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달팽이 > 갯우렁(엄태원)

갯우렁은 연체동물

백합조개 잡아먹을 때

껍질에 빨판으로 달라붙어 가만히 있다

 

마치 꼭 껴안고 있는 듯 보일 테지만

나중엔 백합조개의 볼록한 이마쯤에

드릴로 뚫어놓은 듯 정확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 보게 된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몸짓에

집요한 추궁,

뜨거운 궁구가 있었던 것

갯우렁의 먹이사냥에는

가차없는 집중력이 숨어 있다

 

너를 향한 내 이 물컹한 그리움에도

어디엔가 숨겨진 송곳,

숨겨진 드릴이 있을 거다

 

내 속에 너무 깊이 꺼내볼 수 없는 그대여

내 슬픔의 빨판, 어딘가에

이 앙다문 견고함이 숨어 있음을 기억하라.

 

 

몇 년 전이던가

몰운대의 자갈마당에서

구멍뚫린 조개껍데기를 줍고서

한참을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칼로 자른 듯한 정확한 이 구멍은 무엇일까? 하고서..

 

삶의 진정성이 시에 있다면

그는 날카로운,

손을 스치기만 해도 핏방울 떨어지게 날카로운

시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혜경님의 덤으로 보내주신 선물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 한 명을 만났다.

포장 박스에서 뚜벅 걸어나와

강렬한 인상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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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1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2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4-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155555

(숫자좀 보세요!)

달팽이 님이 갯우렁에 관한 시를 올리시다니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려..


2007-04-21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4-2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ci님, 와 이런 숫자를 캡쳐해 주셨네요. 호호 한번도 숫자를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이거 재밌네요. 오오오오오~~~
달팽이님 시 감상이 한 편의 시랍니다.^^
 

성북동 비둘기

                                                   김 광 섭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採石場) 포성(砲聲)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九孔炭)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平和)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글샘님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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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4-1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성북동 하면 법정 스님이랑 길상사가 생각납니다. 간송 미술관 갈 때마다 들렀었는데...지금도 성북동 그 동네는 개발 제한 구역인지 옛(?) 모습 그대로랍니다.

향기로운 2007-04-1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어렸을때 라디오을 통해 들었던 시에요. 성북동 비둘기..하면 저는 지지직거리는 주파수가 잘 맞아지지 않은 라디오가 생각나요.

푸른신기루 2007-04-18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나네요ㅎㅎ 지금 읽어도 좋긴 하지만 그 땐 감수성도 더 풍부했고 현실적 걱정 등에 대한 외적인 압박도 적었고 무엇보다도 더 순수(순진?)했어서 그런지 참 많이 와닿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음.. "아~ 지나간 사춘기 시절이여~"로군요;;

프레이야 2007-04-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작년 5월 간송미술관에 갔어요. 혜곡 최순우 옛집도 가봤구요.
성북동,하면 느껴지는 그 느낌이 참 좋더군요.

향기로운님/ 주파수 잘 맞지 않는 라디오, 향수를 불러주네요.^^

푸른신기루님/ 그래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순수한 시절의 시들이 오래 기억
되지요. ^^

프레이야 2007-04-1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이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모 유명한 공원에 가면 비둘기들이 많아요.
모여있을 그것들을 후~ 날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샌
어떤지 모르겠어요. 비대해진 도시의 비둘기들이 그나마 설땅을 잃어가니
누구의 땅인지 모르겠지요.

짱꿀라 2007-04-1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땐가 어느 땐가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성북동 비둘기를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 혜경님의 서재에서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반가운 마음이 앞서네요. 잘 읽고 갑니다.

푸른신기루 2007-04-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갈게요~ㅎㅎ 이 페이퍼 담아가려고 카테고리도 새로 만들었어요~ㅋㅋ

프레이야 2007-04-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옛친구를 만난 느낌 비슷하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푸른신기루님, 넵, 고맙습니다.^^
 

 

일요일 오후 3시, 모처럼 '세모녀 연극보기'를 기획한 나는 뮤클에서 표 석장을 예매해 두었다. 이만오천원의 입장료가 부모님과 함께 3인이상이면 2만원씩으로 할인되었다. 극장은 집에서 가까운 모대학 콘서트홀이라 가기도 좋고 세모녀의 나들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생이 배탈이 나는 바람에 엄마랑 둘이서 갔다. 현장에서 표 한 장은 다른 모녀에게 팔아서 다행!


