기능이 최상일 수도 최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싶은 일은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p.221)  
   

 철수는 안다.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형식의 기발한 소설은 정말이지 매력 그 자체이다. 앞으로 전석순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새로 나오게 된다면 기대하며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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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8-2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김미월의 '서울동굴 가이드'랑도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오홀~님의 리뷰를 엿보니 재밌겠는걸요~!

꿈꾸는섬 2011-08-22 16:16   좋아요 0 | URL
언니는 모르는 작가와 작품이 없는 듯...전 처음 들어봤어요. 언니가 비슷한 느낌이라니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네요. 언젠가 기억해두었다가 찾아봐야겠어요.^^

책은 정말 재밌어요.^^

라로 2011-08-2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이름이 무척 어렵네요,,ㅎㅎㅎ
하지만 책은 정말 재밌을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1-08-23 02:02   좋아요 0 | URL
제게도 생소한 작가에요.
하지만 작품은 정말 재밌어요.^^

나비님의 대문사진이 눈에 확 들어와요.^^ 너무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