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동그라미 > - 나희덕의 산문집 '반통의 물'중에서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한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약간 짧은 다리 한쪽이었던 것이다.

로트렉의 그림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고통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올리는 힘이 되곤 하는 것을 겪곤 한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버렸을 것인가.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 나희덕의 산문집 '반통의 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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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조바위(여자가 쓰는 것이긴 하지만) 쓰고 검정 고무신에 저고리 고름 질끈 한쪽으로 묶은 아가. 둥글넙적한 얼굴에 펑퍼짐한 콧잔등, 옴팍 패인 검정콩 만한 두 눈 그리고 앙다문 조그마한 입.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네살 정도나 되었을까. 아가의 양볼과 콧끝이 새빨개져선 얼어있다. 날씨가 무척 차가운가 보다. 그래도 솜바지가 넉넉해 보인다.

이태준은 30년대에 동화와 유년동화를 많이 썼고 경성 보육 학교에서 동화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그림책에 담긴 글은 1938년 간행된 '조선아동문학전집'을 원전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태준 문장의 간결함과 섬세함, 진한 인간애가 이 짧은 글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게다가 김동성 화가의 그림이 넘치지 않는 조화를 이루어낸다.

아마도 장사 나간 엄마를 혼자서 기다리던 아가는 엄마가 돌아올 시각 쯤에 집을 나선다. 엄마는 분명 꼼짝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텐데. 속지를 넘기면 기와지붕집들이 나즈막하고도 빽빽히 들어선 마을의 하늘 위로 전봇대의 전선이 이리저리 금을 긋고 있다. 어느집 장독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장독들도 보이고 좁은 골목길엔 가로등이 기우뚱 매달려 있다. 전선에 닿을 듯 말 듯 마른나뭇가지들이 하늘로 뻗어있고 뛰놀던 아이들도 모두 집에 들어가 저녁밥을 먹는지, 마을은 온통 고요함게 젖어있다. 한 장을 넘기면 우리의 '아가'가 아장아장 걸어간다. '엄마마중' 가는 길이다.

보는이의 시선이 아가의 종종걸음을 따라 횡으로 간다. 누르스름한 바탕에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선으로 그려놓은 그림이 마치 박수근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세심한 동양화풍의 그림으로 유명한 김동성님의 그림이 작가의 소박한 글과 잘 어울린다. 전차를 기다리는 곳으로 '낑'하고 올라서는 아가의 엉덩이에 잔뜩 힘이 들어가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작은 몸통의 움직임이 살아있다. 아가의 짧은 다리로는 좀 높은 안전지대인가 보다. 낑낑대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 그림책의 미덕은 간결하게 절제되어있는 글 속에 다 드러나지 않은 아가의 심리와 안타까운 마음을, 그림이 자세하게 읽어내어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차정류소에서 엄마가 타고 내릴 전차를 기다리며 땅에 금을 긋고 있는 아가, 전차가 올 때마다 갸웃하고 차장더러 "우리 엄마 안 와요?" 하고 묻는 조바심 난 아가, 전차정류소 팻말 기둥에 매달려 지루해죽겠다는 듯 몸을 당기고 있는 아가, '땡땡' 하면서 지나가버리는 전차의 꽁무니를 빤히 쳐다보며 섭섭해하는 아가의 모습 같은 데서, 조림국물이 졸아들듯 바짝바짝 타는 아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거리에 어둠이 희뿌옇게 내리기 시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 아가는 세상에 뎅그러니 홀로 남은 기분이다.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 다. 오동통하니 홍시처럼 붉은 볼, 터질듯한 옆모습이 불쌍하다기보다 어쩜 그리 예쁜지.

