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비언 해적>에 나오는 크라켄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나온다는 이 괴물은 문어와 비슷한 모양이다. 영화 속 문어대왕과 닮았는데 영화에선 화약으로 일단 후퇴하지만 다시 나타나 잭이 한판승을 붙는다. 하지만 괴물에게 잡혀간 잭은? 

대서양의 바다괴물 크라켄이란 무엇인가



(그림설명: 중세시대 항해사들이 항상 두려워한 괴물 크라켄)


1541년 3월 노르웨이의 해상 당국은 죽어서 물에
떠오른 고래에 정체를 알수없는 대형 촉수 자국이
있는것을 확인하고 바다에 크라켄이 출몰하였으니
인근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주의하라는
경고를 합니다.

크라켄이란 고대 유럽의 전설에 등장한 대형 문어였고
출몰하기전 언제나 고래와 같은 대형 어류의 시체가
발견된다는 이 괴물은 오래전부터 많은 배들을 침몰
시키고 선원들을 잡아먹은 무서운 괴물이었습니다.

1541년 4월 노르웨이 앞바다를 지나가던 덴마크의
한 선박은 갑자기 배가 양 옆으로 심하게 흔들려 배가
암초에 부딪힌줄 알고 모두 배 갑판에 올라와 배 옆을
보게 되었다고 하며, 선원들은 갑작스레 배 위로
올라온 대형 문어의 촉수에 감겨 죽게 됩니다.



(그림설명: 여러번 배를 공격한 기록이 있는 크라켄의 스케치)


대형 문어의 다리를 포경 작살로 찌른 항해사는 바다
표면에 잠시 모습을 나타낸 문어의 거대한 눈알을
보았고, 눈알을 향해 작살을 던진 그는 괴물이 눈알
근처에 작살이 꽂히자 배를 놓고 물속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무려 5명이나
되었다고 하며, 괴물이 먹다남은 사람의 시체를 수거한
항해사들은 사망자들의 살갗에 거대한 촉수의 빨판
자국이 생겨 하얗게 변해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배는 심하게 부서져 가라앉기 시작하였고, 인근을 지나
가던 선박에 구조되어 덴마크로 돌아와 그들의 체험을
상세히 이야기 해준 선원들은 당시 자신들이 목격한
크라켄의 크기가 작은 섬만 하였다고 증언하여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림설명: 1896년 세인트 어거스틴 해변에서 발견된 대형 문어 러스카)


1861년 불란서 해안을 항해하던 프랑스의 군함
함장은 지하 3층 선실에서 정체를 알수없는 소리가
배 밖 물속으로 부터 들린다는 보고를 받았고, 무언
가가 측면으로 접근, 자기 함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판단한 함장은 소리가 나는 지점에 폭뢰를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소리가 나는 지점에 폭뢰를 발사한 직후에 그들은 바닷
속 깊은 지점으로 부터 커다란 거품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고, 거품이 공기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의 일부분
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선원들은 모두 총을 들고 배에
비상을 걸게 됩니다.

배의 오른편에 모여 문제의 괴물을 사살하려한 선원들은
배의 왼편에 대형 문어의 촉수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며, 뒤늦게 촉수를 발견하고 사격을 가한
선원들은 문제의 괴물이 다리에 총을 맞자 촉수를 마구
흔들어 선원들에게 중상을 입힌뒤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림설명: 세인트 어거스틴인들이 크라켄이라고 믿은 러스카의 확대사진)


위의 사례 외에도 많은 기록과 전설이 있는 크라켄은
오늘날 대서양 항해사에 빼놓을수 없는 사고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하며, 배가 쇠로 건조된 뒤로부터 목격되지
않은 크라켄은 오늘날 가끔씩 잠수함들을 고래로
착각하고 공격하였다가 놓아주는 일을 벌인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목격한 대형 문어 크라켄과 괴물 오징어등은
과연 모두 멸종을 하였을까요?

