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그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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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월 개봉관에서 영화 <박쥐>를 보았고 각본집은 2022년에 읽었다. <헤어질 결심 각본>의 영향으로 정서경의 각본집을 더 읽고 싶어져 <박쥐 각본>과 <아가씨 각본>을 구매했다. 읽기를 잘했다는 결론.^^ 

박 감독 개인적으로는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고 성당에서 느낀 어린 시절 내면의 경험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각본집에서 정서경 작가의 말과 박찬욱 작가의 말이 서두에 있는데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밀한 심적 동기가 어디서든 중요하다. 그것은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잘 녹여내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완수하고 나서도 계속 내적 흔들림은 있게 마련이다. 


당시엔 내가 감독님보다 죄의식을 덜 느끼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은 나이가 들고 여러 가지 경험히 쌓이면서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다. <박쥐>는 내가 참여한 다른 어떤 각본 작업보다 감독님이 먼저 시작하고 감독님이 완결하신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외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감독님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 영화에 가장 많은 감독님의 살과 피가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자기 삶의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서 감독님께 경외심을 느낀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 정서경 작가의 말, 중(5쪽)


 제도화된 종교를 더는 존경하지 않지만 어떤 종교인들은 지금도 충분히 존경한다. 천주교 신부가 주인공인 이 영화로 나는 - 비록 그가 흡혈귀가 됐어도, 아니 흡혈귀가 됐기 때문에 더욱 - 내가 아는 몇몇 경건한 신부님들을 향한 내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했다. - 박찬욱 작가의 말, 중 (7쪽)


영화장면을 떠올리며 각본집을 읽고 장면이 더 생생해졌다. 거의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보고 썼던 리뷰.

  

#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좇아가려고 노력했다.   

  - <테레즈 라캥> Emile Zola, 서문 중


 10년을 준비해 만들었다는 영화 <박쥐>는 감독 자신의 말대로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조연들에게서 보였던 모종의 이해하기 어려울 듯한 기질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와 혐오감 그리고 죄의식의 근간을 이해하기에 소설이 좀 더 도움이 되었다.


동물을 해부하듯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여 펼쳐 보이고 싶었다는 에밀 졸라의 서문처럼 영화는 인간 내면의 갈증을 박쥐라는 동물로 환치했다. 박쥐는 밤과 낮, 흑과 백, 어둠과 빛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다. 궁핍과 결핍을 떨쳐낼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 즉 인간의 자화상이다. 그런 동물(인간)에게 Thirst - 갈증, 갈망, 갈급, 갈구 그리고 갈등 - 는 숙명이다. 실재와 환상, ‘이다아니다’, 은폐와 노출 등 수많은 상극의 단어가 맞닿아 있다.


지고지순한 어떤 것, 아름다운 것, 불멸의 것. 다다를 수도 획득할 수도 없이 그것들 앞에 인간은 한낱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도 믿고 싶어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그것은 이데아로서의 지고지순함, 이데아로서의 아름다움, 이데아로서의 불멸성, 즉 최고선으로서의 일자一者를 믿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덜함혹은 '없음'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 않은 완전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존재할까.

우리는 어떤 면에서 죽음을 수시로 연습하며 산다. 지금 숨을 쉬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죽음은 혼이 육체에서 이탈하는 것, 육체를 죽이고 혼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부활이다. 상현의 자발적 자살 의도(박테리아 실험에 자원함)는 순교(이타적 자살 중의 하나)의 의미로 갱생하고 이것은 뱀파이어로의 부활에 이른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에밀 졸라가 탄생시킨 로랑이라는 남자, 피의 기질로 사는 인간을 연상시킨다. 로랑과 테레즈의 기질이 뒤섞이고 서로 영향을 주어 기질의 변화가 오듯 상현과 태주는 서로 피를 나누며 죽음과 부활을 거듭한다.


둘은 공범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단지 환상일 뿐이라고 서로 위무하면서도 돌덩이를 달아 수몰시킨 죄의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분히 자발적으로 보인다. 공포와 혐오감을 망각하기 위해 각자가 끌어들이는 제삼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식물인간이 된 라여사를 (표면상으로) 극진히 모시는 태주와 상현. 그들의 죄의식은 거울에 반영되고 고통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들 사이에 죽은 자가 늘 끼어 있다. 세 명이 누워있는 침대의 침구는 온통 뱀을 연상하게 하는 문양이다. 뱀은 치유를 상징한다. 그들의 지극한 바람이 투영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다. 또 한 명,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분노하는 라여사가 앉아 있다. 그녀는 반죽음 상태로 마치 전지자적인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단죄하려 든다. 하지만 그녀가 실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 별로 없고 무능력해 보인다.


