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신들의 정원 - 철새 공화국 을숙도

 
 
 

 

 

 

누군가 을숙도에 서면

휘바람 같은 한숨이 나온다고 하고

혹자는,

우리가 죽인 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을숙도는 죽지 않았고

다만 푸르게 슬픔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 있는 땅은 비단 새들의 고향 만은 아니며 우리가 돌아 가 뿌리 내려야  할 곳입니다.
아픔의 땅이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희망을 버리지못합니다.

 

◀ 그림을 클릭하시면 아픔의 땅 을숙도 현장으로 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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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기억하고 있지

 

칼날이 내는 길 따라

찍히고,

파이고,

움푹 들어가다

문득, 멈춘 거기

오래된 거울 속 애인 같은

낯익은 얼굴

한 쪽 귀가

찌긋 눌린 곳이 있어

날 선 칼날이

몸을 사려 멈칫거리기도,

 

싱크대 구석진 곳

조곤조곤 씹혀져 나간 시간들을 주우며

아무도 몰래 써 내려가는 나날

수많은 칼금 속에

지우면서 새기는 길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칼을 이겨낸 나무의 생이 있다니!

 

      - 이은숙 님 처녀시집 <북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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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9-0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얻어 갑니다.^^

소나무집 2006-09-0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이은숙 님이 누구신지 궁금합니다. 요즘 시인은 전혀 몰라서요.

프레이야 2006-09-0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넵^^
소나무집님, 문우회 회원인데 시인으로 2000년에 등단하신 분이에요..^^ 얼마전 시집을 보내오셨는데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가슴에 잔잔하게 와닿은 싯구들이 많더군요

진/우맘 2006-09-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곤조곤 씹혀져 나간 시간들.....
 

북어

 

속풀이에 그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시장에 들렀네

 

동해 깊은 물길 따라 떠돌다

강원도 산바람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하는 사이

꾸들꾸들 말라가며 속부터 텅텅 비어냈을

몸뚱이 명태, 동태, 황태... 몸이 바뀔 때마다

이름도 바뀌어 생각이 높아진 어족 하나가

죄도 없이 두들겨맞네

 

야윌수록 맑은 정신 들 듯

바짝 마른 북어 한 마리

세상 진구렁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들어가면

오늘 저녁

속 풀어진 세상 하나

만날 수 있을까

 

      - 이은숙 / 2000년 <시와비평> 등단, 처녀시집 북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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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9-0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태

- 강 세환 -

어머니는 덕장 밑에 있었다.
시린 손으로 아가미 꺼내고
명태 뱃속에서
창난 명란 곤지를 뜯어낸다.
명태 배때기 가르는 어머니
머리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값비싼 명란은 주인 몫으로 두고
밤새도록 꺼내놓은 창난 곤지를
품삯으로 받아 머리에 이고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온다.
밤새 쌓인 눈이 환하게 길 밝혀주는
그 길 따라 노동의 밤 저쪽에서
새벽 사이 어둠을 밀치며 온다.

북어보다도 생태국이 더 맛있지 않을까요?ㅎㅎ

프레이야 2006-09-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저도 생태탕 무지 좋아해요^^ 얼큰하고 시원하니....
답시 감사해요^^

水巖 2006-09-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교동에 가면 실론티님 사무실근처에 북어국집이 있답니다. 점심 시간엔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집, 그 시절엔 술꾼들이 많었나봐요. 지금도 그런지 ...

씩씩하니 2006-09-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태탕,,먹구 싶다,,그쵸?
술을 안먹어도 그냥 입맛 없을 때 얼큰하니 먹음 좋은거 같애요..
유진 많이 좋아졌어요,,,걱정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2006-09-03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적 평가가 다르게 되고 있는 인물들 중 광해군을 들면 그의 실리외교를 빼놓을 수 없다. 광해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국난을 겪고 피폐한 시대에 원하지 않는 왕위에 올라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 원래 심약했으나 강경한 치세를 하여 폭군이라는 오명만을 후대에 썼던 임금이다. 1980년대 어느해부터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우리역사교과서에도 다르게 적히기 시작했다. '광해군은 개혁과 중립외교를 추진했다.' 그만큼 국제정세를 파악한 실리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다는 말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이 그의 인기를 높힌다. 지금도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군의 작전 통제권 환수 문제에 관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데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꽃이라며 작전통제권을 미군으로부터 회수하려고 하고 군 장성들은 시기상조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과연 어느쪽 의견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명분만으로 생각하기에도, 실리만으로 생각하기에도 쉽지 않은 판단이다.

