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아빠들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멋진 아빠되기>
아빠가 한가지만 잘해줘도…
옛날, 역적으로 몰려 부모를 일찍 여읜 두 아이가 있었다. 이제 반겨줄 친구나 친척도 없다. 도망자가 된 형제는 원수를 갚기로 맹세를 하며 10년 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복수의 그 날을 위하여 10년 동안 무술을 갈고 닦았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었다. 훌쩍 커버린 체구에 서로 놀랐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만남의 기쁨도 잠깐, 형제는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기로 했다. 형은 오직 단칼만을 익혔으나 욕심이 많은 동생은 무려 10가지를 터득했다고 자랑이다. 대결이 벌어졌다. 형은 가슴에서 달랑 단칼 하나를 꺼냈다. 동생은 긴 칼로 단번에 형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동생은 일합도 버티지 못하고 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화가 난 동생은 삼지창, 봉, 쌍절곤 등으로 맞섰지만 결국 형을 당해내지 못했다.

지난주, 결혼 25년차 엄마와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필자의 명함을 받고는 기뻐하며 남편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아이는 2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특별히 남편이 아이에게 잘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남편은 한 가지를 잘했다. 바로 어릴 적부터 아이가 잠자기 전에 동화책을 매일 읽어준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생일 때에도 아이는 잠이 오지 않으면 아빠를 불렀다. 아빠가 책을 읽어 주면 그때서야 편안하게 잠이 들곤 했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위해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3~8세의 아빠=①아이에게 매일 한번 전화를 한다. 서로 존재에 대한 교감이 목적이다. 주로 칭찬과 덕담을 한다. ②매일 동화책을 읽어준다. 짧은 내용으로 가볍게 시작하자. ③하루에 1분 업어준다. 이야기를 안해도 된다. 스킨십이 많아지면 아빠를 좋아하게 된다.

◈3~11세의 아빠=①하루에 1분 놀아준다. 아이가 달려들면 절대 피하지 말고 일단 몸으로 부딪치자. ②주말에 30분간 놀아준다. 사전에 시간과 놀이방법을 약속한다. ③1년에 사진앨범 1권을 만든다. 카메라 2대는 필수. 집과 차에 항상 카메라를 준비하자.

◈3~13세의 아빠=아이와 목욕탕에 간다. 대부분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하므로 충분한 시간을 준다. 사춘기가 되면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아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

◈6~13세의 아빠=①한달에 한 번 책을 사준다. 큰 책방에 가서 1시간 이상 머물라. 시간이 가면 아이가 스스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②아이만큼 컴퓨터 게임을 알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금방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③주말농장을 해보자. 경제적이며 농촌체험과 생태체험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멋있는 아빠가 되기는 쉽다. 한 가지라도 꾸준히 하면 된다. 오히려 커다란 결심이나 목표를 세우지 말자. 시작이 무거우면 금방 지쳐서 오히려 약속을 어기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실망과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속성 코스로 좋은 아빠가 되려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 가족이란 생활을 통하여 교감한다. 바로 그 속에서 자신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서 한 번 해보자. 진리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것도 멀리 있지 않다. 놀기 위하여 많은 지식이 필요 없다.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


권오진 ‘아빠와추억만들기(www.swdad.com)’ 단장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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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3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7-1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좋은 아빠 될 수 있을 거에요^^

씩씩하니 2006-07-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신랑은 하루에 1시간을 함께 텔레비젼을 본다,,거를 어기지 않고 꼭 하는데..건 안좋은거져,혜경님???

프레이야 2006-07-1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텔레비전 보기.. 울집 아빠는 이것도 안 하는 걸요..ㅜㅜ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꿈꾼 실학자 : 정약용 공부가 되는 위인전 5
양태석 지음, 강봉승 그림 / 해와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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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 중 오히려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책을 읽을 때는 잘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의 목소리와 시선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부가 되는 위인전'이라는 시리즈로 다섯번째의 이야기로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인물,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책이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배경지식이 좀 덜한 아이들은 조금 어려워했지만 보통 이상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은 것 같아보였다. 인물을 따라가며 역사 지식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찬 시리즈로 보인다.

