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시간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1
알폰소 루아노 그림,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글,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은 글짓기라는 말 대신 글쓰기라는 말이 합당하다고 하여 ‘글쓰기’ 라는 말을 많이 쓴다. 글짓기라고 하면 작위적이고 도구적인 느낌이 나고, ‘짓기’보다 ‘쓰기’가 확실히 자연스러운 욕구를 대변하는 것 같은 낱말이긴 하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시간이 종종 있었다. 요즘은 환경 글쓰기 대회 같은 게 많이 열리지만 그때는 ‘반공 글짓기’가 가장 많이 열렸다. ‘반공’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했을 아이들이 써내는 글이란 그저 주입되거나 학습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글짓기 시간>>이라는 제목은 책내용의 분위기에 잘 맞다. 부정적이라 해도 제목이 주는 향수는 책표지의 그림과 함께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지난 현대사와 아주 흡사한 집단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내용에 놀랐다. 이런 소재도 그림책의 이야깃감이 되구나. 다시 한 번, 소재의 내적검열이란 장치가 더 무서운 억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책의 소재라고 해서 한정하려 하지 말고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겠다.

 

 이 책에서는 “군부독재",  "반독재”,  “자유로운 나라를 만드는 거야. ” 이런 글들이 표현 그대로 나온다. 특정 나라를 지칭하지도 않고 특정 시대를 지목하지도 않고 특정인물을 지목하는 내용은 더구나 없다. 자유와 인권의 탄압을 소재로 하는 그림책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거의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모호한 관념만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책은 구체적으로 명료한 표현을 쓰고 문제로 바로 들어가게 하므로 아이들과 오히려 쉽게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 이런 장점을 안고, 조금은 이르다 싶은 3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했다.

 역시나 아이들은 군부독재, 반독재, 이런 용어부터 물어왔다. 이승만부터 전두환까지 너무 복잡하지 않게 이야기를 해주니 무척 놀라는 기색이었고 더욱 관심을 갖는 아이는 눈망울을 빛내며 책상 가까이 몸을 당겼다. 이 책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소화하자면, 우선 ‘독재’라는 단어부터 이해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사가 짓밟히는 행태가 아이들 주변이나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함께 토론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가장 쉽게는 학급토의시간의 예를 들었는데, 안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음에도 모두 묵살하고 반장은 자신이 좋은 쪽으로 투표도 없이 결정해버리는 경우다. 아이들에게 네가 반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니 다수가 가야할 방향과 소수의 바람, 모두를 안고 갈 수 있는 현명한 대답들이 나왔다.  기특하게도..

 <글짓기 시간>의 작가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다. 작년에 91세로 저 세상으로 간 칠레 군부독재의 주역 피노체트, 그의 독재를 피해 아르헨티나와 독일 등지를 떠돌며 작품 활동을 하였고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으로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쓴 작가다. 그림책으로 나온 ‘글짓기 시간’은 알베르토 망구엘이 편집한 단편 선집 <신의 첩자들: 압제에 저항하는 이야기>에 실렸던 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해 고쳐 쓴 것이라고 한다. 피노체트는 1973년 유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당시 칠레 대통령 아옌데를 자살하게 한 장본인이다. 1990년 대통령직을 넘기고 군 총사령관에 머물다 1998년 다시 종신직 상원의원으로 진출했다. 그는 2006년 11월 25일 91세의 생일을 맞아 집권 기간의 ‘정치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해 12월 10일 심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자 칠레 시민들은 산티아고의 거리에 몰려나와 환호했다. 피노체트 집권 시절 고문을 당했던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장례는 국장으로 치르지 않을 것이며 3일간의 공식 애도기간도 없다,고 밝혔다.(동아일보 2006-12-12)  한편 놀라운 것은, 피노체트 지지자들은 그가 사망한 산티아고 군병원 밖에서 그의 초상화를 내걸고 추모행사를 열었다는 기사내용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박, 전,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경악했다.