눈오는 해거름의 하늘, 무슨 색일까,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그림책에서 화가는 의외의, 노란연두빛으로 세상을 채색했다. 어쩌면 이 해 겨울 아가가 맞는 첫눈인지도 모른다. 눈송이가 퍼져있는 노란연두 하늘의 색감이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가의 눈에 눈송이보다 몇배는 더 기다려지는 엄마의 얼굴이 고이는 것 같다. 온세상이 금세 눈천지가 되었다. 마을 기와지붕 위에도 소복히 눈이 쌓이고 아가의 두볼과 코는 더 새빨개졌지만 세번째 전차차장 아저씨가 시킨 대로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서서 엄마를 기다린다. 마지막 장면(뒤속지)의 그 아름답고 포근한 풍경이란!  김동성의 풍경은 언제나 엄마품처럼 넓고 온기가 있다. 아가는 엄마의 손에 매달려 좁은 골목길 낮은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도시의 산동네 쯤에 사는 아가와 엄마는 뽀드득 눈을 밟으며 따뜻한 아랫목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있다.

아가의 오른손에 무언가가 쥐어져있다. 짧은 막대에 빨간 물체가 달려있는데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무엇일까. 오래도록 추운 데서 엄마를 기다린 착한 아가의 손에 엄마가 쥐어 준 선물이 궁금하다. 아가를 내려다보는 젊은 엄마의 뒷태와 옆모습이 곱디곱다. 엄마를 만난 아가가 더 행복할까? 마중 나온 아가의 고사리손을 잡고 걷는 엄마가 더 행복할까?  아가의 손을 잡고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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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님 고마워요. 마음이 참 맑아지는 그림책이에요^^
아가의 얼굴이 어찌 사랑스러운지요.

밥헬퍼 2007-01-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지만, 예전에 제가 이 글 원문을 하나 올려놓은 것이 있는데요. 여기에 덧붙여도 되겠지요? 제가 아주 감명깊게 읽었던 동화거든요. 다시한번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어린이창비 2003.가을 통권3호 188쪽/"권희선,이태준 동화에 나타난 아이와 엄마의 관계"

엄마 마중
이 태 준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낑 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출전:조선아동문학전집(조선일보사, 1938)

씩씩하니 2007-01-0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감동적으로 가슴 찡하니 읽었드랬어요...요 책 얘기하다가 친구랑,,아주 심오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프레이야 2007-01-0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헬퍼님/ 원문 감사합니다. 세번째 차장의 따스한 마음도 찡해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씩씩하니님/ 아가와 엄마, 심오한 대화가 궁금해지네요^^

춤추는인생. 2007-01-0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이런 멋진 리뷰 써주실것만 같았어요... 차마 실력없는 제가 글로 쓰지 못한말들을 님께서 다 해주시다니... 감사해요.님.^^

프레이야 2007-01-0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흘끗 보고 넘기기엔 뭔가 아까운 그림책, 맞아요.
이런 그림책을 안겨주신 *****님이 고맙지 뭐랍니까.^^

춤추는인생님/ 고마워요^^

향기로운 2007-01-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는 너무 좋아서 리뷰를 꼭 쓰고 싶었는데.. 책 자체가 워낙 글도 적은데다 그림이 주는 감동이 더해서 그냥 멍해 있었는데..^^ 배혜경님의 리뷰를 보니 그 감동이 다시 새록새록 느껴지네요^^ 근데, 엄마 마음과 달리 우리 애기들은 한 번 읽고는 무심하네요. 자주자주 보면 좋겠는데.. 요즘 만화삼매경에 빠진 것 같아요... 에휴~^^;;

프레이야 2007-01-0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아가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아이들은 눈을 확 사로잡는 그림이나 솔깃해지는 글귀가 아니면 좀 심드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이 수수하고 소박한그림책, 아가보다는 엄마가 보면 더 좋아할 것 같더군요. ^-^

2007-01-15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 2007-01-1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책의 감성이 잘 전달되는 좋은 리뷰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기를

뽀송이 2007-01-1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리뷰를 따라 놀러 왔어요~^^
혜경님의...
"이 그림책의 미덕은 간결하게 절제되어있는 글 속에 다 드러나지 않은 아가의 심리와 안타까운 마음을, 그림이 자세하게 읽어내어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라는 감상평이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리뷰 계속~ 기대할께요~^.~

프레이야 2007-01-1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늘 감사합니다.^^
뽀송이님/ 추천리뷰였던가요? ^^ 고맙습니다...