인물이야기를 읽을 때면 인물이 살았던 시대 상황과 그런 상황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의 머릿말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런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을 주고 시작한다. 13가지로 분류하며 내려간 '차례'의 소제목들을 보면 정약용의 일대기를 대략 따라가볼 수 있다. 책의 뒷장에서는 '책속의 책'이란 꼭지를 두어 역사와 관련하여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을 조목조목 정리해두어 참고하기에 좋다. 당파, 실학자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그리고 조선시대 농민들의 살림살이, 정조의 효심에 대한 꼭지가 있고 마지막에는 정약용이 18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귀양의 등급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나라 지도로 보는 '조선시대 실학의 발달' 도 잘 두었다 싶다. 삽화와 사진자료도 적당히 있어 내용과 함께 참고하기에 도움이 된다.

정약용의 개혁정신과 함께 그를 위인으로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죽을 때까지 '백성들이 보다 잘 사는 삶'만 생각한 그의 애민사상을 들 수 있겠다.  그의 이런 사상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보조자료의 글을 옮겨본다.  소박하고 진지하며 강한, 감동적인 글이다.

 정약용의 편지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한 사람도 긍휼이 여겨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하였고,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고 한탄하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하고 있을 때에는 조금 근심할 일이나 질명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는 안부를 전해오고, 안아서 부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주고 양식까지 대어주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진 너희들이라 항상 은혜를 베풀어줄 사람이나 바라고 있으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은정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 주고 도와 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하긴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게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 줄 힘이 없을 뿐이다.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고 또 남을 돌볼 힘은 없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가 아니겠느냐? 모든 일이란 안방 아낙네들로부터 일어나니 유심히 살펴서 조치하고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고 있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워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누어 주어 따뜻하게 해 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의 돈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하여야 하고, 근심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것을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오기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 뒷날 너희가 근심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한을 품지 말 것이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 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 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박석무 편역/ 창작과비평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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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7-1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의 편지는 감동적이네요.
예전에 지갑을 잃는등 신경질이 나는 일이 잇달아 생긴적이 있는데, 어느 자신 몸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더 못한 사람에게 지갑에 돈을 꺼내서 주시는 모습보고 많이 감동한적이 있어요. 다행히 지갑을 잃어서 지갑찾다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거든요. 잃어버려서 좋았는데....^^; 어려운 세상을 살아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아직 세상은 좋은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6-07-1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그런 적 있죠. 우리는 늘 내가 잃어버린 것, 내가 못 가졌다고 생각되는 것에 애닯아하며 속을 태우기가 쉬운 것 같아요. 다산의 편지글이 그런 마음에 회초리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만 싶어하는데 이런 소박하면서도 강건한 마음이 엿보이는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님의 작은 경험담이 울림을 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윗지방에는 비 피해가 심해 걱정이에요.
 

[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反軍(반군),사전엔 없다

'간고등어,감자탕,밀면,밤호박,쓴소리,윗선,호객꾼'처럼,우리가 많이 쓰지만 사전엔 없는 말이 '뜻밖'에 많다.(우리는 대개 우리가 쓰는 말을 사전이 거의 대부분 규정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근거 없는,지나친 믿음은 이처럼 놀라움이나 배신감으로 끝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또 신문제목 <"美,소말리아 철군 뒤에도 反軍지원">에 나온 '反軍(반군)'도 역시,의외로,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혹시 어떤 독자는 실제로 찾아보다가 '아니! 이렇게 사전에 실려 있는데…' 하고 신문사에 전화를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실 것이다. 사전에 나온 그 반군과 위의 신문제목에 나온 반군은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사전엔 이렇게 돼 있다.

'반군(反軍) : (1) 군부에 반대함. (2) 군벌 또는 군국주의에 반대함.'

쉽게 말해,사전에 나온 반군은 군부나 군벌이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일'이다.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이 두 반군은 같지 않은 것이다. 반대하는 행위는 '반미','반독재'라고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반미주의자나 반미파','반독재주의자'라고 한다. 하는 짓은 '친일'이고 그 짓 하는 사람은 '친일파'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가리키는 '반군세력'이나 '반군파'를,행위를 뜻하는 '반군'으로 줄여 쓸 수 없다. 이 자리에는 '反軍'이 아니라 '叛軍(반군)'을 써야 된다. 이 '반군'은 '반란군'을 줄인 말이니 '행위'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는 '군대(사람)'를 가리킨다.

