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서평단 알림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작은거인 14
오카다 준 지음, 김난주 옮김 / 국민서관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생 교복을 맞추던 오래 전의 그때가 아스름하다. 영화 ‘스윙걸즈’에서 여고생들이 입고나온 검은색 세일러복이 당시 우리들의 교복이었다. 무릎길이의 플리츠 스커트에 상의의 세일러 깃에는 두 줄의 흰색 선이 산뜻했던 교복이다. 일제의 잔재이긴 하지만 당시 입을 때에는 꽤 우쭐한 기분으로 입었다. 입학 당시는 커서 우장 같은 교복이 졸업할 무렵엔 딱 맞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문제는 초등 졸업을 앞둔 무렵과 중학 입학 전까지의 어정쩡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그것은 세일러교복만큼 산뜻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무료하고 황당하고 불안했던 기억으로만 어렴풋하다.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에서는 딱 그 즈음의 시기를 보내야하는 두 명의 남녀학생이 등장한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사춘기의 시절, 뭔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건 더 많은 세상,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 잡다한 꿈은 있으나 명쾌하지는 않고, 아예 꿈이 없거나 그리고 이성 친구에게 생기는 ‘어색하고 서먹한 감정과 긴장과 가식으로 뭉쳐진(p91)’ 묘령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배반하는 건지 그때의 일상 사건이란 얼마나 단순하였던가. 뭔가 신나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는데 눈을 뜨면 여지없이 그 기대를 깨고도 남을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일상을 대변하듯, 이 책은 인물의 구도나 사건이 간결하고 전제적으로 내용의 군더더기가 없다. 선명한 플롯과 명료한 대화의 힘이 종결부까지 이어지고 여운은 오래간다. 세월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오래된 날들의 기억처럼. 오카다 준은 생활 속의 판타지를 그려내는 재주가 놀랍다. 그가 그리는 판타지는 ‘미끄럼틀 아래’에서건 ‘빈 교실’에서건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화려한 판타지 스토리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기대한다면 기쁘게 실망할 준비를 하는 게 낫다. 그렇다면 그럴싸한 기사는 과연 나올까?

 생활 속 판타지는 식사 후 깨무는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것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면서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혼자 꾸는 꿈과 그것으로 인한 희열이 타인에게도 전해질 때이다. 그리고 교감될 때이다. 이 작가는 모자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모험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은 갈망을 잘 이해하며, 해결해 줄 방법을 고심한다. 그에 무기가 되어주는 건 주위에 널려있는 소도구들(후추병, 연필깎이, 삼각자 등...)과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묘한 환상의 경험이다. 그건 자신들이 갈망해오던 것의 현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용은 혼자 있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둘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용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필요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귀엽기도 하다. 책 속에 그려진 전형적인 용의 그림처럼 어쩐지 때려잡기엔 왠지 안타깝기도 한 그런 존재다. 낯선 환경과 낯선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가하는 압력은 개인차가 있지만 누구나에게 스트레스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도 제안할 만한 건, 상대에게 먼저 베푸는 배려의 손길과 다가가는 용기다. 극복하는 자에게만 영광의 시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혼자보다 둘이면 쉽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중간중간에 고딕체로 격언 같은 구절들을 대화로 심어놓았는데 다소 문어체 같다는 느낌은 들어도 이야기를 읽는데 방해꾼이 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기사'라는 중세적인 분위기의 단어와 잘 어울려 고풍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또한 초등 5-6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이야기 전체의 은유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등장인물로 내세운 two-top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의 무게를 어느 한 쪽에도 두지 않고 정서적 역할에 균형잡힌 안배를 한 점도 돋보인다. 책의 두께나 활자의 크기로는 4학년 이상이면 무리없지만 내용의 두께로는 고학년에 적합하다. 이 책의 삽화는, 대개의 판타지 이야기가 자랑삼아 내세우는 현란함을 배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물체만 단순하게 그려놓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더 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일상의 판타지를 즐겨보라.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힘든 시간 중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눈과 두려움을 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카다 준에 의하면, 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는 아량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완성은 없다. 15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난다.
 “그래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었니?” 
 “응, 돼 가고 있어.”
 나는 썩 괜찮은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p93) 
 

결미가 마음에 든다. 우리는 오늘도 ‘돼 가고 있’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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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1-2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이 좋아할 만함 이야기네요~.ㅎㅎㅎ
근데 저는 그럭저럭 되가구 있어,,,,라는 말은 싫어해요~.ㅎㅎ

프레이야 2008-01-21 07: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럭저럭'은 아니고 그냥 '돼 가고 있어'에요.
철학적인 아이라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요.
화려한 스토리는 결코 아니구요. ^^
(그리고, 님, 보낸건요.. 그냥 제맘이에요.ㅋㅋ)
받아주삼~

네꼬 2008-01-2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 속 판타지는 식사 후 깨무는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것이다.