에밀 졸라의 서문을 다시 인용하고 싶다. -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 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그들에게 영혼은 정말 완벽하게 부재할까. 그렇다면 구원이나 불멸을 바라는 마음 또한 부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좀 다른 이야기로 나아간다. 영혼의 부재를 의심하고 영혼의 재림 혹은 갱생으로 치닫는다. 그것 또한 갈증으로 우물을 찾는 일종의 허기진 질주다. 뱀파이어가 된 태주와 상현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생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모순된 존재양식이다. 불안을 떨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빛의 의식'이 행해져야 할 차례다. 또 다시 살기 위해서다. 습기 차고 침침한 집안을 온통 백색으로 칠하여 빛을 끌어들인 것 같지만 그들의 핏빛 욕망과 죄의식은 날로 깊어질 뿐, '행복한복'이라는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백색은 더욱 살기등등해지는 그들 심리를 차갑게 반영해주는 역설적인 색깔이 되어버렸다.


결국 태양빛 아래 그들의 육신을 하얗게 태움으로써 불멸의 약속을 한다. 육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상현과 태주는 차라리 태양 아래에서 육신을 사그라지게 하는 제의를 치른다. 상현의 커다란 신발을 다시 신는 태주는 그것으로 대속받으며 치유와 회복의 기운을 얻는 셈이다. 그 신발이야말로 말로 하는 어떤 기도의 말보다 신실해 보인다. 신발은 땅, 지옥을 딛기 위해 필요한 것, 이 세계에 몸 담고 있는 물건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론 하늘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땅을 말한다. 하지만 태양 아래 저들의 두 눈은 하늘을 열망하듯 올려다보고 있다.


행복한복에 감금된 태주의 육체는 영혼과 함께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행복한복은 은폐의 공간이다. 가장된 평화와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음습하고 억압된 공간이다. 모든 죄악을 가둬놓은 육의 공간이다. 상현의 표현으로는 태주에게 그곳은 지옥이다.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라고 말했던 상현은 이제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우리 지옥에서 만나요라고 담담하고도 비장하게 말한다. 종교가 없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던 태주도 상현을 따라 지옥길에 동행한다. 지상의 지옥을 벗어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옥도 천국도 가름이 무의미하다


상현은 지옥을 말하지만 천국을 동시에 말한다. 수많은 밤의 자식들(, 죽음, 나이와 질병, 착각과 망상, 오류와 거짓, 망각 등)을 말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은거하는 빛의 존재들을 인정한다. 모든 악덕이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왜곡시킨다 해도, 자신 안에 갇히는 땅에 발 딛고 산다 해도 우리는 그 너머 어느 곳에 먼 시선을 두고 그곳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한다. 허망하게도, 영생을 꿈꾸는 것이다. 육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함께 살 수 없음이다.


이즈음 클라우스 헬트가 쓴 <지중해 철학기행>을 낭독 녹음하다가 영화 <박쥐>를 나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초가 읽혀 반가웠다. - 만일 인간이 지속적인 행복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영혼은 피안에 자리한 이데아들의 세계에서 참된 고향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혼이 정화되어야, 다시 말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데아들을 인식하면서 지속적인 행복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감각이 일어나는 바로 육체이기 때문이다. 이데아들을 순수하게 바라보기 위해 혼은 육체로부터 떨어져야 한다.... 철학은 죽음의 훈련이다."


 



22살의 빛나는 원석, 김옥빈.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후 아쉽게도 멋진 역할이 안 주어졌네.



<박쥐 각본>에서 다시 선명히 들어온 것들



1. 고향

각본집을 읽고 다시 들어온 첫 번째 단어는 역시 고향이다. 영화에서 라여사와 강우가 자주 듣는 남인수와 이난영의 노래가 단초였다. 영화에선 흘려듣게 되는데 각본집에선 두드러지게 가사까지 적어놓았다. 아마도 박 감독의 아이디어일 듯.