이렇게 '反軍'과 '叛軍'이 분명히 다른데도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몇몇 신문과 언론인들 때문이다. '反軍'을 사람으로 써 버릇한 것은 지난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던 니카라과 반군(콘트라)을 반란군으로 표기할 순 없지 않겠느냐는 '잘못된 깊은 생각'이 낳은 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 처지에서 생각해 주다가 우리말 체계까지 뒤흔들 수는 없는 법. '反軍 시위'나 '反軍하다'는 되지만 '叛軍 시위,叛軍하다'는 말이 안 되는 걸 생각하면,가치판단에 따라 '叛軍'과 '反軍'을 섞어 쓰는 엇나간 버릇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미국 눈치 보이면 한글로 쓰든지…. jinwoni@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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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에서 우연히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들었다. 떠나고싶어라~

유럽 여행의 새로운 테마, 축제 - 그 광기의 현장!

 

20대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여행은 이제 꼭 가봐야할 필수코스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작정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나던 초창기의 여행에서 테마를 찾아 현명하게 여행지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 폭넓은 경험을 얻는 것으로 여행 문화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명소를 훑는 여행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이런 추세에 다양한 여행 정보지도 함께 출간되어 여행자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라는 책에서는 유럽의 축제를 '색(color)'이라는 매개로 연결하여 아주 재미있게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럼 색깔별로 어떤 유럽 축제들이 소개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빨간색 - 원초적 본능이 손짓하는 스페인 축제들

 

심장에 흐르는 피마냥 붉게 타오르던 빨강. 이 색에 잘 어울리는 나라는 단연 스페인이다. 바스크의 소몰이 축제에서 붉은 스카프를 매고, 황소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피칠갑에 흥분하여 덩달아 광란하던 그 죽음의 현장이 어찌 빨간색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 바르셀로나 메르세 축제의 빨간색은 희망을 상징한다. 스페인의 내전과 프랑코의 끔찍한 독재를 이겨낸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인간탑의 향연은 파도처럼 춤을 추는 거대한 율동이다. 살랑살랑 나부끼며 돌아가는 사르단춤의 궤적. 그것은 감춰놓은 붉은 피의 희생과 고통, 그리고 모든 고통을 극복한 전통과 문화에 대한 그들이 집념이 이룩한 몸부림이자 거대한 에너지다.

 

 

 

 

황금색 - 찬란한 크리스마스의 정경이 있는 독일 축제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황금색. 그것은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한 색이다. 독일만큼 차분하고 독일의 느낌만큼 화려하고 독특한 이 축제는 한 해의 말미를 장식하는 중유럽의 중요행사다. 크리스마스 정령 같은 황금빛 소품들이 진열된 장터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며 독일의 음울한 겨울날씨를 음미하며 성가족의 구유에서 고향의 가족을 떠올린다.

 

 

 

 

 

노란색 - 우산과 우비의 뜨거운 몸짓이 흐르는 프랑스 축제

 

거친 북해를 무대삼는 선박과 바닷사람들의 본거지 덩케르크. 오래된 광기의 전통과 억센 열기가 합세하여 가장 지독한 난장판의 카니발로 악명을 떨친 이곳은 북해의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치는 덩케르크 시민의 우직함이 묻어있다. 그렇다면 왜 노란색이 덩케르크 카니발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청어잡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부의 복장이었던 노란색 우비가 카니발 악대의 복장이 되어 용감하게 카니발 행사를 이끌기 때문이다. 뼈를 에이는 혹한의 비 내리는 북해 항구 도시에서 노란색 우산을 들고 나타난 광인의 무리에 샛노랗게 질려 미쳐가기도 한다. 알코올과 춤판이 난무하는 덩케르크 카니발. 성性이 뒤바뀌는 일탈의 현장에서 세상이 하나되고 사람들이 하나되는 즐거움을 경험하리라.