네꼬 2007-01-2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또 보아도 좋은 그림책이 있지요. 오랫동안 제 책상 위에 두고 보고 또 보았던 책이네요. ((댓글을 따라 슬쩍 넘어와 봤더니, 아니, 이렇게 재미난 책들이!!))

프레이야 2007-01-2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고양이님/ 이미 여러번 보셨군요. 전 이번에 첨 봤어요. 좋은 분의 선물로요.
이런 그림책 보면 단순하고 간결한 글과 깨끗한 그림이 마음을 순화해 주어요.^^

최상철 2007-02-1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이 때로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동을 선사해주는데요.
이 책 역시 저도 그런 감동을 많이 맛보았답니다. ^^

프레이야 2007-02-1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철님, 반갑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맞아요. 기쁘고 맑은 기운..

readersu 2007-02-2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2년전인가 출판단지에서 하는 책잔치에 한길사 갔다가 조카 사주고 읽으면서 어찌나 좋았던지...지난 주에 다시 읽고선 리뷰를 써 볼까 했는데..배혜경님의 리뷰를 보니..와우~ 전 포기하렵니다.하하..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07-02-2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adersu님/ 2년전에 보셨군요. 참 좋은 책이에요. 반갑습니다.^^
댓글저장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음악 그림 동화 시리즈 1
에릭 바튀 그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작곡, 김하연 옮김 / 베틀북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피터와 늑대>를 처음 알게 된 때는 한참 해를 거슬러간다. 큰딸이 여섯 살 때였나 싶다. 그땐 조수미가 들려주는 음반으로 들었는데 조수미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와 오케스트라의 협주, 그리고 낱낱의 악기들이 표현해내는 개성 있는 음색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미래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이 판화로 된 특이한 그림책을 만났고 이번에 베틀북에서 나온 ‘클래식 음악과 아름다운 그림책의 만남’ 시리즈의 첫편을 보게 되었다.


이 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오디오 CD가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음악을 들으며 그림책을 볼 수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게다가 일러스트레이션이 강렬한 인상을 주며 환상적인 색감으로 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게 한다. 에릭 바튀라는 프랑스의 일러스터레이터는 이력이 특이하게도 법학과 경제학 전공이다. 등장인물을 작게 그리는 게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럼으로써 배경을 아주 넓게 드러내어 보여 시각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풍경과 하나의 분위기로 좌우하는 공간의 색조가 이야기 진행에 따른 인물의 감정과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가한 권태로움, 긴장과 환희 같은 감정의 곡선과 시간의 추이를 색감으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상세하게 그리기보다 절제되고 단순화한 선으로 사물의 윤곽을 그리고, 대신 땅과 하늘은 광활하게 그려놓았다. 거친 붓자국이 보이는 것도 같다. 색감 자체도 깊이가 있어서 보고 있으면 대자연 앞에 선 것처럼 뭉클해진다. 장면마다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과 단순한 타원 형태를 띠는 몇 그루 혹은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둥그런 호수와 대낮의 시뻘건 태양, 아스름한 핑크빛의 해거름 태양 혹은 달. 이렇게 자연의 사물들을 보는 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가라앉힌다. 그래서 자그마하게 그린 인물들은 모두 풍경 속에 어우러져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특히 내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장면마다 빠지지 않는 길고 평온한 ‘지평선’이었다.


