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계의 흐름을 보다. 독일의 문학계에서 작가 '다니엘 켈만'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젋기 때문만은 아닌듯 싶습니다. 30대 중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완숙미가 넘쳐나며 재기있는 표현법과 아이디어가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의 기능에 주목한 '다니엘 켈만'은 통신 기술이 중심이 되는 세계 속에서 점차로 흐릿해지는 인간의 정체성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학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숙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끝업슨 질문을 '다니엘 켈만'은 현대사회의 통신기술에서 접근하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을 제시하여왔던 독일 문학계는 '다니엘 켈만'이라는 젊지만 뛰어난 인물의 등장으로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하는듯 싶습니다. <명예>는 현재 영화와 예정 중인데 영화로 나온다면 각각의 에피소드의 복선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기대됩니다. 마트료시카 인형 <명예>에 수록된 에피소드는 9편입니다.(목소리, 위험 속에서, 로잘리에가 죽으러가다, 탈출구, 동양, 수녀원장에게 답장하다, 토론에 글 올리기,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위험속에서) 9편의 에피소드는 전체의 구성안에서 독립된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작품 속 인물들의 연관성을 생각하기는 약간 어렵기도 합니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는 다른 작품에서 주연 혹은 조연 그리고 실루엣등으로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자면 첫번째 작품인 목소리의 주인공인 에블링이 역할 바꾸기를 시도하게된 계기가 되는 휴대폰 넘버의 주인공은 '탈출구'편에서의 주연인 랄프 탄너입니다. 그리고 랄프 탄너는 두번째 수록된 위험 속에서 포스터 속 인물로 등장합니다. 탈출구 편의 랄프 탄너와 목소리의 에블링의 휴대폰 넘버가 바뀌게된 계기가 된 인물은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편에등장하는 화자입니다. 한편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편을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배경과 전개방식을 보입니다.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러시아의 민속 인형으로 인형안에 또 다른 인형이 들어가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처럼 겉과 밖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이야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짧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몰입감을 더욱 높여주는듯 싶습니다. 허구와 현실 그리고 뒤바뀌는 평행세계 <명예>속 평행세계를 읽다보면 최근 출간된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또 다른 작품들인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 인생들>과 <대기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실들>이 생각납니다.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세계가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혼란은 허구와 현실을 뒤바꾸면서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그 밖에 있는 독자들에게 혼선을 더합니다. 즉 어디까지가 이야기 속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가 애매모호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의 경우가 더욱 애매하죠) 통신매체들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고민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정체성을 지우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주제는 목소리편과 동양편 그리고 탈출구 편을 보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행세계와 등장인물들 그리고 명예가 가지는 관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과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듯 싶습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명예는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대상의 모습과 인정된 모습들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통신의 두절과 혼선가운데 빚어지면서 더욱 가속화되어 존재가 잊혀지고 사라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해체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작가는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체성이 지워질지도 모른다. <명예>에 등장하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존재의 부존재화와 관계된 주제는 무겁지만 그 무게가 가볍게 덜여져서 독자들에게 전달됩니다.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희극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모두 한권의 책에서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찾을 수 있겠지만 반대의 주제를 서로 다르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작가인 다니엘 켈만이 의도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 아니었을가합니다. 평행세계가 서로 교차하지만 그 안에서 지워지는 것들에 대한 공통된 현상을 저는 모두가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니엘 켈만'이 표현해낸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창조해낸 세상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우리 모두는 '다니엘 켈만'이 만들어낸 인물들의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지털 유목민의 탄생 <스마트워크>는 낭만 IT 김국현이 제안하는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법입니다. 이미 한국의 대표적인 IT평론가이기도 한 저자는 여러 매체에서 기술에 대한 칼럼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정보통신에 대한 글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산업화 시대에서 디지털 정보의 빠른 변화에 내몰려진 수많은 사람들을 <스마트 워크>는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말합니다. 