                                                                       

 

유럽의 화약

 

 

로저 베이컨과 '희랍의 불'
흑색화약이 고대 중국의 연단술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은 확실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유럽 일각에서는 르네상스 초기에 영국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년)이 최초로 흑색화약을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저 베이컨은 중세 프란체스코(Francesco) 교회에 소속된 수도승으로
구역 교회에서 빈민구제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대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과학자였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알려진 옥스퍼드대학과 파리대학을
졸업했고, 철학을 비롯한 수학, 천문학, 화학, 물리학,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당시의 유럽을 오랫동안 풍미하던 연금술이라는 사술(詐術)에 과감히 도전해 현대과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선구자였다.
그는 신비사상에만 젖어 있는 연금술을 사변적인 철학과 실용적인 화학으로 양분하면서 실험과학의 의의를 강조했다.

그는 과학이 진정한 학문으로 성립하려면 허구에서 탈피해 사실 자체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컨은 이같은 인식에 기초해 전설로만 전해 오던 고대의 소이제나 '희랍의 불(Greek Fire)'을 과학적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용으로만 사용했던 발화제의 조성이나 용법은 어디에서나 비밀이었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여러 가지 물질을 직접 배합하고 연소하면서 실험을 통해 조성을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그의 실험실은 항상 연기와 불꽃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오랜 실험 끝에 베이컨은 발화제의 비밀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희랍의 불을 비롯한 고대의 소이제나 발화제는 가연성의 피치나 타르와 같은 물질에 생석회를 배합한 혼합물이었다.

그는 또 연구 과정에서 목탄(C)과 황(S)의 혼합물에 초석(KNO3)을 가미하면 연소성이 좋으며 이들의 배합 비율에 따라서는 폭발적으로 연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베이컨이 초석을 어떻게 구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길이 없지만 당시의 유럽에서는 초석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동양권에서 화약의 실용화 초기에 초석 채취술이 화약 제조에 버금가는 비밀에 속하였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로저 베이컨은 전설로만 전해지던 희랍의 불을 재현하는 초석, 황, 목탄의 세가지 성분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종래의 발화제나 희랍의 불보다 연소성능이 뛰어난 화약을 만들어냈다. 베이컨이 만들었다는 화약에 흑색화약(Balck Powder)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목탄 가루가 배합되어 있어서 혼합물의 색이 검었기 때문이다.

그가 흑색화약을 발명할 당시에는 교리와 상치되는 과학적 내용을 발표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을 뿐 아니라 이를 위반했을 때는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이 때문에 그는 실험 내용을 아무나 읽을 수 없도록 철자의 순서를 바꾼 수수께기식 라틴어로 표기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베이컨 자신이 발명한 흑색화약의 비밀과 초석의 정제법을 1249년에 저술한 에 수수께끼 식으로 기록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중국화약의 유럽 전파설

베이컨의 흑색화약의 발명과 관련된 초기의 자료에는 전설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확인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베이컨 이후에는 장기간에 걸쳐서 흑색화약에 관한 유럽의 자료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4세기 초에 신비의 인물로 알려진 독일의 슈발츠 (Berthold Schwarz)가 베이컨의 기록을 판독함으로써 흑색화약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일설에 따르면 로저 베이컨은 스스로 발명한 흑색화약의 화약적 이용 가능성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전쟁이나 살인과 같은 죄악의 수단으로 오용되는 사태를 몹시 걱정해 나중에라도 정의로운 목적에만 사용하는 훌륭한 과학자가 나타났을 때 이를 해독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조법만은 글자 수수께끼로 나타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베이컨을 숭상하는 중세적 신화에 속하겠지만 화약의 사용과 관련해 한번쯤은 음미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영국 서남부 섬머세트샤이어(Summersetshire)주 일체스터(Ilchester chester)의 성메리(St. Mary) 교회의 벽면에는 그곳에서 태어난 베이컨을 기념하는 조촐한 현판이 있다. 이 현판은 베이컨이 세계 최초로 흑색화약의 조성을 발명했다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흑색화약이 로저 베이컨에 의해서 사상 최초로 발명되었다는 주장에는 너무나 전설적인 요소가 많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그가 흑색화약을 처음 제조했던 시기보다 수백년 앞서 이미 전쟁용으로 흑색화약을 사용한 사실이 입증됐다. 그리고 중국에서 발명한 화약이 아랍 등을 경유해 유럽에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베이컨이 화약을 발명했다는 시기 이전에 아랍 등지에서는 화용병기를 실제로 사용한 기록도 거의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 또 베이컨의 화약 발명 시기와 거의 같은 시대에 쓰여진 몽고군의 서정시에서도 본격적인 화약병기를 유럽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베이컨은 화약 기술에 관해 상당한 예비 지식을 갖고 자신만의 독특한 실험을 통해 흑색화약을 재개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베이컨이 아랍의 연금술사로부터 흑색화약의 제조법을 직접 배웠거나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코리알(Escorial) 수도원의 도서 소장품에서 발견한 기록을 통해 흑색화약의 제조법을 터득했다는 설도 있다. 이런 주장은 베이컨의 경력으로 미루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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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7-1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살짝 삶은 문어 참기름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요.... 크라켄도 맛있으려나? ㅋㅋㅋ