이 그림책은 기존의 <피터와 늑대>보다 음악적인 면에 조금 더 비중을 둔다. 오디오를 통해 각각의 등장인물을 상징하는 악기의 음색을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왼쪽 장에는 길지않은 글과 함께 각 인물을 상징하는 악기를 그려놓고 악보를 그려놓았다. 글과 악보와 악기의 색깔은 바로 옆 오른쪽에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체적 색감에 맞추어(초록, 빨강, 파랑, 황금빛 등) 일치해두어서 오케스트라의 협음처럼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조화로운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피터가 등장하면 바이얼린 등의 현악기, 작은 새가 등장하면 플루트의 가늘고 맑은 음색이 따라나온다. 2학년 정도의 어린이라도 악보 보기를 즐기는 아이라면 무척 관심 있게 볼 것이다. 실제로 피아노를 쳐보았다며 신기해하곤 했다. 프로코피예프라는 러시아 작곡가가 어린이를 위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에도 눈을 똘망거렸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용감하며 재치 있는 피터와 꾀많은 작은 새의 활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다. 그런데 2학년 아이들은 CD를 한 번에 듣고 앉아있질 못하고 너무 길다는 반응을 보였다. 틀어두고 다른 걸 하면서 듣도록 하던지 어른이 함께 앉아 책을 보며 듣는 것도 괜찮겠다. 아직도 꽥꽥거리고 있는, 늑대 뱃속의 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늑대는 사냥꾼들에 의해 동물원에 잘 갔을까? ^^ 이런 질문도 던져보시면 재미있는 대답이 나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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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1-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수미꺼루,,하나 지르고 싶은 마음이 바로 생겨요...
울 애들 좋아할꺼 같애요,,,저두..ㅎㅎㅎ

프레이야 2007-01-03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조수미의 CD, 듣기에 참 좋아요. 목소리가 어찌 새소리 같은지요.^^

해적오리 2007-01-0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을 거 같아요. 우... 책값에 시집밑천 다 날라가요...

행복희망꿈 2007-01-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이들도 태교 CD에 있던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무척 좋아하더군요. 소리를 들으면서 참 신기해 하더라구요.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담아두어야 겠네요.

프레이야 2007-01-0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희망꿈님/ 태교음악으로 좋을 듯해요. 내가 들어 즐거우면 아이한테도 좋다고들 하지요. ^^

해적님/ 그러게요. 사고 싶은 책들은 많고...^^

속삭님/ 아침운동 하셨군요. 건강을 위해 아자아자...
그래도 넘 추운데 ㅜㅜ
'마음의 풍금'이란 글귀가 좋으네요.

앨런 2007-01-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름다운 책방 신세를 지는 앨런입니다. 님의 책방을 종종 기웃거리고 있답니다.새해 건강과 웃음이 가득가득 하시길.

프레이야 2007-01-0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런님/ 오랜 만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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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아래에서 산하세계어린이 26
마리타 콘론 맥케너 지음, 이명연 옮김 / 산하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가위나무라고도 불리는 산사나무의 열매를 유럽에서는 크라테리스라고 하며 강심제로 쓰인다고 한다. 5월에 꽃을 피우므로 May Flower 라고도 하는 산사나무의 열매는 빨갛고 야문 인상을 주어 희망적인 인상이다. 작가가 산사나무를 상징으로 둔 이유도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 ‘산사나무’는 가슴 아픈 가족의 기억을 묻어야하는 곳이다. 굶주림으로 죽은 막내를 묻고 암담한 여정에 올라야하는 출발지이다. 그리고 혹독한 여정에서 잠시 위험을 피해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는 곳도 산사나무 아래다. <산사나무 아래에서 Under the Hawthorn Tree>는 1990년 발표된 멕케너의 첫작품으로 1845년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에일리와 마이클 그리고 일곱 살 페기가 겪는 참담한 여정을 함께 밟아가면서 독자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울분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게 된다. 오로지 살기 위해 어린 그들이 겪어내는 온갖 위험과, 고비마다 놀라울 정도의 기지와 용기로 그것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굶주림에 허덕이는 살벌한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간다. 영국의 식민지로 소작농이 대부분인 마을에 감자역병이 돌고 먹을 것은 동이 났지만 영국인 지주들은 ‘게으른 아일랜드 가난뱅이들 때문에 우리의 지갑을 열 수 없다’며 이들을 도울 방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급기야 어린 생명이 죽자 엄마는 약간의 먹을 거리를 마련해두고 일거리를 위해 집을 떠난 남편을 찾아 나선다. 에일리는 꼬마엄마다.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해진 에일리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쌍둥이 이모할머니를 찾아 멀고도 험한 길을 동생들과 함께 떠난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참혹하고도 전율적인 감동이 이 책의 이야기다.


