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긴다.
첫 귀성길에 오른 우리는 잔뜩 긴장했지만 내려갈땐 그나마 밀리지 않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 귀경길이 장나 아니었다. 어찌나 길이 밀리던지 현수는 간혹 구토를 했다. 현수 토하는 모습에 현준이도 나도 얼굴을 찡그렸는데 우리 둘다 비위가 약하다. 그나마 현수 하나로 그쳐 다행이었다.
명절이라 내려가긴 했지만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우리는 간단한 먹을거리만 준비하였다. 역시 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먹고 치우는 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틈틈이 <한중록>을 읽을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추석 전날엔 해가 쨍쨍하고 엄청 더웠는데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추석 당일엔 비가 내려 성묘하기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산소에 다녀오고, 아이들도 가겠다고 따라 나서 모두 데리고 다녀왔다. 추석 당일 귀경하는 차량이 많아 6시간이상을 길에서 보냈다. 거의 2배이상 걸린 셈이다.
시부모님을 만나서 웃고 즐기기 위해서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안된다. 깊은 이야기 속에는늘 돈문제가 있고, 돈문제는 늘 관계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결혼전 하도 호탕하셔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줄 알았지만 결국 모든게 빚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결혼을 하고나서였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모님들은 자식들 카드로 빚을 만들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식들의 몫이 되었다. 아가씨네는 그 돈을 다달이 받아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우린 그렇게까지 하진 못했다.
올초에는 땅을 사서 집을 짓겠다고 돈을 해달라고 하셔서 남편이 가지고 있던 덤프트럭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 드렸다. 우선 땅을 살 돈만 드렸었는데 나머지 돈도 빨리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셔서 얼른 마련해 드린 것이다. 그런데 아직 집은 짓지 않았다. 봄에 짓겠다던 집을 가을에서야 짓게 될 것 같다고 하셨고, 알아서 하실거라고 믿고만 있었다. 설마 집을 짓겠다고 남겨두었던 돈을 쓰실 거라고는 생가도 못했다. 집을 짓으려던 돈의 일부를 허물어 쓰셨단다. 이 얘기는 오늘 낮에 아가씨네가 우리집에 와서 알게 된 일이다.
남편이랑 아버님이 개집을 옮겨야한다며 밖으로 나갔었다. 그때 아버님이 남편에게 얼마의 돈을 더 해달라고 하셨단다. 올초에 시부모님 집 지을 돈 해드리며 더이상 시부모님께 생활비 외의 큰돈은 더이상 해드릴 수 없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남편은 내게 그 말은 하지 못했고, 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들 고모부의 입을 통해 돈을 헐어 쓰시고 돈이 부족하단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제서야 남편은 돈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며 얘기를 한다.
어른들에 대해 불경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긴 격이 되었다. 돈에 대한 관리를 잘 하지 못하시는 분들께 큰 돈을 덥석 들였으니 그중 얼마를 써도 될 거란 생각을 어찌하지 못하겠는가 말이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분들의 삶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언제까지 자식 등골을 빼먹고 사실 작정인지 모르겠단 말이다.
아가씨네는 와서 한단 말이 노인네들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는 것이다. 얼마 안되는 돈, 해드렸으면 좋겠단다. 정말 남의 말하듯, 그럴 순 없단 생각을 한다. 하지만 화를 내지도 못했다.
사시는 동안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안락하게 살아가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낳은 아들이라지만 이제는 엄연히 한 가정을 책임져야할 가장이다. 아이들이 저절로 자라진 않는다. 아이들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고, 들어가야 할 돈이 많다. 내가 정말 서운한건, 친정부모님들은 내가 아끼고 또 아껴쓰는 걸 안타까워 하신다. 이번 명절에도 얼마 안되는 돈봉투 부끄럽게 내밀었는데 오히려 안받으시겠다고 아이들 옷이라도 한벌 더 사주라고 하신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그런 게 없다. 오히려 우리가 외식 한번 안하면 된단다.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심지어 얼마 보내라고 금액을 정해서 말하신다. 정서적인 차이일지모르지만 난 그런 말들이 상처가 된다. 당신들 구질구질하게 사시는 건 싫은데 자식들은 구질구질하게 살게 만드신다.
여유롭고 풍요로운 행복한 추석의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달려들어 안고 까불고 하는 그런 즐거움 속에서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정리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늘 우리들의 삶, 앞으로의 계획, 이런 것들엔 관심이 없으신 것 같단 생각에 화가 난다. 우리에게도 미래에 대한 밝은 설계가 필요한데,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없게 만드신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기꺼이 얼마의 돈을 마련해서 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얘기는 이미 올봄에 나왔고, 나는 앞으로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로 돈을 마련해야하는 일이 자꾸만 생겨날 것 같단 생각에 우울하다. 마냥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조, 사도세자, 정조, 혜경궁 홍씨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역시 아이들 키우는 아줌마라, 영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태도를 많이 생각했다. 사도세자가 왜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을까? 아버지 영조의 과도한 엄격함이 그를 망쳤단 생각이 든다. 자신의 기질과 다른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 매일 다그치고, 나무라고, 어떤 일의 탓을 아들에게 돌리고,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그 곁을 지키는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은 그렇게 예뻐하는 시아버지가 어찌하여 남편에게는 그렇게 가혹하게만 대하였을까.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 그들의 관계는 과연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혜경궁 홍씨의 유려한 문체에 매혹되었다. 담담한 듯하지만 내면의 타오르는 불길이 느껴지는 문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