 

#

85. 낚싯배 ()

태주를 가운데 두고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강우와 상현. 보름달 보며 [고향 그림자]를 제법 구성지게 부르는 강우.

   강우

똑딱선 푸로페라 소리가 이 밤도 처량하게 들린다

물 위에 복사꽃 그림자같이 내 고향 꿈은 어린다

- 69

 

내 고향 꿈이 어리듯 물 위에 복사꽃 그림자어리는 이미지로 각본집 표지를 삼은 듯 아름답다.

 

각본집의 마지막은 이렇다. 영화의 첫 장면, 나뭇가지 그림자 어른대는 하얀 벽면만큼이나 압도적 영상이 연상되면서 대조적으로 강렬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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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들석이며 숯덩이가 되어가는 남녀, 깜빡거리지도 않고 이 소멸을 관찰하는 라여사의 싸늘한 눈동자. 그러거나 말거나 옛 노래는 무심히 흐른다.

   이난영

정들은 고향 길에서 순정에 어린 그대와 나는

언제나 변치 말자고 손잡고 맹서했건만

그대는 그 어데로 갔는가, 잊지 못할 추억만 남기고

정들은 고향 길에는 구름만 흘러갔고나...

-121




2. 헤어질 능력, 뛰어내림의 희열


태주 : 당신은 날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

       우리 인제 헤어져.

상현 : 나한텐 그런 능력이 없어.

       헤어질 수 있었으면 너를 왜 살렸겠어?

- 104

 

10년도 더 지나 정 작가와 박 감독은 헤어질 능력을 발휘해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고^^

고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 수 있냐고 묻는 태주를 안고 상현은 박쥐처럼 뛰어내린다. 그때 태주는 세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최고의 희열을 맛본다. 피를 나누어 준 후 재생한 태주에게 상현이 한 말 해피버스데이 태주씨!” (난 이 장면과 목소리가 제일 좋았다) 태주가 새로 태어난 이후 느끼는 환희는 잠깐이다.

 


3. 캄캄한 세상

영생의 욕망이 차올라 피를 나누어 달라는 눈먼 노신부에게 상현은 말한다.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이 캄캄한 세상이?” 

노신부 : (벌컥 화를 내며) 너는 남의 피로 연명하면서 네 피 한 방울 나눠 주는 건 아까워하느냐! (75)

 

윤동주 시인이 암담한 세상을 두고 병원이라는 시를 지었듯 세상은 아직도 밤이다. 헛된 믿음으로 기적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허상을 깨닫게 해주려고 한 신부. 병든 몸의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기분을 상현은 한때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으로 느꼈다. 내쳐지지 않고 선택받았다는 기분. 하지만 그또한 허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4. 물과 피

지속적으로 물과 피가 대조되어 흐른다. 물은 고향(귀향), 정화, 속죄, 구원, 소멸과 해방을 상징하고 피는 생명, 욕망, 죄와 고통을 상징한다. 상현과 태주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멸하고자 밤길을 달려 새벽에 도착한 곳은 동해안의 개활지. 위압적인 해가 떠오르자 일제히 모세혈관이 눈에서 터지고 파랗게타오르는 거대한 태양을 바라본다. 각본집에 파랗게라고 씌어 있어 놀랐다. 파랗게라니! 영화에선 몰랐던 부분. 심장이 타들어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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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의 상상적 시점으로, 환상적으로 변용된 일출 장면. 파랗게 타오르는 거대한 태양에서 칼날처럼 뾰족하게 사방으로 뻗치는 햇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빛깔들로 이루어진 뭉게구름, 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고래들이 뿜어 올리는 피 분수, 날개 달린 거대 지네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하늘. 수십 명의 인간이 각기 다른 멜로디로 부르는 합창. - 121


 

5. 행복한복, 현상현

<헤어질 결심>에서 안정안, 엄마원전 완전안전,처럼 이런 말장난 좋아하는 개구쟁이 박 감독. 무거울 법한 이야기에 무겁게 빠지지 않도록,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권한다. 위트를 수시로 날려주는 깨알대사, 결정적 순간에 숨통을 틔워주는 특유의 스타일, 부조리한 대사 중 철학적 메시지와 인간의 존재론적 의문에 대한 갖가기 이미지가 폭발적이다. 신발 장면은 작가와 감독 모두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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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 : (꼭 끌어안으며 담담하게)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 120

 

 

 




