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지구의 크기를 재다 -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구석구석 세계 지리 이야기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세상이야기 8
장수하늘소 지음, 이현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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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제목은 처음 지구의 둘레를 잰 에라토스테네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따온 제목이다. 다섯 번째 장에 그 과정과 오늘날의 것과 오차가 생긴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소제목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구석구석 세계 지리 이야기’는 아이세움 시리즈로 나온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의 연장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6학년 정도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권할 만하다.

 서문에서도 밝혀두었듯이, 지리 이야기라고 하면 지리학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은 천문학, 인류학, 지질학, 역사학, 기상학, 동식물학, 풍수지리 그리고 지리상의 발견 등을 포함해 인간의 생활과 직접 간접으로 관련되는 모든 것들을 기원전의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소 두서가 없어 보이지만 모두 30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마다 먼저 쉽게 읽히는 옛이야기 하나를 두고 상세한 정보와 알아야할 용어 같은 것들은 다시 두 꼭지로 덧붙여 정리하여 보여준다. 각 장의 끝에는 다시 한 꼭지를 두어 알쏭달쏭한 점이나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풀어준다. 각 장의 제목이나 순서에는 유기성이 부족하고 각 장마다 반복되는 구절이 가끔 나오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알차고 흥미롭다. 어려운 용어는 배제하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고, 무엇보다 다른 지리이야기 관련책이나 지리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자극을 준다. 6학년 아이들과 읽었는데 사회와 과학 과목에 좀 약한 아이들은 읽기 어려웠는지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곁들여 설명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더 흥미로워하였다.

 지리학이라고 하면 지도나 지형, 탐험이나 탐사 하물며 풍수지리 같은 영역에 한정하여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하나의 소분야이거나 지리학의 방법적 차원에 불과하다. 지구는 비밀의 공 같다. 46억 살의 지구가 생성된 이래 지구의 비밀은 상당한 부분 밝혀졌고 지금도 연구되고 있지만 앞으로 밝혀질 비밀이 더 많이 숨어있을 것이란 가정이지리학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이고 미래에 혹시 지리학을 탐구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책을 읽다보면 땅의 이치를 말하는 지리(地理)는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지리(地利)가 되어야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1400년 경 포루투갈의 엔리케 왕자 이후로 200년간 열린 ‘지리상의 발견 시대’와 관련하여서는 생각해 볼 거리를 짚고 짧은 토론시간을 갖고 넘어가면 좋겠다. 서구 강대국들의 '탐험과 발견'이 원주민들에게는 '침략과 말살'의 잔혹한 역사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명나라의 정화가 이끈 대탐험의 이야기도 아이들은 꽤 흥미로워했다.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중국의 종속국을 만들고 무역을 하던 정화의 탐험이 중단을 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은데,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땅으로 알고 발견한 시점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근처에서 발생한 쓰나미도 설명한다. 쓰나미의 원인을 알면 쓰나미는 대비할 수 있었던 인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지각판의 충돌로 생긴 단층 위로 바닷물이 출렁이며 바다 밑에서 해일이 일었고 그것이 해변에 도착하면 속도는 느려지지만 파고는 수십 미터로 엄청나게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는 쓰나미가 전달되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서 지진파를 감지하고 쓰나미 경보제를 이용하여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 칠레 같은 나라는 쓰나미 경보 센터를 두었다고 한다. 쓰나미는 ‘해안’을 뜻하는 ‘쓰’와 ‘파도’를 뜻하는 ‘나미’가 합쳐진 말로, 일본에서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일본어로 생긴 말이다. 그리고 지구환경과 관련하여 엘니뇨와 라니냐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두었다. 이렇게 지리를 알면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자연환경도 이롭게 다스릴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지리학이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보니 책의 내용도 광범위하긴 한데, 따로따로 꼭지마다 읽어도 무리없다. 몰랐던 재미있는 내용 한 가지가 있다. ‘태풍의 이름은 누가 지을까?’ 라는 꼭지다. 태풍의 이름은 여러 과정을 거쳐 2000년부터는 태풍의 영향을 받는 14개 나라에서 제출한 10개씩의 이름을 모아서 번갈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북한도 그런 나라들 중 하나인데 각각 제출한 이름이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게, 재미있다.

 우리나라 -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나비
 북한 -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


 '옴파로스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옴파로스 증후군은 내가 있는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고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 사람이고 이런 사고가 권장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 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지리(地利)의 우선 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과 편견, 침략과 강탈, 거짓과 왜곡은 이런 증후군에서 나온 게 아닐까.

 

 

 

* 오자로 보이는 것 : 바다 밑에서 발행한 해일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는데,...(p165)
                                                ----> 발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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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9-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파로스 증후군이라구요?
음...또 배우고 갑니다, 혜경님.
꾸뻑.

프레이야 2007-10-01 10:08   좋아요 0 | URL
옴파로스는 예전에 중저가 브랜드 옷 이름으로 들었는데, 그게 배꼽, 중심 그런뜻의 라틴어더군요. 옴파로스 증후군은 이 책에 한 페이지로 설명되어 나오는 용어에요. 저도 그런 증후군이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꼭 중심이 되어야할까요? 주변인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바람결님.
댓글저장
 
구비구비 사투리 옛이야기 - 사투리로 들려주는 팔도 옛이야기
노제운 글, 이승현 그림 / 해와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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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옛이야기의 마력은 뭐니뭐니해도 구수한 입담에 있다. 내가 처음 마음에 들었던 옛이야기는 서정오님이 쓴 옛이야기 시리즈 열 권인데 모두 간결하고 걸죽한 입말로 쓰여있어 읽는 재미가 더했던 기억이 난다. 옛이야기는 구전되어 온 이야기이니만큼 들려주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배가하면 이야기 전달 방식에 호감이 더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많고 많은 옛이야기책들 중에서도 흥미를 더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저자는 각 지방의 사투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투리는 각 지방의 특색과 사람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 듣고 있자면 그들의 정서가 푸근하게 느껴진다. 표준말이라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해져있지만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가 표준말이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투리, 하면 우스운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 4학년 방학 때, 큰이모가 살고계셨던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며칠동안 그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서울촌놈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내게 물어왔고 나는 답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거기선 뭐라 그래? - 응, 괭이... 이런 식이다. 난 서울태생이다. 다섯 살 때 부산으로 이사오지 않았더라면 서울말을 쓰고 살고 있을 터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올씨다. 아이들은 어울려 놀다보면 그곳의 말을 금세 배운다. 서울 아이가 부산 아이와 놀면서 금세 이곳 사투리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부산에 이사 온 후 엄마가 놀랐던 일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 뛰어들어오며 어린 내가 완전히 부산말을 쓰더라는 거다. 아침까지만 해도 깜찍하게 서울말을 쓰던 애가 그랬으니 얼마나 우스웠겠나. 사투리에는 그만큼 낯설면서도 동화하기 쉬운 정감과 유대감이 있나 보다.

