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를 털어주며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 박완서의《호미》중에서 -  (오늘아침 고도원의 편지에서)

----------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엄마는 꼭 골목 어귀까지 나와서 옷주름을 잡아주고 치맛단을 털어주고 깃을 바로 잡아주곤 하셨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충분히 매만지고 바로 입고 나와서 더이상 손 댈 곳이 없는데도 뭐가 그리 까탈스러우신지, 나는 귀찮아하고 짜증스럽게 반응하기도 했다. 돌아서 걸어가도 엄마는 한참 뒤에 서 계시다 저만치 가고 있는 나를 부르며 달려오신다. 치마가 비뚤하다느니, 엉덩이에 뭐가 묻었다느니, 다시 한번 매무새를 고쳐주시곤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뒤에서 말로 계속 매무새를 다듬고 계셨다.

대학생이 되어서 교복은 벗었고 퍼머도 하고 화장도 살짝 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미장원에 갔다 온 날이면 한번도 예쁘게 나왔다고 기분 좋게 말해 주신 적이 없다. 앞머리가 이상하게 잘렸다느니 뒷머리가 안 예쁘다느니 트집을 잡아서 그러지 않아도 마음에 흡족하지 못해 속상해 있는 내 속에 불을 지르곤 하셨다. 아침마다 내가 입고 나서는 옷을 매만지고 털고 불고 하시는 엄마의 행동은 계속되었다. 옷이 비뚤어졌다느니 그건 안 어울린다느니 색깔이 아래위로 안 맞다느니 하시며 여전히 즐기듯 그러셨다.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울소재의 투피스를 하나 샀는데 감색의 허리가 잘록한 상하의에 칼라는 흰색 레이스가 달려 탈부착이 가능한 옷이었다. 내 몸에 잘 맞고 편해서 좋아했던 옷인데 그게 어느날 얼룩도 생겨있고 바짝 줄어있는 거다.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엄마는 그걸 손세탁 하셨단다. 드라이클리닝 해야하는 걸 몰라서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알뜰살뜰한 엄마는 그저 드라이클리닝 하는 돈을 아껴 볼 심산으로 집에서 빨았던 게다. 아,  엄마는 투덜거리는 내 볼멘소리를 뒤로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리 될 줄 알았나 이러시며 못 들은 척 다른 일만 하셨던 기억이 난다. 웅크린 등과 어깨만 잔상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내 머리가 이상하다는 말씀도 하지 않고 옷매무새를 털고 불고 해 주시지도 않는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없어진 나는 엄마가 입은 옷을 간섭하고 코치하고, 숱이 없어 머리 모양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하시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안쓰러워한다.

털어주고 불어주고 매만져주시던 그 손길의 정체를 이제야 알겠다. 나는 똑같이 내 아이들에게 그 손길을 놀리고 있다. 아침마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나가는 큰딸의 뒷모습에서 난 눈을 떼지 못하고 치맛단을 털어주고 싶은 게다. 어깨에 맨 가방끈도 상의가 구겨지지 않게 바로 펴주고 싶은 게다. 편한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좋아하는 작은딸의 머리를 묶어주고 옷을 다 입고 나면 꼭 이곳저곳 살펴보고 손으로 쓸어주곤 한다. 양복을 입고 어울리는 넥타이를 골라 매고 나가는 옆지기의 뒷모습, 헐렁한 양복 뒷자락을 한 번 털고 만져서 펴주고 싶은 게다. 먼지가 있어서, 머리카락이 묻어서는 다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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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의 글을 아침에 읽으며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제가 한부 제 서재로 옮겨갑니다.
좋은 글. 추천!!!


