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휴가 알맹이 그림책 6
구스티 글 그림,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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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휴가는 그다지 즐거운 마음으로 근사하게 보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아이들을 위해 어디론가 데려가주긴 해야 하는데,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걷기 싫어하고 고생스러운 환경도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 어디를 데려가든 그곳에 수영장만 있으면 좋다는 식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전국의 땅이 바캉스로 몸살을 앓을지도 모른다. 숙박비는 껑충 뛸 것이고 산과 바다가 인파로 물결칠 것이다. 그런 중에도 사람이 덜 붐비고 청정한 곳에서 유유자적하며 나만의 휴가를 보내고 싶은 게 또 바람이기도 하다. 과연 어디가 있을까?  과연 파리는 어디로 휴가를 갔을까?

 내가 최윤정님을 신뢰하는 근거는 뭐라 꼭 집어 말할 순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이가 자주 접하지 못하는 나라의 그림책과 동화를 발굴해 통통 튀는 언어로 번역하여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이가 쓴 '슬픈 거인'을 좋아한다.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알맹이그림책 시리즈 6권 <<파리의 휴가>>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구스티(Gusti)가 쓰고 그린 유쾌한 그림책이다. 4,5세 전후의 아이들이 보면 좋을 듯한 이 그림책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혐오동물, 파리? 그리고 사람만이 갖는, 설레는 휴가? 어쩐지 얼른 함께 연상되지 않는 두 낱말이 간결한 이야기로 엮이면서 발랄한 웃음을 자아낸다. 능청스럽게 끌고 가는 이야기 들려주기 방식과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과 그림도 한몫 제대로 한다.

 파리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가 시작되자 수영하러 가기로 결심하고 방을 나선다. 준비성도 뛰어나 바캉스용품을 골고루 챙겨간다. 썬크림까지 챙겨간다니 준비성 없는 나보다 낫다. 조심성도 있어서 물에 첨벙 뛰어들기부터 하지 않고 한 발씩 담구어 물온도를 먼저 본다. 드디어 다이빙! 다이빙 포즈가 멋지다. 배영을 하며 룰루랄라 노래도 잘 부른다. 여기서도 수영을 못하는 나보다 낫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파리다. 그러나 이야기가 이렇게만 이어지면 재미가 없지. 이제 파리에게 뭔가 시련이 덮친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축구장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게 떨어지고 무시무시한 파도가 인다.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그렇다고 우리의 파리가 여기서 당할 것이냐? 죽을 힘을 다해 폭풍우 속에서 탈출에 성공한 파리의 귀에 들리는 한 마디란!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불쌍한 파리 같으니라구. 이일로 파리는 다시는 수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니.. 위험을 무릅쓰고 덤벼드는 아이들과는 좀 다른 영악한(아니, 영리한) 파리다. 달아나면서, 가지고 간 수건까지 챙겨왔으니 똑똑하다할까, 야무지다할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파리가 사는 집의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사는 집의 파리 한 마리다. 물론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가 파리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역할을 맡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파리는 현대판 영웅으로 보고 싶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작은 영웅심 같은 게 새까만 파리에게서 보인다. 하지만 영웅에 대한 생각을 전복시키는 점이 매력이다. 이 작은 영웅은 시련에 맞서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긴박한 상황을 재치 있게 피할 줄 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그것을 향유하려는 소시민적 영웅이다. 이야기의 구조도 시련과 극복의 과정이 절정을 이루는 영웅이야기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누가 도와준다기보다 스스로의 용기와 지혜로 탈출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덩치로 보면 파리보다 엄청나게 큰 아이의 발이 마지막에 보이는데 파리는 이 아이의 말에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다시는 자신의 행복이 위험에 처할 일은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현명하다. 사방에 목숨을 노리는 것들이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파리는 목숨을 이어왔고 이제 느긋하게 휴가 한 번 즐기자는데 그것마저 어려움에 부딪히니 파리 신세가 참 말이 아니다.

 파리를 사랑스럽게 그려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이 독특하다. 콜라쥬 기법을 동원하여 천이나 단추, 벽지 같은 걸 이용했고 검고 굵은 윤곽선이 선명한 인상을 준다. 간결한 그림과 어울리게 짧고 쉬운 말로 어린 아이 눈높이에 맞춘 번역어휘도 마음에 든다.