또또유스또 2006-07-1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러비안의 해적 재미있나봐요.^^
아들과 보기엔 무리가 있으니 이궁... 전 카로 대신 해야겠어용
님께신 곳으로 비구름이 내려 간다니 또 걱정입니다.
이곳은 많이 줄었어요..
정말 줄기차게 비가 오네요... 우울하게스리...
그래도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시작해 보아요..

프레이야 2006-07-1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삶은 문어 참기름장에 찍어먹으면 맛있죠 정말~~ 크라켄이라면 헉!
또또님, 캐러비안의 해적 재미있더군요. 넘 길어서 함께 간 2학년 작은 딸이 좀 지겨워했어요. 웃기는 장면도 많고 볼거리도 있고 바다풍경이 시원해서 좋았어요^^

마태우스 2006-07-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실제로 있는 거였군요!! 으음.... 그래서 더 어필하는군요... 전 산낙지 좋아하지만, 문어는 별로라는....그거 아세요? 낙지랑 문어랑 모두 다리 숫자가 여덟개라는 거^^

프레이야 2006-07-17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그러게요.. 8개.. 해적에 나오는 크라켄의 다리수는 못 세어봤어요 ^^ 무지 겁나게 생겼죠?

2006-07-17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7-1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친근감이 들다니요? 아마도 속삭님은 연체동물류인가봐요 ㅎㅎㅎ
 
 전출처 : 水巖 > 생일날 ‘선물보다 감사’ 가르쳐라


<멋진 아빠되기>
생일날 ‘선물보다 감사’ 가르쳐라
“아빠, 내일 내 생일인데 무슨 선물 줄거예요?” 중2 딸은 자신의 생일을 상기시키며 커다란 선물을 기대한다. “내일은 엄마가 너 낳는라고 고생한 날이니 한복을 입고 큰 절해야지. 작년에도 했잖니.” “아차….” 우리는 작년부터 아이들의 생일이 되면 한복을 차려입고 엄마, 아빠에게 큰절을 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아내는 작년의 기억을 잊고 축하파티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간다. 교활한(?) 필자는 아이에게 한복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깜짝 놀란다. 딸은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절을 하며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이 한마디에 아내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호호’ 웃는다.

갑자기 그 무언가 알 수는 없지만, 가슴 벅찬 공감대가 생겨 아내는 무슨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우선 딸과 함께 살아온 날이 몇일인지 헤아려봤다. 대충 5000일 정도였다. 그리고 주요 사건을 이야기했다. 6개월쯤, 아이가 동전을 삼키다 목에 걸려 얼굴이 파래진 것을 아내의 응급조치로 살려낸 일이 있었고, 세살에는 100세가 넘으신 증조할머니와 살면서 반찬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던 일도 있었다.

5세에는 소파에서 점프놀이를 하다 탁자 모서리에 눈자위를 부딛혀 주먹만한 멍이 들기도 했다. 10세 때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이글루를 만든다고 아이가 눈을 모아오면 필자는 벽돌을 만들고 마침내 완성했다. 아이는 늦도록 들락거리며 놀았다. 5학년부터는 요리에 취미를 갖더니 외할머니 생신에 쿠키를 만들어 선물을 했다. 친척들의 환호와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대화의 분위기는 주체할 수가 없어 딸의 앨범 10권을 갖고 오라고 했다.

