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번주 수요일에 친정엄마와 작은언니와 함께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오전 시간에 맞는 영화를 찾다가 <위험한 상견례>를 보았다. 아무래도 외화는 엄마가 너무 부담스러우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요새 우리나라 영화가 워낙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기에 실망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한참을 웃으며 영화를 보았다. 순간순간 어찌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눈물이 주르르 흐르냔 말이다.
"전라도가 뭘 어쨌다고 그래?" 라고 얘기했던가 정확한 대사는 잘 모르겠다. 전라도 남자가 경상도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여자의 집에 찾아 온다. 아버지는 전라도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군대에서 발음이 안된다고 얻어 맞은 일이며, 고교 야구 선수 시절 전라도 선수와 맞붙어 경기하다 눈에 공을 맞고 시력을 잃게 된 일 등을 이야기하며 전라도 사람만 아니라면 결혼해도 좋다고 한다. 결국 남자는 서울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고모에게 들킨다. 교양미 넘치는 엄마는 서울 출신이라고 했지만 사실 엄마도 전라도 벌교 출신이었던 것, 그동안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속된 말로 까발리며 남편에게 소리쳤다. "전라도가 뭘 어쨌다고...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전라도라 애를 못 키워 음식을 못해."하고 말이다.
어릴때부터 '전라도'에 대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전라도 깽깽이라는 말을 쓴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어감은 좋지 않다. 전라도 사람들이 빨갱이라 폭동을 일으켰다는 얘기도 기억이 난다. 전라도 사람들 욕심 많고 억척스럽고 이기적이라는 소리도 들어봤다. 무엇에 근거한 말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전라도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는 돌아가신 둘째 형부, 형부가 언니와 결혼하면서 집안이 얼마나 많이 화기애애해졌는지 모른다. 평소 무뚝뚝하고 대화가 부족했던 집안이 생기가 돌았었다. 또 같이 일했었던 언니도 전라도 출신이었는데 일을 참 잘했다. 야무지고 똑똑하고 배울 게 많은 언니였다. 또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도 전라도 출신이 많다. 또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순오기님 전라도 광주에 살고 계신다. 일명 에너지여사가 아닌가.
<위험한 상견례>를 보면서 결혼하려고 준비하던 때도 잠깐 생각났다. 모든게 어설프고 서툴렀던 그때가 그리웠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 결혼에 반대하신 적이 없다. 둘째언니가 먼저 결혼하겠다고 했을때도 첫째언니가 형부를 데리고 왔을때도 내가 남편을 데리고 갔을때도 또 큰오빠가 새언니를 데리고 왔을때도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부족한 자식들 잘 부탁한다고 하셨고, 고맙다고 하셨다.
아빠는 내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셨단다. 입 밖에 내지는 않으셨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도 있었던가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막내 사위를 참 좋아하신다. 가끔 맛난 것도 사드리고 말 벗도 해드리고, 이런 저런 근황을 묻는 것도 남편이 잘 한다. 물론 가끔 돈 문제로 고생시키는 걸 아시면 그럴 줄 알았다고 혀를 차신단다. 이것도 나름 아빠의 딸에 대한 사랑이란 생각을 한다. 직접대고 반대는 안했지만 걱정은 많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자식을 믿어주신 것 같아 나름 감사하다.
가끔 결혼이란 '동상이몽' 같단 생각을 한다. 남편과 아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당신 참 많이 변했어."라고 하면 "그러는 너는 안 변한줄 아냐?" 하고 되받아친다. 우리는 서로 너무도 다르게 변해간다. 때론 아무 것도 아닌 듯 접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매일 새벽같이 나가는 남편이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잠깐 들어와서 씻고 바로 나갔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어제 들어왔다. 주말에 약속을 잡는 것 같았는데 오늘 갑자기 저녁 먹자고 연락이 왔다며 나갔다. 워낙 친한 친구라 그 친구의 부름에는 언제나 응해주는 편이다. 언제나 마음 먹으면 볼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 친구도 얼마나 친구들이 그리웠겠는가 생각하면 차마 잔소리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12시를 넘기진 않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총각때처럼 신나게 놀고 싶어하는 남편에게 가끔, 나도 그렇게 놀고 싶다고. 나도 밤새 술 마실 수 있고, 노래방가서 스트레스 풀고 싶고, 무도회장가서 춤도 추고 싶다고. 하고 싸운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나갔다 오라고 하면 갈 곳이 그리 많지가 않다. 아줌마들은 보통 오전 시간에 만나 차 마시거나 밥 먹으며 수다 떨고 아이들을 위해 일찍 귀가한다. 그러니 막상 갈 곳이 없다.
난 요새 너무 한가하게 잘 놀면서 지내고 있다.
알라딘 8기 마지막 신간평가단에서 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읽고 있다. 워낙 방대한 지식이라 쉽사리 넘어가진 않는다. 그의 기발하면서 탁월한 설명에 감탄하며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같다.
침대 옆 탁상에 이 책이 놓여 있다.
요즘은 책만 읽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가며 스텝을 밟으며 스포츠댄스를 배운다. '차차차'를 배우고 있다. 처음엔 스텝이 엉망진창이었는데 요샌 제법 잘 한다 소리를 듣는다. 정말 재밌다. 온 몸이 뻐근했었는데 적응이 된 듯 몸이 아프지 않다.
또 궁중요리를 배운다. 앞으로 7개의 요리가 남았다.
그리고 요새 가끔 피부관리실에 간다. 꾸미는 것에 큰 관심이 없던 내가 피부관리실에 가서 한시간 반동안 누워 피부관리를 받는다.
봄 맞이 할인혜택에 눈이 어두워진 것도 사실이다. 거의 반값 할인한다는 포스터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도 여자구나. 난 참 사치스러운 사람이구나. 생각했다.남편이 가끔 난 참 사치스러운 사람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난 아낄 줄도 아는 사람이다. 뒷 베란다 한 가득 빈병을 모아 마트에 가져가 공병환불을 받아오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버린 것 까지 주울줄은 모르지만 내가 마신 병들은 하나 둘 모았다가 마트에 되가져가 환불을 받는다. OK캐쉬백을 있으면 그것도 꼭 오려 붙인다. 하나 둘 모아서 포인트를 적립해둔다. 쌀 씻은 물은 고스란히 버리는게 아까워 옆에 큰 그릇을 두고 받아서 다시 쓰는 나같은 사람이 정말 사치스러운건가?
하지만 난 가끔 허영덩어리 같단 생각을 한다. 비싼 백을 사고 싶어하고, 예쁜 옷을 사고 싶어하니 말이다. 게다가 좋은 구두를 신고 싶어하고 좋은 안경을 쓰고 싶어한다. 그러니 난 사치스러운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언젠가는 내가 남편에게 그랬단다. "돈 좀 많이 벌어와. 펑펑 써도 아깝단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말이다.
내 기억 속엔 없는 말인데 했을 것도 같다. 갖고 싶은 것이 많고 아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 아줌마에겐 돈이 정말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할때 늘 아껴가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너무 아껴가며 사는 것도 바보같단 생각을 했다. 그냥 어떤 일을 했을때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겠다고 다시 생각했다. 뭐든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해보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뿐인데 가슴 졸이고 속 썩으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흥청망청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 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으로 모든 시도하는 중이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그 시간들이 자꾸만 아깝단 생각이 들다보니 그 전의 나와 또 다르게 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집 피우고,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즐겁게 살고 싶다.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