연극배우 유순웅은 영화배우 유해진과 닮아 나도 처음엔 그사람인가 했다. 그런 착각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45세의 충청도 사나이, 그는 가까이서 보니 꽤 주름이 많았다. 하지만 아주 편안하고 소박한 인상의 주름이 일인 드라마를 하는 내내 얼마나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지, 피식피식 웃다가 나중엔 나도 흑흑 눈물바람을 했다. 젊은이들도 많았지만 우리처럼 모녀가 많이 보였다. 내 앞 좌석엔 초등5학년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할머니도 있었다.


한 명의 배우가 15명의 역할을 한다. 아버지의 업을 마지못해 이어받아 염쟁이 일을 천직으로 살아온 유씨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마지막 염을 하려고 한다. 어느 젊은이의 가벼운 시신이 뭔가 특별한 인연으로 얽힌 것 같아 보인다. 일면식이 있는 신문기자를 불러놓았고(사실은 관객 중에 한 사람을 지목하여 끌어들인다. 그래서 그는 이선생이 될 수도 있고 김선생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흰색 야구모자를 쓴 이십대 청년 이선생이 지목되었다.) 우리 관객들은 따라온 사람들 혹은 구경꾼이 되었다. 유순웅이 혼신을 다해 90분을 연기하는 동안 우리는 염을 하는 절차를 지켜보는 전통문화체험단이 되고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구구절절 들어주는 사람도 되고, 나중엔 하나밖에 없는 그의 아들 장례에 문상객이 되어 ‘아이고 아이고’ 곡성을 함께 내기도 한다. 율곡의 십만염병설, 동학의 염내천, 등 기발한 조어로 웃음을 주면서 '죽음'을 보내는 마지막 절차를 담당하는 ‘염’쟁이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솜씨가 재미나다.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90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시신은 무서운 게 아니여, 산 사람이 무섭지. 산 사람한테서 나는 냄새에 비하면 시신에서 나는 냄새는 아무렇지도 않어. 그가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뼈가 있었다. 그가 염을 하여 떠나보낸 시신들의 종류도 다양하여 조폭두목에서부터 재산다툼을 하는 자식들을 둔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그네들의 이야기를 통해 냄새나는 산 사람들의 어지러운 군상을 보여주고 꼬집기도 한다. 중간에 등장하는 '장사치'는 장례절차도 장삿속이 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다. 시신을 소개해주면 십만원씩을 주겠다면서 관객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염쟁이는 그런 장사치와 드잡이를 하는데 혼자서 두명의 역할을 하는 장면에 배꼽 잡았다.

 

죽음을 두려워말고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그의 말은 투신자살로 생을 먼저 떠난 젊은 아들에 대한 애끊는 부모의 심정에서 절정에 이른다. 애미없이 너를 기르기 위해 하루도 염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넌 인형을 만들어 놀고 있었지.- 그게 무신 인형이여? - 엄마 아빠 인형이야...

절절하게 죽은 아들을 그리며 아비로서의 한을 푸는 대목에서 나는 눈물이 흘렀다. 정성들여 손수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혀 관에 넣고 떠나보내는 마지막 길에서 여기저기 눈시울을 닦아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옆에 앉아 계시던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죽으면 목숨은 떠난 줄 알겠지만 우리들 맺은 인연은 떠나갈 수 없는 거여. 

네가 이 생에서 내게 와줘서 고마웠다며 울부짖는 아버지의 울음. 가슴이 묵지근해지다가 흐르는 눈물로 씻기듯 후련해졌다.

 

잘 살아야겠다! 알지만 어떻게?

정성을 다하라’는 말이 가장 잊히지 않는다. 모두다 잊혀져도 정성만은 잊히지 않는 법이랬다.