아내는 앨범을 넘기며 다시 추억속으로 빠져든다. 막 태어나서 찡그린 표정, 4세 때부터 아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본인의 자화상, 엄마, 아빠의 결혼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 있다. 동생이 돌이 되어 모두 기뻐한 날, 자신의 위치를 빼앗겨서 하루종일 무표정한 얼굴도 보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의 긴장하면서 단아한 모습이 다시 봐도 예쁘다.

‘당신 아이의 생일은 어떻게 해주나요’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요구에 시달린다고 한다. 갑자기 벼슬이나 한 듯 안하무인격이며, 선물을 요구하는데 금액의 인플레이션도 심하다. 그리고 친구들도 모셔와(?) 파티도 해주어야 한다. 이런 수발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심지어 외식업체에 큰 방을 예약하여 반 아이를 모두 초대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아이의 생일이란 무엇인가? 물론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며, 가족의 경사다. 그러나 엄마가 열달 동안이나 뱃속에서 보호해준 것을 잊기 싶다. 그런데 생일만을 즐기려는 아이의 이기적인 행동을 방관자처럼 바라보는 것이 옳은가.

사실 아이의 탄생은 숙명적이지만 엄마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바로 사랑과 고통의 결실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이제는 아이의 생일을 재조명하여 엄마의 존재와 의미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엄마의 그 노고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요, 도리요, 인륜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생일이 되면 ‘출산의 날’도 만들어 함께 기념해주자.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감사의 한마디, 한 송이의 꽃 선물은 엄마에게 자식을 키운 기쁨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권오진 ‘아빠의 놀이혁명’ 저자 (www.swdad.com)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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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제 생일에 엄마께 미역국을 끓여 드렸댔죠..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옆지기가 아들에게 네 생일엔 엄마가 가장 많이 아파서 너를 낳은 날이니 엄마 말 잘 듣는 날로 한다 고 해서 울 아들 그날은 제말을 좀 잘 듣죠..^^
자랑이었습니다...냐하~
날씨가 왜 이러는지.. 비는 안오는데 습도 만빵입니다..에구

프레이야 2006-07-1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거봐요. 역시 님의 옆지기님은 좋은 분이에요^^ 받들어~총~
아이앞에서 서로서로를 올려주어야 아이들도 자긍심이 생길거에요.. 울옆지긴 뭐하시나??^^

비로그인 2006-07-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값진선물보다 미역국은 정말이지 초코파이처럼 끈끈한 정인것같아요...하찮은것같아도 받고나면 감동백배입니다...자기존재를 알려주는 마음의선물이니깐요...제가 아이를 놓아보진 않았지만 긴 고통끝에 놓아주신 어머니께 항상 감사할뿐입니다...받들어~총
정말 올만에 듣는 군대 구호네요^^ 상대방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구호 ㅋ
 
파블로 피카소
트루 켈리 지음, 최윤정 옮김 / 삼성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그림은 나보다 강하다. 그림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하게 만든다. " 피카소가 한 말인데 이 책에 들어있는 글귀이다.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않았던 화가의 강렬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어린이가 만난 화가, 라는 시리즈로 나온 미술(화가) 관련 책들이 많다. 예전에 길벗어린이에서 나온 시리즈도 좋았다는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작은 딸 보라고 큰딸 보았던 것들을 꽂아두었지만 아직은 2학년이라 그런지 별로 손이 가지 않는 눈치다. 이 책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화가 시리즈인데 옮긴이가 최윤정님이라 우선 호감이 간다. 이 책의 시리즈로 '고흐'편이 있나본데 두 권의 책 모두 알라딘에서는 품절로 되어있어 아쉽다.

