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마흔, 버려야 할 것과 시작해야 할 것 - 공허함을 성장으로 바꾸는 심리학 수업
정교영 지음 / 포르체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 마흔, 버려야 할 것과 시작해야 할 것, 정교영 지음, 포르체, 2019


삶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단 한번의 단절도 없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1년 단위로 세어지는 나이는 시기를 단절하며 새롭게 의미부여가 되기도 한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예순 살 등등 십년 단위로 구분해보면 각각이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요즘 같은 저성장의 뉴노멀 시대에는 어느 세대든 힘들지 않은 세대는 없을 것이다. 청년층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학자금 대출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고, 장년층 남성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빨리진 은퇴시기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여성은 육아의 늪에 빠져 경력단절로 진정한 를 찾을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노년층이라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은퇴 후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다시금 일을 해야만 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저마다 자신이 속한 세대가 가장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속한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 중에서는 40대 여성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결혼 후 육아로 온전한 를 잊고 살다가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엄마로서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줄어든 빈자리 만큼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다시 를 찾고자 해도 이미 늦은 것 같은 불안감도 있으리라.


상담을 오는 마흔 여성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다.
결혼하고 이제껏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문득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마주하면 어느새 내 청춘은 갔고,
이제 내리막길인가 싶은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갑자기 마주한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청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늙었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애매한 내 모습 말이다.
다 쏟아내어 소진되고, 이젠 껍데기만 남아버린 것 같아 헛헛하다.
젊음, 자유, 성취, 개성 등 를 표현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마음이 푹 가라앉기도 한다.(117~118)


저자 정교영은 상담심리사로써 그간 상담을 하며 만난 마흔 여성들이 겪은 심리적인 변화들과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마흔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희망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용기를 주고자 <여자 마흔, 버려야 할 것과 시작해야 할 것>을 썼다고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마흔 여자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먼저 마음속 편견인 성 고정관념이라는 잡초를 뽑으라고 한다. 성고정관념은 단순히 성에 따라 기대되는 성 역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 생각, 태도, 감정, 욕구와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주는데,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라고 최면을 걸게 된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성차별 문제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분노하면서도,
정작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성 고정관념의 영향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0)


성 고정관념은 단순히 성에 따라 기대되는 성 역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 생각, 태도, 행동, 감정, 욕구와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준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축소 혹은 제한하도록 이끈다.(20)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가 만들어낸 성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둔다.
내 마음속에서 외쳐 대는 꿈을 꿀 자유’,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무시한 채,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말라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서 살라고,
현실에 만족하라고 최면을 건다.(21)


저자는 이러한 잡초는 수시로 뽑아내고, 열망의 씨앗을 심으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내 마음의 정원사다.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잡초 같은 관념들은 뽑아버리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내가 원해서 심은 것이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보고자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무성하게 자라
내 꿈과 열망의 씨앗들을 죽이게 된다.(23)


또한 무료한 일상을 탓하지 말고 어제와 다르게 오늘을 설계변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도 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 며느리, 아내 등 주어진 역할을 일이나 과제 하듯이 하는 일이나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일들도 버리라고 한다.


어제와 1%라도 다르게 오늘 단 하루만을 위한 설계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과 꿈을 이루어 줄 큰 설계도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하루치의 작은 설계도 한 장이 더 중요하다.(35)


애초에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관계의 정리를 하지 않는 건 언젠가 다시 입을지도 모른다며
입지도 않는 옷을 몇 년 이상 묵혀두고 있는 것과 같다.(41)


그래야만 하는 것, 그랬던 것, 앞으로 그렇게 될 것 대신에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자유.
느끼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 대신에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할 수 있는 자유.
느껴야만 하는 것을 느끼는 대신에
지금 느껴지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유.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허락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에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안전함만을 선택하는 대신에
자기를 위해서 모험을 할 수 있는 자유.
-
버지니아 사티어 <사티어 모델>(46~47)


이러한 성 고정관념과 주어진 역할을 버리고 의 삶을 살기 위한 첫 걸음으로 엄마’, ‘아내로써의 익숨함을 깨는 용기를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의 를 위해 과거 그리고 미래와 아름답게 이별하고 나이를 탓하며 체념하는 자세도 버리고 인생의 속도를 늦추라고 한다.


엄마아내라는 수식을 깨고 의 삶을 살겠노라고,
마흔에 제2의 인생을 마주하겠노라는 것은
익숙함의 품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일을 탐색하는 용기를 낸다는 말이기 때문이다.(59)


마흔의 누군가는 언젠가 꼭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굳게 마음먹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자리는 없을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하다.
아이들을 키우기로 결심한 자신을 위로하고 싶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썩히고만 있는 생각에
자괴감이 빠져든다.
사회가 경력 단절 여성을 환영해주고 지지해주는 환경도 아니니,
설사 우연히 다시 시작할 기회가 온다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고,
자신감이 바닥을 쳐서 들어온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기도 한다.(65)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내주었던 나의 세월,
나를 제쳐두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바빴던 나날들이 보인다.(
)
흘려보낸 세월이 아까운 마음, 열심히 살긴 살았는데 남은 게 없고
허탈한 심정이 든다면 당신에게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69)


배움의 행위는 나이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에 나이를 운운하는 것은
초코릿을 먹는 행위에
초콜릿은 어린 아이나 먹는 거지라는 편견을 부여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95)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
에디 캔터(98)


그럼, 이제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나이 마흔이면 평균 수명 80에서 딱 절반이 되는 시기이다. 인생을 하루로 압축하면 마흔은 정오가 지나는 시간이 된다. 그러니 오전의 낡은 습관은 버리고 새로운 오후를 맞이하라고 한다. 새로운 꿈을 꾸며 재능을 갖춘 마흔이 되라고 한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바로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
레이첼 오마라(100)


인생을 청강하지 마라. 지금 당장 앞으로 나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자
촛불을 켜고, 좋은 침대시트를 쓰고, 근사한 속옷을 입자
그런 것들을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지 마라.
오늘이 바로 가장 특별한 날이다.”
- 90
세 칼럼리스트 레지나 브렛(103)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칼 구스타프 융(114)


여자 마흔, 우리는 이제 겨우 삶의 오전을 살았고
우리에게는 남은 절반의 생이 있다.
우리의 오래된 신념과 가치관,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던 낡은 습관들을 포함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인생의 오후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아야 한다.(115)


칼 융은 마흔의 위기를 일종의 자기 치유 과정이라고 보았다.
마흔의 위기감을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115)



신은 당신 안에 꿈을 심어 놓으셨다.
꿈은 당신의 것이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꿈을 통해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꿈은 당신의 잠재력을 잡고 있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꿈을 낳을 수 있으며
오직 당신만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
-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160)


저자는 <여자 마흔, 버려야 할 것과 시작해야 할 것>에서 꿈을 찾고 이루는 4단계를 제시한다. 모든 단계는 서로 독립적이기보다는 연결되어 있으나, 반드시 순차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1단계, 탐색자가 되어라.