설겆이를 하는 뒷모습에서 인품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염쟁이 유씨는 주검에 대한 정성, 삶을 보내고 죽음을 맞는 일에 대한 정성 그리고 삶을 살아내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대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연극이 끝나자 유순웅님은 밖으로 나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참 겸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곤 다시 무대로 가서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찍었다. 나도 가져간 디카로 엄마와 셋이서 사진을 부탁했다. 잘 나온 것 같다. 요즘 부쩍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는 엄마. 난 그 나이가 아닌데도 그런데... 다음에 또 좋은 공연 있으면 감성이 풍부한 엄마랑 함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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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16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공연 보고 오셨네요. '정성을 다하라'와 유사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할머니는 '명심(조심?)덕'을 강조하세요. 자꾸 명심하다보면 그것도 덕이 된다나? 맞나? 모르겠어요. 왜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지? ㅎㅎㅎ

Mephistopheles 2007-04-1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인 한사람의 혼을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프레이야 2007-04-16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할머님의 그 말씀, 새겨들을 말씀이네요. 어르신들의 연륜에서 묻어나오
는 말씀에 지혜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이 연극 참 권하고 싶어요.^^

메피스토님, 네 유순웅의 연극은 처음 보지만 정말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칠순이 2년 남은 엄니랑 가슴 뻐근한 시간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07-04-1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해진이랑 닮았네요 ㅎㅎ...세모녀가 다 같이봤으면 더 좋을뻔했네요
연극이란 가슴 뭉클한장면들이 가슴 찡하게 만들잖아요...영화보다 더 좋을때가있어요^^;; 혜경님 잘 읽고갑니다

깜소 2007-04-17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보고싶네요,,저두 엄마랑 아버지랑..제 친구한테 연극 보자고 꼬시는 글로몇군데 좀 담아가고싶은데..괘안을까요?..허럭하시면 그때 슝~담아갈께요..ㅎㅎ

프레이야 2007-04-17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리지님/ 정말 닮았더군요. 연극은 배우랑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지요.
참 좋은 연극이었어요.

깜소님/ 네, 담아가셔도 괜찮아요. 혹시 담아가실 님의 다른 블로그가 있으면
소개해 주실래요. 보고 싶네요.^^

춤추는인생. 2007-04-17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할때는 그캐릭터에 한참이나 빠져서 광기를 발휘하다가도. 막이내리면 부끄러워하시고 또 겸손하신분들이 전 좋아요. 어머님과 즐거운 시간 보내셨겠어요.
부러워요 님.^^

프레이야 2007-04-17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인생님, 정말 이 분도 그랬어요. 웃을 땐 더 유해진 닮았구요^^
엄마랑 함께 이런 거 보는 시간을 늘여볼려구요. 님, 요즘 날씨가 변덕스럽지만
마음에 따뜻한 봄바람 살랑대면 좋겠어요. 황량한 바람은 어여 사라져야할텐데..
건강 조심하시고 기쁜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
님의 노란 치맛자락만 보면 기분이 좋아요^^

비로그인 2007-04-1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사진만 보고 유해진씨가 연극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ㅠㅠ

icaru 2007-04-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유해진이 아니군요..ㅠ.ㅠ
하다못해,,, 동네 산책이라도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어보자고 혼자 조용히 부르짖고 가요!

소나무집 2007-04-1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랑 함께 가셨군요. 저도 엄마랑 이런 기회를 가져봐야겠어요.

글샘 2007-04-1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러 가려고요. 근데 2만 5천원이면...

프레이야 2007-04-17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저도 첨에 광고만 보고 그사람인가 했어요. 원래 연극배우출신이라
최근에 연극도 하네, 그랬다니까요..ㅎㅎ

이카루님/ 정말 엄마랑 지낼 시간도 이 세상에서 그리 많이 남은게 아닐 것 같아요.