 이 책에는 제주도를 비롯해 아홉 개 도의 대표적인 옛이야기를 꼽아, 모두 9개의 옛이야기를 추려 실었다. 모두 ‘한국구비문학대계’와 북한 지역의 설화가 가장 많이 실려 있다는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전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에서 뽑았고 각 도별 이야기 뒤에는 참고한 지역의 출처를 밝혀두었다. 아이들이 이것까지 읽지는 않겠지만, 전해오는 옛이야기들을 두루 꼼꼼히 뒤져서 선별한 공이 느껴졌다.

 저자는 각 지역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도움으로(예를 들어 충청도는 강정규 선생) 사투리를 구사하여 썼지만, 모두를 사투리로 옮기는 건 무리이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사투리를 골라 썼다. 그리고 특징적인 사투리의 표준어를 괄호 속에 바로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각 이야기마다 해학과 기지가 넘치고 힘없는 백성의 통쾌한 승리감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우리 옛이야기의 장점이 사투리로 인해 반감되는 일은 없다. 눈으로 읽지 말고 소리내어 읽어보면 훨씬 재미있다.

 

 

 3학년 아이들과 읽었는데 아이들 모두 무척 흥미로워했고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단지 북한 사투리와 제주도 사투리 같은 경우는 아주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 낯설어했지만 사투리를 알 필요가 있겠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사투리 옛이야기 경연대회도 열어 보았는데 각자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골라 사투리로 읽어보았다. 경상도 이야기는 비교적 쉽게 읽었고  제주도를 고른 아이는 좀 힘들게 읽었지만 재미있어 했다. 강원도 이야기를 읽은 아이는 마치 자기가 강원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익살을 부렸다. 모두 사투리 옛이야기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이 책은 삽화도 내용 못지않게 장난기 가득하다. 한지 느낌이 나는 누런 색을 입힌 종이에 거칠고 굵은 검정 윤곽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슥삭슥삭 그린 것 같은 붓의 느낌이 생동감을 준다. 하나같이 인물의 생김새를 단순하면서도 과장되게 그려 웃음이 절로 난다.

 내가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경상도 것인데 제목은 ‘똥 싼 바지 잃고 눈물 흘린 사돈’이다. 시집간 딸의 눈물겨운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도 그렇거니와 주접을 떠는 난장판 사돈의 행색이 우스꽝스러워 배꼽을 잡았다. 아래 대사와 함께 그려진 삽화가 제일 생동감 난다.

“이노무 똥개 셰끼, 내 바지 도(줘)! 내 바지 도!” (p60)

 이 책에 조금 더 바란다면, 아직 우리나라 지도에 익숙하지 않고 행정구역에도 낯선 아이들을 위해 우리나라 지도를 넣고 각 도별로 색으로 표시하던지 하여 각 도의 이야기와 연결해 주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지형적인 특징과 함께 사투리의 특색에 대해서도 공감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한 가지, 생각하게 된 점은 옛이야기의 무차별 패러디에 대해서다. 우리 옛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도 패러디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옛이야기가 갖는 원래의 미덕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저자의 머리말이다. - “옛이야기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슬픔과 분노, 기쁨과 희망을 비추는 마법의 수정구슬입니다. 그 곳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미래의 내 모습이 펼쳐져 있지요. 또한 그곳에는 나약한 어린이를 멋진 어른으로 키워 주는 신비한 보물이 숨겨져 있답니다. 그런데 만약, 옛이야기의 내용을 함부로 고치거나 지워 버린다면, 마법의 수정 구슬은 금이 가고 깨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출 수 없게 되지요. 이 모든 것은 옛이야기 본래의 모습으로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 해석이 가미된 패러디가 주는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옛이야기 고유의 미덕을 그대로 안는 순수한 즐거움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닳고닳아 반질반질해진 수정구슬이 아니라 먼지가 묻어있는 채로, 손때도 묻어있는 채로, 별로 반짝이지 않아도 은은한 빛을 발하는 그런 수정구슬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본래의 모습을 갖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가 사투리로 인해 더 잘 전달된 것 같다.


책의 뒤에는 9개 이야기를 수록한 CD 두 장이 첨부되어 있다. 성우가 들려주는 사투리 옛이야기인데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대로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각 지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원색적인 목소리면 더 좋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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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사투리버전의 우리 옛이야기 관심집중, 강추!

프레이야 2007-09-29 00:01   좋아요 0 | URL
소리내어 사투리 구사하며 읽으면 무지 재미나요~~
전라도 사투리로 부엌이 '부샄'으로 나오던데 맞나요?

바람결 2007-09-3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교회에서 '농부 하나님'이란 찬양을 부르다가,
이 흥겨운 노래를 사투리로 부르면 참 재밌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수정구슬'같은 옛이야기들, 사투리들, 낡고 먼지낀 아름다움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는, 멋진 어른으로 키워준다던 그 옛이야기에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흠뻑 취해보고 싶군요.ㅎㅎ

프레이야 2007-09-30 20:1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농부하나님요? 가사가 궁금해지네요.
경상도버전으로 부르면 투박하려나요? 정감 있으려나요? ^^
낡고 퇴색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자꾸 눈이 가는 건 세월의 흐름을 탄다는
것일까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싶네요, 저도.
주일 평안히 보내셨지요?

바람결 2007-09-30 23: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세월의 흐름을 타는 것 같아요.;;
정말 막걸리 한 사발 해야겠어요.