2단계. 동기화하라.

3단계. 걸림돌을 제거하라

4단계. 꾸준히 가라

1단계는 꿈을 찾는 단계로 꿈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자가 질문법을 통해 새롭게 꿈을 탐색하고, 이왕이면 무기가 될 수 있는 내 안의 강점을 찾으라고 한다.


꿈을 찾는다는 것은()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옂여도 정말 해보고 싶은 것,
아직은 해보지 않아서 잘하지 못하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고 배워서라도 잘해보고 싶은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167)


스스로 던져 볼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자기 탐색의 전문가가 되어보자.
이것이 멀리 여행을 가거나 삶의 변화를 일으킬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삶과 반복되는 경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175)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점만 찾아 고치려는 습관을 버리고,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외면함으로써 내 안에서 녹슬고 있는 강점을 찾아보자.(177)


2단계는 마음속에 담은 꿈을 가시화하기 위한 동기화 단계로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꿈이 이루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록하거나 꿈을 연상시킬만한 이미지나 사진을 자주 보고, 자신만의 인생 설계도를 작성하라고 한다.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꿈의 모습을 연상시킬만한 이미지나 사진을 찾아
눈에 띄는 곳에 붙여놓고 자주 들여다볼 수도 있다.(188)


유지동기를 높일 수 있는 로드맵 중심적 상상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을 말한다.(189)


로드맵 작성 요령
1.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나 목표를 목적지로 현재의 출발점과 연결한 선을 그린다.
2.
출발지와 목적지에 목표 달성 일자와 나이 등 현실적이고 명확한 데드라인을 적는다.
3.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목표들도 달성 날짜와 나이를 적는다.
4.
목표 달성 방법 및 장애요소와 그에 대한 대비책도 적는다.
5.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어떻게 도움을 얻을지 적는다.
6.
필요한 기술이나 자원 및 내가 배우거나 개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적는다.
7.
세부적인 일정표를 작성해 지금부터 하나씩 실천한다.(193~194)


3단계는 실행하는데 있어 걸림돌을 제거하는 단계로써 나이 듦을 핑계대지 말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천하라고 한다.


마흔의 우리가 꿈을 마주할 때 언급하는 핑곗거리 중
가장 흔한 것은 바로 나이 듦이다.
나이가 들어서 사회가 성숙함을 바라는 지점에 이르러,
어린 애처럼 꿈꾸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흔에 삶을 다른 자세로 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남들 다 하는 그저 그런 나이 듦이 아닌
진취적이고 주체적으로 늙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200)


계단 전체를 한눈에 담을 필요는 없다.
그저 먼저 첫 칸부터 올라서라
-
마틴 루터 킹 주니어(203)


마지막 4단계는 꾸준히 실행하는 단계로 용기를 갖고 끝까지 버티라고 한다.

흔한 말로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버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205)


버티는 것도 용기다.
오로지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삶을 위해
사방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에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고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떠올려보자.
용기 내어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응원의 박수와 함께
지금까지 잘 해왔어,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자신을 격려해주어라(208)


끝으로 저자는 죽기 전에 안 해봤다고 후회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고, 끊임 없이 성장을 위해 자극하고, 온전한 로 서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듯,
세상도 반드시 내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는 없다.”
-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 프리츠 펄스(216)


인생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초보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초보, 마흔이 넘었지만 사랑을 처음 하는 초보,
세상에 먼저 태어났지만 여전히 인생이 어려운 초보,
칠팔십이 넘었어도 죽음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초보.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것들은 모두 다 처음이다.(226)


사람들은 내게 늘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을 때죠.”
- 76
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인생애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저자 모리스 할머니(227)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상의 스트레스들,
즉 적절한 자극은 오히려 우리를 도전하게 하고 성장시킨다.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겠다는 말과 같다.
약간의 결핍과 불편함이 우리에게 개선의 여지를 만들어낸다.(233)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젊게 사는 비결이다.
나를 둘러싼 주변 세상과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지듯이,
자신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하고 탐구하기 바란다.(243)


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지금
시간의 흐름은 이토록 빠르니
오늘 붉게 피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장미도
내일에느느 시들어지리니
 - <
죽은 시인의 사회>(248)


시간이 있을 때 장미를 따라.
지금 딸 수 있는 장미가 무엇일지 생각하라.
지금 아니면 시들어 버릴 장미,
내가 보지 못한 내 안의 장미를 따라.(252)


나는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라는 거대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마흔의 당신이 궁금하다.
당신 이름의 석 자, 당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이미지,
당신의 소중한 꿈과 열망 말이다. 당신도 궁금하지 않은가?
그 궁금증 하나만으로 우리는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258~259)


저자는 <여자 마흔, 버려야 할 것과 시작해야 할 것>에서 마흔 여성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세대라면 어느 누구라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은 어느 특정 세대가 독점하는 것도 아니며, ‘을 꾸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을 꾸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니, ‘을 꾼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남아 있는 인생에서 오늘이 인생의 첫날이라는 센트럴파크의 벤치에 새겨진 낙서가 인상적이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센트럴파크의 어느 벤치에 누군가 새겨놓은 낙서다.
당신은 오늘을 특별하다고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라고 가볍게 넘길 자유도 있다.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다.
오늘부터 그날에 걸맞은 제목을 지어 보자.(1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지식너머, 2019


익숙한 것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의문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 요리 등 이국 음식의 복잡한 요리법을 보면 왜 저렇게 요리를 하지?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데, 한식의 요리법이나 유래 등은 그 이름의 친숙함 혹은 익숙함으로 ?”라는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익숙함과 친숙함이 잘 알고 있다는 착시효과를 만들어 더더욱 의문을 갖지 않도록 작용한 것 같다.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통해서 나의 익숙함은 무지였음을 깨달았다. 물 속의 물고기가 물을 느끼지 못하고, 우리가 매 순간 공기를 마시고 있으나, 매 순간 공기를 존재를 느끼지 못하듯, 한식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 황교익은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통해 이러한 익숙함에 머물지 말고 한국음식에 드리워진 판타지를 깨기 위한 질문을 쉼 없이던지라고 주문한다.