소나무집님/ 이 연극 참 권하고 싶어요.^^

글샘님/ 아들이랑 옆지기랑 세분이서 가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원하시면
제가 뮤클에 세명 2만원씩으로 예매해드릴까요? 원하시면 날짜/시간 알려주세요^^
 
곶감과 수필 태학산문선 301
윤오영 지음, 정민 엮음 / 태학사 / 2008년 3월
구판절판


정이란 하나의 면면히 흐르는 리듬이다. 절단된 데는 정이 없다. 비정의 세계다. 정이란 시간과 공간에 뻗쳐 무한히 계속되는 생명의 흐름이고,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유기적인 유? 이 정의 구상이 곧 미다. 수천 년 전의 작품, 수만 리 이역의 작품이 우리에게 공명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그와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유대가 있기 때문이다.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나 생명에는 한계가 없다.-86쪽

더욱이 글을 쓰는 사람도 평소에 文情과 文心을 기르지 않고 붓끝의 재주에만 맡기면 그 문장에 품위와 진실이 깃들이기 어려울 것이 아닌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문정과 文思에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함으로써 속기를 떨치고 文雅한 품성을 기른다. 여기서 비로소 아름다운 글이 써진다. 그러기에 한 편의 명문은 10년의 교양에서 온다고 했다.-93쪽

왜 도연명의 황국이며 주렴계의 홍련이었을까. 날마다 일어나고 되풀이되는 신변잡사라고 그저 번쇄하고 무가치하다고만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다 떼어낸다면 인생 백년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생활 속에서 생활을 찾지 아니하고 만리창공의 기적이나 천재일우의 사건에서 생활을 찾으려는 것도 공허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분분한 市井의 시비, 소잡한 정계의 동태, 불어오는 사조의 물거품, 그것만이 장구한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147쪽

저속한 인품의 바닥이 보이는 문필의 가식, 우러날 것 없는 재강을 쥐어 짜낸 미문의 교태, 옹졸한 분만, 같잖은 점잔, 하찮은 지식, 천박한 감상, 엉뚱한 기상,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며, 우리의 붓을 얼마나 누추하게 하는가.-148쪽

'절실'이라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정열의 부르짖음도 아니요, 비통의 하소연도 아니요, 精을 모아 奇를 다툼도 아니요, 要에 따라 才를 자랑함도 아니다. 인생의 걸어온 자취 그것이 수필이다.-149쪽

위정자의 최대 무기는 권력이다. 권력의 힘이란 시랑猜狼과 같은 것이다. 지도자의 최대 무기는 덕행이다. 덕행의 힘이란 물과 같은 것이다. 지성인의 최대의 무기는 발언이다. 발언의 힘은 추상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인의 발언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확고한 신념이 아니면 발언할 수 없다.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침묵의 권리와 사색의 여유와 불협조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발언은 천근의 무게가 있고 흉중의 보도寶刀가 항상 보류되어 있는 것이다.-175쪽

내 생각과 서로 드나들면, 비로소 읽을 수 있는 내 친구의 글이다. 예상보다 항상 새롭고 절실하면, 이는 上手의 글이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말이 항상 의표를 찌르고 진실이 육박하며, 미지의 여운이 심층의 저변을 울리면, 이는 범상치 아니한 명문일 것이다.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에 족한 글이다....... 음악인가 하고 읊어 보면 회화인 양 나타나고, 진리인가 생각하면 허망인 듯 잡히지 않는 기환奇幻, 사색의 무지개가 걷잡을 수 없이 피어나다가 책을 펴면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추고 옷깃을 바로 하게 하는 글, 모르면서도 매력에 사로잡혀 놓지 못 하는 글, 그런 글이 있다면 일생을 송독誦讀하고도 남음이 있는 기문이니, 대소심천大小深淺의 차가 무량으로 크기 때문이다.-204쪽

"음식의 맛의 생명의 염담鹽淡 맞추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문장에서 염담이란 무엇에 해당합니까?" "문장의 농담濃淡이지. 문장의 농담이 없으면 정물화에 음영 없는 것과 같고, 음악에 박자 없는 것과 같지. 문장은 이 농담에 의해서 함축도 있고 여운도 있고 기환도 있고 내재적인 리듬도 있어 비로소 시취詩趣를 갖게 되는 것일세. 고인이 농담 없는 문장을 기리켜 몰골도沒骨圖라고 풍자한 이가 있어. 우리 모양으로 문장이 미숙하고, 또 배워보려는 사람들은 이 깍두기에서 얻는 바가 있을 것일세."-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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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4-1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바보라고 말씀하신 윤오영 선생님의 정갈한 글은 우리말의 큰스승님이라 할 만하죠.
혜경님 뽑아놓으신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닦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4-14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특히 방망이 깎던노인과 사발시계, 깍두기 같은 글들... 참 좋더이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

하늘바람 2007-04-1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욱이 글을 쓰는 사람도 평소에 文情과 文心을 기르지 않고 붓끝의 재주에만 맡기면 그 문장에 품위와 진실이 깃들이기 어려울 것이 아닌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문정과 文思에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함으로써 속기를 떨치고 文雅한 품성을 기른다. 여기서 비로소 아름다운 글이 써진다. 그러기에 한 편의 명문은 10년의 교양에서 온다고 했다.