 <글짓기 시간>의 화자는 열 살 아이 페드로. 갈색 머릿결과 균형잡힌 이목구비가 눈에 띄는 남자아이다. 생일선물로 고무공이 아닌 가죽축구공을 받고 싶은 평범한 아이다. 페드로와 친구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느닷없이 받아든 글짓기 제목은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군복을 입은 로모대장이 들어와 내어준 이 제목 앞에 페드로와 친구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게 이어지고 그들이 속삭이며 나누는 대화는 아이다운 순수함이 배어있다. 그 길고 지루한 시간동안 페드로의 고민하는 마음을 잘 보여주는 건 글보다 그림이다.

 

 다른 좋은 그림책이 그렇듯, 이 그림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림의 힘이다. 글은 상당히 자제되어있고 많은 말을 감추고 있다. 군부독재시절, 밤마다 듣는 라디오방송이나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이야기도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해야 했듯, 이 책의 글은 늘 누군가의 무서운 눈초리와 밤말을 듣는 쥐새끼를 의식하는 것처럼 아껴서 풀린다. 그런 속사정을 내밀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이 묵직한 감정을 전한다. 어른들의 고민, 아이들의 불안 그리고 드러내어 말하진 않지만 누구나 느끼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 억눌린 생각과 감정. 착 가라앉은 색감과 세밀한 표정의 묘사 그리고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억압된 분위기가 모든 걸 전달해주고 있다. 체스와 체스판으로 끝낸 마지막 장의 여운은 앞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게 절망 속에서도 밝은 기운을 불어준다.  그림은 알폰소 루아노의 작품인데 글의 어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르포적인 상상력을 펼치고 싶다" 고 말한 그의 염원대로 조화로운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출했다.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  페드로가 얼마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확인해 보시기를 권한다. 스프링공책을 부욱 뜯어내어 쓴, 그 애의 글을 읽어볼 때는 마지막 글귀 ‘알림’을 주시하시길...  흐뭇한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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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7-07-10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보고 감동 받았어요.
박통과 전통시대를 산 사람이라서 그런지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지니까요.
전 똘이장군 보고 큰 세대거든요^^

프레이야 2007-07-10 13:30   좋아요 0 | URL
정말 남일이 아니라 더욱 공감되었어요. 수니님의 오래전 리뷰도
읽었답니다.^^ 똘이장군ㅎㅎ 이 책 속의 로모대장이 입은 군복에 검은안경,
금색버클이 달린 검정벨트 그리고 총칼.. 이런 것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지요. 학교담벼락에 적힌 '독재타도'도!!
근데 애정의표시로 추천 안 눌러주심 삐질거야요..

뽀송이 2007-07-1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힘겨운 주제를 열살 아이의 시선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지는 책이군요.^^
책 속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림도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07-07-10 13:32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도 추천 안 눌러주셔서 서운해용~~(저 완전 나대고 있죠?^^)
사실 열살 아이가 보기엔 답답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책은 더욱 어른이 함께 보기를 권해요. 많은 이야기를 아이
눈높이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생각의 밑거름이 될거에요.
참 좋은 그림책이랍니다.^^

소나무집 2007-07-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몇 년 전에 읽었는데 다시 한번 보아야겠어요. 좀 어렵긴 하겠지만 이젠 아이가 열 살이니 독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프레이야 2007-07-10 14:02   좋아요 0 | URL
님도 이 그림책을 이미 보신 적 있군요. 전 유월에 처음 보았어요.
그림책의 소재도 그렇지만 전달하는 방식에 자꾸 눈이 가더군요.
말을 할듯 말듯한 글과 사실적이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그림이 여운을
주었어요. 마지막 그림, 체스와 체스판은 다소 희망적으로 보여요.^^
참, 소나무님도 애정의표시 남겨주세요, 꾸욱 이거요^^

씩씩하니 2007-07-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 때문에 몇년 전에 읽었었는데...
님 느낌 읽으니 새롭게 와닿네요...

프레이야 2007-07-10 13:35   좋아요 0 | URL
하니님도 읽으셨군요. 전 이제 알았네요. 이런 좋은 그림책을요..
아이가 한살씩 먹어가면서 일년에 한 번씩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할 이야기도 늘어가겠지요..
님, 애정의표시 꾸욱~ 남겨주시고 가셔야죠..호호..

뽀송이 2007-07-1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추천하고 갑니다.^^;; 혜경님 넘 귀여워욧!!!