비로그인 2007-06-1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2.0에서는 '퍼가기'기능이 없어지고 '찜하기'기능으로 대체될 거라하는데 그리되면
배혜경님의 상기 글이 알라딘 이웃서재의 마지막 '퍼가기'글이 될 듯 싶습니다.하하


무스탕 2007-06-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엄마가 계속 매만져 주던 시절..
이젠 제 그러네요. 아침에 애들 학교 갈때 가방끈 잡아주고 티셔츠 잘 펴주고..
엄마가 돼서야 알아챈 엄마맘이에요..

프레이야 2007-06-1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상쾌한 아침에 참 반가운 방문입니다. 새 서재에선 그리 되나요?
컴맹인 저는 적응하려면 한동안 걸리겠습니다.^^
마지막 퍼가기 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무스탕님, 참 피곤하게 사신다 싶었던 엄마의 습관들이 제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모두 이해된답니다. 참 늦게 깨닫는 것 같아요. 그죠?
오늘도 화창한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

비로그인 2007-06-1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이에 글 일부를 다듬으셨군요.. 다시 스크랩해 갑니다.
"털어주고 불어주고 매만져주시던 그 손길의 정체를 이제야"
공감합니다. 배혜경님..


fallin 2007-06-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누군가가 저의.. 또 제가 누군가의 어깨를 괜시리 툭툭 털어내는 때가 있죠. 의식하진 않았지만..이런 맘이였나 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에요^^

비로그인 2007-06-1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옥수수 스프를 마신 느낌입니다.

달팽이 2007-06-1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오래된 시골집의 아랫목 같이 여겨집니다.
황폐한 마음의 겨울날, 조용히 손을 녹이고 갑니다.
혜경님. 글이 참 좋습니다.

2007-06-1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13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6-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아요. 생각해보면 어깨의 먼지를 툭툭 터는 행위는 바로 사랑이었네요. ^ ^.

프레이야 2007-06-1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조금 고치고 나서 다시 가져가십사 말씀드리려다 번거로우실 것 같아
그냥 있었는데... 잘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fallin님, 저도 누군가에게 손길을 보내고 싶은 경우가 있죠. 유독 정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손이 먼저 나가는 것 같아요.

엘신님, 옥수수 스프도 다음에 포도맛 아이스크림에 추가 해두세요 ^^

달팽이님, 왜 그러세요. 늘 평정심을 잃지 않아 보이는데, 황폐하시다니
마음 쓰입니다.

속삭인ㅅ님, 에공 부끄.. 그래도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했는데 이제 보셨군요. 신비주의 할 것도 없다싶으니까요..

속삭인 ㅎ님, 엄마는 영원히 엄마에요. 어머니라고 굳이 부르고 싶지 않지요.
그죠.. 님도 엄마생각 나셨군요. 전 살아계시니 님보다 행복하다 싶네요.
엄마, 보고 싶다는 말씀에 짠해져요..

홍수맘님, 네 그런 거였어요. 애정의 표현이요^^

혜덕화 2007-06-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면 행복해 지는 글입니다.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 정말 맞는 것 같앋요.

마노아 2007-06-1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추억이, 사랑이 묻어있는 글입니다. 고스란히 제 가슴에도 옮겨 놓을게요. ^^

프레이야 2007-06-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오늘 하루 평안하셨는지요. 지금 밖엔 빗방울이 가늘게 내리네요.

마노아님, 엄마와 어머닌 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할머니가 되어도
엄마라고 부를거에요. 아버지에게도 아빠라고 부르구요.
사랑스런 댓글, 제 가슴에 남습니다.^^

비로그인 2007-06-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새 서재 너무 이쁩니다. ^^ 따뜻한 깨끗함. 혜경님답습니다. (웃음)

프레이야 2007-06-1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헤헤 고맙습니다.^^
알아서 단장도 해주고 완벽한 포장이사도 해주고 알라딘도 고맙네요.
 