이 글 저도 마음에 새기며 퍼담을 게요


네꼬 2007-04-15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어떻게.. 정연하고 단아한 것까진 어려워도 좀 차분해질 순 있지 않을까요? -_-a

홍수맘 2007-04-15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요. <방망이 깎던노인>은 제가 학교다닐 때 교과서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하네요.^ ^;;;

비로그인 2007-04-15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며 내 마음을 바로 하고 내 자세를 바로 하게 됩니다.

오우아 2007-04-16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의 맛은 염담, 문장의 맛은 농담이 절로 와 닿네요. 그러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맛은 무엇일까요? 혹 정(情)담이 아닐까요?

프레이야 2007-04-16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문아한 품성을 기르는데 10년 20년 기한이 없겠지요. 노력하고 싶어요.
네꼬님, 이미지 바뀌었네요. 귀여워요.
홍수맘님, 그래요 그 글 맞아요. ^^
승연님, 그래서 글도 골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우아님, 정담이란 말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짱꿀라 2007-04-1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었던 작품을 또 한번 이곳에서 만나게 되니 너무 기쁘네요. 잘 읽고 갑니다. 역시 옛글의 정취가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문장 한구절 한구절이 너무 좋습니다.

프레이야 2007-04-1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전 어느분의 선물로 읽게 되었는데 곶감을 수필에 비유한 적절함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 대목을 여기 옮겨적지 못했네요. 소박한 언어로 고아한 멋이 느껴지는 글들이었어요.
 

부모들이 꼭 기억해둬야 할 칭찬의 기술 vs 꾸지람의 기술


잘했을 때 칭찬하고 잘못했을 때 꾸중하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겪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효과적일까, 부모들은 늘 고민스럽기만 하다. 이런 부모들을 위해 칭찬 기술과 꾸지람의 노하우를 모아 소개한다. 아이들 키우는 데에는 마음과 정성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술이 더 요구될 때가 있다. 

‘칭찬은 구체적으로, 꾸중은 일관성 있게 하라’

똑같은 칭찬이라도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일정한 기술 없이 부모의 감정에 따라 행해지는 칭찬과 꾸중은 자칫 잘못하면 아이 인생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부모가 칭찬과 꾸중의 적절한 타이밍과 방법을 알아야, 아이들에게 올바른 습관과 행동을 길러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잘했을 때 무조건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일이나, 실수할 때 부모의 화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아이는 혼돈을 겪게 된다. 적절한 칭찬과 꾸중은 아이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사회에 통용되는 규칙에 적응하게 하고, 상황에 맞게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장 좋은 칭찬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말할 것,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일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칭찬보다 더 어려운 게 제대로 꾸중을 하는 일이다. 실제로 자녀를 키우다 보면 칭찬할 일보다는 꾸중할 일이 더 많다. 하지만 꾸중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아이 교육에 좋으며, 꼭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꾸중하기 전에 반드시 꾸중하려는 행동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해 가르쳐야 한다. 꾸중할 때 역시 잘못된 실수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올바른 행동까지 제안할 수 있는 부모의 현명함이 필요하다.


칭찬의기술 

1_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칭찬하지 않는다
아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당연히 칭찬을 해야 하지만 같은 일을 계속한다고 그때마다 칭찬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이는 효과 없는 칭찬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손님이 왔을 때 아이가 인사를 했다면 처음엔 칭찬해주되, 또다시 인사한다고 되풀이해서 칭찬할 필요는 없다.