그나저나 무탈하고 평안한 주말을 보내셨다니 참 좋네요.
게다가 말그대로 '앙큼한' 따님의 마음이
막 전해지는 것 같아 더 좋네요.
달란트 잔치에서 주방장갑을 사오다니,
정말 여간내기가 아닌가 보군요.ㅎㅎ

따님도 예쁘고, 혜경님도 참 행복하시겠어요~^^

그리고 농부하나님이라는 노래는 조만간 올려놓아볼께요.
참 좋은 노래에요.^^

프레이야 2007-10-01 00:00   좋아요 0 | URL
네, 농부하나님 가사 기대하고 있을게요.^^
열살인데 그 앙큼함 때문에 제가 아주 몸살이 납니다.ㅎㅎ

한숲 2007-10-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방언과 표준말 수업들어 갔는데 딱이 겠네요. 하나 사서 아이들과 읽어야 겠어요. 감사

프레이야 2007-10-15 17:07   좋아요 0 | URL
초등 2,3학년 정도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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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팔기 대장, 지우 돌개바람 12
백승연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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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는 상상력의 발동은 인간 중심의 가치체계와 일상으로 굳어진 상식의 관념들에 균열을 내면서 ‘저 너머의 푸른 세계’로 우리를 손짓한다. -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p24>, 원종찬/창작과비평사 중

 '저 너머의 푸른 세계'로 향하는, 판타지는 특히 아동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자 형식이다. 판타지는 열림의 형식을 취하고 회생의 내용을 담는다. 더구나 판타지의 묘미는 철학적 메시지에 있는데,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판타지가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소산이라 하더라도, 그 핵심은 역시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철학에 달려 있다’고 재삼 확인하고 있다. 판타지가 현실의 불안정함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작동하려면 그 안에 건강한 철학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황당무계하기만 한 이야기가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건강한 철학이라 해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웃도는 기존의 교훈주의 동화들에 식상해진 지는 오래다. 아이들이 갖는 현실에서의 압박감은 나날이 경쟁적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져간다.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보면 '놀기'는 사치품목 같이 여겨질 정도다. 이 책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함께 놀아주라고 말한다. 물리적인 자연의 시간을 벗어나 마음의 시간이 작동하는 판타지의 세계는 꿈이고 소망이다. 그 세계에서 아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마음껏 즐기고 모험을 하며, 위기를 넘기고 구원을 얻는다. 그러고 나서 돌아온 현실의 세계는 어느새 아이의 마음속에서 달라져있다. 세상은 같으나, 결코 이전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한 눈 팔기 대장, 지우>는 장점이 많은, 판타지 희곡이다.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저학년 도서로 참신한 기획이 돋보인다. (일상에 널려있는)환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유쾌하게 읽으면서 진지한 생각을 얻게 되는 장점도 있지만, 동화의 서술방식을 과감히 뛰어넘은 극본 형식이 우선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은 연극을 하나의 놀이마당으로서 좋아한다. 무대가 여의치 않으면 작은 가면이라도 만들어 쓰고 일인다역을 하는 역할극에도 흥분하는데, 제대로 된 극본을 들고 무대를 꾸미고 각자의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 책은 아이들의 그런 심리를 잘 알아서 나온 책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려줄 수 있는 독서활동이 될 것이다.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한 판 질펀하게 논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읽기에 그치지 않고 여럿이 함께 역할극 또는 연극이라도 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넘은 점 이외에도 소재면에서도 과거와 현대의 것이 조화롭다. 특히 우리 것을 소재로 우리 정서를 담았다는 점이 또한 매력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수룩하지만 뻔뻔한 도깨비가 등장하고 아이들의 정신적 스승 격으로 92세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달맞이꽃에서 달토끼로 이어지는 '달'의 은근한 정서도 그렇지만, '달'은 판타지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달의 역할을 떠올려보면. 이 책에서는 달까지 정말 모험여행을 가게 된다는 점이 다른데, 그곳까지 가는 교통수단으로 아주 현대적인 것이 등장한다. 희곡이니만큼 대사의 맛이라면, 우리의 전래동요 같은 노랫말을 대사에 담고 그 가사도 반복적인 짧은 글귀를 리듬감 있게 배치하여 부르는 맛이 흥겹다. 역할극을 할 때면 아이가 마음대로 곡을 붙여 불러보도록 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대사도 간결한 언어로 마치 노래를 부르듯 운율감이 있다. 노랫말도 대사도 정겹고 소박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모두 7막으로 나아가는데 장은 따로 없고 대신 무대장치를 할 수 있는 해설이 비교적 자세한 편이다.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게 배치한 장치가 깜찍한데 책에선 삽화로 보여 주어 연극무대를 꾸민다면 참고가 될 것이다. 지문은 의도적으로 생략했는지 어느 대사에도 없는데, 오히려 역할을 맡은 아이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독창적으로 대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보인다. 마치 뮤지컬의 양식처럼 중간중간에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연극 전체를 신나게 끌어줄 것이다. 책 전체를 어른과 아이가 번갈아 가며 역할극을 하듯 소리 내어 읽으면 독자가 연극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어 색다른 읽기경험이 될 것이다.

 지우는 한 눈 팔기 대장이다. ‘정신없고 말 많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진짜 지우다. ‘똑똑하고 착하고 얌전한’ 지우는 어른들의 환상일 뿐. ‘한 눈 팔기’는 거침없는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동심을 믿을까, 변덕을 믿을까. 우리 아동문학이 동심주의의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아이들은 끝없이 한 눈 팔고, 돌아서면 방금 들은 말은 잊어버리고, 이랬다저랬다 변덕도 죽 끓듯 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잔인한 일면도 있다. 열 살이면 다 컸지, 라고 생각한 나도 근래 연이어 아이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내 잣대로 기대치를 만들고 아이를 너무 믿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 뭔가. 하지만 그런 성향은 따지고 보면 어른들도 매한 가지로 갖고 있으면서 잘 눌러서 포장하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어떨 땐 인형 엄마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땐 어엿한 형이나 누나가 되기도 한다.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이들은 변신의 귀재다. 어제와 오늘, 가만히 보면 아이는 또 달라져있다. 지우는 어느 날 빗자루 도깨비가 된다. 빗자루 도깨비는 지우가 되고. 지우는 남몰래 자기가 도깨비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거나, 빗자루를 보며 도깨비를 상상했던 건지도 모른다. 지우의 모험은 예상을 불허하며 이리 튀고 저리 날고 하는데, 그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이 갖는 아련한 이야기의 추억 한 자락, 물질의 가치에 묻혀 잊혀져가는 것들에 그리움을 보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적어놓진 않았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공감될 정도로 군소리 없이 적혀있다.