이 책은 한국인이 한국음식에 붙여둔 판타지를 읽어내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쉼 없이 ?”라는 질문을 던져주길 바란다.
일종의 한국음식 판타지 놀이를 한바탕 즐기자는 제안이다.(저자 저문)


떡볶이부터 놀라웠다. 요리는 보통 그 이름에서 재료와 조리법을 유추할 수 있다. 내 머리 속에 각인된 떡볶이와 그 이름이 서로 맞지 않음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학교앞 포장마차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먹는 음식이면서도 정작 그 이름과 조리법이 전혀 맞지 않음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한국인이 먹는 떡볶이는, 그 조리법으로 보자면, 떡볶이가 아니다.
떡을 고추장에 조리거나 냄비에 만두, 어묵 양배추, 당면 등을 함께 넣고 끓인다.
떡조림 또는 떡탕이다.(13)


애초 떡볶이는 가래떡에 여러 채소와 고기를 넣고 간장의 양념으로 볶는 음식이었다.
설날 상차림에 오르는 음식이다.
이 떡볶이를 요즘에는 궁중떡볶이라 하는데, 특별히 궁중에서 이를 먹었다는 근거는 없다.
(
) 조선 왕이 먹은 음식이기만 하면 궁중음식이라 하는 것은 코미디이다.
조선의 왕도 밥을 먹었을 것이니 밥을 지어놓고 궁중밥이라 할 것인가(15)


치킨도 마찬가지였다. 닭의 영어 표현 그대로 음식이름이 된 치킨은 예의 기름에 튀겨진 후라이드 치킨과 그 후라이드 치킨에 양념으로 버무린 양념 치킨을 떠 올린다. 떡볶이 못지 않게 한 달에 한 두번은 꼭 먹게 되고, 치킨을 먹기 위해 생맥주를 곁들인다는 핑계를 댈 정도로 치킨과 맥주는 공식과도 같다.


그런데 그런 치킨이 맛있는게 아니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닭고기의 맛보다는 무미(無味)를 가리기 위한 튀김 옷 맛으로 먹는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읽기 전에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불편한 진실이었다. 그렇다고 치킨을 먹지 않게 된 것도 아니다. 같이 먹는 사람들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지만, 알게 됨으로써 그동안 별 생각없이 대했던 치킨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졌다. 튀김 옷을 튀김 옷 대로, 닭고기는 닭고기 대로, 맛을 음미하고 각각을 평가하게 되었다. 모르고 먹을 때보다 알고 먹을 때가 호불호를 가리기 쉬웠다.


한국인이 치킨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 개개인의 저마다의 독립된 기호를 바탕으로 치킨 맛을 판단한 결과이고,
그 낱낱의 기호가 집합을 이루어 한국인은 치킨을 좋아한다
집단의 기호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참으로 순박한 일이다.
집단이 처해 있는 먹을거리 확보 사정이 개개인의 기호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27)


닭이든, 어떤 짐승이든 간에 대체로 그 몸이 성체에 이르러야 맛이 난다.
한국의 닭은 맛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잡는다.
닭고기가 맛이 없으니 여러 첨가물의 튀김옷을 입히고
이를 튀겨서는 또 양념으로 범벅을 하여 먹는다.
한국의 치킨은 닭고기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튀김옷 맛, 기름 맛, 양념 맛으로 먹는다.(30)


비빔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비빔밥은 특별한 제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고, 입맛이 없을 때라도 남은 반찬들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를을 둘러, 계란후라이를 하나 얹으면 집나간 입맛도 돌아왔다. 밖에서는 조금더 특별하게 육회를 얹은 비빔밥이나, 멍게, 꼬막을 얹은 비빔밥을 사 먹기도 했다.


최근 K-Food를 이야기할 때마다, 불고기, 김치만 내세우지 말고 비빔밥도 전 세계인이 좋아할 만한 한국 전통음식이라 생각했다. 물론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회자되고 있어 일종의 뿌듯함(?), 자부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비빔밥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이미지가 전주비빔밥처럼 밥 위에 빙둘러 재료를 담는 이미지인데, 전주비빔밥은 궁중음식이라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더욱이 이 이미지는 비빔밥의 원형처럼 널리 퍼져 전국 어디를 가나 같은 이미지로 내어지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여러 재료를 밥 위에 동그랗게 둘러서 내는 고착인데,
이걸 두고 오방색에 맞추니 어쩌니 한다.
이 구성을 따르니 비빔밥의 계절성은 버려졌고
식당마다의 개성도 잃었다(
)
온 국민이 전국 어느 식당에 가나
사계절 비슷한 비빔밥을 먹는다는 일이 놀랍지 않은가.
한국의 슬로푸드라고 내세우는 비빕밥이 프랜차이즈 사업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맥도날드화한 것이다.
조선의 궁중음식이고 전통이니 이걸 지켜야 한다고
너무 깊게 고집한 탓이다.(119)


비빔밥은 밥과 찬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이니
그 찬에 따라 수많은 변주를 보이게 된다.(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찬의 수만큼 다양한 비빔밥이 존재한다.
이 개방적인 비빔밥에, 우리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121)


비빔밥이 궁중음식이라는 주장은 문득 등장한다.
1976
년 황혜성 씨가 <한국요리백과사전>에 궁중음식으로 비빔밥을 올린다.
아무 근거가 없다. 실록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며,
조선의 문헌 그 어디에도 비빔밥이 궁중음식이라는 기록이 없다.
물론 조선의 왕이 비빔밥을 먹었을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조선의 1,000만 백성이 비빔밥을 먹었을 수도 있다.
음식을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것으로 분류하자면
그 특정 계급과 계층의 사람들이 그 음식에 특별한 의미를 두거나
특히 더 많이 먹거나 해야 한다.
조선 왕족이 비빔밥에 특별난 애착을 보였다거나
더 자주 먹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
황혜성 이후 비빔밥 궁중음식설은 전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조선 왕족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에 살았음에도
조선 왕족이 전주 이씨였다는 사실을 앞세우며
전주비빔밥을 궁중음식의 직계로 만들었다.(118~119)


나의 무지에 대한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일염이 전통 소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의 전통도 아닐 뿐더러, 일제강점기 이 땅에 이식된 것인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천일염에 미네랄이 많아 건강에 좋다느니, 자연에서 얻는 방식이라 자연 친화적인 것처럼 회자되는데 그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천일염이 전통 소금이 되었다.()
일본에서 온 것이라 하면 그 어떤 것이든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한국인이
천일염에서만은 그 강력한 민족혼을 무장해제하고 있다.
천일염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이 땅에 이식한 소금이다.
1907
년 대한제국 통감부는 일본인 기술자의 제안에 따라
인천 주안에다 천일염전을(
)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군자와 소래, 또 황해도 연백, 평안도 광량만 등지에
대규모 천일염전을 조성하였다.
전남 신안의 천일염전은 한국전쟁 이후에 섰다.(315)