1. 병원 효성 입원실 (낮)
상아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벽과 문짝에 나뭇가지 그림자 어른거린다. 문 열리고 상현 들어선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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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09-21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박쥐 각본집까지!
저는 박찬욱 감독이 감독한 한국영화 중 ‘박쥐’만 안본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손이 잘 안가네요..
리뷰 보니 용기 내 한번 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2-09-21 22:42   좋아요 3 | URL
박쥐 안 보셨다굽쇼 햇살님^^
박쥐, 전 좋아하는 영화인데 아무래도 무장하시고 보시길 바랍니다 ^^ 좋은 영화입니다.
각본집도 좋아요~

scott 2022-09-22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찬욱 감독님 담번 책내실때
울 프레이야님 이름
엔딩샷에 새겨주세요😎
고마워 영화😍

프레이야 2022-09-22 08:05   좋아요 2 | URL
@-@ 띠용 스캇님 우찌 ^^
한 장면 한 장면이 숨막히게 아름다워요. 기괴하고 우습고 과장되고 능청스럽고 지독하게 사랑스럽고요.

희선 2022-09-22 0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상으로 보고 놓친 걸 각본집을 보고 알기도 하는군요 태우는 건 정화의식이라고 한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네요 각본집을 보면서 다시 영화를 떠올렸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2-09-22 07:59   좋아요 1 | URL
네. 정화의식. ^^ 태양빛에 몸이 타들어갑니다. 고통이지만 희열. 최고의 엔딩 장면입니다. 각본집의 매력에도 빠져요.

새파랑 2022-09-22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쥐만 봤을때 이해가 안갔던게 테레즈 라캥 보니까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구요 ㅋ 영화가 좀 더 쇼킹했던거 같아요~!!

프레이야 2022-09-22 07:55   좋아요 2 | URL
보셨군요 새파랑 님 ^^
비틀어 놀라게 하는 게 감독의 의도인데 그게 한편 귀엽고 유머러스하기도 하고요. 김옥빈 배우 참 좋았어요. 역량이 다분한 배우라 생각하는데 후속 작품이 안 따라와주는 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9-22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옥빈 저도 참 아까운 배우라고 생각해요. 왜 작품이 없을까요?

프레이야 2022-09-22 11:36   좋아요 1 | URL
악녀, 있긴 해요. 액션 아주 잘하더군요. 몸매도 좋고 운동신경이 발달된 사람이라 잘 어울렸어요. 좀더 좋은 작품이었으면 좋겠던데 아쉬워요. 요즘 삼십대 모습도 여유롭고 밝아 보여 참 이쁜 배우다 싶어요.

책읽는나무 2022-09-22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우는 감독을 잘 만나야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여배우들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죄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저도 박감독님 다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박쥐는 정말 오래전에 보았는데 영화가 좀 어려웠다고 기억하는데 프레이야님 설명을 들으니 조금 알 듯도 하구요?
졸라책을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려나요?^^

프레이야 2022-09-22 11:45   좋아요 2 | URL
졸라 책은 그냥 모티브이고 거기에 뱀파이어를 더해서 좋은 이야기를 담은 멋진 영화라고 생각해요. 박 감독은 디테일에 철학에 연출에 모든 게 천재 ㅎㅎ
이 영화에 태주 역을 아무도 안 하려고 해서 애먹었다죠. 옥빈 배우 보는 순간 한눈에 결정했다고 해요.

2022-09-22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9-2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김옥빈 여기서 진짜 연기 우와!! 했는데 그 다음엔 영화들이 다 ㅠㅠ 박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난데 프레이야님 해석을 읽으니 아.!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

프레이야 2022-09-22 13:32   좋아요 1 | URL
옥빈 배우 이 영화 후에 음산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배우로 각인된 것도 같은데 실제 성격이 화끈하고 밝은 것 같더라구요. 어린 나이에 참 과감하게 연기한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나이 들어보이게 연출하려고 했다죠. 파란 원피스 입은 자태도 멋집니다.
각본집도 알흠다워요 미니 님^^

바람돌이 2022-09-22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박쥐 보면서 저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배우들은 너무 연기를 잘하는데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안와닿던....
이렇게 프레이야님 글로 읽으니 영화를 다시 보면 이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프레이야 2022-09-22 19:25   좋아요 2 | URL
박 감독은 박쥐가 어렵다는 말은 인정 못하겠다고 했어요. ^^ 오히려 명확한 메시지라고 보여요. 좀 격한 장면에서 힘들 수 있는데 조금 거리두기 하여서 보면 괴상하게 웃기답니다 ㅎㅎ 너무 진지할 필요없이 농담하는 것 같이요. 다시 함 보시와요.