- 달토끼 : 아, 정말 너희 그 절굿공이 도깨비를 아는구나. 옛날엔 내가 절구질 할 때마다 잘도 나타나더니 로켓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부터는 통 만날 수가 없어. 사람들이  도깨비 생각을 잘 안 해 주나 봐. 사람들 기억이 있어야 여기도 자주 오고 그럴  텐데. 하긴 후유-사람들이 생각 안 해 주긴 나도 마찬가지지만. (p108)

지우는 갖가지 모험을 겪고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을 얻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우는 또다시 한 눈을 팔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잘 생각하기만 하면 어려움이 풀린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네가 나인 줄 알고, 내가 너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달토끼와 할아버지가 지우에게 말한 아래 대사도 새겨볼 만하다.

- 달토끼 : 그런 사람 많지. 뭐가 뭔지 잘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누군지 몰라 헤매는  사람, 로켓이 뭘까 잘 따져 보지 않고 고생만 하는 사람. (p110)

할아버지 : 그렇단다. 내가 말이다. 한 백 년쯤 살아 보니 그런 일이 있더라.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남인 줄 알고 사는 일, 남이 남인 줄 모르고 난 줄 알고 사는 일, 도깨비에 홀린 것 같은 그런 일 말이다.(p123)

 지우는 학교 가는 길에 한 눈을 팔았지만 이제는 돌아와 '학교로' 간다. 그런데 어제까지 가던 학교가 아니다. 여전히 받아쓰기를 하고 셈공부를 하고 이상한 노래를 배우겠지만 더이상 어제까지 배우던 시시한 것들이 아닐 테다. 더구나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꽃 한송이, 가로등, 빗자루 몽댕이 하나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문득, 등교할 때마다 지각을 자주 한다는 친구 딸이 생각난다. 하루는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벌레도 보고 그러며 오느라 늦었다고 선생님께 말했더란다. 친구는 그런 딸에게 '그래도 꽃을 꺾지는 마라'고 말해주었다는데...  한 눈 팔기 대장을 남자아이만으로 내세운 것이 좀 걸린다. 한 눈 팔기 대장에 버금가는 여자친구와 동반하여 똑같이 모험을 즐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아래 내용을 보면, <한 눈 팔기 대장, 지우>는 ‘마당극’으로 연출하면 더욱 좋겠다.

빗자루 도깨비, 관객석에 내려가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빗자루 도깨비 : 얘, 너도 도깨비 맞지? 괜찮아. 나만 알고 있을게. 도깨비 맞지? 아니라고? 이상한데......

빗자루 도깨비가 자리를 옮겨 가며 다른 관객들에게도 계속 묻는다. (p37)

 

이렇게 독자를 이야기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읽기 경험과 역할바꿈의 신명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도이고, 거기에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무겁지 않게 안겨주어 마음에 드는 책이다. 초등 1-3학년이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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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9-2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읽으려고 챙겨 놨는데! 원종찬 선생님 글 인용하신 것까지만 읽고 얼렁 스크롤 내렸어요. 혜경님은 위험인물이야!!

프레이야 2007-09-28 16:45   좋아요 0 | URL
ㅋㅋ 위험인물이라우~ 님 혹시 어린이책 관련일 하시는 거에요?

하늘바람 2007-09-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인가봐요 궁금하네요

가시장미 2007-09-2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있으면 사주고 싶은 책이네요. 저도 읽고싶은데.. 으흐 서점가서 읽어야겠어효! :)

프레이야 2007-09-2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네, 아주 재미있어요.^^

가시장미님, 서점 가서 슬쩍 서서 보셔도 될 거에요. 좋더군요^^

뽀송이 2007-09-2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바람의 아이들' 책이군요.^^
언제나 개성있는 책을 내는 '바람의 아이들' 신간이니 관심이 갑니다.^^

프레이야 2007-09-29 00:00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추석 연휴 후유증은 끝났어요? ^^
이 책 무지 신나요^^
댓글저장
 

 

1.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다. 두 번의 결혼,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지금은 전문직에 종사하며 프리랜서로 돈 잘 벌고 살고 있다. 2년 전인가, 마지막 통화를 할 때, 나이는 먹어가고 아이는 없고 홀로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아주 약간의 두려움 같은 걸 내비치긴 했다. 그치만 친구도 알고 있었듯이 본질적으로 그 친구는 결혼제도에 잘 맞지 않는 성향을 띄고 있었다. 친구도 두 번의 실패를 겪고 보니 스스로 그런 점을 인정하고 다시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걸려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사귀는 연하의 남성은 있었는데 결혼 제안을 할 때마다 핑계를 대며 물리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의 첫남편은 동갑 과커플이었는데 순정파 그 남자의 성은 모氏였다. 졸업을 할 무렵 본격적으로 결혼 말이 오고가고 하던 어느 날, 순진한 내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속으로 깜짝이야~ 했다. 서방! 나도 친구도 그런 낱말을 가까이서 듣기로는 처음이었던지라.

 하루는 친구가 그 남자를 집에 초대하여 식구들 모두 인사를 했나본데 그 자리에서 친구 어머니가 ‘某 서방’이라고 부르며 대우했고 나머지 식구들에게도 이제부터 모 서방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언질을 놓으셨나 보다. 그러면서 친구는 “우리 엄마가 ‘모 서방’ 그러니까 되게 듣기 좋더라. 글쎄 우리 모 서방이 ~ 어쩌구저쩌구~ ”

 “야, 너는 모 서방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이~.”

 “아니, 울엄마가 다들 그렇게 불러야 된다던데...”


2.

 남편의 남동생에게 부르는 말은 두 가지다. 그 남동생이 미혼이면 도련님(되련님, 되렴), 결혼을 하고나서부터는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서방님’ 알러지가 있는 터라 그렇게 부르질 못한다. 남편의 두 남동생은 모두 결혼하여 아이들도 있지만 난 서방님이라고 못 부르고 아이들이 부르는 식으로 ‘삼촌’을 빌린다. 예법에 맞지 않다는 건 알지만 ‘서방님’은 어째 간질간질하다. 심하게 윤색된 사극 탓인지, 드라마 속 ‘서방질한다’는 말 때문인지.. 아무튼 무슨 부작용인 것만은 확실한데,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3.

