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로맨스 약국> 서평단 모집!

안녕하세요,
알라딘 편집팀 박하영입니다.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출간된 <로맨스 약국>을 읽고 리뷰를 써주실 독자 10분을 찾습니다.
이전에 진행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타워>, <크라임 제로> 서평단에 뽑히신 분들은 다른 분들에게 기회를 양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언어와 연애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고, 둘은 서로를 통해서 실현되게 된다."

 사랑을 언어학적 감수성으로 분석한 책. 추리소설 전문 번역가이자, 언어학 전공자인 박현주 씨가 쓴 연애상담서이다.
 
사랑에 빠진 주체들은 자신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노래 가사, 신문 기사, 드라마, 만화, 소설,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국면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케케묵은 진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제 첫사랑과 닮으셨네요" "말 안하면 모르니?"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등 사랑의 '발화'에서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지은이는 진부하다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사랑에 관한 클리셰 한마디 한마디를 언어학자의 감수성으로 분석하고 그 속에 내재된 심리를 통찰한다. 직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에 일상의 인물들에서 끌어내진 에피소드들이 더해져 흥미를 더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봄날'에서부터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미스 매치', 일본 만화 '슬로우 댄스', '너는 펫'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텍스트들에서 분석 사례들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  서평단에 참여하길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면 됩니다.
*  신청해주신 분들 가운데 10분께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신청은 8월 4일 금요일 오전 10시까지 받습니다.

서평단 모집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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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2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8-02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마르긴요? ^^ 잘 먹고 살 쪘어요 ㅜㅜ 에고고... 거기선 더위를 모르고 지냈는데 공항을 나오는 순간 확 끼쳐오는 열기에 ㅜㅜ 그나저나 무더위를 만끽해보자구요^^
 
사람을 만나다 높새바람 12
김여운 지음, 전종문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바람의 아이들 신간이다. 첫 창작동화라는 글귀에 기대 반 호기심 반의 눈으로 얇은 책을 넘긴다. 김여운이라는 신인작가다. 표지의 그림이 신선하다.

어느 날, 내가 아무런 통고도 없이, 최소한의 이유 설명도 없이, 지금의 안락한 현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면?  이야기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세나는 사랑만을 먹으며 편안한 삶은 살아온 애완견이다. 그녀의 주인은 사랑만 할 줄 알지 세나를 바보로 만들어놓았다고 세나 스스로는 생각한다. 화초처럼 곱게 자란 세나는 어느 날 세나를 싫어한 주인아저씨로부터 내팽겨쳐져선 아주 낯선 곳에서 거친 삶을 살아가야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생경한 곳에서 '나'를 진정으로 발견하게 된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이 동화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 구절이 딱 들어맞다. 세나는 강이 가까운 어느 시골 마을에서 초롱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숨겨져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만난다. 잿빛털이라는 난폭한 개를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구멍가게 아줌마의 슬픈 눈을 피하지 않고 다가가서 동거한다. 한 번 버림을 받은 목숨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매달리며 그 마음을 믿는 모습을 보인다.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초롱이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아주머니는 초롱이를 가두어두려고도 하지 않고 초롱이에게서 비슷한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세상에 닫아두었던 마음을 연다. 세나는 초롱이가 되어 '사람'을 만났고 사람은 다시 잃었던 '사람'을 만난 셈이다. 작가가 말했두었듯이 이 이야기는 개를 위로하기보다는 연약해서 외롭고 서러운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다. 그 아주머니는 초롱이를 통해 사람의 온기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학년동화라지만 초롱이의 사색이 너무 진하게 배어나오는 중간중간의 글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약간은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화는 좀더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면서 아이들이 웃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젖어들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도 다소 부족한 것 같다. 내가 읽기엔 재미있었지만 초등학생의 마음의 눈으로 볼 때면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의 글귀들이 좀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털북숭이와 초롱이의 대화부분이다. 털북숭이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타인'이다. 동화에서 '의미있는 타인'은 주인공의 성숙을 위해 자주 등장한다. 생의 연륜으로 지혜와 자비를 겸비한 털북숭이는 초롱이의 새로운 삶을 지탱하고 지침이 되어준다.

"강물이 아름다운 이유를 아니?"
"흘러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강물은 언제나 새로운 물이라는 것이지."
털북숭이의 말처럼 강물은 늘 새로운 것이다. 이 말은 다른 책에서도 많이 나오는 말이라 그다지 참신하지는 않다. 하지만 흘러가기 때문에 강물이 아름답다는 초롱이의 말과 마지막 부분이 겹쳐지면서 뜨뜻한 감동을 준다.

- 그 순간 강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내 속에 들어온 강물이 춤을 추며 흘러간다. 흐르는 물결이 아름답다.