아. 이토록 적절한 비유라니. 제 생활 속에는 어떤 판타지가 숨어 있을까요? 그런 걸 잊지 말고 살자고 다짐해보는 아침입니다. (나름 뭉클한 기분이 되어 쓴 건데 쓰고 보니까 교과서에 있는 말 같아요. 제가 그렇죠 뭐. 킁-)

프레이야 2008-01-21 09:10   좋아요 0 | URL
네꼬냥 굿모닝~~~
저도 오늘 아침 박하사탕 한 알 깨물고 나설래요^^
교과서에 있는 말이 진부한 것 같아도 오래 묵혀서 공감을 얻는 말이니
나쁘진 않지요.ㅎㅎ 뭉클^^ 네꼬 님, 오늘 여긴 비가 와요.
거긴 눈이 많이 오진 않았는지요?
 

고은(古隱) 사진 미술관, 개관 기념 구본창 사진展


 
 
 
 

불교 예술은 현재에도 숨 쉬며 살아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시대적 흐름에 맞는 도구로 담아내며 보여주고 또한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장이 부족하다. 고은문화재단은 특별한 전시관을 마련하여 이런 현실의 답답한 숨구멍을 튀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 영상미디어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사진을 통해 불교와 지역문화를 아우르는 선구자로 나선 것.

고은문화재단(이사장 김형수)은 고은사진미술관(관장 이재구)을 12월 1일 개관했다. 고은 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공익재단으로 이번에 개관한 미술관은 부산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앞으로 고은사진미술관은 국내외 유명사진작가들의 전시기획, 신인작가 발굴 및 지원, 사진 문화의 대중화와 사진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앞장 설 계획이다.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이재구 관장은 “부산은 국제영화제 및 불꽃 축제 등 다양한 행사들을 열고 있다”며 “지역의 문화 발전을 도모하며 국제적 행사를 아우르는 기획을 선보일 것이다”고 밝혔다.

개관 기념으로는 ‘구본창 사진전’을 기획했다. 구본창은 사진은 언뜻 보면 닳고 낡아서 힘없이 갈라져 버린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새것으로의 과거와 당당한 현재 그리고 소멸될 미래가 서로 소통함으로써 사진의 본질인 시간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는 백자(vessel), 비누(soap), 바다(ocean), 그리고 오브제(object)로 구성됐다. 사진전은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이다. (051)744-3924-5
하성미 기자 | hdb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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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구청 맞은편에 위치한 고은 사진 미술관이라고만 알고 찾아갔다.  젊은 사람들 몇몇에게 물어도 모르겠다고 하고 바람은 차고 우리는 길에서 어슬렁거리며 숙덕거리고 있었다. 거의 칠순이 가까워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를 지나가다 듣고서 손짓까지 해가며 자세히 알려주셨다. 새로 생긴 전시관 말이지? 이러시면서. 가보면 좋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번 목요일에 옆지기와 갔다. 현대적인 외관에 절제된 디자인의 내부 전시관이 마음에 들었다. 수수한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모습으로 살짝 들어앉아 있었다. 살청 님의 페이퍼가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2007년 12월1일에 개관하여 지금 첫 전시작품으로 구본창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애초에 1월 18일까지로 예정했으나 호응이 좋아 2월 16일까지로 연장한다고 한다.

일층에는 카페떼리아가 있고 그 내부에도 사진을 전시해두었다. 커피향이 진하게 퍼지는 코너공간을 살린 이곳에는 '바다'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주로 1995년정도의 작품들이었다. 통유리 안으로 내부가 맑게 들여다보이게 되어 있고 나뭇바닥의 느낌이 좋은 아담한 테라스가 밖으로 나와있었다. 전시관은 지하1층과 지상 2층으로 나뉘어있었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닳아져가는 비누와 숟가락, 장갑 같은 것들이 마치 회화처럼 순결한 사진틀 속에 들어앉아있었다. 그의 사진이 전시된 것은 처음 보는데, 미묘한 느낌을 주는 깊고 고요한 세계였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 그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듯 가만히 보고 있으면 쉼없이 뛰고 있는 조용한 맥이 느껴졌다.