 

 

 


오렌지색 - 은빛보다  찬란한 벨기에 축제

 

빨갛지도 그렇다고 노랗지도 않은 모호한 오렌지색. 도시 전체가 회색 물감에 푹 담가버린 듯 침울함만이 감도는 벨기에의 뱅슈가 어떻게 이 발칙하고 도드라진 색과 어울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칙칙한 도시에서 한눈에 튀는 오렌지색이야말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축제를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벨기에의 오렌지색 복장의 거인들과 그들의 춤, 허공을 무자비하게 날아다니던 매서운 오렌지 축제. 순식간에 세상이 온통 오렌지의 광란으로 물드는 이곳에서 오렌지색과 하얀 눈이 연출하는 환각이 독특한 정경으로 다가온다.

 

 

 

초록색 - 아비뇽의 녹색 바람과 왕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프랑스 축제들

 

성장을 의미하는 ‘그로gro'를 상징하는 초록색. 그래서 이 색은 항상 자라는 식물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을 뒤덮은 검은 땅에서  강렬하게 싹을 피우는 소나무처럼 태어난 것이 바로 아비뇽 축제다. 그래서 식물의 초록색처럼 생기 있고 발랄하고 기운차다. 다양한 예술혼들이 공연을 벌이고 아름다운 페스티벌의 정신을 계승하는 아비뇽의 거리는 흥겨움 그 자체다. 그런가하면 쇼몽 쉬르 루아르 정원 축제는 말 그대로 세계의 여러 민족들의 정원 문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이색적인 축제다. 일탈과 퇴폐가 난무하는 축제와는 달리 두 축제 모두 녹색의 풍경을 담고 있기에 활기차고 희망이 가득하다. 

 

 

 

 

청록색 -  서늘한 북해의  영국 축제

 

초록보다는 차가운, 그래서 영국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너무 잘 어울리는 청록색. 아비뇽 축제와 이란성 쌍둥이격인 이 축제는 8월 내내 판이한 대여섯 개의 축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풍성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이 기간에 에든버러에 머물면 세상의 모든 공연 형태를 다 맛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문화축제’가 벌어지는 셈이다. 도시 전체가 축제를 준비하고 축제를 만끽하는 그래서 축제 도시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곳은 그 자체로 청록색이 발산하는 빛이자 새로운 젊음이 피어나는 기쁨의 현장이다. 

 

 

 


파란색 - 라인 강이 전하는 스위스 축제

 

 

차가운 빛의 대명사 파란색. 축제의 허구성과 상상 속의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이 색은 차가움이 감도는 스위스의 바젤 축제에 제격이리라. 사실 라인 강은 독일의 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류는 스위스다. 이 긴 강은 애초에는 스위스 알프스의 안개를 거쳐 지난 순수한 파란색 강이다. 그러기에 더없이 고즈넉하고 신비롭고 춥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가면과 광대행렬, 등불 행렬, 악대의 피리와 북소리가 합세하는 바젤 축제에서는 일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마치 수공작이 암공작에게 구애하듯 차량이나 말, 혹은 마차 등을 타고 자신을 한껏 뽐내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전형적인 시민행사가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17가지 - 정체성이 격돌하는 이탈리아 축제

 

열일곱 가지 무지개가 수놓아진 이탈리아의 전통 축제. 그것은 바로 팔리오 축제다. 13세기 시에나의 가장 좋은 시절에 출현한 이 축제는 17개의 동네가 겨루는 경마대회다. 그래서인지 팔리오에는 기사들의 행진, 깃발로 이루어진 의전행사, 그리고 거친 경마 등 당시 군대 문화의 흔적과 냄새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의 팔리오가 17개 동네를 끈끈하게 잇는 고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공동체 축제라는 점은 참으로 재미난 부분이다. 이런 17개 동네의 난장판이 한 축제에 모여 폭발하니 그 에너지의 위력이 어떠할지 상상하고도 남으리라.

 

 

 

 

이번 여름 아비뇽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펼쳐지는 축제에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 김규원 지음,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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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니엘 페낙의 '늑대의 눈'을 처음 만났던 느낌이 살아난다. 그의 상상력은 물론 독특한 이야기 방식, 즉 그만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던 기억이다. <소설처럼>은 책읽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장편 에세이류로 볼 수 있는데,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의 재간꾼 답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책 읽기를 권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가볍게 보면 좋을 책이다.