행복!!  그것은 사람이든 파리든 추구하는 것이지만 향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나, 오늘 참 좋은 날이었다, 로 맺는 일기를 쓸 수 있다면 그런대로 행복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단순하게, 욕심없이.. 그런 하루의 연속을 기대한다면 너무 안이한가.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게 또 사람이고 파리인 것을.

그나저나 휴가계획은 세우셨나요?  가까운 곳에 물놀이나 가지요.

하늘에서 거대한 게 풍덩 떨어질 일은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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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7-2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빠리가 아니라 파리였군요. ㅎㅎㅎ
저는 아직 아무 생각이 없는데요. ^^ 인간들이 바글거리는 데는 가기 싫고 해서... 인간 신세도 참 말이 아니네요...

프레이야 2007-07-20 08:44   좋아요 0 | URL
파리,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지요. ㅎㅎ
저도 아직 무계획이랍니다, 글샘님.^^

바람돌이 2007-07-20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빠리인줄 알았다는... 파리가 휴가를 가다니 일단 우리집 아이들이 열광할 기본 조건을 갖추었군요. 아이들은 뭔가 상식과 다르다고 생각되면 무지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ㅎㅎ

프레이야 2007-07-20 08: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해아가 특히 좋아할 것 같은데요^^

소나무집 2007-07-2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휴가 계획을 못 세워요. 남편은 8월 말에나 휴가 받을 것 같고, 친정 엄마 일도 있고 해서요.

프레이야 2007-07-20 14:14   좋아요 0 | URL
전 7월 말인데.. 엄마가 항암주사를 투여하기 시작하는 날과 겹쳐서
어떻게 될지 마음이 편치 않아요.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디라도 데려가줘야
하는데 말이죠. 8월말이 휴가면 그런대로 조용한 곳에서 보내실 수 있겠네요.
참, 어머닌 어떠신지요?
그리고, 이 그림책은 무지 재미나요. 기발한 착상과 그림과 글 ..

향기로운 2007-07-2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계획이지만,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길수나 있을런지.. 그냥저냥 또 평이한 일상처럼 무심코 지나갈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프레이야 2007-07-20 17:53   좋아요 0 | URL
어딜 꼭 가야 휴간가요? 뭐..
조용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요 ^^

가넷 2007-12-2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저도 프랑스의 파리로 생각했었어요.

보니까 참 기발하더라구요. 아이들이 좋아 할 것 같았어요.^^

프레이야 2007-12-27 18:06   좋아요 0 | URL
네, 파리요^^ 재미있는 그림책에요..
프랑스 파리도 가보고 싶지만요.

sokdagi 2010-05-2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가에게 좋은 책선물이 될 것 같아요. 님 덕분에 좋은 책 소개 받고 갑니다. ^^

프레이야 2010-05-27 10:2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그림이 되게 웃겨요. 파리 눈동자가 되굴되굴^^
바람의아이들 '알맹이그림책' 시리즈가 모두 마음에 들더군요.
 
다윈의 생물 노트 미래의 힘, 특목고 준비를 위한 초등학습만화 1
김기정 지음, 박종성 그림, 김학현 감수 / 녹색지팡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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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윈은 1831년 12월 비글호를 타고 모험에 나섰다. 그가 나선 길에 갈라파고스가 있었고 그곳에서 다윈은 오랜 세월 다양하고 희귀한 생물들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을 토대로 5년 후 ‘비글호 항해기’를 썼는데 그 책에서 다윈은 진화론을 말하지 않았다. 당시 그 이론은 너무나 충격적인 사태를 몰고 올 소지가 많았음을 알았던 것이고 좀 더 견고한 이론과 진화의 사례를 통한 증거로 맞설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859년, 비글호 항해를 마친 지 20년도 더 지나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을 담은 ‘종의 기원’을 출판하게 된다.