대의를 거스르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라도 명분을 지켜야한다는 측은 그 명분이라는 것이 어느 누가 지켜야할 명분인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명분인지에 대해 재고해야한다. 명분론자들은 그 명분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가 되는 일은 아닌지, 소수의 이익에 눈먼 명분은 아닌지, 닫혀있는 사고에서 나온 잘못된 믿음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실리를 추구하는 측은 자존감이 훼손되는 일까지 감수하는 일에 눈을 감아야하는 무모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리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영악하고 가벼운 인상을 주기 마련이지만 외교에 있어서는 실리론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것이 국익을 염두에 두고 백성의 삶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산성일기>는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에 당한 삼전도의 치욕을 생생한 필력으로 써내려간 일기형식의 책이다. 작자미상으로 알려져있지만 당시 남한산성에 왕과 함께 피신해있었던 자들 중 척화파의 가족 쯤으로 추측된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정묘호란)을 도입부로 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을 중심부로 하여 삼전도비를 세우게 되는 종결부까지 셋으로 내용을 나누어볼 수 있다. 한자체였던 것을 읽기에 쉬운 문체로 바꾸어두었고 각 장의 옆에는 알기 어려운 단어와 용어들에 대한 주석을 달아두어 이해를 돕는다. 전체 글의 맥락을 흐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건발생 시간연대상 필요한 위치에 두려고 한 것 같다. 중간중간에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옮긴이의 꼭지가 들어가 좀더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역사의 현장에 대한 사진과 필요한 지도들도 잘 실어두었다.

가장 생생한 읽을 거리는 청에 보낸 국서와 답지들이다. 청 황제 홍타이지가 보낸 편지를 보면 조목조목 인조를 꾸짖는 목소리에 공감이 간다. 안타깝고 분한 내용들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분노가 인다. 서인들이 내세운 명분이란 명나라에 충성하고 명나라만 의지하고 오랑캐들의 나라와는 화친할 수 없다는 것이니 국제정세를 파악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볼 수 없을뿐만 아니라 우둔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주나라가 세워지면서 일기 시작한  중국인들의 천명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황제가 되고 아니 됨이 네 뜻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늘이 도우면 필부도 천자가 되고, 하늘이 벌을 내리면 천자도 필부가 되나니, 너의 이 말 또한 망령되도다.' 이는 이미 명나라로 부터도 인정받은 왕임에도 조선이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거부하는 것에 대한 오만함을 말한다. 또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혼자 몸만 산성에 들어있는 비겁함을 지탄하는 글귀에 서슬이 퍼렇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으로 양측의 상반되는 태도와 행동을 유의깊에 보면 척화파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명분이란 게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흑백논리이전에 조금더 바람직한 쪽은 어느 쪽이었을까. FTA 문제나 다른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역사의 교훈은 돌고돈다.

종결부에는 삼전도비 사진이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항복의식을 기록하고 있는 비석이라는 점에서 한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준비도 없이 명분만을 내세우고 일으킨 전쟁의 결과가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선조 13년 부터 효종 2년 까지의 연표를 간단히 정리하여 실어놓아 참고가 된다. 중2와 함께 읽었는데 이렇게 청의를 입고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에 피가 흘렀다는 당시 인조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국치의 뼈저림이 느껴지지만 이 책은 보다 소상하게 그 과정이 진술되어있어 안타깝고 긴박한 순간들의 현장감이 느껴진다. 척화파 쪽 사람의 일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체로 기울지 않은 눈으로 보고 쓴 것 같다. 하지만 <산성일기>를 읽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 단면만 보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다른 역사관련책을 확장하여 읽어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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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9-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하겠지만 명분을 지키는 것이 또한 실리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 있겠지요...
우리 역사가 너무나 대의명분에만 치우쳤다면 지금 바로 그걸 돌아보고 미래를 만들어가야하겠지요...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밝게 세우기 위한 발판으로,,그쵸?

마노아 2006-09-0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여행2편이었던가... 하여간 김훈씨가 쓴 에세이집에 이 내용에 대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산성일기 보는 것보다 몇 배의 감동과 교훈을 얻었지요. 근데 책 제목이 기억이 안 나요. 복사도 했었는데...;;;;;

프레이야 2006-09-0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자전거여행 2편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
씩씩하니님/ 참 어려운 문제죠..
 
 전출처 : 미미달 > [퍼옴] 영화평론가 심영섭 -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상담자로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사람들은 “언제 상담을 관둬야 하는가?”라고 물어 볼 때가 있다. 그 질문은 “언제 사랑을 관둬야 하는가?”라고 물어 보는 것만큼이나 곤혹스럽고 모호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상담은 내담자(상담 받는 사람)가 ‘이 상담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 그때가 바로 ‘the end’라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인 것이다.