일제강점기 이전에 한민족이 먹었던 소금은, 그러니까 한민족 전통의 소금은,
전오염(
煎熬鹽)이다. 개흙에 묻은 소금기로 함수를 만들어 이를 끓여 만든 소금이다.
바닷물을 끓이니 화염(
火鹽) 또는 자염(煮鹽)이라고도 하였다.(315)


소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일본에 가서 염업 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
) 한반도에 이식한 그 염전이 일본에 아직 있는지 물었다.()
일본에 천일염전이 현재에 없는데, 과거에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한반도에다 조성하였던 그 천일염전을
일본에다가는 조성한 적이 없었다.(316)


신안의 염전은 한국전쟁 이후 조성되었다.
이북의 염전을 잃으면서 소금이 부족하게 되자 이 지역에 눈을 돌린 것이다.
가서 보면, 억지로 만든 염전으로 밖에 안 보인다.
함수가 담겨 있는 해주 안에 머리를 디밀면 시궁창 냄새가 진동한다.
함수의 염도가 높다 하여도 오래 갇혀 있으면 썩는다.
해주 주변의 땅도 썩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비닐이 깔린 결정지의 흙은 더 심히다.
공기와 햇볕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으니 썩을 수 밖에 없다.(320)


(일본)식용염공정취인협의회라는 단체() 규약 안에는
소금에미네랄 함유’, ‘미네랄 풍부등의 말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항목(
)
“NaCl
이 미네랄인데 그 외 극소량 들어 있는 기타의 미네랄을 두고
미네랄이라 하는 것은 비과학적”(
)
또한 그 어떤 소금에도 천연’, ‘자연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NaCl
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든 본디 자연의 광물이니
소금에 그런 단어를 붙이는 것이 비과학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나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부끄러웠다.
명색이 음식 전문 글쟁이인데 소금에 대한 과학적 상식조차
엉터리로 알고 살아왔던 게 창피하였다. 마침내 부아가 치밀었다.
한국의 과학자들, 과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는 그들은
국민을 상대로 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천일염이 광물에서 식품으로 바뀌었다라느니
자연 소금 천일염에는 미네랄이 많다라느니

국민을 바보로 여지기 않고서는! 그대들이 바보이든가!(327~328)


그리고 한식=슬로푸드라는 막연한 믿음도 근거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음식 자체가 슬로푸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장이나 김치처럼 천천히발효하여 먹는 음식이 한국에 많다는 것이다.(
)
슬로푸드는 그 제조법의 특징을 분류 기준으로 삼아 만든 단어가 아니다.
사회,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용어이다.(
)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지향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반대의 대상은 세계화이고, 지향점은 지역적 삶이다.(106)


이탈리아에서 슬로푸드운동이 시작()
농축산물과 식품에 대한 무역 장벽을 적극적으로 무너뜨리려 하였다.
신대륙의 값싼 농축산물과 식품을 막아내야 한다는 과제가
구대륙의 그들에게 주어졌다.(
)
신대륙의 먹을거리를 패스트푸드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음식에 인문학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 바로 슬로푸드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에서 외국 농축산물을 막자고 만든
신토불이운동과 유사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철학적이며 심지어 정치적이다.(108)


슬로푸드는 어떤 특정의 음식 그 자체를 말한다기보다
일종의 운동성을 지니고 있는 음식이다.(
)
산업화 이후 인간 세상에 대한 거부’()
인간을 시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음식”(109)


한식에 대한 자부심이 어쩌면 우리 안의 열등감이 아닐까 싶다. 경제성장에 걸맞는 문화강국으로의 자리를 갖고자 함에서 한식도 K-Food라는 이름으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함인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K-Food가 오히려 싸구려 민족주의’, ‘싸구려 문화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에서도 백성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보릿고개로 많은 이들이 굶주렸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지켜야할 전통이 있는지 의문들며, 조선의 왕과 지배계급이 먹던 음식을 전통의 이름으로 지켜야하는 것도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과 조선이라는 나라가 한반도라는 지리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조선을 따르는 나라가 아니다. 전통이라 한다면 조선만을 따라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음식에 관여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국민의 의식과 정서를 조작하지는 말아야 한다.
음식은 문화이다. 음식을 문화라고 하는 까닭은
한 집단의 기호 음식에 그 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정치적 조작 대상으로 삼으면 안되는 것이다.
문화는 정치 위에 있다.(21~22)


음식은 시대에 따라, 시대에 맞추어, 변화한다.
그 변화를 억지로 막아 세우는 일은 전통 지키기가 아니다. 고착이다.
한민족이니 한복만 입어야 하고 판소리만 들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케이팝은 한민족 전래 음악과 관련이 없다. 음식도 그렇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밥상도 바뀌어야 한다.(46)


음식을 문화라고 하는 까닭은,
음식에 그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삶의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식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그 한식을 먹고 있는 한국인의 삶의 정체성을
법으로 규정하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에 자기 삶의 정체성을 규정하도록 허락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파쇼를 허락하지 않았다.(99)


1945815일 대한민국은 독립하였다.
그러면서 민족주의는 폐기되었어야 하였다.
민족주의는 독립 국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므로
독립 국가를 이루었으니 민족주의는 그 임무를 다한 것이었다.
민족주의는 한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순간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103)


우리는(한식은) 돌아갈 곳이 없다.
지키자 하여도 지킬 것이 별로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창조이다.(113)


조선에서의 조리법은 크게 두 종류가 내려온다.
왕족이 연회 등을 하면서 먹었던 음식의 조리법과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초근목피 조리법이다.
초근목피 조리법이란, 진휼곡도 넉넉하지 않으니 산에 들에 돌아다니며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거두어 이를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115)


일제강점기 접대의 공간인 요정을 그 원형으로 하고 있는 한정식이 전통의 이름으로 회자되는 것에는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또한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차리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조선이전 사회에서는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차려서 먹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기에 이를 전통이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정식의 다 먹지 못하게 차리는 상을 두고 전통이라 우기는 이들이 있었다.
한민족은 원래 인심이 좋아 손님에게 그리 대접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한민족이 타민족보다 특별히 인심이 좋은지 어떤지는 내 짧은 경험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우리의 옛 상차림에는 그런 게 없다.
조선은 독상이 기본이다. 잔치를 하여도 독성을 안겼다.(167)