 이 책 <<다윈의 생물노트>>는 제목에서도 내세웠듯이, 먼저 찰스 다윈이라는 특출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게 한다. 어린이를 책으로 끌어당기는 조건은 호감 가는 인물, 재미있는 이야기구조 그리고 기발한 그림(삽화) 같은 것인데 이 책은 세 가지의 조건을 그런대로 갖추었다. 다윈이라는 인물에 대한 상세한 이력보다는 그가 생물의 종과 진화를 연구한 부분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게 되어있다. 나아가 다윈이라는 인물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당시 (우리에게 덜 알려진)과학자들과의 연관성, 창조설과의 고리(갈등에서 인정까지), 그리고 많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진화론과 관련하여 다른 책으로 연계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관심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유의미한 용어들이 소개되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당장은 생소하여 어렵게 들리겠지만 관련지식을 넓히고 관심과 이해를 확장해 가서 사고를 통합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재미난 이야기 부분은 만화를 그려서 넣었다. 이로써 두번째와 세번째 조건을 함께 충족한 셈이다. 사건은 태평양 한 가운데, 두 남매의 무인도 표류기라 할 수 있다. 그곳에 표류하여 오래도록 살고 있는, 다윈이랑 외모도 비슷한(만화 상으로) 생물학자인 무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으로부터 다윈의 생물노트를 간접적으로 읽는 셈이다. 이 섬에서 만난 희귀한 생물, 이볼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징적이다. 책의 뒷부분에서 나오는 ‘잃어버린 고리’와 연관된다. 이볼브는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화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물론 다윈의 생물노트라는 이름도 상징적인 것이다.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다루기에 앞서 생물의 종류와 생명의 기원, 다윈 이전의 진화론, 종의기원 그리고 다윈이 진화론에서 미처 밝히지 못한 유전학, 즉 멘델의 유전법칙과 드브리스의 돌연변이설까지 설명한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대목은 ‘7장;진화의 증거’와 ‘8장;잃어버린 고리’의 내용이다.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는 용어는 진화가 오랜 세월 점차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화석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진화를 증명하는 중간형태의 화석을 잃어버린 고리라고 부른다. 진화의 과정을 뒷받침할 화석들이 충분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다윈이 살아있다면 그것들은 많은 부분 바닷속에 있다고 말할 것이란다. 그리고 실제로 2006년 4월 6일 LA Times에 실린 ’잃어버린 고리 발견!‘이라는 기사도 만화의 한 컷으로 넣어놓았다. 과학자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무인도에 자진해서 남아있는 무 박사처럼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나서는 미래의 또다른 다윈이 이 책을 읽는 어린이 중에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다른 미덕은 익히 들어보았지만 정의가 어렴풋하거나 생소한 용어들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간다는 점이다. '진화‘는 현재 사회학적으로도 쓰이며, 진화가 반드시 더 나은 방향으로만 진행될까, 라는 의심을 낳은지 오래다. “다윈이 말한 진화에는 진보적인 발전 방향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진화란 생물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일 뿐, 반드시 어떤 방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원시 생물인 박테리아는 무려 35억 년 넘게 존재하면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한다.” 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게 용어의 정의를 정확히 하는 건 타과목에서도 기본적이고 중요한 단계이다. 게다가 요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통합사고를 도와주는 장이 ’생각노트 펼치기‘이다. 이 장은 그 앞의 ’밑줄긋기‘ 장과 나란히 엮여 상당히 유익하다. ’밑줄긋기‘에서는 체계적이고 유익한 생물학적 지식을 정리할수 있고 ’생각노트 펼치기‘에서는 좀 더 유연한 사고를 도와준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을 이야기하면서 나오는 '적자생존'(주어진 환경에 더욱 알맞은 형질을 가진 생물이 살아남는다)이 인종우월주의자들의 빌미로 이용된 사례를 들어 역사적인 면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다윈의 자연발생설은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경제학적인 면까지 언급한다.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에는 ‘특목고 준비를 위한 초등학습만화’라는 이름에 뜨악했다.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지만 이왕 쓰려면 특목고라기보다 과학고라고 해야 정확한 말이 될 것 같다. 주변에서 초등 3학년인데 특목고준비를 시작한다며 그룹을 짜서 아이를 날마다 9시까지 수업 받게 하는 엄마를 보았다. 어이없다 생각하였는데 이놈의 특목고라는 이름이 부채질하는 과열경쟁이 어디까지 갈까 싶다. 학습만화는 딱딱하고 어려운 지식과 정보를 당의정을 입혀서 먹여야하는 부담을 안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두 가지를 적절히 배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도표와 적절한 그림을 구체적으로 배치하여 복잡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점이 마음에 든다.