프레이야 2007-07-10 19:00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복 받으실거에요.. 하하하..
저녁식사 준비는 다 하셨어요?

nada 2007-07-1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여기도 페드롭니껴. 요즘 알라딘에 페드로 신드롬이~~
우리 식구는 밤마다 혜경을 묵독합니다.ㄷㄷㄷ

프레이야 2007-07-10 21: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꽃양배추님, 우리 형제로서 경전을 보러 오셨군요, 아멘..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 ^^
체셔님의 재기발랄함으로 유쾌해요!
근데 페드로신드롬은 뭐에요?? 아, 알아냈어요. 교주님 페이퍼에..

비로그인 2007-07-1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접하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반응으로 표현하지요
감탄사 또는 행동으로 말이예요
아~핫 오~저런 이런일이...눈망울 초롱초롱 글쿠나 혹은(글쩍글쩍^^a)
도장밥 꾹꾹 눌러 추천하고갑니다 꾸욱~♡

2007-07-10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풀꽃선생 2015-01-0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풀꽃입니다. 딸애가 고3이라 시험을 마치고 지난 주에 같이 서점에 갔어요. 어렸을 때 보던 그림책 이야기를 하며 오래 앉아 그림책만 읽다 오자고 해서요. 훗날 님의 따님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또 딸들이 아기를 낳아 그림책을 읽어줄 때가 되면 3대가 머리를 맞대고 그 옛날 같이 그림책 읽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좋은 글들 감사드려요. 오랜만에 서재에서 좋은 책 정보 얻어갑니다.

프레이야 2015-01-10 00:1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올해 따님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책을 지난 주에 보셨나요? 아님 보실 계획인지요. 딸아이와 함께요.
참 좋은 그림책이죠.
저는 아이들 어릴 적에 샀던 그림책들, 거의 다 갖고 있어요.
저도 가끔 들춰보고 마음에 즐거움과 위로가 된답니다. 아이랑 함께 읽던 시절도 가끔 생각이 나요.
올 한 해도 행복한 날들 되시길요^^

댓글저장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엄마가 집에 돌아오셨다. 일주일이 넘는 동안 병원에서 검사받고 수술날짜 조마조마 기다리고 8시간의 긴 수술을 받고, 이제 집에 계신다. 방금 통화를 해보니, 아직 배변이 순탄해지려면 적응기간이 필요한지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계신 눈치다. 6월 27일 아침, 엄마가 병원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동안 그런 호강 한 번 누릴 틈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오신 분이기에 더욱 낯설어보였다. 수술예정 한 시간 전, 간호사가 오더니 콧줄을 꽂기 시작했다. 위 속까지 내려가야 하는 초록색의 기다란 줄이 사정없이 엄마의 왼쪽 콧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평소에도 통증을 잘 못 견뎌하시는 엄마는 무척 고통스러워하시며 손을 내저었다. 조금만, 다 됐어요. 잘 참네, 엄마. 고통이 언제 예고하고 찾아오던가. 토할 것 같다고 계속 호소하는 엄마에게 그냥 기분이 그런 거니 삼켜야한다는 간호사의 말만 전하며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내가 해드릴 게 없었다. 엄마의 짧지 않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는 살아오면서 여행가방을 챙겨본 일이 거의 없다. 아니 내가 본 기억으로는 단한 번도 없다. 일주일간의 병원생활을 여행 삼아 엄마는 가방을 두 개나 싸셨다. 콧줄을 꽂은 엄마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나는 옆에서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엄마의 가방속을 살폈다. 먼저 눈에 뜨인 건 하얀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나염된 팬티들. 곱게 개어 작은 비닐팩에 차곡차곡 넣어오셨다. 노랑꽃, 파랑꽃 두 가지의 색상으로 골고루 새로 산 듯했다. 분명 새것이었다. 수술 전 속옷도 모두 벗어야하고 나중에 수술을 하고 나서는 시큼한 분비물을 받기 위한 커다란 패드를 하고 계셔야 하니 아무런 필요가 없을 껍데기들. 그래도 퇴원하는 날엔 이걸로 갈아입고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그날 내 눈에 처음 뜨인 그 보송보송한 팬티들이 엄마의 마음이다. 그속엔 엄마의 '봄날에 대한 그리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에 대한 생의 자부심' 같은 게 원색으로 프린트 되어있다. 그 외에도 나무젓가락, 빨대, 영양크림에 헤어롤까지, 그리고 보호자가 덮을 얇은 이불에 쿠션까지. 엄마의 여행가방 속엔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한 가지 깜박, 책을 못 넣어 왔다고...