시간앞에 우리는 평등하다,는 어느 사진심리학자의 문구가 마음을 끌었다. 우리가 너나없이 평등할 수 있는 건 시간이라는 거대한 비가시적인 존재앞에서 뿐이 아닐까. '시간'은 닳고 말라비틀어져 금이 간 비눗조각이거나 손잡이 부분이 닳아 반질거리는 숟가락 같은 것에 가시적으로 생존한다. 옆지기가 오래 매달리고 있는 주제와도 상통한다. 오래되고 낡아지고 떨어진 것들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옆지기 사진의 눈이 시간의 반추와 회기를 너머 시간의 재생에 대한 열망으로 내겐 읽힌다. 그러고 보면 비슷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음식을 우리는 날마다 이런저런 손맛을 느끼며 맛나게 먹듯이 예술작품이란 것도 창의력의 한계 안에서 고만고만한 것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빚어내는 것이다. 해석의 문제이거나 의미짓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숟가락 사진을 보다 우리가 한살림을 차린 역사적인 날이 생각났다. 1989년 8월 한여름이었다. 그 때 나는 수저 열 벌을 준비했다. 그 중 몇 개는 지금도 버리지 않고 주방에서 쓰고 있다. 요새 산 것들보다 두껍고 무게감이 있다. 손이 닫는 부분의 금도금은 벗겨져 희끗희끗하다. 나는 그걸 버릴 수가 없어 몇 번의 이사에도 데리고 다녔고 지금도 요긴하게 쓰고 있는데, 얼마 전 옆지기가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예전에 신혼살림 장만하며 샀던 장농을 깨어버리자는 그의 말에 얼마나 섭섭하고 억울해서 발끈했던지, 생각해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버린다해도, 버리고 싶지 않은 몇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자 달을 닮은 백자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달이 28일을 주기로 변해가는 모습을 백자로 표현한 것이 특이했다. 대상과 배경의 빛의 대조가 삶의 극명한 대조로 보였다. 빛과 그림자, 흑과 백, 그리고 그 경계에서 허물어지는 그 모든 것들... 차고 비우고 다시 차고 또 비우고.. 생성과 소멸의 무한함과 공허함.

2층에 그의 사진집들을 판매하는 데스크가 있었지만 좀 넘겨보고 사지는 않았다. 열화당의 25,000원짜리가 그나마 가장 저렴한 책이었다. 구본창 작가의 아버지가 영면하시기 전 헐떡거리는 숨을 들이쉬고 계실 때 그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일화로 유명한 그 사진이 책자에 있었다. 숨, 생명, 살아있음의 신호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종종 들려볼 수 있는 사진미술관이 가까이에 생긴 것, 반갑다. 전시 자체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이런 공간이 지역에 생긴 것이 기쁘다. 옆지기는 라이카 부산 전시를 개최하거나 개인 사진전을 먼훗날 갖게 된다면 이곳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나는 맞장구를 치며 문을 나왔다. 이건 창호의 견고하고 심플한 문이 찰카당 하며 닫혔다, 우리 뒤에서.

 

- 2008년 1월 16일 관람

051-744-3924(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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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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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932년 황해도 신막에서 지주 집안(부끄러운 기억으로 담고 말은 잘 하지 않지만)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950년 6월, 해주사범고등학교 재학 중 졸업을 일주일 쯤 앞두고(그때 북한은 6월 말에 졸업식이 있었다고 함) 한국전쟁의 발발로 생의 방향이 뒤틀렸다. 인민군으로 끌려가기 싫어 2층 방 창문으로 뛰어내려 그길로 산으로 도피했다. 그것이 가족과의 생이별이자 영이별이 되었다. 무작정 남으로 향하여 피난길에 오른 그는 발바닥 껍질이 두어 번 훌러덩 벗겨질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동상은 물론이다. 지금도 그의 발은 유난히 두툼하고 거칠다. 문구칼로 자주 발바닥을 긁어낸다.