 

 당의정을 입혔다 하더라도 초등고학년이 보기에 내용의 깊이와 넓이가 녹녹하지는 않다. 과학에 아주 관심이 많고 배경지식이 좀 있는 아이라면 재미있게 볼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만화부분만 보고 넘어갈 확률이 많다. 그렇다 해도 우선 나쁘지는 않다. 밑줄긋기 부분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 정리해놓은 부분은 중학생이 되어 참고해도 될 정도로 꼼꼼하다. 컬러 사진도 적절히 제시하여 실감나는 간접체험이 된다. 책의 마지막장엔 가나다 순으로 ‘용어풀이’를 해두어 전문용어들을 정의해 두었다. 생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과 생물에 좀 약하다 싶은 학생들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 지나가는 꼬릿말 ; 내가 초등학생 땐 이런 책이 왜 없었냐구요.. 생물은 제가 참 하기 싫어했고 어려워한 과목이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땐 무조건 외우게 하는 방식이라 흥미를 붙이지 못했어요. 더구나 고등학교 때 생물선생님은 완전 공포의 시커먼 고릴라 같은 분이었는데 잘 못하면 벽에 이마 대고 한 시간 내내 세워두셨지요. 보는 사람이 다 진땀이 났어요. 에효 그 유령같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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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7-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리 챙겨둬야 겠어요. 늘 감사 ^^.

프레이야 2007-07-19 14:05   좋아요 0 | URL
홍수 연령엔 아직 이르다 싶구요. 나중엔 더 좋은 책이 나올 걸요.
미리 챙겨둬도 나쁘진 않지만요.^^

뽀송이 2007-07-1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 권장도서인가봐요?
재미있어 보입니다.^^

프레이야 2007-07-19 14:08   좋아요 0 | URL
신간이에요. 서평단제출 서평이구요. 내용은 알찬데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미와 함께 읽히는 부분이 성공적일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어요. 제 주위의
아이들에게 읽혀보면 좋겠는데 아직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만화로 좀 녹록하게 설명하는 장면들은 꽤 괜찮을 것 같구요..

소나무집 2007-07-19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윈,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를 읽은 후에 읽으면 좀 덜 어렵겠네요. 저도 학창 시절에 과학책은 거의 본 기억이 없네요. 학교마다 생물 선생님은 다 좀 이상했나 봐요. 저도 고등 학교 때 생물 선생님이 너무 싫어서 공부 하나도 안 했거든요.

프레이야 2007-07-19 14:09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ㅎㅎ 저도 생물뿐만 아니라 화학도 싫어했지요. 이과 적성이
아닌가 봐요. 이런 책이라도 있었으면 훨씬 흥미롭게 끌려들어갔을 텐데..
요새는 어린이책이 이리 잘 나오니 얼마나 좋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책을
덜 읽고 기계앞에 앉아있어서 속상하지요..

백년고독 2007-07-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 초등학교때 이런책만 있었더라면...ㅋㅋ
조카에게 선물해야겠는데요. ^^

프레이야 2007-07-19 14:10   좋아요 0 | URL
네, 고학년 조카라면 좋아할 거에요. 어른이 보기에도 괜찮아요..
님도 과학과는 좀 거리가 있었나요? 혹시..

백년고독 2007-07-1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제또래정도면 어릴적 꿈이 대부분 과학자죠 ^^

프레이야 2007-07-19 14:58   좋아요 0 | URL
아하, 고독님 그러셨구나...^^

향기로운 2007-07-1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딸도 한때는 과학자,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었어요^^ 저는 어릴때 생물시간 과학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실험을 하고 레포트(그때는 보고서라고 불렀던) 써서 내는게 즐거웠었어요. 그림까지 생생하게 그려서 내는거라면 더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네요^^