 수술 후 4일쯤 지나고 거동이 좀 나아지자 병원 가톨릭원목에서 빌려주는 책을 한 권 얻어 읽고 계셨다. 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어? 이 책 집에도 있는데. 책 읽게 될 것 같지 않아서 안 갖다드렸는데... 3일 정도 엄마는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하셨고 그 바로 아래 보호자침상에 모로 누운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루는 병실 바로 앞에 의자를 내어놓고 복도천장의 밝은 형광등 불빛아래서 꼬박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시집이라도 갖다드릴 걸 그랬나 싶었는데 이럭저럭 퇴원날짜가 다가왔다. 담도암이 재발하여 들어오신,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공부 다 했소?, 이렇게 간간이 창밖을 내다보는 엄마에게 묻곤 하셨다.

 엄마의 수술 하루 전날, 아무 걱정 말고 오늘밤 푹 주무시라고 전화를 드린 뒤, 뒤숭숭한 마음으로 펼쳐든 책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다. 알라딘의 아름다운 님이 선물로 주신 이 책을 그동안 고이 꽂아두고 손을 안 대고 있었는데 내 손이 자연스럽게 이 책에게 뻗어갔고 흡착된 듯 책장을 넘겨갔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음반은 이미 여러 번 들었고 책표지만 뚫어져라 보았던 책이다. 흑백 사진 한 컷. 반듯한 창이 하나 있고 창밖으론 물방울마냥 아롱대는 나뭇잎들이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위로 ‘가만가만’이라는 붉은 글자는 가볍게 어깻짓을 하는 듯 갸우뚱하니 서 있다. 창가에 놓여있는 낙서장 같은 노트와 가죽손목시계, 열쇠꾸러미, 물을 마시다 남겨둔 유리잔 그리고 여권. 소속이나 존재의 증명수첩 같은 것일까. 작가는 지금 이 창가에서 두어 발짝 물러서 한갓진 벽에 기대어 창밖을 보고 있다. 분명! 그녀의 음색은 속지처럼 고운 라벤더 색이었는데 그녀의 글은 조금 더 연하게 푼 라벤더 색이었다.

 작가, 한강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차분하고 맑은 음색만큼 그녀의 글들이 내게 가져다준 위로감이란 말할 수 없이 포근하고 잔잔하였다. 무덤덤한 척 했지만 떨고 있을 엄마 그리고 나.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았다 말할 수 없는 젊고 어여쁜 작가의 글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목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줄이야. 고통이 느닷없이 찾아오듯 위무도 그렇게 느닷없이 덮쳐오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인연이란 적절한 '때'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숨소리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을 것 같은 한강의 섬세한 마음결을 따라 서서히 내 마음이 풀려갔다.

 

 마음의 파장이 몰고 오는 리드미컬한 손길,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글도 노래다. 세상의 모든 음파를 몸의 현으로 받아서 되돌려 풀어주는 그녀의 글은 충분히 소소하고 그래서 더욱 값진 공감대를 울려댔다. 유년의 기억과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그녀가 놓치지 않고 몸으로 담아내는 체험과 정서, 성년이 되어서도 녹록하지만은 않을 생의 편린들이 그녀의 노래 같은 글 속에서 소박한 빛으로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걸 나누어 갖는 나는 뜻밖에 다가오는 위로의 말들에 눈시울이 젖어왔고 떨리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어 감을 느꼈다. 누군가의 흑백 사진첩을 넘겨가며 울고 웃던 사연들을 들은 듯,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가장 마음에 든 장은 ‘2장 귀기울이다’이다. 그녀의 미려한 마음의 현을 울려댔던 노래들, 그 하나하나의 가사와 사연 그리고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 고유한 감정의 선율과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내가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하는 'You Needed Me'를 비롯해 이십대 시절 언젠가 딱 한 번 주왕산을 오르며 직장후배와 불렀던 ‘보리밭’까지. 그리고..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 let it be...