작가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멕케너는 리얼하고 절제된 대사와 상황으로 긴박하게 그것을 전한다. 그녀는 이 책에 이어 <들꽃소녀>와 <고향의 들녘>을 펴내 ‘어린이 기근 3부작’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160년 전의 지구 끝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지금 우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아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 단지 굶어죽지 않으려고, 지금의 아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것을 먹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니세프에 대한 소개와 그 자료사진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산사나무 아래에서>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일단 혈육을 찾았다는 점만으로도 세 남매의 처지가 조금은 나아 보인다. 기근으로 인해 가슴까지 말라버린 인정 없는 사람들 틈에서 이들 쌍둥이 이모할머니의 따뜻함은 이 책의 잊을 수 없는 미덕이다. 또한 불쌍한 세남매에게 통증을 이기는 약초와 상처를 낫게 하는 연고를 쥐어 보낸 메리 케이트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가슴 조이는 험난한 에피소드들 가운데에서도 웃음 한 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잃지 않게 하는 작가의 위트 또한 뛰어난 감각으로 보여 조금은 위안이 된다.

 

예를 들자면 처녀 이모할머니들의 웃지 못할 사연에 대한 것인데, 엄마에게 듣기만 했던 이들 할머니의 재미난 옛이야기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함께 살며 빵가게를 하는 할머니들을 찾아가는 동기와 세 남매에게 지금 필요한 절실한 것을 이들 할머니 두 분이 갖추고 있다. 책을 읽는 어린이들을 생각하여 가족의 사랑과 인내심 그리고 좌절하지 않는 용기의 미덕을 말없이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정은 고달프기만 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장하다. 어린 페기가 어느 정원에 뛰어들어가 한 자루 가득 따온 라스베리, 구스베리 열매들이 이들의 미래일 거라 여긴다. 그런 미래는 또한 역경을 이겨낸 자들만의 영광스러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출발지, 고향은 돌아가야할 그리운 곳이다. 그곳에 있는 산사나무를 떠올려주면서 이야기는 맺는다. "작은 오두막집, 문밖에는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돌들, 아름다운 풀꽃들이 가득한 작은 뜰이 있는 집. 고향의 들판에는 지금도 산사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176쪽)"  작가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면서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문체로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이 작가의 최근작으로 <블루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다고 하는데 읽고 싶어진다.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책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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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오늘 하루도 괜찮게 보냈나요? 또 하루가 저물어요^^
추천 고마워요.

해적오리 2007-01-0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제가 읽기엔 조금 무거운 이야기 같지만 보관함에 두었다 읽을 용기가 생기면 읽을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07-01-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 좀 무겁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슬픈역사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몸으로 겪는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전해주려는 작가의 시선이 괜찮아보여요.

씩씩하니 2007-01-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픈 이야기를 쓰면서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문체로 가슴을 어루만진다.........
책도 책이지만,,전 님의 리뷰에 감동을 받으니..어쩐대요..

프레이야 2007-01-03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아이들 책, 그래야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봐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어야겠죠. 아이들의 심성이란 것도 좋게만 그리는 건 왜곡이라고 생각돼요. 하지만 중요한 건 사실대로 그리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심성 같아요.

씩씩하니님/ ^^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워요.

2007-01-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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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맞다(천양희, "너무 많은 입", 창비, 2005)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우누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 멜기세덱님 서재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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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2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들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할까 표현이 너무 멋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비로그인 2006-12-3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을 뒤흔드는 소리는 정말 마왕을 듣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저만 느끼는게 아니었네요.
좋은 시 잘 읽었어요.

프레이야 2006-12-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승연님/ 신년시로 생각할래요^^

2006-12-30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2-3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ㅂ님/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새해엔 어여 서재로 돌아오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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