프레이야 2007-07-19 15:05   좋아요 0 | URL
수빈이 꿈이 과학자였다구요? 그럼 지금은 바뀐거에요? ^^
우리집 큰딸이 사실 6학년때까지 소위 과학영재였어요. 교육청에서 교육받는 프로
그램 있잖아요. 4학년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고 흥미로워해서 4학년때부터
과학경시대회에서 수상을 여러번 했어요.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런 영재프로그램과는 담을 쌓고 안 하려고 하더
군요. 뭔가 흥미를 잃게 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는 얘기를 하려고
않아서 더 캐묻지를 못했어요. 6학년때 제가 토요일마다 보수동 봉래초등학교까지
데려가곤 했거든요. 그때 서서히 식상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과학분야 중에
서도 어느 분야에서 흥미를 잃은건지.. 실험하기를 제일 좋아했는데 말에요.
이 책은 수빈이의 꿈을 다시 불러줄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 시리즈가 물리, 화학..
이런식으로 나올 참인가 보던데요.. 꿈을 이루는 좋은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

asdgghhhcff 2007-07-1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고리라고 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다른 책이군요 ^^ 이 소설에서 미싱링크는 으...^^;;;

프레이야 2007-11-03 12:17   좋아요 0 | URL
우아한인삼님, 반갑습니다. 그랬군요..^^
어쩌면 비슷한 게 아닌가 싶네요.

책읽는나무 2007-07-22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분야에 관한 책이군요.음~ 저도 완전 문과학생이었던지라 생물,화학,물리 아예 담을 쌓았더랬죠(수학까지도 그랬지만요.^^)
눈여겨 보았다 나중에 성민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미리 읽혀야겠어요.엄마같은 아들이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프레이야 2007-07-22 09:00   좋아요 0 | URL
고학년용이라 성민이 데리고 함께 보며 간단히 설명 곁들여주시면 좋아할 것
같아요. 님도 문과라 생각했드랬지요.^^
 

 

강대나무를 노래함


빛이 있고 꽃이 있는 동안에도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허리를 잡고 웃고 푸지게 말을 늘어놓다가도 나는 불쑥 강대나무를 화제 삼는다
비좁은 방에서 손톱 발톱을 깎는 일요일 오후에도 나는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몸이 검푸르게 굳은 한 꿰미 생선을 사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회사의 회전의자가 간수의 방처럼 느껴질 때에도 강대나무를 떠올린다
강대나무를 생각하는 일은 내 작은 화단에서 죽은 화초를 내다 버리는 일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두듯 강대나무를 생각하면 가난한 생활이 비로소 견디어진다
던져두었다 다시 집어 읽는 시집처럼 슬픔이 때때로 찾아왔으므로
우편함에서 매일 이별을 알리는 당신의 눈썹 같은 엽서를 꺼내 읽었으므로
마른 갯벌을 소금밭을 걷듯 하루하루를 건너 사라졌으므로
건둥건둥 귀도 입도 마음도 잃어 서서히 말라죽어갔으므로
나는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내어 떠올려 내 누추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서럽게 불러 내 곁에 세워두는 것이다.


* 강대나무 :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

 

- 문태준 시집 <가재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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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죽음을 향해 서서히 가고 있다지만 듣기 좋은 위로의 말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사람의 손길은 남다르다. 매주 글벗들을 만나러 올 때마다 집안 너른 화단에서 가꾸는 야생화를 꺾어와 나누어 주는 그녀의 손길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그녀의 바람은 나누어 주는 것에 있었다. 그 마음을 알고 우리는 언제나 흔쾌히 받는 일에 열중한다. 그녀는 당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많이 나눠주기 위해 영롱한 낱말로 글을 쓰고 대담한 붓질로 수채그림을 그리고 섬세한 손끝으로 야생화 가지를 꺾어 유리병에 담아온다. 그녀가 꺾어오는 야생화들은 하나같이 꽃에 어울리는 소담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었고 그 이름과 꽃말이 적힌 종이가 유리병에 붙어서 따라왔다. 정겨운 이름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노란 장미, 흰나리꽃, 모란, 은초롱꽃, 수국 그리고...