 내가 요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이적의 3집, 두번째 노래 ‘다행이다’이다. 엄마는 수술 후 이틀이 지나자 거울을 수시로 보며 머리를 빗고 기미가 늘었다느니 얼굴이 얄궂다느니 엄살을 부렸다. 수술을 마치고 난 직후 중환자실에서 본 엄마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가슴이 아팠는데 이틀이 지나자 엄마는 환자 같지 않게 복사꽃 같은 혈색이셨다. 그렇게 엄살섞인 말을 하는 건 얼굴이 참 좋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손빗으로 빗곤 했는데 한 번은 뒷머리를 내 손으로 빗어드렸다. 숱이 없고 모발이 약한 엄마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너무 부드러워 부서질 것 같았다.

 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그대를 만나고/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그대를 안고서/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다행이다/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꼬리말 : 이번 엄마일로 마음 써주시고 기도해 주신 그대, 아름다운 님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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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8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8 20:38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전 일주일간 매일 들락거리고 몇밤은 밤새고
그랬던걸로도 고단함이 쌓이더군요. 할머니 병간호까지 지극으로 하셨다니
토닥토닥.. 님, 살아갈수록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싶어요. 그중에서
도 건강은 더욱 그렇구요. ^^

비로그인 2007-07-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후에 여자환자분이 머리를 빗으면, 담당의사들이 그걸 보고
'오.. 많이 회복되셨구나.' 한답니다.
어머님의 회복 속도가 빠르시군요. 다행입니다. 혜경님.


프레이야 2007-07-08 20:39   좋아요 0 | URL
네, 한사님, 그런가봐요^^
드시고싶은게 많은가본데 조금씩 가려가며 적응하시면 좋겠어요.
아직 장기능이 정상이 아닐텐데 마음이 앞서가니 말에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2007-07-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참 열심히 사시는것 같아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셔도 그걸 그대로 넘기는 법 없이 이토록 긴 글로 감상을 얘기하시니 말여요. 그토록 열심히 사시는 분이시니, 삶도 내치지 않을거라 보여집니다. 어머님의 회복은 그래서 당연한 듯 보여집니다. 다행이예요 혜경님.

프레이야 2007-11-08 08: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격려 고맙습니다.^^
여덟살 연상의, 당신보다 훨씬 늙은 남편을 애처로워하는 모습에서 보았어요,
부부의 정을요. 마음은 있으면서 다정하게는 못 대하시는 그 어쩔수없음도요^^
그래도 모든게 다행이지요...

로드무비 2007-07-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꽃무늬 팬티, 성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모두 눈물겹네요.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07-11-08 08:00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머리밑이 훤히 보이는 머리 보며 안쓰럽더이다.
기원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7-0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마음고생 많으셨던 혜경님도 한 시름 덜으시길 바랄게요.
:)

프레이야 2007-07-09 12:41   좋아요 0 | URL
체셔님 기도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아직 마음 다 놓을 상태는 아니지만
얼마나 다행인지요..

2007-07-0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2:43   좋아요 0 | URL
님, 지금 그대로 얼마나 좋은 엄마이신데요.
고민하는 건 그만큼 나아지려는 것이지요. 아자아자, 힘내시고요..
고마워요^^

소나무집 2007-07-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함께 밤도 새우셨군요.
한강은 대작가 한승원의 딸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작가지요.

프레이야 2007-07-09 12:49   좋아요 0 | URL
네, 차츰 한강을 만나볼 테에요.^^
밤이면 앓는소리를 하시곤 했어요. 수술부위 통증은 무통주사로 견디기
쉬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 숨을 못 쉬겠다고 그러셨어요. 입술도 탄다고
계속 손수건에 물 적셔서 드렸어요. 물은 마실 수 없었으니..
제가 아이를 낳았을때 옆에 며칠씩 있어준 사람이 엄마인데...

2007-07-09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2:46   좋아요 0 | URL
어머니 일은 잘 되시리리 믿어요!! 제 동생도 무탈하니 잘 지내거든요.
너무 걱정 마시라 말씀 드리세요. 미리 걱정한다고 이로울 게 하등 없지요.
님도 마음 굳게 먹고 기다리시구요.

홍수맘 2007-07-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위로 받는 느낌이 들어요.
오늘도 좋은 책을 만나고 가네요.
어머님의 회복소식도 종종 들려주실 거죠?