감옥에서 쓴 편지 반올림 10
장 프랑수아 샤바스 지음, 정혜용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반올림시리즈는 청소년을 읽기대상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청소년이 읽기를 기대하고 쓴 작품이란 점을 감안할 때 작가는 어떤 소재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담아야할까. 작가로서 내부검열에 대한 강도를 높여 소재나 표현의 강도를 순화해야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기 쉽다. 하지만 제목부터 호기심을 끄는 ‘감옥에서 쓴 편지’는 그런 점에서 틀을 다소 깨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1967년 프랑스 출생의 이 작가는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 감옥의 특수상황이나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이력을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대목에서 간접체험을 포함한 작가의 다양한 체험이 엿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데드맨 워킹’이 떠올랐다. 제한된 시공간이 그렇고 남자죄수와 여자상담자 사이에 흐르는 인간애가 그렇다. 살인죄를 저지르고 13년의 복역기간을 잘 견뎌온 오렐리엥 앞에 놓인 출소 전 1년이란 시간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감옥이라는 폐쇄공간 안에서 살아온 13년이란 시간과 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막다른 곳에 와 있는 그에게 기적과도 같이 놀라운 경험을 영혼에 선사한 사람은 자원봉사자 안느. 그녀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아름다운 녹색눈동자를 가진 화가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토록 가슴 아플 줄이야. 무뚝뚝함을 가장하여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드문드문 내비치는 솔직한 감정과 잔잔하게 일렁이는 마음의 물결이 느껴져 인간적이다. 그녀를 향한 오렐리엥의 마음 뒷자락에는 늘 친할아버지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매달려있다. 그가 오래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 눈앞에 나타나는 안느를 동일한 감정선에 올려두고 그리워하는 대목이 아련한 슬픔을 전한다.


형식은 내용을 담고 내용을 돋보인다. <감옥에서 쓴 편지>이 취한 ‘편지일기’ 형식은 적절하다. 일기의 미덕에 더하여 편지라는 형식은 좀 더 친밀하고 사려 깊은 내용을 담을 수 있으며 수신인을 두고 그리움의 대상을 향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나는 편지일기를 십대 적에 한동안 쓴 적이 있다. 당시 내 편지일기의 수신인 혹은 그리움의 대상은 달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발상이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마음의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싶은 기대도 있었거니와, 그것들을 토로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니 마음을 당기는 대상이 불현듯 떠오르면 그것에 애착을 가지기란 또 얼마나 어리석고도 집요한 일인지.


오를레앙이라는 근육질의 강인한 남자가 부치지도, 보이지도 못할 편지를 쓰는 절절한 마음이 눈물겹다. 그의 편지일기를 읽어가다 보면 한 인간이 어떻게 순수에서 증오로 물들어가며 파멸할 수 있는지, 두렵고 놀라운 일들을 만나게 된다. 경이로운 점은 생의 모든 비극적인 장면들을 스스로 대면하고, 성찰하며, 폭력과 분노로 일그러지기 이전의 순정한 초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열망이 사람을 얼마나 순연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작가는 조심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나를 비롯해 독자가 감동을 얻는 순간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이 책에서 대조적인 키워드는 ‘아름다움’과 ‘폭력’('추함'의 대표명사로)이다. 그것은 세상에 널려있는 두 가지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실재이기도 하며 은유이기도 한 이 두 가지 낱말은 공존하지만 공생하기란 어렵다. 아름다움을 통해 폭력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극복해 나가려는 주인공의 성찰이 주는 감동이 뜻밖이었다. '아름다움'은 할아버지가 오를레앙에게 열두 살이 되기까지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자연이 주는 사소한 아름다움을 비롯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미덕(예를 들어 slow hand라 이름하고 싶을 정도로 온몸으로 뿜어내는 존경심)까지, 그는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의 대자연 같은 넉넉함으로 아름다움이라는 축복의 선물을 받았다. 오래도록 그 축복에서 멀어져 살았던 그에게 이제 다시 아름다움을 전하는 '천사'로 나타난 자가 안느다. 천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생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작스레 그를 덮치고 계부와 엄마의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불행은 예고되어 있지 않았다. 폭력(온갖 추함)은 증오를 낳았고 그것은 ‘두꺼비’로 상징된다. 폭력으로 생기는 증오심은 입안으로 두꺼비 한 마리를 꾸역꾸역 밀어 넣어 속에서 기르게하는 것이란 대목은 섬뜩하다. (다른 대목에서도, 에두르지 않고 속살대지도 않으며 직선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장들이 오를리엥의 어조로 적절하면서 작가의 문장으로도 마음에 든다.) 그 두꺼비는 용수철처럼 튀어나올 날을 기다리며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았고, 세상에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그저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과 폭력에 길들여져 그것에서 뛰쳐나오려는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한 오를리엥은 자신이 저지른 극단의 폭력, 살인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자들은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해자의 가족들, 친구들, 연인 등 희생자가 이어진다. 나쁜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빠져나오기에는 두려운 것들이 더욱 많을 때, 사람을 향한 증오심은 세상을 향한 증오심으로 탈바꿈하여 한 인간의 정신을 나락으로 빠뜨린다. 이렇게 작가는 오를리엥으로 하여금 폭력의 대물림, 증오의 대물림을 대면하게 하고 독자에게도 진실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것은 치유를 위한 전단계다.