우리도 누구든지 강물처럼 그렇게 나름의 춤을 추며 흘러가고 날마다 변화함으로 가치있는 게 아닐까. 불교에서 '덧없다'함은 '변화하는' 것이라 했다. 세상에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불행 뒤에 따라오는 행복, 행복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불행..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한시도 겸허하지 않을 수가 없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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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대충 짐 쌌네요. 방금 전에.. 에고 짐 싸는 거 넘 싫어요. 귀찮아요. 그러고도 꼭 빠뜨린 거 있고.. 하여튼 어리버리, 뒤죽박죽입니다.. ㅎㅎ 잘 갔다오겠습니다.
 
 전출처 : 가넷 > [현대미술 따라잡기]제목 짓기는 창작의 핵심 요소

[현대미술 따라잡기]

제목 짓기는 창작의 핵심 요소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르네 마그리트, ‘듣는 방’(Chambre d’ ecoute).

현대미술에서 제목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미술 이전 시기의 제목은 작품에 드러난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목이 색채나 형태, 그림의 주제, 재료 등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부터다. 대표적인 작가는 마르셀 뒤샹으로, 그는 의도적으로 작품의 내용과 무관한 제목들을 붙인 최초의 작가였다.

 

개념미술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유명론적 회화(nominalist painting)’ 중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그에게 단어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다. 그러므로 ‘레디메이드’에는 ‘단어’도 포함된다. 제목 혹은 그림에 들어가는 소재로 사용될 단어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루스 사전(프랑스에서 가장 일반적인 프랑스어 사전)을 집어 들고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베껴 쓴다. 즉 그것들은 구체적인 참조 내용이 없는 단어들이어야 한다.” 이렇게 선택된 단어들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들 중에는 ‘재채기를 하세요, 르로즈 셀라비’ ‘너는 나를’ ‘정조의 모서리’처럼 그림과 상관없이도 강한 연상을 유도하는 것들이 있다. 그는 제목이란 ‘보이지 않는 색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는 르네 마그리트가 있는데, 그의 대표작인 ‘듣는 방’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인간의 조건’ 등은 작품의 시각적 요소와 제목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목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존 웰치만(John C. Welchman)은 주요한 시각적 요소로서 제목의 대두가 19세기 말에 이미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1880년대 화가인 알폰스 알라이스를 예로 든다. 이 작가의 작품 중 온통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 회화가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북극광 효과가 있는) 홍해 해변에서 중풍기가 있는 추기경에 의한 토마토 수확’이다. 이런 식의 유머러스한 제목 붙이기는 1960~70년대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현대미술 경향의 특징적인 면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목 짓기가 창작의 핵심 부분이 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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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의 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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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말년에 그는 해질 녘이면 단골 술집에 들러 혼자서 막걸리 한두 잔 걸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당시 단골 술집의 주모는 할머니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천 시인은 단골 술집을 바꿨다. 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뻔히 들여다보던 부인이 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집 주인은 젊은 여인인가 보죠?”

 

시인은 아이처럼 화들짝 놀랐다가 늘 아내에게 했듯이 “문디 가시나…”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새로 가는 술집은 잔이 더 크다 아이가.”

작고한 시인의 부인이 언젠가 사석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남몰래 술잔 크기를 재 보면서 속으로 득의양양했을 시인의 천진무구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술 욕심은 무욕(無慾)에 가깝다.

 

그런데 천상병이 단골 술집을 바꾼 사연은 한 시인의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천상병의 술잔은 문학의 존재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천상병은 홀로 마시는 술잔의 크기에서 자족(自足)의 환희에 도달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원했던 문장을 쓰게 된 작가의 희열뿐만 아니라, 홀로 조용히 문학 작품에 감동한 독자의 눈물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예술이 밀실의 산물이지만, 미술은 전람회장에서, 공연 예술은 무대에서, 영화는 영화관이란 공동 체험을 거쳐 수용된다. 하지만 문학은 낭독회를 제외하고는 원천적으로 독자가 나 홀로 감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상병의 독작(獨酌)은 문학의 생태 원리를 반영한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사랑의 야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페르시아의 한 왕이 중국과 그리스 화가를 한 명씩 불렀다. 왕은 집무실의 서로 마주보는 양쪽 벽에 각각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한 뒤 둘 사이에 긴 장막을 쳤다. 약속한 기일이 되자 왕은 신하들을 이끌고 두 화가를 찾았다. 중국인 화가가 그린 벽화는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환상의 세계를 눈앞에 갖다 놓은 듯한 벽화 앞에서 왕과 신하들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왕이 반대편 벽을 맡은 그리스인 화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장막을 걷으라고 명했다. 왕과 신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스인 화가는 거대한 거울을 벽에 붙여 놓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거울 속으로 중국인 화가의 벽화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벽화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왕과 신하들은 그리스인 화가가 더 뛰어나다고 손을 들어 주었다. 그들이 더 좋아한 것은 거울 속에 투영된 벽화의 무릉도원 속에서 자신들이 노닐고 있는 모습에 홀딱 반했기 때문이다.

