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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김훈이 쓰고 안웅철이 찍은 것들이 모여 나온 사진에세이집이다. 사둔지 좀 된 것인데 서재의 *****님을 생각하며 오늘 쓴다. 김훈의 글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또 한 번 젖어볼까나, 하고 가볍게 폈다. 그 자신도 자신의 문체의 오류를 알고 있지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그의 문체에서 오는 관념적 거리감 같은 게 마음을 그리 편안하게 하지는 못하는 부분이 더러 있다. 차분히 내려앉으며 한 자 한 자를 꼭꼭 씹으며 힘들게 뱉어내는 것 같은(실제로 말도 그런 어투로 한다고 들었다) 그의 문체는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기도 하는 묘한 거리가 있다. 문체가 글쓴이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주제에 따라 내포작가는 다양한 문체로 접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로선, 이런 특유의 방법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유를 풀어내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크레타섬에서 직접 몸으로 느낀 지중해바람으로 글을 시작한다. 우리땅의 바람, 시간의 가고옴으로 흐르며 '사람들을 옥죄면서 다가오는 것들을 향해 사람들을 몰아가는'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다가온 지중해의 바람을 이야기한다. 늘 부는 바람, 가볍고 투명한 바람, 바람이 아닌 바람, 지속과 생성을 느끼게 하는 바람, 기류라기보다 시간에 가까운 바람. 이런 말들로 정의한 지중해의 바람을 그는 공에 은유하였다.
- 인간의 생명으로부터 자연과 문명을 분리할 수 없듯이 공은 자연과 문명의 복합체이다. 공은 지중해를 건너오는 바람과 같다.(서문 중)
월드컵이 한창인 때 그곳 이국에서 공을 차고 막는 사람들을 보았고 돌아와서 안웅철이 내민 공차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다고 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공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이 아니라 공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주인공이다. 그 둘의 사이에서 무수히 생성되고 지속되는 역동성에 대한 이야기를 김훈의 나름의 '편애'로 늘어놓는다. 김훈의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멋진 사진들과 함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책이고 그의 문체에 어느정도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식상할 수도 있는 책이다. 나로 말하자면 사진이 우선 보고 싶어 고른 책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문장은 내 호악의 기준을 넘어있다.
사람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되 절대 깊숙히 흡입되지 않아 보이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다. 공의 역동성, 공정성, 생명력과 공을 다루는 사람들의 원생적 에너지에 집중하는 그의 눈이 마음에 든다. 여러 사진들 중에서도 아이와 공을 담은 사진들, 가장 마음에 드는 풍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