상담이 잘 되는 날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누군가의 인생에 뿌듯이 끼여 들어 옆 좌석에 앉아 함께 운전을 한 것 같고, 또 마음의 오솔길을 단 둘이 산책 한 것 같기도 하다. 비록 한 순간이라도 우리는, 내담자와 상담자는, 같이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좋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만나는 ‘인생의 영화’들은 삶의 단층 속에 깊이 깊이 숨어 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뿌리를 내린다. 조그만 씨앗 같던 그것들이 이윽고 잎을 내고 새 순을 틔우며 마음속에서 자라는 순간 나는 영화로 밥을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자다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봤을 영화. 이젠 글까지 쓰며 돈까지 받으며 본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많이 보는 거다. 그건 이미 트뤼포도 말한 영화 사랑의 ABCD에 해당하겠다. 나는 여기에 ‘많이’라는 말이 ‘양’이라기보다 ‘질’적인 측면의 ‘영화와 함께 있기’라고 생각한다.

일단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팝콘을 먹지 않는다. 어떤 때는 배고픔을 살짝 속이는 정도로 먹고 아니 굶고 들어가기도 한다. 좋아진 영화는 꼭 다시 본다. <올드보이>때처럼 앉은 자리에서 내리 세 번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보면 영화에 대한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 여러 사람을 파트너로 바꾸어 가며 보기도 한다.

대사를 외우고 배우 얼굴이 눈을 감아도 둥근 달처럼 떠오르는 이 지경이 되면, 굳이 물리적 영화를 비디오에서 리플레이해서 다시 틀 필요가 없다. 언제든 마음속에 머릿속에 가슴속에 영혼 깊이 각인된 영화를 턴 온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는 마음의 극장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카우보이가 말을 달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찌푸린 얼굴이 영사된다. 일종의 내면의 영화, ‘inner movie’가 되어버린 어떤 영화들이 많아질 수록, 저절로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아니 쓸 말이 생기게 되어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이렇다. 미용사가 이미 자기가 깎을 머리를 지금 앉아 있는 손님의 머릿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가위로 오리는 수준이 아니라, 황야에서 말을 달리듯 냅다 보이는 대로 잽싸게 가위놀림을 하게 된다. 질적으로 영화를 보게 될 때, 영화는 귓속에다 대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통찰들을 속삭여 준다. 그때는 손이 글보다 먼저 자판을 달리고, 자판보다 먼저 써야 할 말들이 질풍노도처럼 귓가를 스친다.

그렇게 글을 쓰고 영화계에서 뿌리 내리게 된 어느 해던가, 나에게도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가 어느 순간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다. 마치 내 눈이 미세한 카메라가 된 듯이 컷들이 툭툭 불거져 보이면서, 이 컷들이 붙인 이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 텍스트 위주의 글쓰기에 변화가 생겨났다. 영화를 보며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하게 된다. ‘아 저 컷 다음에 왜 저 컷을 붙였을까’, ‘저 장면은 어디서 찍었을까’, ‘카메라는 어디에 있는 거지’ 등등등.

이젠 머릿속에서 영화가 영사가 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둥둥 날던 컷들이 서서히 붙고, 이어지고, 또 본래 봤던 영화에서 컷들이 순서나 각도를 달리 바꿔 보기도 한다. 이제 내면의 영화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즉물적으로 내 앞에서 자신이 만들어졌던 과정의 비의를 보여준다. 그러면 이젠 거꾸로, 엘리베이터에서 카메라를 가져다 대거나 한 평도 안 되는 방에서 30분 이상 버텨낸 감독들이 존경스럽고, 카메라맨이 위대해 보이고, 배우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한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남편은 이제 찍는 것만 남았다고 하면서, 찍기만 하면 이혼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젠 어디로 갈까. 사거리 교차로 앞에서 바람이 부는 황야에서 혼자 서 있다. 이제는 뭘 더 해야 할까. 아마도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다 죽든가, 내 이름자 박힌 영화를 틀던가, 영화를 가르치다 고꾸라지던가……. 뭔가 끝을 보는 것만이 남아 있다는 진한 예감을 지울 길이 없다.

그리하여 영화여 고마웠다오. Thank you for the movie!! 영화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 나는 이제 영화와 헤어져도 좋은 날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이 아주 멀리 오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아주 빨리 들이 닥칠지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극장에 간다. 영화 보러 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러 간다. 영화와 조금만이라도 더 함께 살려고, 그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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