이번에 이 책을 3학년 아이들과 함께 볼 예정이다. 우선 책을 나누어주며 피카소의 자화상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상파 화가 고갱의 자화상을 비교해서 보게 했다. 피카소의 자화상은 사람 같지 않고 무섭게 보인다고 반응한 아이들이 많았고 재미있게 보인다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피카소가 화가라는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아이도 몇몇 있었다. 책표지의 파란색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의 부제는 '모든 법칙을 깨어 버려라' 이다. 표지의 그림을 비롯해서 여러 점의 대표작들을 만나볼 수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아이다운 눈으로 그림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만의 눈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고 느끼며 표현한다. 그래서 (피카소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아이의 반응에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다운 눈으로 보라고 이 책은 권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가 하나의 보고서다. 브랜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화가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고, 사이먼 패커드 라는 아이가 피카소에 대한 보고서를 만든다. 콜라주를 이용하기도 하고 아이 자신의 그림을 그려넣기도 하며 피카소의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을 솔직히 써놓기도 했다. 소소한 이야기로 보고서를 시작하여 관심을 끈다. 피카소의 이름이 엄청나게 길다는 사실은 나도 처음 알았다. 말도 배우기 전 제일 먼저 한 말이 "연필!" 이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피카소를 소개한다.

천재소년, 청색시대, 좋은 시절, 입체파, 콜라주, 피카소가 사랑한 여자들, 전쟁 그리고 평화. 이렇게 제목을 두어 보고서를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뒤에는 조각, 젊은 노인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카소 그림으로 '밀집모자를 쓰고 아이스크림 콘을 먹는 남자'를 소개한다. 맨 뒷장에는 피카소에게 묻고 싶은 거 세가지,를 써두었는데 의외의 질문이 엉뚱하다.  대개 중심 내용보다 주변의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다운 심리가 잘 나타나 웃음이 난다.

'장미빛 시절'을 '좋은 시절'로 번역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아이의 보고서라는 걸 잊지 않은 번역이다.

덧붙임 : 한 팀 수업 후, 어느 여학생이 '아비뇽의 여인들'에 대한 감상을 쓰기를, 너무 변태적으로 그려서 피카소는 재능을 함부로 쓴 것 같단다.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해 주는 척 했다. 이 아이 엄마는 전직 미술교사이고 전시회도 연 적이 있는 분인데 이 아인 확실히 남다른 고집으로 자기의 감상을 물리지 않으려했다. 내 의견을 몇 번씩 말해주어도 자기 생각은 변함 없단다. ^^

두 팀 수업 후, 아이들의 감상이 참 일관되어있다는 점에 놀랐다. 이 책이 아이다운 시선으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느낌과 생각을 장난스러운 그 지점에서 선 그어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화가의 마음을 읽어보자고 감상의 포인트를 잡으려해도 아이들은 가볍고 표면적인 이야기들만 뱉어놓는다. 솔직하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총평을 쓴 아이의 글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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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1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여학생의 말이 재밌네요.(이런 쪽으로 관심이 동하는 음흉한 비자림^^)
성에 대한 그림이라는 걸 느꼈지만 성에 대한 묘사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나이 특유의 성에 대한 모순된 감정의 발로가 아니었을지...호호호

프레이야 2006-07-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비자림님 내숭 떨지 마라고 그래주었어요..^^ 다른 팀 남학생은 그 그림이 웃기다고 하더군요. 그 여자아인 엄마에게 보이지않는 억압이 심한 것 같다고 해석합니다..^^

푸하 2006-07-1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해하기 어렵다. 라는 말을 한 아이가 저도 마음에 드네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게 가장 솔직한 것이긴 해요.
이 수많은 모르는 것 투성이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할 때가 많아요.

또또유스또 2006-07-1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비가 많이 와요..
무탈하시죠?
님의 리뷰로 또 책 욕심이 생기네요..
아직은 아이가 볼 수준의 책이 아닌데...
님께서 하시는 수업을 저도 들으면 안 될까요?
저 수강 신청이요!!!!!!!!

프레이야 2006-07-1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모르는 게 많아 날마다 새롭네요^^
또또님, 여긴 비가 많이 안 오네요. 그저 눅눅해요.. 참 영화예매권 축하드려요^^

리틀타운 2006-07-1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6-07-1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밤톨아기님 오셨네요^^

소나무집 2006-07-27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전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은 책에서 본 몇 작품을 빼고는 지루해하더군요.

