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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ㅣ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판결과 정의』, 김영란 지음, 창비, 2019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쓴 <판결과 정의>는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라는 부제처럼 최근의 대법원 판결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사법부,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쟁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총 9가지의 이야기로 1~3장은
가부장적 사유를 포함한 다양한 조직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계층적 사유의 유래와 그 문제점, 그리고 판사들은
계층적 사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다루고 있으며, 4~5장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판사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6~9장은 정치 판사들 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에서 남녀 차별의 문제를 이원론적 위계의 문제가 아닌 단지 계층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오히려 문제 해결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한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문제가 법적
다툼이 되었을 때 법은 기본적으로 법의 틀안에서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통념적으로 이원론적 계층화를 긍정하면 법질서도 이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부장 질서의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생물학적 성이
다른 생물학적 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계질서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보면 가부장제 또한
위계질서가 구현된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19쪽)
가부장 질서를 일반적인 계층화의 문제로 보지 않고
남녀 사이의 계층화 문제로만 치환해서, 생각하여,
양성평등을 실현하면 가부장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길을 막아버리는 일이다.(20쪽)
법은 원칙적으로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원론에 토대를 둔 계층화를 긍정하는 한
법질서도 이원론에 의한 계층화 질서를 지키려는 이념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21쪽)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생각에는 개인주의가,
그에 따른 시장거래에서는 형식적 평등이 깊게 관련되어 있으나,
가족이라는 사상에서는 애타주의와 상하관계가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23쪽)
‘가족적’인 분위기와 질서를 내세우는 많은 집단들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의 폭력이 여전히 문제시되지 않고 남아 있다.
농경사회 이후로 폭력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고
가부장 질서도 약화되고 있으나
‘가족적’인 질서는 가장 느린 속도로 변하여온 탓이다.(23쪽)
역사적으로 인종, 신분, 종교 등 거대 범주에서의 계층화는
대부분 이론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귀결되어가고 있다.
이는 효율성이라는 견고한 가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저항하면서,
또는 이원론이라는 손쉬운 분류법에 대항하면서 인류가 얻어낸 것이다.(32쪽)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우리사회 전체의 평균적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평균적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우리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평균적인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 판단했어야 옳았다는 것이다.(43쪽)
보편성을 기본적인 원리로 하는 법의 해석에서도
그 보편성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개별적 인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감수성은 늘 필요하다.
누스바움 식으로 말하자면 ‘비대칭성에 대한 감수성’이다.(48쪽)
그리고 법이 사적 자치와 사적 계약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들여다보게 해준다. 가족, 중종, 정당, 노조 등 사적 조직에서 사적 자치를 얼마만큼 허용하고 있는지, 가습기살균제
사건, 통상임금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을 통해 사적 계약이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종중은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는 공적 단체가 아닌 사적 단체이다.
그러나 사적 단체의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 헌법 원칙에 비추어볼 때
‘현저하게 불공정하거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에는 제한된다.(55쪽)
정당에서 더 나아가 우리 일상에 널린 이런저런 공적, 사적 조직들의 내부를
헌법 원칙에 입각하여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고는
정치를 포함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에로의 지향은 요원할 뿐이다.
로버트 달은(…) “다원적 시민사회의 국가이든, 그 하부단위이든,
혹은 독립된 결사체이든, 어떠한 통치조직도 그것의 비민주적 측면에 대하여
도전받지 않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76~77쪽)
근대의 정치이론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별한 것은
결과적으로 시민사회 영역이든 가정 영역이든 구분 없이
모든 사적 영역에 대한 공적 개입을 어렵게 했다.
그중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계층적 상하관계가 약화되고
계약자유, 자유방임, 자기책임 등의 원칙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는 결과가 되었고,
법은 계약자유의 원칙 뒤에서 이를 덮어주는 기능을 여전히 해오고 있다.(111쪽)
사적
계약을 판단함에 있어 법관들이 기계적 균형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법은기본적으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강자는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문제들은 보통 힘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힘의 불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과 상대방이라는 기계적 균형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법이 약자를 차별하고 강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일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일방과 상대방으로 동등한 상태에서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가진 힘이 더 크기 때문에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에는 사용자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는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없기에 노동자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관계라고 치환하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를
내밀어도 개인의 의사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되고 만다.
통상임금 판결의 다수의견이 사용자 측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특별한 사정을 예외로 들고 있는 것과,
단순 파업이 업무방해죄가 된다는 판결의 다수의견이
사용자의 사업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를
업무방해죄가 적용되는 조건으로 들고 있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을 계약주의의 관점에서 대등한 지위에 놓는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근로기준법이나 노노법을 최대한 친기업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판결들이다.(101쪽)
노동3권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의
많은 부분을
강행규정으로 정한 우리 법제도하에서도
근로자 측의 노동관련법상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강행규정인 임금관련 규정을 임금협상에서 수정해버릴 수도 있는가 하면
아무런 적극적인 행위를 않는 채무불이행의 형태인
단순 파업조차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위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105~106쪽)
<판결과 정의>는
과거사를 청산하거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짚어보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 정치적 영역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법부가 친일법관에
대한 청산도 없었고,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정치에 굴복한 역사도 있는데,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 없이 단지 재심절차를 통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
과거사 청산을 위해 국회가 내린 입법적 결단과 무관하게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들은
과거사 정리의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법권의 독립’과 ‘법적안정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선에서 내려졌기 때문일까.(150쪽)
사법부 치욕의 역사는 먼 과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사법농단 사태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사회에서 사법부 스스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내려놓고 정치판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삼권분립에 의해 보장받는 사법부의 권한은 무소불위의 권한이 아니다. 삼권이
감시와 견제를 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또한 사법부는 선출된 권력도 아니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힘을
가져서도 안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주권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의 정치화’란 판관이 법을 해석하는 형태로 법을 형성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법관이 정치체제의 일부를 이룬다는 인식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뜨거운 쟁점이 되는 판결에 대해
정치계, 경제계 등 외부의 힘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회 대다수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174쪽)
삼성엑스파일 사건 판결의 다수의견이 정당행위의 해석을
종래의 해석보다 훨씬 더 좁혀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정치적 성향에 따른 선택인데도
그 결론에 대한 책임은 고 노회찬 의원만이 지게 되었다.
2013년 2월 14일 판결확정으로 국회의원
직을 상실하게 된 노회찬 의원은
2016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다시 국회로 돌아왔으나 국회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 받았던 정치자금이 문제되어
유명을 달리했고, 정치자금법 개정 문제를 다시 우리사회의 화두로 떠올렸다.
만일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달리 나왔더라면
노회찬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사회에 그만이 지닌 새로운 시각을 더 활발하게 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202쪽)
법은 상식이라 했다. 그런데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판결들을 보면서, 나의 상식이 부족함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인지, 법이
상식을 깼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간의 ‘법은 만명에게 평등하다’는 고 노회찬 의원의 일성을 깊이 새기고 다시금 법이 상식으로 돌아와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함을 보여줬으면 하는 것이 주권자로서의 바람이다.
판사들, 나아가 법률가들이 법규주의의
왕국에서 나와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법의 지배를 사유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