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크테에서의 만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9
귄터 그라스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의 시간의 반복되는 굴레 과거와 오늘의 간극간에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인간의 탐욕과 이상의 무너짐은 반복되는 <<텔크테에서의 만남>> 가운데 이야기 된다. 시대의 탐욕과 위선을 막기 위한 이들이 모임의 장소인 <<텔크테에서의 만남>>은 작가가 소속되어 있던 47그룹 멤버들의 모습에서 소재를 가져온다. 전후 독일 문학의 회복과 번성을 이끌기 위한 이들은 전쟁의 시기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였다. 작가 '귄터 그라스'는 이들 그룹에 속한 작가였다. 그에게 있어서 47그룹에 대한 영향이 어떠했는지는 작품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30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을 위해 모인 문학가들은 역사적 만남 가운데서 평화를 위한 호소문 작성과정 가운데 문학, 정치, 종교라는 다양한 내용으로 서로 대립하며 갈등과 반목을 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의 호소문을 통하여 평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상을 향한 열망과는 반대로 이면 가운데 숨겨진 본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장면을 보면서 독자는 작가 '귄터 그라스'의 역사의 반복이라는 굴레를 통한 변치 않는 인간의 위선과 탐욕을 바라보게 된다. 300년전에 벌어지는 사건과 오늘의 사건으로 연결하여 설명한 작가의 글은 오늘날 우리 현대사회에서도 반복되는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작가에게 영광과 명성을 주어주며 모임에 대한 추억에 자리한 47그룹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글에서 미워할 수 없는 그리고 마냥 사랑할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슬픔들과 모순을 <<텔크테에서의 만남>>을 통해서 살펴볼때 오늘날의 모순의 사회 가운데 활동하는 현대 문학가들의 모습을 찾아보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가 폴란드 문학가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하여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의 후보자로도 올라간 작가의 뛰어난 능력은 독자들에게 불쾌하면서도 기분이 나쁠수도 있는 주제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 그 끝으로 인도함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욕구가운데서 우리는 도덕과 윤리적 측면 즉 마음가운데 존재하는 법에 의하여 절제하고 자제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포르노그라피아>> 속에서는 이러한 법칙들이 무시되고 부정되며 그것이 위배되는 현장을 보여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 끝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어둡고 습하며 불쾌한 느낌을 가진 어두운 숲 그것도 늪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양차대전당시 무너져버린 질서의 혼돈이 폴란드의 황량한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두 중년 남자의 불쾌한 상상력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포르노그라피아>>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기실 독자의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언가 하나로 딱 요약하기에는 인간 내면의 그로테스크한 부분들이 강렬하여 다른 인간의 욕망들이 묻히는 느낌도 든다. 딱히 무엇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지만서도 이 작품이 보여준 인간의 어두운 면들은 시종일관 불쾌하면서도 그 끝을 봐야겠다는 작심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은 하고 싶지 않다. 작가의 뛰어난 묘사와 관찰의 능력의 끝에 걸린 인간의 욕망들을 마주보기에는 우리 자신은 그 향연에서 함께 즐길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성과 감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활발한 여성작가들의 활동 이전 19세기 이전은 여성작가들이 세상에 잘 소개되지 못하거나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불평등한 사회적 조건들 속에서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당연시 되어오던 그 시절 시대가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작가나 예술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삶도 이러한 암울한 시대 가운데서 빛이 나는 몇 안되는 뛰어난 작가의 삶이었다. 비록 42세라는 짦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글들은 오늘날에도 전해져서 영화로도 만들어져 독자들에게 소개되어지고 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여성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작품 속 로맨스를 전개해 나간다. 살제로도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가슴아픈 사연을 가진 그녀에게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 그리고 이를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 더해진 <<이성과 감성>>은 당대의 현실을 가감없이 반영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야기 되는 '도덕', '이성', '감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의 내용이 이야기 된다. <<이성과 감성>>의 작품 속 주인공인 두 여자매 '엘리너'와 '메리엔'은 책의 제목처럼 '이성'과 '감성'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대립된다기 보다는 한쪽에 치우쳐진 가운데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서히 서로의 영역으로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가운데서 균형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19세기 초 한쪽이 강조되어 다른 한쪽이 상처입는 시대를 로맨스 이야기를 통해서 매혹적으로 설명하는 '제인 오스틴'의 글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보편적인 진솔함을 담아 많은 감동과 미덕을 선사한다.