 언젠가 그녀는 내게 수선화가 꽂힌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잘 어울린다며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먼저 가져가라고 따로 챙겨주셨다. 코를 가까이 대기도 전에 은은하게 퍼지는 수선화 향기를 그때 처음 맡아보았다. 가장 원시적이고 감성적인 감각이라는 후각에 한껏 기대어 보았다. 노오란 그 향기는 어쩌면 잠재된 기억 속에 묻혀있을 내 시원(始原)의 돌담길 아래서 수줍게 움트고 있었다.

 오늘 아침, ‘강대나무’를 노래하는 시를 읽고 그녀가 건네주는 야생화 가지들을 윤창한다. 애처로운 가지와 한 떨기 꽃송아리로만 전해져온 그 목숨들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남겨두고 내게 왔다. 땅, 그곳은 목숨이 태어나고 자란 태고의 원시림 같은 곳, 돌아가야할 원천의 고향. 유려한 시간을 건너와 유리병에 꽂힌 그 가지들은 거실 한 켠 탁자 위 정지된 공간에서 선 채로 물속에 몸을 담고 말라죽어갔다. 강대나무들처럼. 나는 오늘 그들의 ‘뿌리’를 노래하고 싶다. 혼곤한 잠에 빠져있을 원초의 꿈, 뿌리를 뽑지 않고 생명을 전도한 그녀의 손길을 떠올린다.

 더 가까이에도 내게 뭘 주고자 하는 사람이 생겼다. 여지껏 나는 그녀가 내게 준 것이 그다지 없다고 속으로 불만이었다. 아니 뭘 그리 해줬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어리석게도.. 지금 그녀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넉넉지 않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그녀가 스웨덴제 일렉트로룩스 잭나이프를 준 건 얼마전 병실에서였다. 밤새 가슴이 갑갑하다고 끙끙 앓던 그녀가 아침에 건넨 물건이다. 나무 손잡이가 멋스러운 그건 내가 오래 전 그녀에게 주었던 것이고 나는 깡그리 잊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아까워서 거의 쓰지 않았다며 도로 내게 주는 그 손을 마다하지 않았다. 검버섯이 핀 손등, 작고 가냘픈 손가락.

 

  그녀가 주려는 꽃은 야생화가 아니다. 안 신고 모아둔 새 스타킹들, 신혼때부터 써온 가계부 공책들, 무수한 서화 습작 종이뭉치들. 나는 꽃을 받는 사람이다. 꽃을 주는 사람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그옆에 나란히 있다. 생의 절정, 꿈의 절정, 아름다움의 절정. 생의 환희로 피어올린 꽃에 눈을 맞추며 오늘도 나는 꽃을 받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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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시인이에요..^^
문태준의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시, 좋은 글 올려주세요, 앞으로도 종종 들르고 싶어요. ^^

프레이야 2007-09-08 17:58   좋아요 0 | URL
님 서재에 갔다왔어요. 반갑습니다.^^
종종 들러 이야기나눠요^^
 

 

번져라 번져라 병(病)이여


1

개망초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바람은 일고 개망초꽃이 꽃의 영혼이 혜성이 돈다

개망초가 하얗게 피었다
잠자리가 날 때이다
너풀너풀 잠자리가 멀리 왼편에서 바른편으로 혹은

거꾸로

강이 흐르듯 누워서 누워서


2

오늘 다섯 살 아이에게 수두가 지나가고, 나는 생각
한다. 만발하는 것에 대하여 수두처럼 지나가는 꽃에
대하여 하늘에 푸른 액정 화면에 편편하게 날아가는
여름 잠자리에 대하여 내 생각에 홍반처럼 돋다 사그
라드는 것에 대하여
 그리하여 나는 지금 앓고 있는 사람이다


3

 그리고 나는 본다, 한 집의 굴뚝에서 너풀너풀 연기
가 번져 나오는 것을 그 얼룩을
 그리고 나는 안다, 이 뜨거운 환장할 대낮의 아궁이
에 불을 지피는 한 여인을 그 얼룩을
 에미가 황해도 무당이었고 남편은 함경도 어디가 고
향이고 여인은 한때 소를 한때 묵뫼를 사랑했고 올여
름 연기를 지독히 사랑했고 불을 때는 버릇이 생겼다
는 것을 그 얼룩을