 

 

 낙동강변에 도착한 그는 주머니에 달랑 들어있던 파커 만년필을 팔아(북한돈은 쓸모가 없었으므로) 단팥죽 한 그릇을 사 먹고 남은 돈을 밑천으로 구포강둑에서 고구마도 팔고 대파도 팔았다. 그는 자수성가하여야 했기에 이산의 슬픔을 곱씹을 여력이 없었다. 일 년 365일 휴무일 한 번 없이 가게일을 하고 여흥이나 관광 같은 건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오로지 성실과 노력으로 살아왔고 (1931년에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서울대를 중단한 박완서 작가와는 달리) 문학상을 비롯해 상 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의 취향은 문학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는 오늘 일흔일곱 번째 생일을 맞는다. 그저께 일요일 저녁, 맏딸이 친정식구들을 모두 초대해 아버지 생일상을 차렸다. “캬! 나이 참 어지간히 많이 먹었다. 그치?” 허허 웃는 홍조 띤 얼굴이 육십 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외출할 땐 선크림을 꼭 바르고 저녁엔 알로에 영양크림을 챙겨 바르는 등 피부관리를 철저히 하는 덕인지. 그의 유일한 오락거리로 기분을 띄워 드리자고 노래방으로 모두 갔다.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섭섭하셨을 게 뻔하다.


 

 그의 많은 이름 중 하나는 ‘나의 아버지’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는 노래방 가서 흥청망청 노래 부르고, 몰려다니며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고 분명 시고 맛없을 거라고 냉소하며 속으론 버럭거렸던 여우와 비슷하였다고 할까. 아버지가 노래방을 좋아하게 된 건 오래도록 생업으로 종사했던 가게를 그만둔 후 언제인가부터였다. 소프라노 음색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는 음치였다. 하지만 그저께 우리는 모두 놀라고 말았다. 음치 탈출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열 곡도 훨씬 넘게 부른 노래 모두 한 번도 책(!)을 보지 않고 손수 번호를 척척 눌렀던 아버지의 반짝이는 기억력 때문이었다. 얼마나 자주 가셨으면?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날도 ‘2348’을 바로 기억칩에 저장하시는 걸 보고 ‘무명의 노년 가수’에 탄복했다. 그건 좋은 기억력의 문제라기보다 의미화의 문제다. 뇌는 내게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을 기억하고 저장한다. 예전에 사전 책장을 뜯어먹듯이 영어단어를 달달 외웠다시던 아버지의 암기력은 인정한다고 해도, 이런 아버지는 분명 아이러니다.

 삶은 아이러니하다는 말은 흔하지만 살아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어쩌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모순덩어리들이 모순덩어리 같은 삶을 요리조리 굴리며 놀 줄 아는 나이가 노년의 여유랄까. 아내가 중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는 당장 죽을 듯이 눈물이 글썽해서 상심해하던 늙은 아버지에게 소박한 식사 한 끼 같이 하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여인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얼마나 짜릿하고 멋진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얼마 전 나는 남편으로부터 넌지시 그와 관련한 말을 듣고 아버지가 품고 사시는 젊음의 샘을 알아버린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술도 안 하고 별다른 취미도 없고 사회적으로 이뤄놓은 것도 없는, 뒤늦게 데뷔한 가난한 무명가수(!)가 무슨 낙이 있겠어.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어야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그래야 살지. 그렇게 사는 거지.

 팔순을 앞둔 박완서의 최근 소설집을 읽으며 노을빛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사로운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애도 여느 누구의 생만큼이나 대하소설 감이지 않은가.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을 독자로 삼는 문학이라면 노년문학은 노년을 독자로 삼아야하지만 이 소설에 노년문학이라는 이름을 단다면 ‘박완서’라는 건재한 노년작가가 쓴 작품이란 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이 소설집은 노년보다 오히려 청장년의 독자가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삶에 대한 이보다 더 예리한 통찰과 유쾌한 반어가 어디 있을까. 한평생 인간에 대한 몰이해와 허풍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틈에서, 등장인물들은 자기 생을 열렬히 사랑하며 폭발적인 젊음을 과시한다. 젊음이란 말이 적어도 ‘생의 열정과 환희를 놓치지 않는 영민함'에 있다면.