단군신화에 나오는 쑥과 마늘이야기를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쑥과 달래로 바꾸자는 제안은 신선하기도 했고, 외래종인 마늘 보다는 자생종 달래가 더욱 친근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내용을 원본으로 하는데,
삼국유사는 한자로 쓰여 있다.
그 책에 쓰인 쑥과 마늘에 해당하는 한자는 영애(
靈艾)와 산()이다.
영애는 신령스러운 쑥’, 산은 마늘로 해석한다.(
)
산은 마늘만을 뜻하지 않는다. 달래, , 마늘, 부추 등을 이르는 한자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마늘은 산이라기보다 호(
)라 하였다. 대산(大蒜)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유사 제작 시기인 고려시대에도 그랬을 수 있다.
, 마늘은 몽골에서 전래된 외래식물이다. 마늘이란 말도 몽골어 만끼르에서 왔다.
산에 해당하는 식물 중 자생식물로는 달래, 산파, 산부추, 산마늘이 있다.(
)
산이라 할 수 있는 자생 식물 중에 달래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것으로 보이므로 단군신화 속의 산을 달래로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198~199)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는 한식에 담긴 판타지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추석에 담긴 판타지도 걷어내자고 이야기 한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고 우리가 지켜야할 전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추석은 추수감사절의 의미도 아니고, 수확의 시기와 맞지도 않는다는 것인데,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왜 정부에서 명절 물가 자료를 내놓는지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차례상을 세팅하는 거처럼 보인다는 거죠.
우리는 유교국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유교 예법인 차례를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렇게 차려라하고
간접적으로 지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크리스마스에 케이크 가격이 어떻다고 물가 자료를 안 내놓잖아요.
석가탄신일에 사찰의 시주 금액이 얼마인지도 내놓지 않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차례상의 물가 자료를 내놓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272)


본래 추석은 노는 날이에요. 서양의 추수감사절 의미는 없어요.
해방 이후 영화, TV 등의 매체를 통해 서양의 추수감사절 풍습이 알려졌고,
이를 우리 초석과 연결시킨 건데, 사실 추석은 추수감사절과 절기가 맞지 않아요.(
)
밤은 죽음, 귀신, 도깨비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두려움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추석은 큰 달이 뜨는 날이에요.
한반도의 가을 하늘은 굉장히 맑잖아요.
그 맑은 밤에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한밤중에도 대낮 같아요.
그렇게 추석의 밤은 죽음의 시간이 아닌 인간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그날에는 여성도 해방됐어요.
바깥으로 나가 밤길을 돌아다녀도 되는 날인 겁니다.”(273)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축제가 없어요.
스페인 토마토 축제 등 서양의 유명한 축제들이 오랜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게 아니에요.
산업 국가로 운영되면서 노동자들이 한바탕 신나게 열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축제가 기획된 거죠. 지금 우리 시대 노동자들이 한바탕 신나게 놀 수 있는 날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없습니다.
국가는 추석 물가를 내놓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한바탕 놀 수 있을까라는 궁리를 해야죠. 언제까지 집마다 차례상 음식 마련에 전전긍긍하도록,
여성들을 부엌에 가두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만 합니다.(274)


명절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명절에는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번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급작스럽게 노동자의 나라로 변하면서
노동자가 신나게 노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노동자들이 한바탕 크게 놀 수 있게, 정부에서도 궁리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이다.(275)


저자는 맺음말에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에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책이 아니니 읽고 멀리 두고, 버리고 잊으라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바로잡을 기회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자꾸 회자되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별로 없는 책이다.
괜히 읽었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하고 고민만 깊어졌을 수도 있다.
기존의 한국음식 담론과는 그 결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
다 읽었으면 이 책은 되도록 멀리 두시라고 권한다.
버리시고 잊으시라.
내가 들었던 불협화음의 판타지아가 여러분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면
편안한 한국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맺음말)


무엇이든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 막연한 사랑은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이거나 사랑으로 포장된 착취일 뿐이다. 한민족으로써 한식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한식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민음사, 2019


"바보야, 문제는 상위 20%."


2008월가 점령 시위로 촉발된 1% vs 99%, 망한 회사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 거액의 퇴직금을 받아 비난을 자초한 1%에 대한 99%의 반감. 99%의 반감은 경제민주화라는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대선의 핵심 공약은 경제민주화였다. 모든 후보가 용어만 서로 다를 뿐 경제민주화를 주장했기에 누가 당선이 되든 경제민주화는 실현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았다. 일부의 수치들이 완화되었음을 주장할지 모르지만 99%의 체감으로는 결코 완화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슈퍼 리치인 워렌 버핏, 빌 게이츠와 제프 베조스가 부유세를 제안하기도 했다. 놀라웠다. 세금이라는 것이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적게 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데, 스스로 세금을 많이 낼 테니 더 걷어가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부자들이 더 걷으라는데도 불구하고 부유세가 도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에게 부과된 세금으로 99%를 위한 복리후생을 마련한다면 대다수 유권자인 99%에게도 지지받을 수 있을 정책인데, 어째서 도입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20 vs 80의 사회>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립의 갈등은 1% vs 99%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1%의 부자증세는 곧 중상류층의 증세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와 행정부에 소속된 사람들은 대체로 상위 20% 중상류층에 속한다. 부자증세는 이들의 세금을 같이 높일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세금을 많이 내는 구조로 입법하지 않는다. 그럼으로 부자세도 입법되지 않는다. 놀라웠다.


중상류층은 자신의 막대한 권력을 공정성이나 형평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의 지위와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지위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이기적이 되었다.(
)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조세 혜택을 당연한 특권인 듯이 받아들이고
우리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의 기회를 차단하는 식으로 이기적이다.(228)


하나의 계급으로서 우리(중상류층)는 매우 강력한 집단이다.
우리는 매우 성실히 투표하는 유권자다.
투표율이 80퍼센트에 육박한다.(
)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지위는 상당 부분 중상류층이 차지하고 있다.
기자, 학자, 연구, 과학, 광고, 여론 조사, 출판, 미디어, 예술 등은
그 속성상 중상류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기 좋은 영역이다.(228)


<20 vs 80의 사회>는 부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상류층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대립과 무관하며, 이들이 사회적 지위를 독점하고 있고, 이를 세대를 넘어서 지위를 유지하고자 행동함으로써 유리 바닥을 만들고 있음으로써 계층 간 이동을 막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눈에 띄는 입법의 형태라기 보다는 부모의 지위는 어떠한지, 사는 곳이 어디인지, 고등 교육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 등이 불공정하게 만들어져 있음으로써 계층 이동을 막는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나쁜 의도에서의 행동이 아니다. 단지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선한 이기적 행동으로 비롯된다. 다만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은 상대적 비율이므로 상위 계층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하위 계층이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 20퍼센트는 중상위층 아이들이 특권을 가지고 태어나고, 계층 간 이동성이 막혀있고, 기울어진 일자리 시장과 불공정한 기회 사재기 전략으로 인해 불평등을 유지한다고 이야기 한다.