 연기는 아주 굼뜨고, 연기는 무학자이고, 연기는
나부이고, 연기는 풀이 무성한 묵밭이고
 연기는 아궁이 앞에 퍼질러 앉은 그 여인이고, 갈라
진 흙벽의 정신이고, 미친 사람이고

 나는 아니 보아도 안다, 벌써 스무 해 넘게 미쳐 지
내온 저 여인이 어떤 표정으로 지금 앉아 있는지를
 무얼 끓이느냐 무얼 삶느냐 물어도 여인은 손사래
쳐 무심히 불만 밀어넣을 것이라는 것을
 몇 통의 물을 다만 끓이고 끓이고 있다는 것을
 내 눈과 마주치곤 까르르 까르르 웃던 그 검은 얼
굴을

 

4

 하늘의 밭에는 개망초가 잠자리가 연기가 수두처럼
지나가고 있다 더듬더듬거리며 옮아 가고 있다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그래야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가재미>> 문태준 시집 중


-------

 한 달 전, 큰딸의 손가락과 팔꿈치 쪽에 붉고 둥그런 반점들이 여럿 생겼다. 처음엔 별 것 아닐 거라고 예사로 여겼는데 요것들이 차츰 색깔도 선명해지면서 자신들의 행동반경을 넓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영역을 확장해가는 전술이 대단하다. 괘씸한 건, 이제 아예 가려움증까지 유발하며 아이를 못살게 구는 것이다. 하복을 입고 다니는 여학생의 팔다리를 그 꼴로 만들어놓다니. 아이는 울상으로 짜증스러워하고 가렵다고 투덜거렸다. 자세히 보니 어릴 적에 보았던 물사마귀나 수두 같이 보이면서도 모양새나 색깔이 그것과는 달랐다.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보았다. 다형홍반이라는 얄궂은 홍반 종류였다. 원인은 알레르기라고.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피부과를 찾아갔다. 의사도 다형홍반이라고 진단하고 약과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며칠 전까지 거의 한 달 동안 약을 먹었는데 닷새 정도 복용하면 가라앉다가 하루 정도 복용을 멈추면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였다. 그것들의 생명력이라는 게 끔찍하다. 며칠 전, 위장에 탈이 왔나 싶게 아이가 속이 좋지 않다고 괴로워하고 피곤해 해서 약을 멈추었더니 지금 다시 그놈의 홍반은 과감하게 흉한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보는 내가 더 괴로울 지경이다. 아무래도 좀더 정밀검사를 받아봐야겠다 싶어 의사의 진료추천서를 받아두고 다음 주 목요일에 모 대학병원 피부병리과의 권위 있다는 의사를 찾아갈 요량이다.

 홍반이란 녀석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아이의 몸으로 들어간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달째 대반란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답답하다. 아이의 몸에 일어난 한 판 시위 현장이라 치부하기엔 내 마음이 안쓰럽다. 내 어린시절 앓았던 홍역은 기억에서 지워졌다. 열다섯, 어여쁘지만 예민한 나이를 공습하는 病!  그게 어디 홍반뿐일까만은. 연기처럼 엄습해 오는 영육의 두드러기, 살아있음에 자라고 있음에 나아지고 있음에 내치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들이다. 마흔둘, 내 등에 난 뾰루지도... 무엇보다도, 예순여덟, 엄마가 얼러 달래며 싸워나가야 할 가증스러운 생명력의 암세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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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개망초가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해서 찾아봐야겠어요. 피부과처방전 받으실때 꼭 위장에 약한 걸로 해달라고 말하셔요. 가끔 너무 독한게 들어가 있더라구요. 음, 가끔 심리적인 원인도 있던제..알레르기는요. 그리고 암이라.글쎄, 가까운 분이 앓고계시는데..꼭 암세포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면 참 마음이 무겁지요.그래서 그냥 살면서 치료해갈 것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했는데..글쎄 그럼 한다리 건너니까 그런 마음이 아니냐고 할까 좀 망설였는데..여하간, 치료받으시는 동안 병때문에 마음이 더 지치시지 않도록, 님도 어머님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는 다들 뭐하나씩은 아프잖아요 (전 오늘 좀 무리해서 운동했더니 어깨가 쑤셔요)