꼬마요정 2022-09-23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스달 연대기를 보고 김옥빈이 너무 좋아져서 박쥐를 봤어요. 김옥빈과 송강호의 연기가 너무 좋더라구요. 박쥐에 나오는 배우들 연기가 다들 뭐 신하균이랑 김해숙이랑 다 너무 좋았어요. 하얀 공간도 인상적이었구요. 테레즈 라캥을 읽은 뒤라서 그런지 이야기는 예측이 되니까 다른 면을 좀 보게 되긴 했어요. 상현은 신부였다 보니까 좀 갇힌 느낌이 있는데 태주는 뭔가 날것처럼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멕베스 생각도 나고 죄의식이라는 게 그토록 삶을 옭아매는가 싶더라구요. 그리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욕망,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건 죄일까 잠시 생각했어요. 그 노신부님이 눈을 뜨고 원하는 풍경을 보고 싶어 뱀파이어로 만들어 달라할 때 역시 사람이란… 생각을 했죠. 마지막 장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프레이야 님 글을 보니 박쥐 영화 다시 보고 싶네요. ㅎㅎㅎ 너무 설명 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22-09-23 09:29   좋아요 1 | URL
아스달연대기를 못 봤어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옥빈 배우 요즘 모습도 여유롭고 밝고 좋아보였어요. 에너지가 많고 재능도 많은 배우. 박쥐에서 정말 연기자들 최고였어요 역량을 끌어내는 감독도 대단하지만요. 노신부 역 박인환 배우도 섬뜩하더이다. 김해숙 눈 부릅뜬 연기가 그렇게 어려웠다죠
결핍을 채우려는 건 살아있음의 증거겠죠^^
거꾸로 읽어도 바로 읽어도 현상현, 이것도 재미난 이름이죠. 오늘 날씨 넘나 화창하네요.
꼬마요정 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육냥이들에게도 안냥~ 인사 전해주세요. ㅎㅎ
댓글저장
 

뤽 다르덴, 인간의 일에 대하여


북펀딩 소식을 보고 바로 펀딩 완료.

11월 2일 배송 예정이네.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지 않게 됐는지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올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75주년 특별상을 받은 거장 형제 장-피에르·뤽 다르덴 감독은 최근 프랑스 칸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벨기에 출신의 두 감독이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는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건너온 아이들의 우정을 그린 '토리와 로키타'다. 친남매처럼 서로 의지하는 남자아이 토리와 그보다 조금 더 큰 여자아이 로키타의 여정을 통해 폭력에 노출된 유럽 내 어린 이민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 기사 발췌