 친정부모님에게는 박 서방이 둘이다. 큰사위, 작은사위 모두 박氏이다 보니.. 함께 있을 때는 큰 박 서방, 작은 박 서방, 이렇게 부른다.

 

 명절이면 그동안 일에 바빠 처가 나들이를 자주 할 수 없었던 우리의 ‘박 서방들’이 심히 힘든 때이기도 하다. 여자들만 명절증후군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박 서방들(김 서방, 이 서방, 정 서방, 마 서방 모두모두 포함)도 못지않게 마음 쓰이는 구석이 많다. 먼 거리에 꽉 막히는 거리를 뚫고 안전운행 해서 가야지, 물질적으로도 섭섭치 않게 써야지, 동서들끼리 모여앉아 있으면 이래저래 감정싸움도 안 보이게 하면서 가오도 세워야지. 더군다나 처가 분위기에 맞춰 적당히 놀아줘야지.

 여기서 옆지기 자랑 살짝 하자면, 친정부모님께는 큰 박 서방인데 진심으로 앞서서 마음 써주고 챙겨드리고 하니까 살갑지 못한 맏딸로서 참 고맙다.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면서 제일 원하는 건 당신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인데 무엇보다 '큰 박 서방'은 그걸 잘 한다. 살아오시면서 아무에게도 말 못한 사연들, 남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이라 공감을 얻지도 못할 것 같은 이야기, 생각할수록 회한밖에 안 드는 슬픈 이야기들을 어디다 내뱉고는 싶었을텐데..

 “이런 이야기를 그저 들어만 줘도 좋아. 밖에 나가면 누가 뭐 내 얘길 구구절절 듣고 있으려고 하나?  난 이렇게 말만 할 수 있어도 한이 풀어지는 것 같다구.”

 큰 박 서방은 오래 듣고 앉아 있었다. 아빠는 다음에 또 할 요량으로 아쉬운 듯 북쪽 고향이야기를 남겨두시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씨암탉도 한 번 못 잡아준 처가지만 그저 "박서방 고맙네", 그렇게 속으로 말씀하시는 것 다 알 거라 믿는다.

 

 사위를 두고 백년손님이라고 하는 건 그만큼 귀히 대접하는 말이고, 동시에 그만큼 딸을 잘 대해달라는 바람이기도 하였을 터, ‘서방’이라는 호칭을 다시 찾아보았다.

‘서방’은 순 우리말이다.

 

우리의 모든 '박 서방들' 다 수고하셨습니다! (찔리는 사람도 있으려나)



4. '우리 말글 바로 쓰기'에서 찾아 옮겨봅니다.



옛날에 “서방맞다·서방하다(시집가다)·서방맞히다(시집보내다)”라고 했다.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서방재(신랑)·서방가다(장가가다)·서방보내다(장가들이다)”라고 한다.
여기에 쓰인 ‘서방’이란 말은 순우리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네 국어사전들은 기어이 ‘서방’에다가 ‘書房’이라는 한자말을 달아놓았다. “남편은 일은 안 하고 책방에서 글이나 읽는 사람이어서”란다.


사위를 부를 때 ‘김 서방, 박 서방!’이라고 한다. 호사가들은 그 ‘서방’에다가 ‘西房’이라는 한자를 붙이기도 한다. “사위를 서쪽 방에 묵게 했기 때문”이란다.
남편이 ‘농사꾼’이면 ‘농방’(農房)이라 하고, 사위를 동쪽 방에 묵게 했으면 ‘동방’(東房)이라고 할 셈이었던가?


무엇이든지 중국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말밑이라고 우기는 판이니까. 중국에 ‘書房’이란 말이 있으니까, 뜻이야 맞건 틀리건 소리라도 같으니까, 우리말 ‘서방’이 바로 그 ‘書房’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書房’은 소리는 같아도 뜻은 ‘서재, 서실, 서점’이지 ‘남편’이 아니다.


‘서방’의 ‘서’는 “사벌·사불(상주), 서라벌·서벌(경주), 소부리(부여), 솔부리(송악·개성), 쇠벌·새벌(철원)” 들의 ‘사·소·솔·쇠·새’처럼 ‘ㅅ’ 계통 말이다. “새롭다, 크다”라는 뜻도 있다.
‘서방’의 ‘방’은 “건설방(오입판 건달), 만무방(염치 없는 사람), 심방(만능 무당), 짐방(싸전 짐꾼), 창방(농악의 양반 광대)” 들의 ‘방’이다. ‘房’이 아니고, ‘사람’이란 뜻의 우리말이다.


‘서방’은 ‘書房’이 아니고 “새 사람, 큰 사람”이란 뜻이다.
저런 우리 국어사전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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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7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9-2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임서방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어요. 일단 옆지기 입장에선 처가가 너무 가까이에 있는데다 남자가 없다보니 자질구레하게 힘쓸 일들이 생길때마다 시시때때로 가서 챙겨야 하는데도 군소리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까지 너무 당연시하게 생각해 오진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임서방~. 고맙습니다." ^^;;;

프레이야 2007-09-27 18:38   좋아요 0 | URL
어? 홍수맘님, 댁도 박서방 아니었나요?ㅎㅎ
임서방이었군요.^^ 남자들도 여자들도 다 힘들지요, 수고하셨구요^^

순오기 2007-09-27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우리 '선서방'은 명절에 처가에 한번도 간적 없습니다. 1988년 이후로 지금까지...
그래선 전, 절대 '고맙습니다'라고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흑흑
'서방'이란 말이 이렇게 좋은 우리말이라고 알려주셔서 추천!

프레이야 2007-09-27 23: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우째 그런일이? 선 서방은 무신 이유로 그러신대요. 흑흑..
서방,이란 말 좋은 우리말이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7-09-2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씨가 아닌게 이리도 서러울 줄이야....흑흑흑...