프레이야 2007-07-14 23:09   좋아요 0 | URL
님, 개망초는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있어요. 나들이 나가면 흔히 볼 수 있구요.
그게 꼭 백반 같나요. 아무튼 님 말씀처럼 우린 누구나 병이 있고 그건 살아있
다는 증거에요. 남의 암보다 자기의 감기가 더 크다고들 하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에요. 병은 자신만이 감당해야할 고통이지만 그만한 무게의 가치가
있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다 뜻이 있겠거니 합니다. 조금씩 담담해지려 해요.
너구리님, 고맙습니다. 편안한 토요일밤~
참, 어깨 쑤실 땐 어떡해야하나?

박가분아저씨 2007-07-2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 하시네요!!!!!

프레이야 2007-08-10 04:46   좋아요 0 | URL
박가분아저씨, 언제 다녀가셨어요?
이제사 봤네요. 감사합니다.^^
 

 

극빈 2 - 독방(獨房)



 칠성여인숙에 들어섰을 때 문득, 돌아 돌아서 獨房
으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칸 방에 앉아 피로처럼 피로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천장과 바닥만 있는 그만한 독방에 벽처럼 앉
아 무엇인가 한 뼘 한 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흘
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창 공용버스터미널로 미진양복점으로 저울집으로
대농농기계수리점으로 어둑발은 내리는데 산서성의
나귀처럼 걸어온 나여.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
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가재미>> 문태준시집 중 / 문학과지성사

-------

 스물 넷,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여인숙에
홀로 묵었던 단 한 번의 기억은 부유하는 먼지 같다.
지나가버린 구름조각 같은 것이라 여겼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문태준 시집의 이 시를 읽다 ‘칠성여인숙’에 붙박인다.
그해 가을, 강릉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 낡고 초라한 여인숙 방에 작은 몸을 누였다.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자마마 일곱 시간 정도 남에서 북으로 달려간 길을 함께 누였다.

 

 

 독방이었다.

 작은 방 한 구석에 냄새나는 이불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모로 누워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속초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군부대로 들어가
면회신청을 해야 하는 일만 남겨두고,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은 독방에 누인 ‘독방’이나 다름없다.
그곳에 하룻밤 머물기 위해 나는 그때
허름한 ‘숙박부’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극빈한 이름 석 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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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7-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저는 님이 누구를 면회가셨는지 다 알지요..ㅎㅎ
내일아침을 생각하면 설레이기도 하면서 아무도없는 여관방에서 겁도 나셨을것 같아요.
모로누워 잠을 자는 모습을 상상하니 애처롭기도 하면서. 그런 추억을 가지고 계신 님이 부러워요... 저도 오늘 문태준의 시집 맨발을 하루종일 읽었는데. 오늘 문태준을 매개로 님과 제가 또 통하고 있었나봐요.. ^^
주말이예요 여기는 비가 오다 안오다.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깊게 마시면서 주말준비를 하고 있어요. 좀 쓸쓸하면 어때요. 좋아요...
혜경님 희령이 곧있으면 방학이겠네요. 얼마나 신날까.. 아이 부럽다..^^
예쁜따님과 행복한 주말되시길 .. 혜경님의 춤인생드림^^

프레이야 2007-07-14 15:09   좋아요 0 | URL
님, 어젠 문태준으로 통했군요. ㅎㅎ
오늘 여긴 비바람이 쳐요. 문우들과 스터디 있어서 나갔다 왔어요.
나이 든 회장님의 말씀과 태도에서 늘 배워요. 나이들어 자신만의 생각으로
꽉꽉 막혀있기가 쉬운 법인데 그분은 한결같이 수용적이고 이타적이에요.
님 오늘도 빗줄기 가운데 우산 속, 하나의 '독방'같았어요. 그러네요,
결국 독방이에요.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네꼬 2007-07-1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런 여운이라니.

이러니 추천을 하지요, 추천을.

프레이야 2007-07-14 15:11   좋아요 0 | URL
네꼬님, 여운에 흔들리시나요.ㅎㅎ 여긴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불어요.
태풍영향이겠죠. 빗줄기가 사방을 흩어지네요. 토요일 오후 편안한 시간
가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