 작가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썼다는 글이 독자를 위로하면 좋겠다는 말은 나에게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한 가지 더 있다.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생을 안아주는 법’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마음속에 영원한 그리움의 섬 하나 앉혀두기<그리움을 위하여>, 젊은 날의 외설스러운 순결주의 따윈 비웃어주기<그 남자네 집>, 위선도 용기도 자신 없지만 생의 소박하고도 느글느글한 것들을 짐승 같은 식욕으로 먹어치우며 순간순간 엑스터시 맛보기<마흔아홉 살>,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아주고 온몸의 갈라진 틈새에 고향냄새(광범위한 모성) 스며들게 하기<후남아, 밥 먹어라>, 대충주의나 책임회피성 두루뭉수리에서 벗어나 거저는 사절하고 책임감 갖기<거저나 마찬가지>, 알아듣기보다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운 새로운 사실들 앞에서 마음의 촛불 꺼지지 않게 하기 그리고 (비아냥거림 섞인 말이지만) 서로 불빛을 확인하는 거리에 사는 걸로 관계맺기에 만족하기<촛불 밝힌 식탁>, 생이 내리는 통증마저 내 존재감을 위한 것이라 여기고 오롯이 ‘나’로서 자신을 사랑하기<대범한 밥상>, 치욕을 견디는 더 큰 사랑으로 삶을 자유하기, ‘죽음’을 던져서 갱생하기<친절한 복희씨>, 그럼에도 낙천성을 잃지 않고 남이 내게 축복이 되듯 남에게 나도 축복이 되기<그래도 해피엔드>.

 

 

 김점선 화가가 그린 표지의 선물보따리를 풀면 소박해 뵈는 이야기 속에서 전개되는 의외성과 놀라운 반전, 허를 찌르는 문장들이 속도감 있게 내달린다. 전체적으로 한 문단의 길이가 꽤 긴 편이라 호흡을 길게 하여 죽죽 타고 읽어 내려가는 맛이 있다.

 이 소설집의 재미는 여기서만이 아니다. 청년 같은 노년의 그가 걸쭉한 입담으로 실컷 갖고 요리한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 병폐와 사람들의 위선적인 시선을 꼬집는다. 황혼녘에 선 노인의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한 무지, 방만한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의 풍경, 여자들(고부 혹은 친구) 간의 이질감과 반목을 낳는 가부장적 사회의 잔재, 입양천국, 이기적 핵가족화, 노인의 성과 복지, 수치스러운 거지근성과 만연한 학벌주의. 그리고 말 한 마디의 축복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무례한 인간들의 악한 본성에 한 방 먹인다. 점잖게 한 방 맞으면 오히려 시원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박완서 작가와는 1년 차이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나의 아버지, 그리고 <친절한 복희씨>, 당신들이 있어서 나도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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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01-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궁금했어요^^

비로그인 2008-0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부지.. 음.

멋진 리뷰입니다. 혜경님
추천!!! 하하


순오기 2008-01-1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감동이에요! 꾹~~~~~
이 책을 사기는 두권이나 샀는데, 나보다 세살 위 언니 두분(친언니와, 이웃 친정언니 같은 언니)의 생일 선물로 드려 아직 못 읽었어요.

프레이야 2008-01-16 21:36   좋아요 0 | URL
오기언니 읽어보심 무지하게 마음에 드실거에요.
전 박완서가 부러워요^^

향기 2008-01-1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혜경님 ^ ^
오랜만에 들렀다 가요 ,
주말에 시험 끝나고 꼭 읽어봐야겠어용 ~

프레이야 2008-01-16 21:37   좋아요 0 | URL
향기 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주말에 시험 잘 보세요!! 서재에 올만에 가보니 신포도와 여우
이야기가 있더군요.^^

네꼬 2008-01-16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어야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그래야 살지. 그렇게 사는 거지.


줄줄이 어쩌면 이렇게 정갈한 글인지.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감동적인 혜경님글에, "오늘도 감동 먹고 갑니다" 2. 혜경님, 고맙습니다. 추천을 두 번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08-01-16 21:38   좋아요 0 | URL
네꼬냥, 어여 오세요.^^ 히죽 웃고 있는 네꼬 얼굴 보면 얼마나
즐거운지요. 고맙습니다.^^
 
울타리를 넘어서 베틀북 창작동화 7
황선미 지음, 한병호 그림 / 베틀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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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암시하듯 ‘울타리’는 물리적이라기보다 사람들 마음속의 장애물을 말한다. 이 책은 4편의 단편동화가 묶인 것인데 황선미 작가의 예전 동화와 신작이 함께 있다. 예를 들어 ‘앵초의 노란집’과 ‘괭이 할아버지’ 같은 것은 오래 전 작품이다.