경제, 교육,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불평등이 커지고()
이 현상들이 더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의 결과이며
무엇보다 중상류층이 분리된 데서 생겨나는 결과다.(
)
최근 몇십 년 사이 다양한 영역에서 중상류층이 누리는 특권들이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각각은 나머지의 효과를 한층 더 강화했다.(59)


미국의 중상류층인 우리에게 인생은 썩 괜찮다.
우리는 불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쉽게 회복되었고,
이제는 풍요로운 경제의 트랙에 다시 올라탔다.
우리가 계급으로서 누리는 이점은 은행 잔고 수준을 훨씬 넘어서
교육 수준, 직장에서의 통제력, 동네의 질, 자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
건강, 식생활, 수명, 가족의 안정성까지 포함한다.(59)


중상류층 아이들은 사립 학교에 가든지 공립학교에 가든지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학과 외의 교육 기회도 풍성하게 누린다.(79)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면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재분배 정책에 돈을 지불할 의향이 줄어든다.
그러면 불평등이 더 심화된다.(112~113)


노동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재능과 기술,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는
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매우 불평등하게 주어진다.(118)


현재 미국의 능력 본위 시스템이 가진 문제는
시장이 인정하는 종류의 능력이 불평등하게 육성된다는 데 있다.
대체로 중상류층 아이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할 무렵이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능력을 갖춘 상태여서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선다.
미국의 능력 본위 시스템은 계급 장벽을 부수기는 커녕
유지하고 영속화하는 메커니즘으로 변질되었다.(119)


, 책임, 기회, 분배 등의 문제는()
첫째, 시장 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준비할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했다는 전제에서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그런 경우라도 시장 경쟁의 승리자가 그 승리의 결과로 획득한 것을
전부 차지하는 것이 도적적으로도 정당한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경쟁을 위한 준비할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현 세대의 승리자가 획득한 것을 재분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강건하게 능력 본위적 시장을 허용하되, 아니 촉진하되,
그와 동시에 시장이 인정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는
적극적으로 평준화하는 사회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129~130)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가() 인턴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기회 사재기가 만연해 있다.
인턴 제도는 노동 시장 규제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연줄을 통해 서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알음알음 분배된다.(171)


기회 사재기는 하나의 커다란 기계가 작동해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라
개인들의 작은 선택과 선호들이 일으킨 효과가 누적되어 생기는 결과다.
내 딸이 좋은 대학에 동문 자녀 자격으로 입학할 수 있게 조금 밀어 주는 것,
내 아들이 인턴 자리를 잡아 전문직 직업의 세계를 맛볼 수 있게 돕는 것,
주택 밀도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 등을
하나씩 따로따로 보면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많은 미시적 선호들이 그렇듯이 이런 것들이 종합되면
사회 전반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179)


과거 인종 차별에 쓰이던 제도들은 버려지지 않았다.
최근 몇십 년 사이, 그것들은 다소 완화되고, 정상화되고, 미묘하게 용도가 바뀌어
중상류층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179)


변화를 위한 정치적 연대를 이루려면 중상류층처럼 강력한 유권자 집단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나 이민자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진보주의자들은, 슈퍼 리치가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 구도에서는 우리의 정치 성향이 어느 쪽이든 우리(중상류층)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229)


최근 우리사회는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을 넘어 젊은 세대의 불공정에 대한 이슈로 뜨겁게 달궈졌다. 후보자의 자질 보다는 가족을 수사하고 망신주기 등으로 후보자를 압박하는 정치적 공세와 더불어 서울대, 고려대 등 불공정한 대학입학, 고등학생의 논문 저자 등재 등 불공정한 기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박탈감 표출도 있었다.


대합 입학 뿐만 아니라 인턴을 뽑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반칙의 사례를 목격했다. 법적으로 처벌될 근거가 없어 처벌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외침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 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20 vs 80의 사회>를 통해 그 때 그 때의 이슈에 집중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도록 요구하는데 관심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20 vs 80의 사회>는 이러한 불공정한 기회로 만들어진 유리 바닥을 없애기 위해서는 중상류층이 먼저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계급 사회를 깨고 탄생한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가 다시금 유리 바닥으로 인한 계급사회로 접어든다면 결코 유지 가능하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유리 바닥을 없애는 것이며, 내 자녀들이 하위 계층으로 이동할지라도 그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듦으로써 불평등을 없애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중상류층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그리고 손주가) 장래에 여전히 중상류층 지위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덜 갖게 된다면 재분배 정책을 더 많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녀가 하향 이동을 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존재한다고 느낀다면 하향 이동을 할 때 연착륙할 수 있게 해 주는 정책에 더 열린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110)


특정한 관행이나 행동이 잘못되었을 경우, 꼭 그것이 만연해 있거나
악영향이 심각해야만 그것을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기회 사재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도록 허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사소한 문제라는 주장은 동문 자녀 우대제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로도
사용될 수 있다.(147~148)


<20 vs 80의 사회> 저자는 서문에서 한 문단으로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책의 내용이 어떠한 지 이해할 수 있게 하였지만, 저자가 미국사회를 통해 진단한 계층 이동 경직성이나 유리 바닥을 만드는 선한(?) 이기심의 작동원리, 기회 사재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미국 중상류층은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2)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3)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4)
이러한 계층 분리는 노동 시장에서 가치가 인정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가
중상류층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발생한다.(5)
중상류층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기 때문(6)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며(
)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중상류층이 부담해야 한다.(7)
(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중상류층의 각성이 필요(8)(19~20)


소득 하위 20퍼센트 가구 출신 아이 중 적어도 3분의 1
성인이 되어서도 하위 20퍼센트에 남는다.(
)
10
명중 6명은 하위 40퍼센트에 남는다.()
소득 상위 20퍼센트 가구에서 자란 아이 중 37퍼센트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소득 상위 20퍼센트에 존재한다.
이 아이들은 가난한 아이들이 바닥 칸에 고착된 것만큼이나
강하게 꼭대기 칸에 고착되어 있다.(
)
소득 대신 부를 지표로 잡아 살펴보면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은 심지어 더 낮으며,
역시 꼭대기 쪽이 더 경직적이다.(96~98)


유리 바닥에 대해 연구하면서 인지 능력 점수가 낮은 아이들의
 
하향 이동을 막아 주는 가장 좋은 방어선은
4
년제 대학 진학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학이 계층의 상향 이동성에 중요하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드러났지만,
대학은 그 반대의 효과도 낸다.
부유하고 덜 똑똑한 아이들의 하향 이동을 막아 주는 것이다.(134)


계급의 영속성에 일조하는 또 다른 요인() ‘기회 사재기.
중상류층이 실력을 갖춰서가 아니라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승자가 될 때 발생한다.(146)