프레이야 2007-09-27 23:16   좋아요 0 | URL
메 서방 고맙네, 라고 속으로들 생각하실 걸요.ㅎㅎ

nada 2007-09-28 01:17   좋아요 0 | URL
메 서방이래, 메 서방이래. 키킥 -.-

애교 많으실 것 같은 혜경 님이신데, 은근 '서방'에는 약하시군요.^^

프레이야 2007-09-28 08:46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메 서방~ 히힛
'서방'은 우째 거시기허네요^^

바람돌이 2007-09-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시비걸때 "어이 서방!!"
애교 떨때 "서방님~~~" 근데 남들앞에서는 그 말 안나오던데요. ㅎㅎ (참고로 우리집도 박서방은 아닙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7-09-28 00:40   좋아요 0 | URL
전에 본 기억이 얼핏 나는데 박서방 아니고 ?서방 맞습니다^^
님은 그래도 애교 떨 때 '서방니~임~' 이렇게 하시나봐요 ㅋㅋ
전 그렇게도 안 한답니다. 이 나무토막을 우째야 쓰까나..

시비돌이 2007-09-28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방은 서방 세계에 쓰는거 아닌가요, 라고 했다가 맞을 수도 있겠죠? ㅜ..ㅠ

프레이야 2007-09-28 08:50   좋아요 0 | URL
동방, 서방, 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라구요, 지 서방~~(이렇게 불리죠?^^)
요새 영화, 감독을 말하다, 참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시비돌이 2007-09-28 09:47   좋아요 0 | URL
서평은 이번에도 안쓰실거죠? ㅠ..ㅜ

프레이야 2007-09-28 09:51   좋아요 0 | URL
이번엔 좀 써보려고 하는데 잘 되려나 모르겠어요 ㅜ..ㅜ
조심스럽기도 하구요. ^^ 이게 뭔 말이래요?
아무튼 좋은아침이에요~~~

전호인 2007-09-2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칭찬하는 것으로 듣겠습니다. ㅎㅎ, 박서방! 듣기 좋은 말이지요. 이종사촌 형수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시동생뻘이니까 저에 대한 호칭은 "서방님"으로 하시면 됩니다 했더니 남편외에는 그 말을 쓰고 싶지않다나 모라나, 뻘쯤한 적이 있었습니다. 잘 지내고 계셨지요?

프레이야 2007-09-28 09:53   좋아요 0 | URL
어머, 그동안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전호인님은 정말 처가에도 참 잘 하실 것
같아요. 전서방은 아닐 것 같고 아무튼 우리의 박서방들에 포함되시는 거죠?
ㅎㅎ 결혼한 시동생에게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좀 걸끄러운 사람들이 꽤 있나봐요. 저만 그런가 했네요.^^ 여전히 바쁘고 건강하게 지내시지요? ^^

아영엄마 2007-09-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울 남편에게는 이제 최서방~ 하고 불러줄 장인 장모가 안 계시네요.. ㅡㅜ 근데 저도 시동생에게 서방님~ 이라는 표현이 잘 안 써져요. (-.-)> - 울 남편에게 가끔 서방님~ 하고 부르다 보니..

프레이야 2007-09-28 11:03   좋아요 0 | URL
에고 그러시구나.. 그렇게 불러줄 사람이 있는 것도 복이네요.
아영엄마님이 옆지기님께 서방님~하고 부르시다니, 이건 배신이에욧.ㅎㅎ
전 죽어도 몬 하는기라요..

소나무집 2007-09-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주말에 친정에 갑니다.
우리도 "강서방, 고맙네!" 소리를 듣고 오도록 미리 교육 좀 시켜야겠어요.
'서방'의 진짜 뜻을 저도 처음 알았어요.
새 사람, 큰 사람이라 앞으로는 그 의미를 새기면서 남편을 불러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09-28 16:42   좋아요 0 | URL
네, 소나무집님 잘 다녀오세요^^
친정어머님 병환은 어떠신지요.. 다정한 이야기 잘 나누고 오세요^^

실비 2007-09-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방이라는 뜻도 여러가지 쓰이네요.
어찌보면 쓸때 부끄러워지기도 할것 같아요.ㅎㅎ
서방님들 대단합니다!

프레이야 2007-09-28 16:43   좋아요 0 | URL
서방, 많이 여러 경우에 쓰는 말이죠.
약간 간지럽지만 원래 뜻은 좋은 뜻이니 좋은 말이에요, 실비님^^
댓글저장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미고자라드 Migozarad! (지나가리라!) - 카불의 어느 찻집 벽에 적힌 낙서라고 한다.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럴싸한 글귀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으며 한숨이 푹푹 나왔다. 예언 같은 저 말은 5년이 지난 지금, 아직은 맞지 않다는 사실에 더욱 안타까워졌다.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의 주술은 ‘먼지 냄새’ 가득한 그곳 여성의 갇힌 몸만큼이나 뿌옇고 암담하다. 종교경찰이 횡행하던 탈레반 시절, '희망은 곧 악몽'이라고 생각한 여성들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일은 저자를 따라 술탄 칸의 가족들과 밀착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이곳저곳을 동행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출장길, 죽음의 폐샤와르를 지나 파키스탄, 알카에다 추적, 저잣거리, 대중탕, 결혼식과 그 준비과정, 알리의 영묘 순례, 사원, 카불의 현대식 호텔, 학교, 교육부, 경찰서와 감옥까지. 그래서 문장이 현재형이다. 보고문학으로서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로 그들과 한 해(2002년) 봄 동안 동거하며, 보고 들은 것에만 기초하여 글을 썼다고 밝혀두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자는 인물들의 섬세한 동작과 표정의 변화에서도 말 못할 내밀한 고통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심리까지 그렇게 묘사해낼 수 있었던 것을 저자는,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한 것까지 술술 이야기해 준 그들의 공으로 돌렸다. 받아적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풀어놓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는 말에서 그들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10월, 9.11사건의 주모자로 추정되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비호했다는 명목으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해 11월, 북부동맹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 아래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2001년 11월은, 탈레반이 무너진 아프가니스탄에 저자, 오스네(서구젊은여자종군기자)가 카불에 도착하여 술탄 칸을 처음 만난 때이기도 하다. '머리가 희끗하고 품위 있는 남자.' 그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이다. 유엔인간개발지수 순위 177개국 중 175위, 문맹률과 유아사망율이 극도로 높은 최극빈국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분명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술탄 칸의 집.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족이 셋이나 있고,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있고, 최상의 보살핌으로 대접 받으며, 충분하고 멋진 음식을 날마다 먹을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들 가족에 밀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술탄 칸이 책장수를 하는 문화사업가, 수완 좋은 장사꾼, 진보주의자 내지는 소위 중산층이라서도 아니고, 저자는 그들에게서 '글을 쓰고 싶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외국병사들에 의지하더라도 다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들, 탱크 잔해와 지뢰와 철골뼈대 앙상한 건물이 널브러져있는 카불의, 봄에 대해서도.