 황선미는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갖는 작가다. 그는 ‘늘 푸른 자전거’에 대한 나의 (알라딘에 올린) 리뷰를 읽고 메일을 보내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골 깊은 애정이 진실 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충실한 작가에 대한 믿음에 감동했다. 여러 해 전 내가 어린이 독서지도와 관련하여 공부를 할 때 한 어린이서점에서는 독자들 가까이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려주었는데 영민한 눈동자를 빛내며 그린지대의 아파트 단지화와 어린이 도서관의 부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동화 밖에서나 안에서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은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건전함과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려는 자상함에서 나온다.

 이 책에 담긴 4개의 이야기도 작가 특유의 생활동화다. 이야기의 발단은 언제나처럼 소소하다. 집이나 학교, 동네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이야기의 소재로 끌어온다. 표제인 ‘울타리를 넘어서’에서는 실제의 울타리를 등장시키지만 나머지 3개의 이야기에는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쌓은 마음속 울타리를 내세운다. 이야기는 친구 사이의 울타리와 이웃 사이의 울타리로 나뉜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주인공 아이들이 동물이나 노인에 대해 갖는 편견의 울타리도 들고 나온다. 물론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들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울타리를 넘는 과정이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수수하니 펼쳐진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의 방식은 과장되지 않으면서 세밀하다. 툭 흘리듯 하는 대사나 비유적으로 배치한 소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부담없이 잘 읽어냈다. 아이들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울타리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보였던 이웃과도 어떻게 마음의 울타리를 허무는지, 소박한 이야기의 힘이 크다. 예전의 작품 둘은 조금 도식적인 결말이지만 요즘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많다못해 황당한 내용의 동화도 있는데 비해 일상 속에서 소박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꾸밈없는 이야기가 은근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관계맺기에 서툰 나는 이런 동화를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면 내 마음의 울타리부터 허물고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어느 서재주인처럼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자기 생을 사랑하는 길은 울타리를 허물고 먼저 다가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어른들보다 낫다.

 

 삽화는 '황소와 도깨비'등의 그림책에서 소박하고 정감 가는 그림을 그려준 한병호 님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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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있는 작가의 새 작품 찾아 읽기를 잘 해야 하는데, 저는 예전의 작품들만 뒤적이고 있어요. 어제 어머니독서회 첫 토론회로 황선미작가 읽기라서 '들키고 싶은 비밀, 나쁜 어린이표, 일기 감추는 날'등을 이야기 했어요.
님의 서재에서 새 책 알고 저도 울타리 허물아야겠다 생각하며 등교합니다. 감사^^

프레이야 2008-01-08 15:29   좋아요 0 | URL
독서회를 이끄시느라 늘 좋은 책을 찾고 눈과 마음을 열어두시는
오기언냐, 존경해요. 이 책은 저학년용 동화로 읽기에 좋아요.
2-3학년 정도^^

비로그인 2008-01-0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천천히 마음속을 여는 것이 보여요.
그것이 황선미 작가에게도 전달된 것이겠지요.
작가에게서 직접 메일을 받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요?
님의 리뷰는 멋지고, 황홀하다기보다
머릿속으로 사악~ 스며듭니다.

프레이야 2008-01-08 15:30   좋아요 0 | URL
황선미작가는 정말 한마디 한마디를 어찌나 정성스레 내뱉던지
듣고 있자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말처럼 글도 그렇구요. 승연 님, 늘 칭찬에 힘이 납니다.^^
내일 우체국 갈거에요^^

2008-01-08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8-01-0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선미, 저도 좋아합니다.
찾아 읽을게요.

프레이야 2008-01-09 16:39   좋아요 0 | URL
그죠? 이야기마다 어찌나 다 마음에 드는지요.^^
 
평론가 매혈기 - 글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킨 한 평론가의 농밀한 고백
김영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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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삼관 매혈기’를 쓴 위화를 만났던 기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지 저자는 ‘매혈기’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위화의 대답은 그의 진지함을 희석시키는 것이었지만 책은 다소 비장감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요즘 자주 비유되는 낱말에 ‘연애’라는 게 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는 의미일 테다. 조금 식상하게도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영화를 만나는 일을 그것에 비유하고 있다.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할 것 같은 ‘연애’에 지성이 우선할 것 같은 평론이 잘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읽어보면 그는 피를 팔고 다시 피를 수혈 받듯이 영화평론을 쓴다는 대목에서 지독한 ‘연애’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김영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나는 전혀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었다. 그의 글을 읽어본 것도 이 책이 처음이다. 평론가 매혈기,라는 제목으로 오른 리뷰에 호감이 가서 읽게 된 책이다. 게다가 내가 조금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의 글이라고 하니 군침이 돌았다.