기회 사재기는 가치 있고 희소한 기회들이 반경쟁적인 방식으로 분배될 때,
즉 분배가 개인의 성과와 관련 없는 요인들에 영향을 받을 때 발생한다.(
)
기회는 미래의 전망과 관련해서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전망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연줄, 자질, 기술 등을 발달시킬 기회를 말한다.()
기회는 희소해야 한다’() 명문 대학이 좋은 사례다. ‘아이비리그가 의미를 가지려면
모든 대학이 아이비리그여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을 지위재라고 부르는데,
지위재의 가치는 그것을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
기회가 반경쟁적인방식으로 분배될 때()
미국의 중상류층은 사립 학교, 명문 대학, 전망 있는 첫 직장과 같이
희소하고 가치 있는 기회들을 다른 계층 사람들보다 많이 누린다.(
)
중상류층 아이가 SAT 성적이 높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기회 사재기가 아니다.()
그런데 SAT 점수가 커트라인보다 낮은데도
동문 자녀 우대를 받아 합격한다면 이것은 기회 사재기다.(152~1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맛있는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CC 2019 - 누구나 쉽게 배워 제대로 써먹는 그래픽 입문서 맛있는 디자인 시리즈
박정아(빨간고래) 지음 / 한빛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러스트레이터CC2019, 빨간고래 지음, 한빛미디어, 2019

일반 내근직으로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주로 엑셀로 숫자를 다루고, 워드나 파워포인트로 보고서를 만든다. 파워포인트의 경우도 보고 내용은 텍스트 중심이기는 하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체계도 등은 도형을 이용한 디자인 작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가끔은 도표나 차트를 넣기 위한 디자인 작업도 한다. 이때 파워포인트의 디자인 메뉴로는 표현이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곡선을 자유자재로 만들기 어렵고, 선도 매끄럽게 맞추기가 무척어렵다. 그래서 포기하고 적당히(?) 맞춰 표현하는 게 전부다.

요즘은 인포그래픽이 유행하다보니 사업의 내용 등을 메일로 안내할 때 인포그래픽처럼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는 파워포인트로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인포그래픽을 많이 본다고 저절로 실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매끄러운 선을 표현하고, 곡선을 조금더 자유자재로 다루고, 인포그래픽을 위한 디자인을 위해서는 일러스트레이터 사용을 권하지만, 쉽게 도전하기는 어려웠다. 파워포인트나 포토샵이 비트맵 방식으로 점을 찍 듯 표현하는 것이라면, 일러스트레이터는 좌표값을 사용하는 벡터 방식이라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 있어 접근 방식이 달라보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저항감으로 작용해 도전하길 꺼리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일러스트레이터 CC 2019>를 보고 입문자로써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 도전하게 되었다.

맛보기에 제시된 디자인들이 그동안 파워포인트를 통해서는 구현이 안되어 고민하던 부분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왠지 깔끔한 PPT를 넘어 인포그래픽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20년간 디자이너로 일한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는 기초 기능만 다져두면 무척 쉬운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 한다. ‘20년간 실무에서 다져온 노하우와 학생들을 가르쳐온 배경으로 쉽게 마스터 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고 한다.

첫째, 컴맹도 따라 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
둘째, 필수 기능을 콕콕 찍어서 빠르게 익힐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혼자서 따라 하더라도 지치지 않도록 재미있어야 한다.
넷째, 실무에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실전 노하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다섯째, 책을 다 보더라도 항상 옆에 두고 찾아볼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저자 서문)

저자의 이야기처럼 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책 곳곳에 드러난다.



책이 없더라도 책상 주변에 세월 둘 수 있는 단축키 모음은 정말 유용하다. ‘파일 관리에 유용한 단축키’, ‘화면 보기에 유용한 단축키’, ‘오브젝트 편집에 유용한 단축키삼면으로 인쇄되어 명패처럼 책상위에 올려놓고 쉽게 찾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기능 꼼꼼 익히기를 통해서 해당 기능을 보다 깊이 알 수 있었다. 모든 기능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작업을 하며 응용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 CC 2019> 에서 가장 재미있게 따라한 예제는 3D 입체 건물 그리기와 역동적인 느낌의 타이포그래피 만들기였다. 포토샵, 파워포인트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인데, 일러스트레이터를 이용하니 정말 너무 간편하게 작업할 수 있어 놀라웠다. 역동적인 느낌의 타이포그래피는 인포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모든 기능을 마스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디자인 작업이 필요할 때, 일러스트레이터로 표현하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렵고 복잡하다는 편견과 디자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내 스스로의 편견을 깨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얼굴의 법원, 권석천 지음, 창비, 2019

재판은 사실을 다투는 것으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아닐 수 있다. 드러난 사실보다는 감춰진 사실들이 많은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전적으로 판사의 몫이기 때문에 판사는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판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거래하고, 행정관료화된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재판의 결과로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계산했다. 재판을 하라고 했더니 정치를 한 꼴이다.


이는 양승태 사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양승태, 박병대, 임종헌 등 판사 개인의 일탈은 더더욱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그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역사의 시계는 반드시 거꾸로 흐른다. 우리는 반민특위를 통해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어떻게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지 보아왔다. 이명박근혜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큰 허점이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도 보았다.


사법농단에 대해서 보도되는 기사는 많으나, 기계적 균형에 빠져 일방의 주장과 반론을 나열하는 보도에 머무르고 있다. 사법농단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는 법무부장관 임명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어, 사법농단에 대한 기사는 단신정도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한 가운데 <두 얼굴의 법원>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척하다라는 부제처럼 현재의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의 전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법농단으로 비로소 드러난 우리가 몰랐던 법원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두 얼굴의 법원
하나는 국민 앞에서 자유, 평등, 정의라는 공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법원.
다른 하나는 대법원장을 받들고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현실의 법원(5)


분리 통치(divide and rule)의 체계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같은 조직 사람들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떤 부당한 일이 맡겨져도 해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62)


대한민국 헌법은 법원의 주인은 주권자인 시민이라고 말한다.
판사들은 대법원장을 주인으로 예유해서는 안 된다.
수사적 표현이라도 주인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오로지 주권자인 시민을 법원의 주인으로 받들며 재판해야 한다.(103)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제대로 재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존재다.
사법행정을 자기 뜻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독립하여 재판하는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아가야 한다.(103)


사법농단이 우리에게 알려진 건 이탄희 판사의 사표였다. <두 얼굴의 법원>20172월이탄희 판사가 사표를 쓰게 된 과정부터 이야기한다.