프레이야 2007-07-09 15:41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나봐요. 타이밍 같은..
다른 때 같으면 그저그랬을지도 모를 책인데 아주 적절한 때 위로가
되었어요. 엄마는 아직 다 회복된 건 아니지만 차츰 좋아질 거에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 가뵈려구요. 같은 시내이지만
좀 멀어요. 그래도 어쩌고 계신지 마음 써여 안 되겠어요.

2007-07-0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5:42   좋아요 0 | URL
속삭인님, 네 같이 기억될 거에요^^
쾌차해서 저랑 연극 보러도 다니고 예쁜 옷도 입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장표 꽃무늬 팬티 입으시고..^^

백년고독 2007-07-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일이 있었군요.
이제 다시는 병원에 가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

이 책 읽으면서 한강이라는 작가는 참으로 다재다능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5:43   좋아요 0 | URL
백년고독님, 고맙습니다.^^
정말 다재다능하다 싶어요. 소녀같은 인상에 강인함이 묻어나더군요.
글도 여린 듯 강했어요.

2007-07-11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kdagi 2007-08-0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의 글은 대부분 심각한 것만 접해서 쉽게 읽히지 않았는데 님의 평을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어머님도 앞으론 병원에 가시지 않길 바랄게요. 님도 건강하세요.

프레이야 2007-08-06 00:00   좋아요 0 | URL
전 한강의 글이 이책으로 첫만남이에요.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글이었어요.
참 맑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머님 일, 감사드려요.^^
지금 잘 견디며 싸우고 있어요. 장기전이라 생각하라고 말씀드릴 수밖에요..
님도 건강 챙기며 일하시기 바래요.
댓글저장
 

어제는 7월의 첫날이었다. 얼마전부터 장마는 예고되었고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가슴을 훑어내리는 노래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렸다. 엄마가 입원해 계셔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수술경과도 아주 좋고, 표가 미리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 옆지기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옆지기의 배려도 고맙고...

그런데, 안 갔더라면 후회했을,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부산 KNN에서 주관하여 방송국 카메라들이 몇 대 무대를 향해있고 좌석은 사람들로 꽉 찼다. 나는 아날로그 방식의 반주를 생각하고 갔는데 재즈풍의 반주가 무대를 사로잡고 조명도 생각보다 화려했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공연을 보러 간 건 처음이다. 이들은 87년 첫콘서트를 가졌고 잊지못할 87년 6월의 의미를 오늘날 되새김질하는 기획의도였다. 자막에 흐르는 뜨거운 싯구가 가슴을 달구었다. 그날의 영상들, 그날 이후의 영상들과 함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말들, 노래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추억이여, 안녕한가? ... 당신은 안녕한가?

우리는 지금 20년이 지나,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유령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노래들은 익히 귀에 익은 것들부터 처음 듣는 몇 곡까지 가슴이 울컥울컥하는 가사에 호소력있는 명징한 음색으로 감동을 전했다. 중간에 동물원의 멤버 김창기가 부른 '시청앞 지하철역'과  강승원(김광석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주었다 함)이 직접 부른 '서른즈음에'도 훨씬 힘있는 느낌으로 좋았다. 87년 6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나는 대학4학년으로 취업걱정 반쯤하고 옆지기랑 만나 데이트 하면서 앞날도 좀 고민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보내고 있었다. 거리에 나가지는 않았고 텔레비전으로 그날의 함성과 감격을 듣고 보았다. 나는 중심에 있지 않았고 구경꾼에 불과했다. 이날 영상으로 보여주는 흑백필름들이 20년전을 말하고 있었다.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때는 알고도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음이다. 난 그해 유월, 약혼의 의미로 지금의 옆지기에게 론진 시계를 받았다. 가난한 대학원생이 주머니 탈탈 털어 잡비를 써가며 거금을 모아 사주었던 귀한 마음이다. 그 시계는 지금 서랍속에서 잠자고 있고 나중에 큰딸의 손목에 채워지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구닥다리라고 좀 마뜩찮아해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편안하게 살고 있음은 그만한 희생을 치루는 아픈 사람들이 있어서임을 잊지 않고, 느끼며 살아야겠다. 다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하는 것 한 가지는 있어야한다. 추억이여, 안녕한가.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는?