프레이야 2006-07-2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반가워요. 전 5월 말에 가서 보았어요. 청색시대부터 잘 전시해두었더군요. 게르니카가 없었지요.^^ 아이들은 지루해하였을 것 같아요. 전 옆지기랑 둘이서만..ㅎㅎ
 

왜 공포영화를 볼까?
  2006/07/09 08:53
서일호      조회 715  추천 0

안녕하세요, 주간조선 서일호 기자입니다.

 

공포영화는 공포를 느끼고 즐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공포란 무엇일까? 공포(恐怖)의 사전적 의미는 ‘무서움’ 혹은 ‘장차 고통이나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부연설명하면, 인간이 신체적 위험에 직면하여 생존, 미래, 자신에 대한 존중을 위협 받을 때 나타나는 정서적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공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공포와 학습에 의한 공포다. 먼저 유전적 공포는 인류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공포를 느낌으로써 위험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갈 준비를 한다. 즉 공포는 그 상황에서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신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시인은 맹수와 마주쳤을 때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도 유전적 공포는 여전히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큰 트럭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해올 때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피하지 않고 있다가 죽지만, 공포를 느껴 피한다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인간은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서도 공포를 느낀다. 공포 학습은 한두 번의 경험으로 신속하게 일어나고 오랜 시간 지속된다. 뜨거운 솥에 손을 댄 경험이 있는 아이는 그 한 번의 경험으로도 솥을 무서워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개에게 물린 적이 있으면 이후 그 대상에게 더욱 큰 공포심을 갖게 된다.

 공포가 학습된 결과라고 주장하는 행동주의 심리학 실험 중 가장 고전적인 것이 ‘꼬마 앨버트 실험’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가 자신의 아들인 앨버트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이다. 스키너는 천둥이 칠 때 흰쥐가 앨버트의 앞을 지나가게 했다. 그 뒤 앨버트는 흰쥐를 보기만 하면 천둥소리를 들은 것처럼 놀랐다고 한다. 후천적인 공포는 그 대상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학습함으로써 극복할 수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김인경 박사는 “학습된 공포는 이전에는 없다가 자신이 극심한 공포를 느낀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포의 근원은 어떤 것일까? 공포가 발생하는 첫째 원인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들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타나토스(Thanatos·그리스어로 ‘죽음’)’라고 하는데, 정신분석학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모든 공포의 근원이라고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사춘기 때뿐만 아니라 중년이 되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잊고 있었던 죽음을 떠올린다. 이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중년을 방황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둘째로, 심리학에서 공포는 억압된 욕망의 투사(投射ㆍ심리학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자신의 의식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로 발생한다고 정의한다. 즉 공포는 억압된 욕망이 형태를 갖춰 수면 위로 뛰쳐나온 것이다.

셋째로, 사회학에서는 억압 받는 대상인 여자나 노약자는 언제든지 억압하는 자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공포영화 속의 대다수 귀신이 여자, 아이, 노인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포를 담당하는 뇌(腦)의 부위가 있을까? 공포와 관련된 뇌 부위는 시상핵과 편도체다. 시상핵은 시상을 이루는 다수의 핵이고, 시상은 ‘주요 감각의 최종 중계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각, 청각, 체감각 등은 시상을 거쳐 대뇌피질(대뇌의 바깥층)에 전달된다. 후각을 제외한 모든 자극이 시상핵을 통과하고, 시상핵은 대뇌피질과 연결돼 있어 우리 몸에서 일어난 일을 대뇌피질세포에 전달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공포 자극을 받았을 때 시상핵은 이를 대뇌피질로 전달하기 전에 먼저 편도체를 자극한다.