 2002년에 이 책을 썼고 지금 5년이 지난 아프가니스탄. 그들의 재건은 참담한 상태로밖에 안 보인다. 종교경찰이 사회, 문화, 예술을 비롯해, 샴푸통에 그려진 여자얼굴까지도 검은 유성매직으로 지우게 했을 정도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칼을 댄 탈레반은 지금도 테러를 일삼으며 암암리에 공세를 퍼붓고 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는 군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아프간인들을 농락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진보적 정권기로 특징지어진 1960년대와 70년대(다우드 대통령)는, 뻥 뚫린 건물의 구멍을 메우고 부서진 창유리를 갈아 끼우는 작업에 한창인 카르자이 정권이 수복할 수 없는, 다 지나가버린 시절 같다. 전쟁을 겪은 경험으로 나이를 어림하는 아프간인들의 얼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약탈과 지배를 겪어온 그들의 슬픈 초상이다. 그럼에도 2007년, 군벌이 80%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간 의회는 ‘과거 25년간 전쟁범죄 면책’ 입법을 ‘국가의 화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범죄를 저지른 군벌들을 재판정에 서게 하는 대신 고위직에 임명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간 국민의 80%가 과거 전쟁범죄와 잔혹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검찰조사를 원하고 있고 그 길만이 아프간의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4월, 아프간 최연소 국회의원 말라라이 조야(29)의 감동적인 연설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제헌의회에서 군벌타도를 외치다가 추방된 말라라이 조야는 "저 년을 강간하고 창녀로 만들어버려라." 는 노골적인 협박을 의회에서 듣고 네 차례의 암살 위기에 처하면서도 지금 세계를 돌며 아프간의 비극을 전하고 있다. 내가 본 연설문은 올해 4월10일 로스앤젤레스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전문이다. 아프간 민중(특히 여성)의 유린된 인권과 그들에게 주입하는 ‘마피아식 시스템’에 부들부들 떨리며 읽어 내려갔었다.

 『카불의 책장수』를 다 읽고 나서 그 기사를 다시 읽다가 콱 걸리는 이름이 나와 놀랐다. 비비굴! 아프간에서는 흔한 여자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카불의 책장수인 술탄 칸의 어머니, 아프간 여성의 아픔을 몸으로 담고 살아온 상징과도 같은 그 이름이 말라라이 조야의 연설문에서 언급되다니. 동명이인이겠지. 그 내용이란, '자살만이 암담한 현실의 탈출구'라고 생각하는 아프간 여성들이 실제로 자살한 예를 몇 들었던 것인데, 이를테면 ‘비비굴이라는 또다른 여성은 마굿간에 자신의 몸을 결박시키고 불을 질러 자살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에게 남겨진 것은 유골뿐이었습니다.’ 이런 글이었다. 건강을 생각해 기름진 음식을 자제해야 하지만 오로지 술탄의 입맛을 위해 막내딸 레일라는 기름진 음식을 매번 올려야 하고 그렇게 입맛이 든 늙고 뚱뚱한 비비굴은 카펫 아래 아몬드를 숨겨놓고 건강을 염려하는 딸의 눈을 피해 먹는다. 책 속의 비비굴이 맛보는 그 아몬드의 맛이란 나일론천으로 둘러싸여 숨쉬기도 힘든 부르카를 잠시 걷고 카불의 먼지바람이나마 들이키는 순간의 짜릿한 맛과 비슷했을 것이다. 비비굴은 억압받는 아프간의 많은 여성을 대표하는 이름이라고 자위해도 책 속에서 딸을 (돈에 팔아)시집  보내거나 (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시집 보내지 못하면서 아픔을 삼키던 그녀가, 자살했다는 그녀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저자는 서구여성이다. ‘서구’라는 점은 보고문학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시각에 어쩔 수 없는 편중이 있게 했고, ‘여성’이라는 점은 양성자의 자격으로 아프간의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다가갈 수 있게 한 장점이 되었다. 저자가 남성이었다면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관습으로는 남성이 미혼의 여성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경악했고 그것은 책 속에서 일관되게 부르카의 음침한 환영이 되었다. 아름답고 훤칠하며 흰 피부의 그녀가 파란색 부르카를 입어본 경험은 그녀에게 세 가지의 느낌을 동시에 준다.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 아프간 여성으로서 느끼는 이중적인 모호한 감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르카가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물건인지를 깨닫게 되기까지.

 저자는 술탄 칸이라는 책장수야말로 '아프가니스탄 문화사의 살아 있는 한 부분이자, 두 발로 걸어다니는 역사책'이라고 느꼈다고, 먼저 밝혀두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어렵다. 저자도 고백했듯이 그가 아프가니스탄의 전형적인 가족이 아니란 점, 그럼에도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가지로 엮여있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많은 부분을 시사해준다. 술탄의 꿈은 '책의 제국'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 하나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은 희생되어야 하고 한눈을 팔아서도 안 된다는 게 술탄의 철학이다. 소련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들이 릴레이라도 하듯 술탄의 책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가고, 책들을 불태우고, 감시하고 압수하고 그를 감옥에도 넣었다. 이 모든 수난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때로는 교묘하게 피해간 술탄은 이제 평화유지군에게 제일 잘 팔리는 아프간 엽서를 파는 일에도 매달린다.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여 수많은 엽서를 만들고 파키스탄과 이란 등으로 출장도 다녀오는 오십대 초중반의 술탄. 그는 16살의 두 번째 부인 소냐와 행복한 시간을 갖는 일에도 열중한다. 하지만 그녀가 돈에 팔려오면서도 자살하지 않은 건 그녀의 성품 탓도 있을 테고, 술탄 가족들의 배려와 술탄의 자상함, 그와 동시에 술탄이 집에서 부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제국,이 다분히 독단적이며 위압적으로 들린다.