드넓은 초원에서 대지를 원망하지 않고 살아가던 유목민들의 기상을 오늘날 디지털 사회에서 다시한번 찾아 일깨우고자 하는 저자의 저작 목적은 디치털 사회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듯 싶습니다. 이론의 길 <스마트 워크>에서 말하는 스마트 워크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스마트 워크란 우리 시대의 제약을 진취적으로 극복하고 거칠디 거친 이 시대를 스마트하게 살아가며 일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스마트 워크>는 크게 이론편과 실제편으로 나뉘어져서 설명되어집니다. 이론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계발서 입니다. 디지털 유목민이 만나는 환경과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들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서있는 위치는 어디인지를 지적하는 글들입니다. 이론이 제시하는 글들은 독자들의 야성을 일깨우기 위함이라는 저자의 목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초원이라는 드넓은 대지에 서서 환경에 불평하지 않는 유목민처럼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를 향한 디지털 유목민으로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넘나들면서 생산성과 정보기술의 숙련된 능력을 모두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나름의 뚜렷한 목적을 제시하고 낯선 환경에서 강인한 인상을 갖도록 도와주는 내용들이 이론의 길에 담겨져 있습니다. 실천의 길 <스마트 워크>의 또 다른 큰 축은 실천편입니다. 스마트 워크란 무엇일까?라는 저자의 질문에서 출발한 이론의 길은 실천편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과 도구사용법에 대한 글입니다. 물론 사용법이라고 해서 세세한 사용법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그것은 무엇이며 어떠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사용해야 한다라는 실천에 대한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만일 독자분이 실천에 담겨진 여러가지 도구들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클라우드, 메일등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알아야 한다면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배워야 한다면 그것들과 관련된 가이드 책을 찾아야 합니다. <스마트 워크>는 각각의 여러가지 도구의 의미와 활용의 예시등을 통해 '유목민'이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들(실천)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일과 도구들 <스마트 워크>는 일을 보다 많이 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생산성만을 높이는데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고 효율적인 일을 하기 위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단순히 그것들이 눈앞에 놓여진 물건이나 방법론이 아닌 '스마트 워크'에서 필요한 지적 파트너로서 성장시키고 조력자로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은 사회가 요구하는 흐름의 변화까지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측 가운데 독자들을 무장시키고 야성과 패기로 뭉쳐진 유목민들이 되어 사회의 요구에 당당히 자리매김하여 외칠 수 있는 이들이 되기를 요청합니다. <스마트 워크>를 가리켜 흔히 자기개발서로 오인할 수도 있겠지만 책이 가지고 있는 도구의 사용방법과 무궁한 활용도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스마트 워크>가 제시하는 일의 모델은 '디센티 워크'(우리가 일할 보람이 있는 인간다운 일)를 지향합니다. 단순히 일을 하면서 생산력만 극대화 시키던 시절과 오늘은 분명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과 수용의 원칙이 서서히 기업의 명제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진정한 이상적인 노동의 환경은 요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먼 곳에 있는 가까운 미래 가운데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적인 환경이 우리 곁에 왔을때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 속에서 하층부에서 멤도는 우리가 아닌 기득권으로의 도약을 향한 힘찬 움직임이 필요할 것입니다. <스마트 워크>는 야성의 본능과 도구의 사용법을 활용하는 '스마트 워크'가 가지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이론과 실천방법론이 오늘과 미래에 걸쳐져서 소개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2010년 줄리언 어산지라는 인물이 해외를 흔들고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폭로'라는 용어를 연상할때 '위키리크스'가 연상될정도로 였지만 동시에 '위키리크스'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는 막연한 정보만이 주어질 뿐이었습니다. 해외에 기반을 둔 해커들의 집단이라는 소문과 줄리언 어샌지를 통해 각종 비밀 정보를 넘겨주는 요원들의 집단 까지 다양한 루머와 소문만이 존재할뿐 여러나라가 감춰놓은 비밀을 '폭로'하면서 자신들은 베일에 감춰져 있습니다.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과 각종 전쟁영상물들을 폭로한 '위키리크스'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들은 '위키리크스'가 제공하는 혹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해외언론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그들의 활동을 접하고 있을 뿐입니다. <위키리크스>(서울: 21세기북스)는 우리가 뉴스로 접해보지 못했던 단체의 리더인 '줄리언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활동을 모아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비밀주의와 반대급부인 폭로주의의 진상을 바라보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을 위한 폭로의 양면성 <위키리크스>는 2010년 여름 미국무부의 아프카니스탄 기밀 문서를 폭로하며 세상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정보계에 풍요로움과 위협을 동시에 주었는데 이는 권력자들에 의해 감춰졌던 혹은 지켜졌던 뒷편을 드러냈다는 점과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누구도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2010년 여름과 그 이후에 시작된 '위키리크스'의 연이은 정보 공개는 세계각국의 권력자들과 