이야기! <소설처럼>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로 맺는다. 자녀가 혹은 학생들이 책읽기를 거부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나 선생님은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기다려도 보고 상벌도 취해보지만 그들이 우선 터득하여 개발하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라 책을 읽는 시늉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어릴 적을 떠올려보라. 매일 잠자리에서 들려주거나 읽어주던 이야기. 아이는 그 이야기를 반복하여 듣고 나중엔 다 외워서 줄줄 외고, 그 다음엔 자신이 개작을 하여 내게 들려주곤 했지 않은가. 같은 이야기 같지만 한 번도 같지 않았던, 날마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던 우리들의 목소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아이가 활자를 알게 되면 부모는 책 읽어주기를 그만두고 아이는 그 어마무지한 활자의 괴물들과 고투를 해야한다. 다니엘 페낙은 책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곳곳에서 역설하고 있다. 소리내어 읽는 것 말이다. "소리내어 책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듣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격이다." (P224)  이야기에 심취하여 고스란히 작가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 읽어주기 방식을 시종 권하고 있다. 이 책에는 실제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한 작가의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다. 군데군데 이름만으로도 입이 벌어지는 고전문학이 언급된다. 문자를 모르는 아이에게만 읽어주기 방식이 유효한 게 아니라 다 큰 학생들에게 책 읽어주기는 어마어마한 독서의 세계로 인도하는 훌륭한 방식이 된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을 잊고 현대의 대중매체나 여타의 환경 탓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멀리 할 때는 두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책에 대한 시간적 압박감과 내용상의 두려움이다. 저 두꺼운 걸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시간은 찾아서 내는 사람에게는 길고 맛깔나다. 하루에 몇 페이지를 정해두고 읽어도 사흘이면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계산을 해 주는 작가의 친절함에 끌린다. 내용이 독자를 짓누를 거라는 소심함, 읽어도 모르는 내용일 거라는 뒷걸음질 또한 책을 멀리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한다. 여기서 '보바리즘'의 단계를 무시하지 말라고 권한다. 즉 '오로지 감각만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충족감'을 위한 사춘기 적의 책 읽기 단계도 성숙한 독서를 위한 한 단계이므로 이것을 비아냥거리거나 단호히 내몰아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청소년 시절과 화해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중학생 이상의 아이를 둔 사람이라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취향까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가장 믿음이 가는 대목은 마지막 장,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편이다.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들은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P225) 

어른들은 흔히 책을 읽고 난 아이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그것도 모자라 한 단락을 읽히고 중심내용을 묻고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고 주문하고 단어의 뜻을 아느냐고 끊임없이 추궁한다. 이런 행위들이 책 읽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고 이야기의 맛에 도취되어 들려주고, 들으며, 온전히 하나의 시간이 되었던 그 옛날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우리는 어느덧 그런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지 않느냐고..

곳곳에 작가 자신의 독서경험과 책 읽어주기 체험담들이 나오는데,  톡톡 튀는 목소리가 흥미롭다.  우리는 다음 장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관념이나 사설이 아닌 잘 짜여진 이야기에 목 마르다.  하지만 그걸 읽고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 그 이유에 대한 작가의 변이 어쩌면 책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 책은 우리의 의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악화일로로 치닫는 세상을 그대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한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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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7-1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숙제로서가 아니라 그저 즐거움으로 책읽기를 가르쳐 주는게 중요하다는 진리를 다시 실감하게 하는 내용이네요. 제가 책을 읽을 때 즐거운 것처럼.... 하지만 책 읽어주기 너무 힘들어요. ^^;;

프레이야 2006-07-1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제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작가의 목소리와 하나가 되어 들려줄 때 듣는 이도 즐거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목이 좀 아프긴 하지만..^^

부엉이 2006-07-1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장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제 문득 책을 읽고 있다가 눈물 쏙빼거나 웃음이 막 터지는 그런 책 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 감수성이 죽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서글픈 느낌이 드네요. ^^;;

프레이야 2006-07-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저도 그런 면이 많이 있다고 여겨져요. 왠만한 거에는 순수한 감동이 잘 안 일어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