 - 기사 출처 http://yna.kr/AKR20220530015300005?site=popup_share_copy

뤽 다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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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뤽 다르덴이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두 인물 시릴과 사만다에 대해 생각하며 2007년 5월부터 틈틈이 적은 단상을 모은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소년 시릴과 그를 엄마처럼 품어주는 여인 사만다라는 두 인물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존재 자체가 파괴되는 폭력을 경험하고도 소년은 어떻게 똑같은 폭력의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고자”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이후 우리 인간은 신이 주던 위안을 잃어버린 채 어떻게 죽음을, 삶을 감내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죽는다는 두려움’을 파헤친다. 인간에게 삶은 공포 그 자체이고 그런 세상에서 만나는 타자는 제거해야 할 위협이 된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사유는 제자리를 맴도는 듯하면서도 수많은 나선을 그리며 느리지만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곳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 알라딘 책소개 중 발췌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동생 뤽 다르덴, 형제는 일찌기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이후 한결같이 소수자 이웃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냉엄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우리 이웃의 일이니 외면하지 말고 보라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바짝 따라다니며 인물을 비추어 낸다. <로나의 침묵>, <언노운 걸>, <아들>, <소년 아메드>...... 그 중에서도 <자전거 탄 소년>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온기 있고 희망적이다. 뤽 다르덴이 쓴 <인간의 일에 대하여> 책 소개를 보고 2011년 이 영화를 선보이기 전, 2007년 5월부터 영화 속 두 인물 시릴이라는 소년과 그를 돌보는 사만다에 대해 생각하며 단상을 적어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일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일에 대하여>를 쓰기 시작했다니, 꾸준히 지켜온 진정성이 느껴진다. 어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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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는 “우리는 한 사람이지만, 눈은 네개”라고 표현한다. 두명이 공동연출을 할 때 상상 가능한 생산적인 분담 방식의 한 예를 드는 것으로 이 표현은 더 잘 설명된다. 주로 촬영과 편집을 맡는 장 피에르 다르덴과 사운드쪽을 맡는 장 뤽 다르덴은 촬영장에서는 한 사람은 모니터를 보고, 또 한 사람은 배우를 본다. 모니터 뒤에 있는 사람은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자리를 바꾼다. 역시 모니터 뒤에 있는 사람은 침묵한다. 둘 사이의 의사소통은 필요없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의중을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니, 역으로 정말 ‘눈이 네개 달린 한 사람’의 역을 하게 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다르덴 형제의 독특한 연출방식의 예가 되는 것은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육체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업은 먼저 카메라맨 없이 시작되어, 많은 리허설로 동선을 구성해보고, 또 몇 가지 버전으로 바꿔본다. 이때는 대사에 대한 부담도 주지 않는다. 수차례 반복한 뒤 카메라는 돌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연습한 걸 정확하게 할 필요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의 움직임과 디테일들이 살아난다. 그때에 가서야 대사를 시작하고 조정해나간다. 다르덴 형제는 배우가 육체로 말을 건네기를 원한다. 카메라는 그 살아 있는 ‘물질성’을 담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식의 ‘리얼리즘’이며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넘어오면서 발전되는 그들만의 요소이다. / 씨네 21 No. 441 중




자전거 탄 소년, 중



생활고로 빼앗긴 시릴의 벗을 찾아주고 주말 위탁모 제안까지 기꺼이 받아들인 사만다는 어느 날 그 이유를 묻는 시릴에게 "그냥"이라고만 대답한다. "그냥"은 나중에 시릴이 나쁜 길로 자신을 데려가려는 동네 형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고 돈은 필요없고 "그냥 돕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장면과 함께, 무뚝뚝하지만 영화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가 베푸는 친절에 첨가물이 섞이지 않고 순수한 결정체로 그 행위가 빛날 때 험난한 과정과 결과에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명분과 용기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나는 과연 순정한 친절을 베푸는 인간인가? 시릴이 나쁜 행동인 줄 알면서도 그냥 그 형을 돕기로 약속했기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만다에게 상처를 입힐 때에도 그녀는 잠시 슬픔에 겨워 울음을 뱉었을 뿐 시릴을 내치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내 추측이긴 하지만, 사만다가 시릴을 돌보는 건 모종의 옛일에 대한 속죄의 모습 같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잠시 한 나는 영화가 말하는 순정한 '그냥'을 배반하는 관객이다.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내침을 당한 후 자전거를 타고 달려 사만다에게 돌아온 시릴,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자신을 받아달라 진심으로 원하는 시릴에게 사만다는 참다운 '어른'의 모습을 보인다.

 

<자전거 탄 소년>은 잘못과 뉘우침, 용서와 복수, 속죄와 성장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강렬하고 집요하다. 영화는 감정을 주름살 뒤로 감춘 무심한 얼굴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감출 수 없는 노인 같다. 단순한 플롯에 복잡하지 않은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치하며 자연스럽게 시릴이 유년의 기억을 자양분으로 해서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 고마워 영화, 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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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9-20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영화> 이 책이 명작이군요~!! 저도 나름 ‘순정한 친절‘을 베푸는걸 목표로 하는데 꼭 좋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구요. 악용하는 사람도 있고 ~ <자전거탄 소년> 재미있을거 같아요~!!

프레이야 2022-09-20 21:03   좋아요 1 | URL
선하신 새파랑 님 ~
뭐든 순정품이 최고죠. 그렇지 않은 건 좀 있으면 다 드러나요 ㅎㅎ
자전거 탄 소년, 재미도 있고 뜨끔한 충고도 되고 그래요. 참다운 어른이란.

scott 2022-09-20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책 땡투😍
고마워 영화🤗

프레이야 2022-09-20 21:04   좋아요 1 | URL
양장본이라 더 이쁠 것 같아요
스캇님 ^^

청아 2022-09-20 18: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영화 표지 속 여성
프레이야님 같아요~^^♡

프레이야 2022-09-20 21:05   좋아요 2 | URL
쪽집게 미미 님~^^

페크pek0501 2022-09-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감정을 주름살 뒤로 감춘 무심한 얼굴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감출 수 없는 노인 같다.˝
- 이런 표현을 하실 줄 아시는 프레이야 님, 짱이십니다!!!