‘감옥에서 쓴 편지’는 한 남자의 아름다운 고백이며 자기 성찰의 경이로운 과정이다. 산(혹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위무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라든가, 폐쇄공간에서의 고독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좀먹는지를 이야기하는 ‘고독예찬’에 대한 헛말이든지, 새해 아침이면 나누는 덕담과 기원들 속에 담긴 허망한 낙천주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예리한 시각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 산은 인간의 고통, 기쁨, 우연히 일어난 자잘한 사건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산은 만인에게 자신의 법칙을 적용합니다. 난 할아버지의 시체 옆에서 얼어 죽게 되겠지(75쪽)  그러면서도 다소 냉소적이던 눈을 돌리고 작가는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쪽을 택했다. 이는 오를리엥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적과도 같은 변화다. 작가가 '아름다움'을 위해 택한 것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가장 먼저 나온 보티첼리의 성모상을 위시해서 화가인 안느를 의식한 그림집, 존 스타인 백의 책, 모델이자 사진작가였던 리 말러의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통해 삭막한 가슴으로 쓸쓸한 생을 살아온 오를리엥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전하려한다. (나는 이런 글귀들에서 삽화가 들어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물론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오를리엥의 입장에서는 당치 않는 것이지만 독자들의 눈을 위해.)  물론 인간의 창작품인 예술작품보다 앞서 있는 것이 신의 창작품인 자연이다.


작가가 정작 위로하려고 하는 대상은 오를리엥이 감옥에서 쓴 편지를 읽는 우리들이다.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거칠고 추한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감옥 밖의 우리들 공간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영화나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감옥은 미화되어 있다고 오를리엥도 썼듯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감옥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난폭하고 야비한 일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굳이 눈을 감고 아름다움 쪽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게 비겁한 일이라 해도 살아가는 일이 조야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어디서 위로 받고 힘을 얻을지. 어떤 예술작품보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은 한 사람이 뿜어내는 진정어린 호감이다. 한 사람에 대한 신뢰와 무한한 애정은 세상의 어떤 폭력보다 힘이 세다.