 편도체는 변연계(대뇌피질의 안쪽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을 지칭하는 것)의 한 부위이다. 이 편도체가 공포 자극과 공포 반응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공포관련 자극이 시상핵을 통해 편도체를 자극하면 신체에서 공포와 관련된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편도체를 제거한 쥐는 고양이 앞에서도 태연하고 심지어 잠자는 고양이 등에 올라 귀를 물기도 한다. 또 원숭이의 편도체를 손상시키면 뱀을 손으로 잡으려 하고 타오르는 불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면 어떤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먼저 자율신경계(의식적인 인지나 노력 없이 내부기관을 통제·조절하는 척추동물의 신경계 일부)가 신체의 털세움근(피부 밑 털주머니에 붙어있다)을 수축시키면서 누워있던 털이 수직으로 일어선다.

 공포를 느끼면 추위를 느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피부에 소름이 돋고 목덜미의 털이 곧추서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는 피부혈관에 공급되는 혈액이 줄어들고 근육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또 땀샘이 수축되면서 땀이 나고 방광이 수축돼 소변이 마려워진다. 동공이 커지는 것은 더 많은 빛을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다. 침이 줄어 입이 마르는 것은 공포 대상과의 투쟁 혹은 도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화활동을 억제하고자 함이다. 평소 공포영화를 자주 보고 강력한 놀이기구를 즐긴다는 대학생 이지연(21)씨는 “공포의 순간이 오기 직전의 긴장감이 짜릿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이 같은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다.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이홍식 박사는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 맥박, 호흡이 빨라지고 말초신경계 역시 자극되면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진땀이 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말초신경계의 자극은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몸을 차갑게 만들기 때문에 무더위를 쫓기에도 좋다고 한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공포영화나 놀이기구의 자극은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 물질을 생성시키기 때문에 짜릿한 쾌감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자들은 공포 자극도 반복되면 일종의 중독성을 보인다고 경고한다.

 또 공포는 고통을 감소시킨다. 인간이 공포를 느낄 때에는 고통이 줄어들게 진화되어 왔다. 극심한 공포상황에서는 고통을 잊도록 뇌에서 진통효과가 있는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 고통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공포영화는 억눌린 욕망이나 이데올로기를 해소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공포 체험은 금기나 좌절된 욕망을 해방시키는 기능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는 욕구를 발산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현실의 모순을 집단적으로 해결해서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은 ‘카운터 포빅 애티튜드(Counter-phobic Attitude·역공포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즉 안전함이 보장된 가운데 ‘유사 공포’를 겪음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공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심리적 항체를 만드는 예방주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혜남 신경정신과의 김혜남 원장은 “두려워하는 것을 일부러 함으로써 정복하는 것”이라며 “내부의 공포를 객관화시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면서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부닥쳤을 때 비현실적인 두려움과 과도한 불안 증세를 느낀다면 공포증이라 부르는 병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광장 공포증, 폐쇄 공포증, 고소 공포증, 대인 공포증 등이 있다. 이홍식 박사는 “공포가 지속되는 경우 위장경련, 요통, 배뇨 장애와 같은 행동 장애와 함께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공포감을 느꼈던 것을 계속 이야기하는 인지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또 공포감에 사로잡히면 절망적인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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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까 <알 포인트>를 볼 때의 극도의 공포감이 되살아난다. 욕망의 투사. 시각은 모든 욕망의 근원. 보이지 않는 자는 결국 공포로부터 살아남았다. 요즘 계절이니 계절이니만큼 공포영화들이 많이 나오던데 그중에서는 '스승의 은혜'가 젤 보고 싶다.

또또유스또 2006-07-1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6412

안녕히 주무세요..

 제가 일등 했어요  ^^


프레이야 2006-07-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섬증을 많이 타시는 (귀여운 ㅋㅋ)또또님, 공포영화 보면 기절하실테니 절대 보지 마시고 재미나고 따뜻한 영화 보시길... 옆지기님이랑요^^ 오늘 덥네요~~

또또유스또 2006-07-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흫 사실 저거 일등 캐쳐 하면서 여그다 댓글 올리다가 마구 무서워져서 알라딘을 뛰쳐 나가 바로 잤다는거 아닙니까...
무섬증하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전출처 : 이매지 >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클림트 온라인 전시회



 

 황금색 옷을 걸치고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하는 황홀한 포즈, 연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의 벽에 걸릴 그림 1순위, 행복한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클림트다.