프레이야 2022-09-21 17:06   좋아요 0 | URL
페크 님 ~^^
바삭바삭 가을입니다~

희선 2022-09-22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마음 없이 그냥일 때도 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죽 이어지면 좋겠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2-09-22 07:49   좋아요 0 | URL
순수하게 그냥이라고 말해도 사실 내적 동기는 또 각자 있겠지요. 전환점이 되는 선한 동기. ^^

기억의집 2022-09-24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페이퍼 읽고 펀딩할까 말까 했다가 방금 펀딩했어요~ 자전거 탄 소년은 들어보긴 했는데 영화는 못 봤지만.. 찾아보니내일을 위한 시간의 감독이였네요~ 그 작품 인상적이었는데 다르덴형제가 만들었네요!! 읽어봐야죠!!!

프레이야 2022-09-25 00:07   좋아요 0 | URL
기억 님 ^^ 영화만큼 진정성 담긴 좋은 글일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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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조소, 회화, 음악, 시문학의 근간이 되며, 과학 자체가 시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_ 66쪽

앞서 주장했듯이, 과학은 걸작을 만들어 낼 때뿐 아니라 미술을 감상할 때도 필요하다. 예컨대, 작품에 담긴 생명의 본질을 폭넓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인이 아이보다 무엇이 낫겠는가?
시에 등장하는 객체와 동선을 훤히 뀀으로써 시골뜨기는 미처볼 수 없는 것을 간파한다면 모를까, 그러지 못한다면 신사가 시골뜨기보다 무엇이 낫겠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관중이 작품을 자각하고 있다면, 이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감상의 질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작품의 진실을 하나하나씩 벗겨 낼 때마다 지각한 사람이라면 희열을 느끼겠지 - P65

만, 무지한 사람을 이를 간과하고 말 것이다. 작품의 수효야 어떻든,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암시하는 것이 늘수록, 작품과 연관된 사상을 내비칠수록 사람들에게 크나큰 만족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만족을 누리려면 관중이나 청중 혹은 독자는 예술가가 시사한 현실을 간파해야 한다. 현실을 간파한다는 말은 곧 과학을 꿰뚫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P66

과학에 입문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시중에 나오는 시 중 10분의 1도 알 수 없다. 소싯적 식물과 곤충을 채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작은 길과 울타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재밋거리를 조금도 알지 못할 것이다. 화석을 발굴하러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은 암석에 박힌 보화(화석)가 발견되는 지대에서 시상을 떠올릴 리 없고, 해변에 살면서도 현미경과 수족관을 둔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해변에서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것이다. 사사로운 일에는 정신을 팔면서도 위대한 자연에는 무관심한 사람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연이 만든 건축물에는 관심이 없지만,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음모론같이, 몰라도 그만인 논란에는 사족을 못 쓴다. 헬라어로 된 시는 악착같이 배우려 하지만, 신의 손가락이 지구의 지층에 새긴 대서사시에는 눈길 하나 주는 법이 없다! - P67

과학교육이 훈육 수단으로서 언어교육을 능가한다는 사실은 판단력 함양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영국 왕립과학연구소에서 지식 교육을 가르친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교수는 가장 흔한 지성의 단점으로 ‘판단력 부족‘을 꼽았다. 일리 있는 말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회는 판단력 교육에 무지할 뿐아니라, 그것에 무지하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과학 문화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패러데이 교수의 결론은 분명하다. 주변 환경, 사건 및 결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주변 현상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때만 능하다는 것이다. 어구의 의미를 훤히 꿰고 있다고 해서 인과관계를 정확히 유추해 낼 수는 없다. 데이터에서 결론을 지속적으로 도출해 내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검증할 수 있다면 정확한 판단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습관이 판단력의 필요조건이며, 이것을 과학으로 익힌다는 것이 과학교육의 장점 중 하나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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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0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0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0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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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 같은 계획의 다양한 결과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 사건의 다양한 특성과 여건이 야기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최선책을 간파하고 선택할 수 없는 애매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길은, 내 생각에는 이것이다.
즉 그렇게 해야만 할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가장 정직하고 공정한편에 투신하는 것. 어느 길이 지름길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 언제나 곧은 길로 가는 것. - P242