<노찾사 첫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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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가 20년 후 부산에서 부른 노래

정원 / 행복의 나라로 / 사계 / 안녕하세요 / 동물의 왕국 / 겨울 나라 / 먼 길 / 동지를 위하여 / 여기에 / 잃어버린 말들 / 나무 / 나의 바램은 / 젊은 그대 / 먼 훗날 / 광야에서 / 그날이 오면

모두모두 좋았는데.. 특히 처음 듣는 곡 중에선 '안녕하세요'와 '나의 바램은', '젊은 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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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노찾사 공연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김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이 팜플렛에 쓴 발제문의 일부다.

노찾사가 부른 많은 노래들은 그 시절 우리가 뜨겁게 나누었던 그 인간의 희망을 우리의 기억 속에 끊임없이 새롭게 생환시켜 주었다....... 생환하지 않는 기억은 역사가 아니다. 지금 여기의 현실로 살아 돌아올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과거에도 그랬듯이 노찾사의 이번 공연 역시 매끈한 해답보다는 어눌한 질문을, 명쾌한 결론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고민거리를 던져 줄 것이다. 지난 20년, 우리는 잘 살아왔는가, 세상은 더 좋아졌는가, 평화는 더 가까워졌는가, 민주주의는, 자유는, 인간해방은 이제 버려도 되는 구호인가. 과거에도 그랬듯이 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부박한 일상에 떠밀리며 제 한 몸 챙기기에 바쁜 가운데 잊고 살던 질문들을 마치 뒤통수를 후려치듯 날카롭게 던져주는 노래들... 노찾사의 자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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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신문기사..


'노찾사 2' 앨범.

1987년 10월 13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번째 공연이 있었다. '건강한 대중가요의 방향을 찾는 노래마당'이 표제어였다. 공연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은 박수 치고 눈물을 쏟으며 '아침이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루터기',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함께했다. '노찾사'가 이끈 노래운동 대중화의 첫 발이었다.

2004년에 노찾사 20주년 기념음반을 재발매하고 이듬해 이화여대 대강당 공연으로 다시 기지개를 켠 노찾사가 '1987, 그 20년 후에'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 1987년 6월에서 2007년 6월에로, 미래를 향한 과거로의 여행이다. 7월 1일 오후 2시, 6시.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이번 무대는 활동을 재개한 이후 노찾사가 계속해 온 모색의 결실을 정리하고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1987년의 시대정신을 새기고 지금 현재 우리 삶의 현실을 되돌아보기 위해 그날의 노래들 위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더하는 새로운 시도도 한다. 댄스그룹 거북이와 힙합 뮤지션 MC 스나이퍼가 다시 불러 사랑받았던 '사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같은 대표곡들 외에도 '젊은 그대' '나의 바램은' 등 창작 신곡과 노찾사의 공식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김민기 작곡의 '잃어버린 말', 하동헌 작곡의 '정원' 등도 만날 수 있다.

신지아, 조성태, 문진오 등 노찾사 멤버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찾사 대표 하동헌씨가 제작 총괄을,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의 음악감독 하종욱씨가 연출을 맡았다.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그리고 관현악 소편성 구성이 새로운 편곡으로 섬세하고 깊이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대한민국 모든 '서른 즈음'의 가슴을 치는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 강승원과 그룹 동물원 출신의 사색적인 싱어송라이터 김창기가 함께한다. 1577-6700. 최혜규기자 iwill@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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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는 노찾사 멤버중 리더의 코멘트로 한 사람의 사진작가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시우!

그는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 중이라고 하며 그분이 감옥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오래 기억해둘 말이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머리? 심장? 아니, 아픈 곳입니다. 아픈 곳을 중심으로 몸의 모든 감각이 쏠리고 집중하게 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없는 사진전이 6월 27일 부터 7월 14일까지 평화박물관 주최로 평화공간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작품들이 여럿 걸려있고 그것들은 모두 조사대상이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또하나의 유령과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니...

전시장 한켠에는 이시우사건을 알리는 게시판 글모음과 슬라이드가 공개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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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7-0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부독재시절의 애환을 노래해주고 달래주던 고운 선율, 심금을 울리는 선율, 호소력 있던 선율이 그립습니다.