종교 단체 그리고 기관들에게 충분한 위협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비록 대상은 미국이었지만 이후에 터져나오는 그들의 정보는 세계 각국 모두가 대상이 될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위험한 존재들이라는 인식과 영웅이라는 인식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비밀주의'는 여러 권력기관과 사회질서를 위한 명목아래 자행되고 지켜져온 룰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깨졌을때 질서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게 됩니다. '폭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그 여파가 너무 쎄서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기존의 이해관계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진실을 위한 '폭로'라는 말을 살펴 볼때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키리크스>는 이러한 양면성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줍니다. 정보를 움켜진 자들과 그것을 파헤치는 자들의 대립을 통해 우리는 정보란 무엇이며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진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줄리언 어산지 컴퓨터의 귀재이자 높은 IQ(140-180)의 소유자인 어산지는 위키리크스를 이야기 할때 빼 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실질적으로 위키리크스를 동료들과 창립하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는 무모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사생활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은 인물입니다. 자신을 피력하거나 알리지 않으며 오직 관심을 지적인 것들과 그것을 공유하는데 있으며 권력에 대한 강한 반발심리를 소유한 그는 위키리크스의 정신이자 성향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위키리크스>는 비전과 카리스마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그가 어떤 인물인지 그 실상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소상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비적이고 영웅적인 면들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파악하며 그가 바라는 것과 위키리크스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목적을 소개합니다. ~하더라, ~였더라가 아닌 면담과 주변인물과의 관계탐색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의 이중성은 <위키리크스>의 또 다른 면들을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모든것이 가하나 허할수는 없다는 말처럼 때로는 진실에 집착하여 그것을 폭로의 형태로 새로운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는 '줄리언 어산지'라는 인물을 통해 오늘날 정보시대의 통제의 이면과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위키리크스와 민주주의 미래 버락 오바마가 말했듯이 민주주의아래에서 국가가 투명성을 높일수록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에게 알권리를 채워주게 됩니다. 비밀주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책임의식을 약화시키며 통제라는 이름의 수단을 강화시키게 되지만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코드이기도 합니다.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는 국민들에게 알권리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정부와 여러체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양자간의 노력은 속도적인 면에서도 그리고 규모면에서도 차이를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 양측의 대립과 충돌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국가의 비밀주의가 통제된 사회를 강화시킨다면 분명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투명성을 향한 촉매제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질서에 대한 혼란과 각국 정부의 통제기능 약화를 가속화시킬 경우 발생하는 문제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것입니다. 향후 우리는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산지'의 활동이 다시한번 뉴스를 수놓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각국 정부의 투명성 확보와 건전한 민주주의 체제의 설립을 위한 노력의 뉴스들을 먼저 보고 싶습니다.
<<반쪼가리 자작>><<나무위의 남작>><<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이뤄진 3부작 소설<<우리의 선조>>들을 통해 신비하고 환상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을 통한 사회묘사를 선보인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과 세계 문학에 영향을 미친 작가이다. 메마르고 감성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게 해주는 '칼비노'의 언어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흥미롭고 수준높은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이탈로 칼비노'의 후기 작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묘사와 그 묘사를 통해서 생명력을 낳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생명력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독자를 매료시키고 작가의 공간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독자는 '작품을 읽는것이 아니라 작품 속 안에'들어가게 된다. 첵의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는 없는 도시들이다. '마르코 폴로'와 중극의 황제로 등극한 '쿠빌라이 칸'의 대화의 내용은 여행담에 대한 설명이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여행중 방문했던 도시들을 소개하며 모두 55개의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도시에 대한 소개와 각장의 제목 그리고 대화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잘 짜여진 구조이다. 