오를리엥의 편지를 읽다보면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순수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열 살 소년과 두려움에 치를 떠는 어린 짐승의 눈을 한 열두 살부터 열다섯까지의 사춘기 소년, 제법 건장해진 체격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한 열여섯의 아직은 어른이 아닌 어른 체격의 청소년, 집을 나와 이곳저곳 전전하며 자신의 생을 홀로 꾸려가고 강인한 남자가 되기 위해 체력을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근육질의 청년, 도장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스물 셋의 청년 그리고 아이리스 꽃 한 다발을 들고 오랜 세월 떠나있었던 집을 찾아가는 듬직한 청년. 아, 그때 코가 비뚤어져있고 이마에 멍이 들어있는 어머니를 보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에 대한 맺힌 마음을 풀지 못하는 오를리엥이 못내 안타깝다. 이유 없이 가해지는 폭력과 그 앞에서 겁먹는 소심함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인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한 남자가 이제 일 년 동안 쓴 편지를 담은 두 권의 공책을 챙기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일들을 회상하며 간간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듯한 표정과 분노가 되살아나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한 숨 쉬며 호흡을 고르고 있는 것 같은 모습들이 편지일기의 행간에 생생하게 반영된다.


아쉬운 오기 : 이 편지는 2001년 1월21일에서 시작하여 일 년 간의 기록인데 이듬해 첫날에 쓴 편지의 날짜가 2001년 1월1일로 되어있다. ‘2002년 1월1일’이어야 하는데 오기 같다. 2001년 1월 18일자가 마지막 편지인데 이것도 ‘2002년 1월18일’일 것이다.

그래서 별 하나를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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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2007-06-11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요- 국제도서전에서, 바람의 아이들 코너에서 한참을 수다떨다 왔답니다 ㅎ

프레이야 2007-06-1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uan님, 바람의아이들 정말 대단해요. 계속 나올 책이 기대되구요. 국제도서전 다녀오셨군요. 누구랑 수다떠셨을까? 친구랑? 동료랑? 아무튼 잘 다녀오셨네요. 기회되면 저도 그런 곳에 가보고 싶어요. 국제도서전은 여기선 너무 먼 곳에 하더군요...^^

망상 2007-06-1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누구랑인지 안 적었었군요;; 바람의아이들 출판사 직원분이랑 떠들다가 책 구경오신 한 아주머니께 미노스를 적극 추천해드렸답니다^^ 작년에 할 때보다 바람의아이들 전시책이 많아져서 어쩐지 뿌듯했어요^^

프레이야 2007-06-1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uan님, 그랬군요. 직원들이랑..ㅎㅎ 미노스는 아직 못 읽어봤네요.
바람의아이들, 무척 사랑하시나봐요. 괜히 저도 뿌듯~
 

1.

  초등 3학년

  건강한 지구 내가 지켜요 / 부르크하트 바토스 / 해와 나무 / 환경

  공기, 물, 땅으로 나누어 지구환경 지킴이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재미나고 쉽게

  가르쳐준다. 녹색별을 달 수 있게 종이녹색별 부록.




2.

 초등 3학년

 고얀 놈 혼내주기 / 김기정 / 시공주니어 / 국내창작

 학교생활 즐겁게 하기, 아이들의 재치발랄한 행동에서 소재를 찾은 유쾌한 이야기.

 




3.

  초등 4학년

 엄마 따로 아빠 따로 / 임정진 / 시공주니어 / 국내창작

 이혼으로 한부모 가정이 된 아이들과 아빠의 어려움과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과정을 이야기함. 실제인물을 소재로 함.

 




4.

  초등 4학년

 곰아저씨의 딱새 육아일기 / 박남정 / 산하 / 자연(환경)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아주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자연과 생명에 대해 이야기함.

 엠파스에 주인공의 자연사랑 블로그가 있어 찾아가보면 재미있음.

 그림과 실제 사진들도 재미있고, 새와 관련한 정보도 유익함.

 



5.

  초등 5학년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 / 로이스 로우리 / 산하 / 외국창작

  아나스타샤 시리즈 일곱권 중 제1권

  사춘기 소녀 아나스타샤가 일상에서 느끼는 성장의 이야기가 술술 읽히며

  타인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며 마음이 자라는 과정이 잔잔하고 흥미롭게 펼쳐짐

 



6.

  초등 5학년

  시튼 동물기 1 / 어니스트 톰슨 시튼 / 논장 / 외국창작

   시튼이 겪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세밀한 관찰력으로 알게 된

   야생동물의 삶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7.