 

투르니에가 이슬람권에 전해오는 우화를 각색해서 만든 이 이야기는 복제예술인 영화가 판치고, 인터넷 동영상이 성행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페르시아의 왕과 신하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초상에 환호작약한 것이나, 오늘날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미지 짜깁기의 유희에 열광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인터넷은 혼자 놀지만, 동시에 타인과 함께 노는 가상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덧 혼자 있는 것에 서투르다.

 

"소설 읽기가 영화 보기보다 힘든 것은 자아 성찰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문학 평론가 김치수는 이미 말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관객 동원에 열성이고, 인터넷에 누구나 볼거리가 넘치는 올여름, ‘나 홀로’ 문화의 대표 격인 순수문학은 독자를 갈망한다. 홀로 막걸리 한잔에 입맛을 다셨던 천상병을 그리워하듯이.

 

박해현 기자

 - 조선닷컴 와플레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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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7-2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읽으면서 혼자 웃었군요. 퍼 갑니다.
 
 전출처 : 水巖 > ‘인터넷 중독 사회’ 아빠의 역할


<멋진 아빠되기>
‘인터넷 중독 사회’ 아빠의 역할은?
날씨 예측은 주변 상황에서도 알 수 있다. 개구리가 울거나,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곧 온다는 징조다. 경제에서 선행종합지수가 있다. 앞으로의 경제상황이 어떠할지를 여러가지 자료를 토대로 예측한다.

그럼 20년 후,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그 해답은 PC방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PC 보급률과 인터넷 사용률은 세계적이다. 학교 주변 PC방을 보자. 학교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밀물처럼 꽉 찼다가 저녁이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주말이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미 PC는 아이들의 생활이며 문화가 됐다. 그러므로 20년 후에도 당연히 세계적인 정보기술(IT)강국이 될 것이다. PC방에서 20년 후를 예측해본다.

청소년 범죄가 더욱 증가한다 =아이들이 PC방에서 자료검색을 하는 일은 백사장에서 동전찾기처럼 드물다. 모두 게임을 하는데 그 내용이 심각하다. 물론 낭만적인 게임도 있지만 주로 살인행위와 유사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화면을 보면 섬뜩한 장면이 많다. 총으로 쏘아 죽이고, 칼로 베면 선혈이 낭자한 영상이 나온다. 그리고 동시에 점수가 올라가고 환호한다. 게임이 끝나도 걱정이 없다.

다시 엔터를 누르면 주인공이 되어 시작한다. 아이들은 재미로 하지만, 사실 지능적인 살인을 반복하여 학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인간성의 존중이나 휴머니즘은 전혀 없다. 그저 점수에 대한 만족과 아쉬움만이 있을 뿐이다. 며칠 전, PC에 중독된 5학년 쌍둥이 형제가 친구에게 보복한다고 20여 차례 칼로 찔러서 중태에 빠트렸다. 그러나 죄의식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많은 훈련을 통하여 무의식에 각인된 학습이 있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는 아빠가 더욱 늘어난다 =PC를 처음 접하는 연령이 7,8세로 낮아지고 있다. 아이가 일단 PC를 시작하게 되면 그 친밀도가 아메바의 핵분열처럼 두 배씩 빠르게 증가하며 중독현상도 일으킨다. 심지어 PC를 못하게 되면 금단현상을 일으킨다. 아이에게 PC와 아빠의 친밀도는 반비례한다. 아이의 마음에 아빠가 없다는 것은 놀이의 부재와 대화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 긴 공백은 나중에 왕따로 연결된다. 과연 한 지붕에서 산다고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율이 더욱 높아진다 =인터넷의 발달은 인스턴트 사랑을 양산했으며 짧은 사랑, 짧은 만남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번개팅은 이제 전설적인 이야기이며 인터넷을 통하여 성을 팔고 사는 것이 비밀리에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풍조로 배우자를 구하는 과정도 짧아졌고, 상대방의 단점까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서로 사랑한다고 느낄 때 결혼하려고 한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혼도 쉽게 한다. 그것의 증가는 고아원에 보내지는 아이가 늘어나며 천문학적인 사회비용의 증가를 예고한다.

이제 20년 후를 대비하여 아빠의 역할을 준비하자. 봄이 되어 메마른 씨를 척박한 땅에 뿌리는 것은 새싹이 돋아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자. 아빠되기는 쉽지만 멋진 아빠되기는 배워야 한다. 오늘 그리고 지금, 나부터 그 행복의 씨앗을 뿌리자.

권오진 ‘아빠의 놀이혁명’ 저자(www.swd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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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랑 컴 채팅보다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컴보다 책을 가까이 하구요..주말에만도 말고요..^^ 평일에도 10분 정도라도요.. 아이들과 10분 대화 하는 거 날마다 지키기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해요.. 비가 그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