 금색은 인쇄상으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므로 '키스'가 인쇄된 어떤 종이도 '키스'의 작품성을 3분의 1정도 밖에는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직접 그림을 감상한 이들은 그 황금 빛깔에 눈이 부시고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라고...


 그러나 정작 이를 그린 그는 너무나 불행하고 외로웠다. 오스트리아 빈 보헤미안 출신의 금세공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 해인가는 크리스마스 때인데도 집에 빵 한 조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궁핍했다. 일찍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그에게 죽음은 충격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는 생전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아끼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사랑이 풍부한 남자였다. 무려 수십명의 여인이 그의 품을 거쳐갔다.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 14명의 사생아 어머니가 대신 유산상속을 청구할 정도였다  모델이 됐던 여성과는 정사를 나눈다는 소문이 난무할 만큼 여성편력이 탁월했던 그는 ‘빈의 카사노바’로 불렸다.


 ‘선수’인 그에게 이 키스란 주제는 전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이 모델은 클림트와 빈의 실업가의 아내인 아델르 블로흐 바우어로 추정된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장식성으로 많은 여인을 유혹한 에로티시즘의 대표작 ‘키스’는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 안고 있는 남자의 뜨겁고 강렬한 포옹, 여인의 매혹적인 얼굴 표정이 관능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두 남녀를 둘러싼 황금색의 배경과 금색의 나뭇잎 줄기, 화사한 꽃밭에 무릎을 꿇은 아름다운 여인, 남자의 옷에 그려진 패턴화된 기하학적 사각형무늬, 여인의 옷에 수놓은 꽃처럼 화려한 색상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쉴레 역시 똑같은 그림을 본떠 ‘추기경과 수녀’를 제작할 만큼 ‘포옹’은 큐비스트, 표현파, 초현실주의자 브랑쿠지의 키스까지 화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테마였다.


 실제 그는 동양미술의 콜렉터로서 황금색의 비잔틴적 요소와 일본 기모노 디자인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자포니즘(일본주의)은 고흐와 모네,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채색된 슈베르트의 선율’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을 열광케 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는 육체적 욕망이 강렬하고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병적이며 관능적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춘화작가’ ‘변태성욕자의 무절제’라는 이 극단적인 비판은 거장 베토벤을 기념해 만든 30m 대작 ‘베토벤 프리체’도 여론의 격렬한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56세, 클림트는 신체마비와 독감으로 평생의 연인이자 동생의 부인이었던 에밀리에 플뢰게 품에서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다. 나는 내 자신보다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비엔나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탁월하고 혁신적인 화가 클림트의 최후였다.

 

〈김종근|미술평론가 critickim@hanmail.net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 1862~1918) | 오스트리아 빈 출생. 빈의 미술공예학교를 나온 뒤 역사주의 특히 매커드의 감화를 받아 괴기·장식적인 화풍을 전개하였다. 유명한 부르크극장의 벽면장식에서는 모든 유파를 절충한 양식이 보이나 1898년경부터는 독자적인 장식 패턴을 구사하여 상징의 주제를 찾아냈다. 유겐트 양식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1900∼1903년에는 빈대학교의 벽화를 제작하였는데 그 표현이 너무나 생생하여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고독에 묻혀 자기 스타일에 파고들었다. 동양적인 장식양식에 착안한 점, 추상화와도 관련을 가지면서 템페라·금박·은박·수채를 함께 사용한 다채로운 기법은 그의 독창적인 기법이다. 대표작에 《프리차 리들러 부인》(1906),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1907) 등 초상화와 《부채를 든 여인》《입맞춤》(1908) 등이 있다.

 

 구트타브 클림트 온라인 전시회 

 

출처 : http://blog.naver.com/mrbookman/5000604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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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1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클림트.... 저 여자의 발 좀 보세요. 발조차 사랑 앞에서 달콤해하고 있네요.^^

프레이야 2006-07-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의 섬세한 눈길이 더 달콤해요~~^^

비자림 2006-07-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춤추는인생. 2006-07-13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환적이예요 클림트의 그림은.
비록 순간일지라도 죽도록 사랑해라. 그림은 제게 이렇게 말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