  초등 6학년

 베짱이 할아버지 / 김나무 / 문학동네어린이 / 국내창작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됨.

 





8.

  초등 6학년

  술술 넘어가는 우리 역사 5 / 해와나무 / 우리역사

  우리 근현대사. 풍부한 자료.

 

 





9

  중학 1년

  바다아이 / 장 클로드 무를르바 / 다림 / 외국창작

  샤를페로의 '엄지소년'을 개작. 결미를 다르게 한 흥미로운 청소년소설

   바다를 찾아 길 떠나는 아이들 그리고...

 





10.

   중학 1년

   홍길동전 / 정종목 / 창비

   허균의 국문소설. 사회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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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6-0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 아이>와 <시튼 동물기>기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프레이야 2007-06-0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그죠? 바다아이!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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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2007-05-31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 마음에 두고 생활해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요~

프레이야 2007-05-3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하시는 일 더욱 보람차기 바래요^^
마음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잘 넘기며 살자구요..

섬사이님, 님도 아름다운 하루 되기 바래요.
두려움을 차고 올라 디딤돌로 여기고 싶어요.^^
모르면 두려움도 없지만 두려움이 생긴다는 건 무르익기 위해 치러야 할
통과의례 같아요. 내일이면 유월이네요...

소나무집 2007-05-3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걸 잘 못합니다. 늘 두렵죠?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씩 두려움도 사랑해 보려고 합니다.

홍수맘 2007-05-3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맘에 담고 갑니다. 5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마무리 잘 하시구요, 새로운 6월은 힘차게 맞아요. 우리.

프레이야 2007-05-3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두려움이 찾아오면 전 괜스레 법석이죠. 이상하게 오버액션을
하게 됩니다. 그냥 차분히 맞고 안으면 될 일인데 어렵지요..

홍수맘님, 5월의 마지막 날, 에고 무지 바쁘네요. 방금 들어왔어요.
요가 하고 은행 갔다가 자동차검사 하고 전화통 불나게 어디어디 연락하고...
6월은 더욱 힘차게 맞이해요, 우리!

아영엄마 2007-05-3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바쁘신 혜경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프레이야 2007-05-3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여전히 20대의 청초함을 간직하신 님, 알리딘 터줏대감 자리, 내내
보전하시어요 ^^ 이번 유월은 왠지 기다려지네요. 이유는 딱히 없으면서도...

달팽이 2007-05-3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부족함을 알게 하는 모든 이가 나의 스승이 됩니다.
돌담아래 피어오른 꽃이 이쁩니다.

프레이야 2007-06-0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언제나 마음을 다독이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자정이 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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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5-3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쁩니다. 수선화.
혜경님.

소나무집 2007-05-3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물로 볼 때보다 사진으로 보는 게 더 예쁠 때도 있어요.

홍수맘 2007-05-3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그림 저를 위해 퍼 가요.
이 글은 어디다 붙여놓지? (고민중인 홍수맘)

뽀송이 2007-05-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화는 그저 예쁩니다.^^
무더기로 피어있는 노란 수선화는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것 같아요.^^*
님^^ 님이 있어 알라딘도 아름답습니다.^.~

프레이야 2007-06-01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참 예쁘지요!! ^^

소나무집님, 사진으로 보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사람도 비슷한가요? ^^

홍수맘님, 욕실은 어떠세요? ^^

뽀송이님, 무더기 수선화요, 제 서재 이미지 클릭 해 보세요. 마음이 얼마나
밝아진다구요. 영화 빅피쉬 중 잊지 못한 황수선화밭이에요. 전 꽃 색깔로 노랑을
제일 좋아해요. 물론 다른 색도 모두 좋지만 노랑이 제일 좋아요.
님, 뽀송이님이 있어 이 동네가 더 아름다운 거 아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