프레이야 2007-07-02 21:28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정말 뜨거운 자리였어요. 노랫말이 너무 좋구요.
전 이런 노래를 들으면 눈시울이 뜨끈해져요.

hnine 2007-07-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으면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노래들이지요. 위의 노찾사2 LP는 저도 가지고 있는 것인데~ ^ ^ 반갑네요.

프레이야 2007-07-02 21:28   좋아요 0 | URL
저 엘피를 갖고 계시군요. 와~
님과 노찾사의 정서적연대가 느껴지네요.

Mephistopheles 2007-07-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그날이 오면 들으면 뭉클해져요..

프레이야 2007-07-03 08:45   좋아요 0 | URL
메피님도.. !!
이들의 노랫말을 들으면 요즘의 대중가요 가사들이 너무 경박하고 표피적인 것
같아 거북해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소나무집 2007-07-0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정에서 체류탄 연기가 가실 날이 없던 그 시절.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를 당해야 했고, 시험도 볼 수 없던 그 시절.
벌써 20년이 지났군요.
노찾사의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는데.
그들 모두 안녕하시던가요?

프레이야 2007-07-03 14:49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딱 그시절에 대한 추억의 공유네요.
님은 적극적 동참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전 부끄럽게도 소극적이었고
방관자적이었어요. 네, 그분들도 다 안녕해 보였어요.^^

세실 2007-07-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야에서 참 좋아했었는데....87년이면 전 대학2학년. 신나게 놀던 시절이었군요.
남친이랑 노찾사 노래 열심히 들었답니다. 아 저 LP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그땐 그랬지~~~~

프레이야 2007-07-03 23:42   좋아요 0 | URL
꺄오~ 세실님, 남친이랑 불렀군요!! 광야에서...
독서치료 청강 도와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댓글저장
 
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품절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의 손에 그 힘이 들어 있다. 이것은 돈이나 테러, 혹은 죽음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아무도 그걸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루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374쪽

이 향수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향수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것인지 아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단지 그 효과에 굴복할 뿐이니까.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을 매혹시키는 것이 향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향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낸 나 자신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향수의 마법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이 향수는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신들이 진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375쪽

자신들의 음울했던 영혼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들의 얼굴에 수줍은 아가씨 같은 달콤한 행복의 빛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눈을 들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은밀히, 잠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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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6-2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내일이 수술날이죠 아마. 수술 하는 것도 힘들지만, 하고 난 뒤에도 여러가지 힘든 일이 많을 거예요. 마음 굳게 먹고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프레이야 2007-06-2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이리 격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에게도 전할게요. 수술 후 힘든일들이 많을 거란 말,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약해지지 않도록 말씀드려야겠어요. 수요일에 예정입니다.
댓글저장
 
 전출처 : 잉크냄새 > 개미

개미

- 강연호 -

절구통만한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
발 밑으로 위태롭게 지나간다 저 미물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 외에는 눈길 주지 않는
저 삶의 절실한 몰두
절구통이 내 눈에는 좁쌀 한 톨이듯
한 뼘의 거리가 그에게는 이미 천산북로이므로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몸 자체가 경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니겠는가
직립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만 빼고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모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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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7-06-1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 구경 다니고 있어요~~. (미모로운 님이 모습을 날마다 볼 수 있도록 사진도 올려놓으시궁~~^^)

프레이야 2007-06-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대문에 사진 걸어주세요. 미모로운 모습 매일 뵙게요^^

2007-06-14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6-14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이랑 스킨이 잘 어울립니다. :)

프레이야 2007-06-1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정말,정말요?? 좋단 말씀이죠!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6-2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라는 구문이 정말 .. ㅠㅠ

배운다는 일이 이렇게 살아가는 내내 지속됨을 생각할때
언제나 생은 보다 내려앉아 살아가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더위에 건강조심하세요 .. 혜경님 .. ^ ^



프레이야 2007-06-20 08:41   좋아요 0 | URL
수경님, 옛선비들은 발밑의 개미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조심했다고 하지요. 저도 이 시의 그 구절에 멈칫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되더군요. 다시 살아야겠다는 님의 댓구 또한 저를 생각하게 하네요.
님, 장마가 다가온다죠. 전 비오면 좋아요. ^^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