이탄희 판사의 법원행정처 발령 à 판사 뒷조사 파일 존재 확인 à 사표 à 사표번복à 양승태 코트의 1차 조사 à 김명수 코트의 2차 조사 à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 à 양승태, 임종헌 구속과 재판까지를 그동안 언론이 단편적으로 다룬 부분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사법농단 전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은 그럼 법원행정처는 왜 판사들 뒷조사 파일을 만들고, 행정부와 재판거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는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었는데, 말미에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통해 법원행정처가 작동한 방식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했는데,
열심히 다른 일을 해서 상황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이 닥치면 결국은 내가 가진 역량을 동원해서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하겠구나,
나 자신이 주체가 돼서 결정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 그 모습이 객관화돼서 보였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상황의 노예처럼 느껴졌다.
-
이탄희 (68)


우리는 유능함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유능함만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다.
유능해야 할 때 유능해야 하는데, 무능해야 할 때 유능할 때가 많다.(76)


조직의 이익-실제로는 고위 조직원들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의 존재이유에 등을 돌렸다.
존재 이유를 잊은 조직은 흉기보다 위험하다.
존재 이유 때문에 받게 된 권한을 자신들을 위해 휘두르면
그 피해는 무고한 시민들이 입는다.(81)


문제는 그 믿음이 무엇이냐다.
과정상의 문제쯤은 무시해도 그 믿음은 유지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자신이 말하던 믿음을 이뤘을 때
그 믿음의 내용은 달려져 있는 것 아닌가.
절차적 정의를 지키지 않는 정의는 일그러진다.(104)


진상규명을 책임진 자는 야차와 같은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오직 사실만을 추구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누가 그 칼에 베이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156)


많은 이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했지만,
젊은 판사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이상은 보다 본질적인 것이었다.
법원이 바뀌어야만 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그대로 맞출 수는 없어도 이제는 정말 달라졌구나,
하는 신뢰를 받으며 재판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제까지의 노력이 의미있을 것 같았다.(285)


판사가 누리는 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으로 전락한 판사를 세상은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
외형과 실질이 다르면 단단해지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이탄희 (286)


(양승태)그가 법관으로 살았던 42년간, 형사법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유신시대, 잔혹하게 고문당한 이들이 판사 양승태의 법정에 들어와
억울함을 호소할 때 그는 어떻게 판결했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심했을 소설 같은 공소장으로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나,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직접 피고인이 되고서야 뒤늦게 검찰 수사의 진면목을 알게 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검사들에 의해 기소돼 자신에게 재판을 받았던
숱한 피고인들이 느꼈을 고통에 대해서도 한마디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29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일동포 김동휘 씨 사건 등 4건의 간첮조작 사건에서는 배석판로, 강희철 씨, 오재선 씨 간첩조작 사건에서는 재판장으로 재판을 했다. 6건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오재선 씨의 경우 1심 재판에서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라고 호소했으나 재판장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은 오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내게 유죄가 선고되는 것은 곧 법원에 유죄가 선고되는 것이다.’
법원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었던 조직논리를 다시 스스로를 지킬 방패로 삼고 있다.(292)


재판소 구성원들이 정신적 노예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킬 수 있겠는가?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을 거의 대부분 박탈당한 사람이
어떻게 국민과 시민의 기본적 인권을 지킬 수 있겠는가?
- 30
년 경력의 재판관 출신 일본인 교수, 세기 히로시(319)


시급한 것은 시민사회가 법원을 감시하는 일이다.
대법원이 사법행정을 어떻게 하는지, 사법이 권력화되지 않는지 시민사회가 주시해야 한다.
판결문의 팩트와 논리가 맞는지 파헤치고 따져야 한다.
법정에 들어가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말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판사들이 변하고 검사들이 바뀐다.(320)


대법원 판결로 일본 기업들이 내야 할 배상금 규모가 크다는 게
왜 국가에 손해가 될까.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을 한다고 해서
잘못된 판결인 걸까.(344)


임종헌 차장이 직접 작성한 문건에는
사법부가 국정운영에 협조해온 사례가 제시된다.(
)
기업, 국공립대, 은행권에 이익이 되는 것이 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것인가.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고, 국공립대 학생들이 기성회비를 돌려받고,
중소기업이 이기는 건 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
이러한 사고의 밑바닥에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여기는
상당수 법관들의 통념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345)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 권력이 민사소송에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들 간의 분쟁인 민사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대법원(법원행정처)-외교부의 삼각 협의체가 3년 넘게 돌아갔다.(365)


청와대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사건이 매우 중요 사건이나
대법원 입장에서 많은 사건 중의 하나에 불과하므로
양 측에 윈윈(양쪽 모두에 유리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재항고를 인용함이 상당하다.
- 2014.12
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문건 (373)


적어도 영향 받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얘기를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에서 해서는 안 된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영향을 미쳐놓고
왜 영향을 받았느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도덕적 비난을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하게 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379)


판사가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서 법원 전체가 비난받게 된다고
그 판결을 어떻게 나쁜 판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난받지 않는 판결을 하겠다는 것은 재판하는 자들의 자기부정 아닌가.(380)


한국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조직논리에 기대 움직이는 가부장제의 연합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걸까.
사법행정권 남용에 자꾸 이상한 프레임들을 갖다대려는 시도들에서
그들의 위기감이 느껴진다.(
)
사법농단은() 사법부와 판사들이 자기들끼리 허공에서 벌인 일이 아니다.
청와대 권력, 정부 권력, 국회 권력, 언론 권력

권력들이 손에 손 잡고벌인 일이다.(389)


한국의 보수가 군인들이 지배하던 안보 보수에서
머니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시장 보수로 변화했다.(
)
문제는 한국의 보수가 안보와 성장, 즉 북한과 돈 외에는
세상을 보는 다른 프레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
정치컨설팅그룹 박성민 대표(390~391)


여전히 양승태, 임종헌은 재판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구속으로 사법농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일탈로 몰아서 개인을 처벌하면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으로 언론도 호도하고, 시민들도 그렇게 믿는 경향이 있으나,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반드시 재발하게 되어있다. 재발할 때는 이전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소위 엘리트들의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오만을 깨야 한다. 엘리트 사회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그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해쳐모일 뿐이다. MBC 이용마 기자가 검찰, 기획재정부, 외교부를 출입하며 느낀점을 언급했다는 글이 가슴 깊이 남는다. 이탄희 판사의 말처럼 사회는 절대로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며,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꾸로 흐르게 하거나, 엘리트 독재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들의 조직논리는 이미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
엘리트들은 평생 자기 조직에만 갇혀 살았고,
그 밖으로 나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엘리트로 인정해주고
자기들끼리 보상해주며 살았다.
조직논리를 흔드는 외부의 침입이 감지되면
똘똘 뭉쳐 조직을 보호했다.
지극히 편협한 조직논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이 절대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양 큰소리친다.

- MBC 이용마 기자(391)


저는 세상이 저절로 잘될 거라는 식으로 낙관하지 않아요.
그건 저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
미루지 말고 제때 선택하고, 그후의 상황에 끈질기게 대응하고,
또 마지막에 저의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전부 다 필요했던 일이에요.(
)
희망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서 나오는 거예요.
-
이탄희 (4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