남녀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제도가 자리하고 있는 이 곳에서 '제인 오스틴'의 사랑의 메시지는 '여성'독자들과 '남성'독자 모두에게 리얼리스트로 이야기 되는 그녀의 솔직함과 성실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감성>>의 두 자매의 로맨스를 통해서 독자는 '이성'과 '감성'의 로맨스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언니 '엘리너'의 '이성'적인 사랑은 오늘날에 있어서 사랑도 감정도 절제하며 통제할 수 있을때 잘못된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라는 인식가 연결된다. 그녀의 사랑은 '감정'에 휩쓸리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발전해나가는 사랑이다. 그녀의 사랑은 남들이 보기에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서서히 시작되어서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성'이 가지고 있는 순서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반면에 그녀의 동생 '메리앤'의 경우 적극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을 중시하는 '감성'파이다. 그녀의 사랑은 주변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며 사소한 문제나 주변에 신경쓰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랑을 표현한다. 두 사람 모두 일종의 배신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대처 또한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두 사람의 사랑과 행동을 바라보며 독자는 과연 무엇이 어떠한 것이 더 좋은 것인지를 선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은 사실 독자의 삶과도 연결되어진다. 로맨스 뿐만이 아닌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성'과 '감성'중 어느 한쪽에 치우쳐져서 선택과 행동을 할 때가 많이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하여 어느쪽이 우월한지를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 둘의 어느 쪽을 택한다고 하여도 결국 그 선택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것은 해석의 차이이지 그것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은 서로 대립하는듯 보여도 어느 한쪽을 부정하거나 버릴수 없는 인간의 내면에 속해있는 영역이다. 반대로 이 둘을 극단적으로 몰고갈 경우 발생하는 문제가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메시지이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서 둘의 극단적인 형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바라보고 이 둘의 조화를 통해서 성장하는 내면을 찾아낼때 더욱 유익하고 풍성한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체로 대문호라는 타이틀 혹은 한나라를 대표하며 시대적 흐름을 주도한 작가들에게는 인격적인 면보다는 극적이며 화려한 범상치 못한 생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이야기는 대상에 대한 전체적인 부분중 극히 일부분만을 이야기 하며 독자들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대상을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뛰어 넘어 전혀 별개의 인종 혹은 존재로 둔갑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한 포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도스토예프스키'를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그 명칭 답게 '도스토예프스키'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러시아의 문학 수준을 전세계의 중심에 세웠으며 체제와 이념 그리고 인간 내면 탐구와 종교성까지 폭 넓은 분야에서 활동하여 문학사에 커타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식함에 있어서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하여 연대기와 작가 소개를 통해서 접하는 부분적 지식들의 합일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체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부분을 알 뿐 전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한 작가를 이야기 할때 빠질 수 있는 오류는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부분에 대한 이해로 전체를 바라볼때 우리 모두는 오류와 편견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 많은 부분에 대하여 알고 이야기 할때 우리는 온전한 '대문호'에게로 한 발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문학사에서 '대문호'로 평가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20세기 작가 '레오니드 치프킨'의 만남은 비록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통해서 뜻 깊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 "현재"의 어느 겨울날 이뤄진 레닌 그라드로의 방문은 19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의 만남의 시작이었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픽션과 다큐의 경계선상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은 아슬아슬하며 위태로운 그리고 숨겨져 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솔직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문호로서의 정신적 위대함의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 이 모든것이 사실은 양면이 아닌 하나로서 그의 작품에 반영되고 소개되었다는 사실이 '레오니드 치프킨'의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통해서 소개되는 것이다.

대문호의 흔적을 따라 올라가 여름날의 바덴바덴에서 드디어 만난 '도스토예프스키' 작가는 이 만남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 세계'를 보여준다. 러시아 문학의 깊이의 정수를 보여준 대문호에 대한 이야기가 작가의 손을 통해서 옮겨진 이 글에서 독자들 가슴 속에서 그 생명력을 꽃 피우게 된다. 부분을 넘어서 전체를 이야기 하는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레오니드 치프킨'과 '도스토예프스키' 두 거장의 새롭고도 독창적인 열정적인 만남의 기록이다.

여름날 그곳에 있는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레오니드 치프킨' 그리고 '독자'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생명의 약동

  <땅,물,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라는 조금 긴 제목의 이 책은 '생명'이 요동치는 내용으로 가득찬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그곳에 직접 두발로 들어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을 체험하고 '생명'을 확인하고 그것을 부둥켜 안음으로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작가의 모습은 자유와 야생 그 자체인듯 보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드러내고 생명의 살아 있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저자의 보고서는 독자에게 야생성과 생명을 일깨우는 생명의 외침이자 자유를 말합니다.

7년간의 기록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원시의 자연을 찾아 지도밖으로 떠난 여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마존과 북극 안데스 산맥과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지구상 야생의 현장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닌 저자의 기록은 7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한권으로 묶여져서 독자들에게 전해집니다.
  때로는 혹독함을 때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우리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은 원시적인 아름다움과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어릴때부터 자연을 향한 동경과 자연 속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지고 떠난 7년간의 기록을 통해 독자는 생명의 본질을 깨닫고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여행자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숲, 빙하, 바다, 사막과 자유를 테마로 각각의 장소에서 체험한 기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혹독함을 말하면서 동시에 평화를 말하는 독자의 글은 때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느낌을 줄때도 있지만 대체로 현장을 직면한 그 순간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독자에게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한 몸부림과 그리고 탐미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동시에 저자의 질문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저자가 던지는 선택지 '정복자'로 남을 것인가? '보존자'로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지도 밖에서 만난 대 자연과 야생성을 방문하면서 그곳에 들어온 문명의 이기주의와 폐해를 전하는 작가의 글은 자연을 여행하는 여행자이자 수호자라는 느낌이 듭니다. 

희극의 무대에서 당신은 주연인가? 조연인가? 관객인가?

  '야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무대이며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들은 '야생'이라는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 '무대'에서 더 넓은 공간 '자연'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자연'의 무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무대위로 올라올것을 초청합니다. '야생성'은 우리 모두의 내면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잊고 지내고 있을뿐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우리의 내면입니다.
  생명의 약동하는 모습을 보고도 집에만 있는 독자들을 향한 저자의 일갈은 고통과 어두움 그리고 삭막함에 굴하지 말고 집 밖으로 나와 무대에 올라서라고 말합니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사시의 주인공인 저자는 영웅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처음 부터 끝까지 여행자로서 그리고 안내자로서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며 그곳을 독자들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생생한 현장감을 살려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무대위에 초대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주연으로 ? 조연으로? 관객으로? 어떠한 형태로든지 무대위로 이끌려서 올라온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선택의 양자택일앞에서 정복자와 수호자로의 갈림길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