B 하지만 사실 그처럼 강력한 자신감은 죽음 또는 종국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상상해도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들만이 완전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의심스러워 떨리는 모습으로 자신 있는 척해 봤자, 중차대한 화해를 이끌어 내는 데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순순히 자기를 맡기고 믿어 버리는 것이 남의 마음과 의도를 내것으로 만드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이 그렇게 하고, 적어도 얼굴만이라도 의심을 벗어 버리고 순수하고도 분명한 신뢰를 보인다면 말이다. - P246

안전을 염려하는 척하며 왕공들에게 극히 세심한 경계심을 촉구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몰락과 수치를 권면하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그 어떤 고귀한 일도 이룰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분은 기질상 매우 용맹하고 대담한 사람이건만,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의 운을 망가뜨리고 있다. 측근들과 똘똘 뭉쳐 지내라는 둥, 옛 적들과 화해하라는 말은 듣지도 말고, 혼자 버티면서 어떤 약속을 하건 어떤 이용 가치가 있어 보이건 더 강한 사람과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둥의 충고로 말이다. 내가 아는 다른 한 분은 그와는 정반대의 충고를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운을 기대 이상으로 증진시켰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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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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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이나 강인한 야성,
곤봉과 채찍으로 유지하는 소위 문명세계,
인간세계에 울리는 경종의 부르짖음.
벅은 잭 런던의 또다른 페르소나.

단편 ‘불 피우기’가 뒤에 수록되어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한 방문객이 그 계곡을 찾는데 이해츠 족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놈은 찬란하게 빛나는 털로 뒤덮인 커다란 늑대인데 다른 늑대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다르다. 그는 홀로 부드러운 숲을 건너 나무들 사이에 있는 공터로 내려간다. 썩은 사슴 가죽 자루들에서 누런 물줄기가 흘러나와 땅에 스며드는데, 주위에 풀들이 기다랗게 자라나 있고 식물들이 우거져서 그 누런 색깔을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는 여기에서 잠시 동안 뭔가 생각하다가 떠나기 전에 한 번, 아주 길고 슬프게 운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혼자인 것은 아니다. 긴 겨울밤이 오고 늑대들이 낮은 계곡으로 먹이를 찾아 내려올 때면 그가 무리의 맨 앞에서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창백한 달빛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북극광을 뚫고 동료들보다 훨씬 더 높이 펄쩍펄쩍 뛰면서 그들 무리의 노래인 원시 세계의 노래를 부를 때면 그의 커다란 목이 우렁우렁 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 P132

"당신이 옳았어요, 선배. 당신이 옳았어요."
그는 설퍼 계곡의 선임에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난 후 사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가장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잠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기 시작했다. 개는 그를 바라보며 앉아서 기다렸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긴 황혼 속에서 짧은 하루가 끝나 가고 있었다. 불이 지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이 눈 속에 앉아 불도 피우지 않는 것을 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황혼이 저물자 불을 쬐고 싶은 개의 안타까운 열망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대신 개는 앞발을 교대로 크게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부드럽게 낑낑거렸다. 개는 귀를 납작하게 붙이고 주인의 꾸중을 기다렸다. 그러나 주인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개는 크게 낑낑거렸다. 조금 더 지난 후 사내에게 살금살금 걸어간 개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에 개는 털을 곤두세우고 뒤로 펄쩍 물러섰다. 추운 하늘에서 펄쩍 뛰고 춤을 추고 밝게 빛나는 별들아래, 개는 큰 소리로 길게 짖으면서 잠시 더 기다렸다.

- 불을 지피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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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1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틴 에덴에 이어 계속 잭 런던이군요. 저는 마틴 에덴부터.... ^^

프레이야 2022-09-18 19:45   좋아요 1 | URL
잭 런던 무척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저는 좋네요. 강하고 뜨겁게 살다 갔어요.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를 두고 가짜라고 표현했다죠. 세상 평가에 연연해하진 않았을 인물이지만. 영화 마틴 에덴도 잭 런던을 좀더 이해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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