 그가 영화와 연애를 한 시기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 3부로 나뉜 내용 중 첫 번째 장은 주로 그의 연애사라고 보면 된다. 간명하고 힘찬 헤밍웨이의 문장을 좋아한다고 썼듯이 그의 글도 꽤 간결하고 담담한 편이다. 이 책에 언급된 영화 제목은 모두 206편 정도가 된다. 내가 보았던 영화도 있지만 못 본 영화들이 물론 훨씬 많다. 그 중 관심이 가는 것들은 챙겨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기며 하나씩 메모를 해 보았는데 무협영화에서부터 우리나라 영화까지 무작위로 오고가며 영화와 감독, 사람과 세상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의 주관적인 간택을 받은 감독들이다. 그의 영화 애정사를 보면 역시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의 깊이와 집요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2부에서는 특정 감독과의 조우를 통해 느낀 바를 술회하고 그 감독의 개성적인 부분을 사랑하게 된 내력을 읽을 수 있다. 3부에서는 영화 연애사에 깊이와 통찰을 더해준 위대한 국내/국외 영화감독들에 대한 이야기와 유명한 영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소제목으로 그 감독들의 이름을 적어두었더라면 후일에 다시 찾아보기에 편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는 객관적인 평론이거나 직관적인 감성으로 종횡무애 하면서, 일면 재미있는 비화들도 엿들을 수 있다. 관심이 가는 영화들이 많았다.

 글은 술술 읽힌다. 어느 감독과 만났던 인상적인 기억들도 들을 수 있고 어느 영화에 얽힌 자신만의 기억과 생각의 변화들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내게 의미가 있다면 영화를 보는 것은 인간(영화 속 인물이거나 감독이거나)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게 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듯하다. 비현실적으로 어두컴컴한 극장을 나오는 순간 과연 인간은 나아지고 있는가. 욕망이 꿈틀대는 그 작은 의자 공간 속에 푹 파묻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인간은 어느 한 순간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적어도 인간적인 그 무엇에 기준 한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책에서 읽게 된 가장 인상 깊은 감독으로 허우샤오시엔과 아네스 바르다를 꼽고 싶다. 허우샤오시엔은 '영화가 생활을 카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자신의 영화가 대만에서 인기가 없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영화감독은 관객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훌륭하다, 관객의 입맛에 혹은 독자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아네스 바르다는 “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가벼움이 온다. 누군가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거나 비평받는 걸 두려워하는 감정이 없어진다. 내가 아무리 초연하려 해도 노년은 이미 내게 다가왔다.”라고 말하며 “좋아, 이제부터 이삭 줍기를 하는 사람들을 찍으러 가자. 나의 무거움, 사회적 책무를 갖고 영화를 만드는 나의 무거움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삶과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하는 나의 가벼움의 산물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늙은 손을 직접 비추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찍은 할머니 예술가다. 평론가 김영진이 존경해마지 않는.

 평론은 예술 작품을 텍스트로 한다. 지상의 어느 평론가도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피를 뽑아 쓴다기보다, 작품의 피를 빨아먹고 또 새롭거나 조금은 다른 형의 피를 불어넣기도 하는 평론이란 작업에 얽힌, 그만큼 꼬장꼬장하면서도 겸손한 영화 평론가의 밀담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내밀하지 않은 게 되어버렸지만 공유된 직관과 경험이 읽는 맛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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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사 놓기만 하고 손 안 댔어요~~ 그래서 2008년은 일단 지름신을 묶어 두고 있어요. 님의 리뷰 읽으니 빨리 봐야할 것 같지만, 워낙 밀린게 많아서 언제 차례가 올지ㅠ
우리 같은 G조라서 너무 반가워요! ㅎㅎ 사실은 경쟁관계인데도 말이죠! ^^

프레이야 2008-01-04 13: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도 벌써 지름신 강림하사 어제 한 박스 받았어요.
책 두권에 음반 둘, 채플린 전집 디비디로다가..
있는 거나 잘 읽고 봐도 될텐데 말에요.
우리 조 아자아자 잘 해보자구요^^ 님이랑 한 조라서 헤벌쭉이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