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 ㅣ 좋은책 두두 29
이성자 지음, 김진화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동시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5학년 여자아이가 있다. 비유적인 표현도 이거 말이 되는 거냐고 따지고 낭송을 하게 하면 몸을 배배 꼬며 간지럽다는 시늉을 한다. 자기는 동시가 너무나 싫다는 말로 일축한다. 그 아이는 논설문과 설명문을 썩 잘 쓴다. 학교성적도 좋다. 그런데 동시를 싫어한다고 하며 동시수업을 시작하려는 찰나, 이런 반응을 과민하게 보이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 아니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감성은 어디로 가고? 느낌이란 게 없단 말이냐. 눈으로 보이는 게 모두가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에 주파수를 맞추어 보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낭송을 하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고 입으로 노래 부르듯 박자에 목소리를 실어보라고 일렀다.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게 뭔지에도 귀기울여보라고 덧붙였다.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는 하나의 시화집이다. 손에 잘 쥐어지는 얇은 책이다. 가는 선으로 단순하게 그린 그림에 맑은 수채화로 색을 입힌 그림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을 곱게 물들인다. 그림이 참 좋지 않니?, 하고 눈을 빛내며 물어보니까 너무 못생기게 그렸다고 일축한다. 그런 아이와 이 동시집을 보고 낭송하고 감상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보라고 하니까 제일 짧은 동시를 고르던 아이가 나중엔 자기의 경험을 글감으로 시 한 편을 써보기도 했다. 역시 이 아이는 지나치게 많이 다니는 학원의 스트레스를 글감으로, 막힌 가슴이 뚫렸는지 술술 써내려갔다.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는 증거다. 원래 글을 쓰는 기량이 있는 아이라서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재미있게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명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을 것이다. 잘 썼다고 칭찬해주었다.
이성자님의 이 동시집은 3부로 나뉜다. 우리는 서로 안고 산다(제1부)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식물간의 마음 나누기, 참 좋을 거다(제2부)에서는 가족의 끈끈한 애정, 그리고 풀잎에도 귀가 있어(제3부)에서는 자연의 친구들과 진실된 교감을 하는 동시들이 묶여있다. 하나같이 시인의 깊고 따뜻한 마음의 눈이 엿보인다. 그 눈과 살짝 눈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런데 3부로 나누었으니 각 부의 주제를 두고 볼 때, 약간은 이질적인 내용과 느낌의 동시가 군데군데 섞여있는 게 흠이다. 그냥 별다른 기준 없이 묶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나누어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게 타이틀 동시제목까지 써서 나누었다면 비슷한 내용으로 묶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할머니를 글감으로 하는 두 가지 동시는 아이가 겪었음직한 할머니와의 기억을 가지고 꾸밈없이 써내려갔다. 아마도 시인의 유년시절 기억이 밑그림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둘 다 가슴이 뜨뜻해지는 동시다. 마지막 장의 동시 '사전 속 낱말들'은 일종의 산문시인데 3연으로 나누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면서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정하다. 다른 시들도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참신한 비유가 신선하다.
눈이 크고 깡마른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학원 다니느라 스트레스 받고 머리 아플 때 화장실에 앉아 이 동시집을 아무 쪽이나 펼쳐서 보라고. 복잡한 머릿속이 말끔해질 것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투명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도 더욱 온기가 생길 것이다. 갑갑하던 가슴에 여유도 생겨날 것이다. 특히 너희처럼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쟁쟁대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동시에서는 까르르 웃음이 날 것이다.
나도 베란다 한 구석에 나란히 꽂아둔, 잊고 있었던 동시집들을 종종 펼쳐봐야겠다. 마음이 사정없이 엉킬 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