 이 책은 술탄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들려주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교육, 정치, 종교 그리고 부르카가 작용하는 여성억압과 인권탄압의 악령을 보여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가리고 오로지 먼지 폴폴 날리는 신발만 보여주는 부르카 안에서도 요동치는 게 있었다. 부르카가 덮어 가리지 못하는 것들. 야릇한 설렘의 손가락질이나 눈웃음도 저자의 눈에는 다 보인다. 그 안에는 동경과 욕망과 실망이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부르카는 원래 귀부인들의 의복이었다. 귀족이 먼저 벗어던졌던 부르카를 아직 벗지 못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짓밟힌 삶을 떨치고 나갈 엄두도 도저히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부르카를 벗지 못하는 나라에서, 그녀 그리고 그들은 체념이거나 순종, 아니면 혁명밖에는 방도가 없어 보인다. 진보주의자를 스스로 표방하는 중간 지식 계급의 술탄이 뼈가 앙상한 아이들에게 베풀 동정심은 눈곱만큼도 가지지 못하고, 집에서는 더없이 가부장적이며 억압적인 독불장군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은 아쉬운 정도를 넘어서 있다.


 

 
 
 
레일라 역시 그럴 생각이 꿈에도 없다. 탈레반은 카불에서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레일라와 비비굴과 샤리파와 소냐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은 탈레반 시대가 끝나서 기쁘다. 이제는 음악을 연주해도 되고, 춤을 춰도 되고, 다른 사람 눈에만 띄지 않으면 발톱에 메니큐어를 발라도 된다. 그들은 안전한 부르카 속에 숨을 수 있다. 레일라는 내전, 물라 통치, 탈레반 정권이 낳은 진정한 자식이었다. 두려움의 자식. 그녀는 속으로만 울었다. 벗어나려는 시도, 독립적인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 배우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P226)
 
   

 

 

 저자는 카불에 도착할 당시 북부동맹군들과 한동안 숙식을 해왔다. 그녀는 탈레반의 잔학성에 대해 고발하고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일에는 과묵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우선, 호기심을 자극한 한 중산층 책장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가 의도한 방식으로 읽히기에 오히려, 한 편의 소설처럼 생생하고 흥미롭다. 저자는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기우뚱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문장의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 앞장에 간단한 지도 한 장을 그려넣고, 글속에 나온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어 책의 가운데에 16면 정도로 넣어두었다. 파란 부르카를 입은 저자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진이 있다. 탈레반이 물러간 지금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벗고 학교에 가는 여자아이가 포착되었는데 그아이가 어깨에 매고 가는 가방에 쓰여진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 가만히 들여다보니 '백암체육관'('암'자가 희미하지만)이라는 노란글자에 빨강노랑 배색의 가방이다. 그 옆의 사진은 밝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인데 참 해맑다. 그 사진 아래, '그 얼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을 본다'고 쓴 저자의 글에는 당시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지만, 5년이 흘러 무색하고 공허한 소리가 되어버려 안타까울 뿐이다.

 

 기원전에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던 카불, 시내중심가에는 카불강이 흐르고 과실이 무성한 과수원에 비옥한 들녘을 가진 땅덩어리가 온통 흙빛의 척박한 땅이 되어버렸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탓으로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알라께서도 죽는가?" 

지가르 쿤 Jigar khoon (너무 가슴이 아파요.) - 아리아나 항공의 비행기로 뉴델리를 향해 날아가려던 항공관광부장관이 여행사의 사기로 탑승을 거부당한 메카 순례자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동안 수태 '자라보고 놀란 가슴들'은 온갖 추측으로 술렁이며 음모론을 내어놓고, 그 사람들 틈에서 술탄의 막내아들 아이말이 호텔청소부에게 한 말이다. 죽은 장관 때문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유년시절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 오자 확인 :

p304 첫줄 ;    페로자는 목이 멨지만 어떤 항변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 페로자 ---> 타지미르 (문맥상))
p350 중간쯤 ; ... 군부 쿠데타가 있어나 목숨을 잃는다.
                     (있어나 --->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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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어 안타깝긴 하지만, 서구인들이 보는 빈민국의 생활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과연 저 여자가 '조선 시대'의 규방에 가서 인터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전족을 한 중국 여인들과 인터뷰를 했다면...
부르카로 대표되는 여성 차별은 성당에서 미사포를 써야하는 차별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책도 안 읽고 웬 이상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9-21 13:00   좋아요 0 | URL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환경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아요.
저자는 노르웨이의 씩씩한 종군기자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성본능이 엿보이는 부분들도 많았구요.
그 나름으로 당시 아프간의 초상을 보는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하늘바람 2007-09-2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굉장한 서평이에요 저도 읽고 보고 프네요

프레이야 2007-09-21 16:0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태은이가 방긋^^ 반가워요^^
읽어주셔서 고맙지요. 여성 특유이 부드러움이 보이는 기록이에요.

2007-09-2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1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결 2007-09-2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방외인의 시선이 내부자의 그것보다 더 적실하다 여겨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서구의 '눈'이 결함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치명적이라 생각되진 않아요.
그러한 차원에서 이 멋지고도 아픈 기록을 무시할 순 없겠지요.

혜경님의 리뷰를 읽으며, '지가르 쿤 Jigar khoon'했어요. 위의 댓글처럼 그 현실의 고통과 아픔이 오롯이 전해져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 좋은 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9-22 20:59   좋아요 0 | URL
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점에서요. 다양한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눈이 다양하게 보고 느끼는 것들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고 흥미롭습니다.
바람결님이나 제가 느낀 대로 '지가르 쿤', 저자도 이렇게 느꼈음인데, 자기
감정을 객관화하여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정적인 서술이 장점이더군요. 공감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sokdagi 2007-09-2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대단하시네요. 컴터가 말썽을 부려 오랜만에 들러봅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09-27 09:0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읽어보시면 괜찮을 거에요.
몸은 힘드시진 않은지요? 건강 잘 챙기세요.^^
서재에 오랜만에 들렀어요, 어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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