이와 같이 잘 짜여진 구조는 단단하고 튼실한 도시건물의 이미지처럼 책의 전체적인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면적 공간인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열려져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이 안에서 독자는 그야말로 '시공간'을 넘어선 이야기와 넘치는 '창조'의 힘을 보게 된다. 독자는 작품 속 안에서 함께 빠져들어 도시 속을 거닐게 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작가는 도시에 대한 성찰과 메시지를 남겨놓는다. 그의 도시에 대한 성찰의 결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도시를 아우른다. 독자는 '칼비노'의 성찰과 더불어서 그가 찾아내고 말하고 싶었던 의미들을 통해 오늘날을 뒤돌아 보게 된다. '칼비노'의 이전 작품들 처럼 '독자'는 여전히 되돌아보게 됨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긍정적 이미지의 도시들과 부정적 이미지의 도시들 그리고 거대한 도시들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도시화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작가'가 말하는 도시의 문제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의 글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상상력 넘치는 글을 통하여 유토피아를 보여주고 그 도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러한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고쳐나가도 나타나는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존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유토피아의 정신과 이상은 독자로 하여금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삶의 고단함 속에 피어나는 희망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가능성의 선물을 통하여 이야기 되어지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모습에서 우리 마음 속 새로운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탈로 칼비노'가 말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가운데서 독자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쯤 택하여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헨리 제임스'는 영미 문학의 대표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만큼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미국 문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평단처럼 그의 작품은 천재적인 서술 기법과 균형감을 보여준다. '현대 심리소설의 표본'과도 같은 <<나사의 회전>>은 작가 '헨리 제임스'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장르의 모호함을 선보인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여러 복선의 배치를 통한 작품 전개 방식을 통하여 문학사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헨리 제임스'의 작품 <<나사의 회전>>은 인간의 '내면속 두려움'에 대한 지배를 모호함을 통해서 독자의 마음을 잠식해 나간다. <<나사의 회전>>은 영국의 한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던 젊은 여성이 목격한 '유령담'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의 '유령'이 작품 속 세계에서는 그 실체를 구체화시켜서 '화자'의 주변을 맴돌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품은 '블라이'저택에 고용된 '가정교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정교사는 '화자'로서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무언가 숨겨진 비밀을 간직한 저택 '블라이'에서 경험되어지는 신비한 일들은 '화자'가 말하는 '유령'으로 구체화 되어진다. '유령'이라는 작품의 소재는 문학사에 오래된 고전적 소재이지만 <<나사의 회전>>속 '유령'은 그 실체에 있어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유령'의 존재가 공포를 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체를 파악함에 있어서 독자는 '화자'의 심리와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유령'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독자는 '존재한다'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작가의 모호성이 만들어낸 신기루와 같은 신비함이 아닌 '화자'의 심리적 동요와 공포에서 비롯된다. '화자'는 오래된 나사가 천천히 회전하며 들어갈때의 불쾌함 처럼 힘들지만 확실히 '유령'이라는 모호함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블라이' 저택 안밖에 펼쳐진 모든 공간에서 언제 어느때라도 그 실체는 '화자'에게 영향을 주고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수많은 '복선'과 '화자'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그릇된 판단과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독자로 하여금 하게 만든다. 즉, 작품 속 '유령'은 그 실체에 있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유발하는 '화자'의 행동에 기인하여 그 실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모호함'이라는 형식에 기대어서 '논란'을 유발한다. '화자'의 감정과 시점은 다른 '인물'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믿음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심층적 심리묘사를 통해서 작가는 독자들의 '의식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 독자들은 '유령'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심리 공포물'로 다시 '유령'이야기라는 '의식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나사의 회전>>을 통하여 회전하는 사고의 다양성을 통해서 작품을 바라본다면 머리와 끝이 함께 연결된 듯한 작품 속에서 상반된 의견과 생각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유령'과 '가정교사'그리고 '아이들'이라는 확실한 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존재하는 '유령'이라는 존재와의 심리적 사투가 엿보인다. 독자 자신의 판단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흐트러트리는 작품의 내용에 매료된 순간 독자는 '화자'가 느끼는 '공포'와 직면하여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볼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