2_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칭찬한다
노력하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시험에 1등 했을 경우, 1등이라는 결과보다는 “지난 일주일 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노력하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3_칭찬받을 행동을 했을 때는 곧바로 칭찬하자
칭찬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은 더욱 중요하다. 무엇보다 아이가 칭찬받을 행동을 했을 때 즉시 칭찬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고 효과도 크다. 한참 지난 후 부모의 기분이 좋아졌을 때 칭찬하면 그 효과는 반감될 뿐만 아니라, 아이는 칭찬을 부모가 기분 좋을 때만 받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_‘하지 말라’는 말을 지켰을 때도 칭찬해준다
많은 부모들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게 하나 있다. 부모들이 자신이 정할 일을 아이가 따라주었을 땐 칭찬을 잘해주지만, 하지 말라고 한 일을 안 했을 때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하지 말라’고 당부했을 경우, 아이의 행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즉시 칭찬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행동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다.

5_칭찬의 이유를 꼭 설명한다
칭찬을 할 때는 구체적인 이유를 얘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잘했다’는 말보다는 어떤 이유로 자신이 칭찬받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설명해줘야 한다.

 

꾸지람의기술


1_ 화내기 전 아이의 생각을 먼저 들어본다
부모들은 아이의 잘못된 행동만 보고 곧바로 화를 내거나 꾸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하는 말은 잘못된 일을 감추기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2_ 일관성을 유지한다
부모들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행동 때문에 혼란에 빠지거나 부모에 대한 신뢰감까지 잃게 된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부모의 기분 상태를 살피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기분이 좋으니까 오늘만 봐준다’는 식의 말은 아이들 교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_ 야단을 칠 때도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야단칠 때 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자꾸 말 안 들으면 너 미워할 거야”라는 게 있다. 이런 말에 아이는 큰 상처를 입고 슬픔을 겪는다. 야단칠 때라도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다는 것을 아이가 느끼도록 배려하며 혼내야 한다.

4_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야단만 친다고 아이의 습관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사실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5_ 비교는 금물이다
부모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흔히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형제간 비교나 친구들과의 비교는 아이에게 상처만 줄 뿐 꾸중의 효과가 전혀 없다는 걸 명심하자. 꾸중할 때뿐 아니라 매사에 비교하며 얘기하는 습관은 고치도록 한다.

여성조선
글_모은희 기자  사진_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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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4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뽀송이 2007-04-1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하하^^ 아이 키우기 이것도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답니다.
제 서재로 담아가요.^.~

hnine 2007-04-1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관성. 바로 이게 어려워요...흑 흑...

글샘 2007-04-1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사랑은 이론이 안 통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는데, 도저히 아들 녀석에겐 안 돼요... 공부한다고 안 되는 게 이런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07-04-1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ㅎ님/ 네! 근데 님은 이렇게 잘 하실 것 같은데요^

뽀송이님/ 꾸준한 학습.. 맞아요. 늘 공부하는 중이죠.^^

hnine님/ 일관성이 어렵더군요, 저도. 제 기분에 따라 대하지 않아야하는데
아이들을 대하는 게 점점 조심스러워요.^^

글샘님, 그걸 뛰어넘어야 고수 엄마아빠가 될 것 같아요.
제 아이에겐 그게 잘 안 되는 건,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일까요..
저도 만날 시행착오 중입니다.^^

몽당연필 2007-04-1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아이키우는거, 넘힘들어요.

소나무집 2007-04-15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으로 다 되는데 실제 상황에선 막무가내 엄마가 될 때가 많네요. 저도 공부가 더 필요한 모양입니다.

실비 2007-04-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부모님께서 이걸 보셨음 조금 달라지셨을까 라는 생각이.ㅎㅎ 나중에 제가 잘하면 되지요 뭐.^^

프레이야 2007-04-15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아이 키우며 우리가 크는 것 같지 않던가요. ^^
힘드시죠!
소나무집님/ 저도 그래요^^
실비님/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이런 걸 다 잘 지켜서 대해주지 못해도, 그래서
더욱 애잔한 것일테죠. 주말 잘 보내셨어요? ^^

씩씩하니 2007-05-08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어려운 일...........자식 키우는 일이 아닐까합니다...
그래도 이런 글을 가까이 접하며..한번씩..마음을 다잡아보는 기회가 필요한거 같애요..

프레이야 2007-05-0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님, 그죠?? 그러면서 우리가 크는 것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