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자림 > 너에게만 말하마

 

 너에게만 말하마

    

 

너에게만 말하마 흐물거리는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를 쫓아간 그 순간

호두껍질 같았던 우리의 시간이

함께 딱 열리고

우리는 하염없이 젖으며 온 방 안에 꽃나무를 심은 것 같아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들의 경주를 본 적이 있니?

그녀의 허리와 그녀의 가슴이 허덕이며 하는 말들

나의 몸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몸을 해독할 수 있었지

말의 잔등마다 꼬리마다 쏟아지는 수천 개의 꽃잎들

네 안에서 달리고 싶어

네 안으로 들어가 달릴거야

나는 달리다 죽을 거야

환희의 곶(串)마다 축제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녀 안의 가장 소중한 우물에 다다른 순간

나는 두레박이 되어 힘차게 봄을 길어 올렸지

살얼음 같았던 그녀의 영혼 어딘가에서도

얼음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어

서서히

서서히

꽃나무에도 새순이 돋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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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36178

이잉  누가 이리 빨리 왔다요...

아뭏든 이등..

월요일...기분 좋게 시작하세요.. 화이팅..


프레이야 2006-07-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비가 쏟아져요. 날아갈라 오늘 밖에 다니지 마시고 계시길..^^
 
키다리 아저씨 청목 스테디북스 25
진 웹스터 지음, 김창직 옮김 / 청목(청목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키다리아저씨는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며 예전에 가졌던 느낌과 다른 것들이 있었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우선 편지체라는 점이 아이들이 읽기에 쉽게 느껴졌다. 또한 한 여학생이 멋진 기부자의 도움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독립적인 성장을 하는 이야기와 반전이 재미를 주는 눈치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발신되는 답장 없는 편지를 읽어가는 독자는 어느 지점에서부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를 챌 수 있다. 하지만 좀더 이야기에 푹 빠지지 못하는, 아니 이야기에 너무 빠지는, 어쩌면 순진한 독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의외의 결말에 놀란다.

진 웹스터가 이 작품을 낸 시기는 1900년대 초반이다. 당시 미국사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사회를 엄격하게 지배하며 보수적인 성향이 곳곳에 박혀있는 시기이다. 주디가 살아온 고아원은 밀폐되고 부조리한, 자유의지나 인격은 무시되는 사회를 상징한다. 18년을 살아온 그곳에서 주디를 벗어나게 해 주는 손길은 어느 평의원의 기부에서 시작된다. 주디의 문학적 재능을 보고 대학 4년간의 학비와 용돈을 넉넉히 지원해주는 독지가는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대학생활 4년 간의 이야기이다. 신입생일 때와 학년이 하나씩 올라갈 때의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는 주디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신나는 부분은 매력적인 여자를 한 사람 만나는 일이다. 유쾌하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씩씩한 주디. 재치까지 겸비한 주디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공민'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주디는 대학에서 거치는 모든 배움의 과정과 학문의 세계에 무척 열정적이다. 사교적이고 솔직담백한 성격에 자유의지를 사랑하는 주디는 자신의 소소하거나 다소 큰 일까지 스스로 결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키다리아저씨의 경제적 도움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고 학비를 벌어 많은 돈을 되돌려주기까지 한다.

주디의 독립은 경제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고 사회의 모든 일들에 열린 눈으로 생각하려한다. 불필요한 소비나 사치에는 절제심을 발휘하려 노력하면서도 옷가지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한 지긋지긋하게 생각해오던 고아원 세계를 4학년이 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른다.  고아원은 또 다른 세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준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이다. 매초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겠다고, 불행을 느끼는 순간(하다못해 이가 아플때도) 에도 행복을 생각하겠다는, 밝은 기운이 넘치는 인물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 주디.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런 친구로 우리 기억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의 여자가 부유하고 멋진 남성을 만나 행복으로 간다는, 어쩌면 신데렐라 같은 결말이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가 아직도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개척하며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되기 위해 바람직한 성장을 하는 재능있는 인물이라면 이런 정도의 행운이 따를 수도 있다는, 아니 따라야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작가는 실제로 대학시절의 한 어려웠던 친구를 모델로 주디를 그려냈다고 한다. 그러한 친구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은 주디와 주디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 (결말이 나오기 전에는 명문가의 도련님이지만)의 매력적인 품성이 더욱 독자를 끄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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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7-0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른이 되어서 읽어보니 주디가 참 매력적이더라구요. 키다리 아저씨 그후 이야기도 재밌답니다. ^^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산하어린이 127
이영옥 지음, 박재동 그림 / 산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만화가 백재동 이야기이다. 산하어린이에서 '나도 따라갈래요'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뒷책날개를 보니, 연극인 박정자와 최일도 목사 편도 나와있다. 이미 세상을 뜬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책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박재동 만화가의 이야기를 4학년 남자아이들과 함께 보며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우선 만화가 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다.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로서는 꽤 호기심이 가는 눈치였다.

책표지에는 박재동의 얼굴이 사진으로 나와있고 그가 그린 만화 한 장과 몇몇의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져있다. 그 캐릭터들은 영화필름 안에 들어있는 걸로 보아 영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책을 읽어보니, 박재동 만화가는 요즘 '오돌또기' 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작업에 빠져있다고 한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인데 시나리오와 캐릭터 등 준비가 거의 다 되었는데도 내용상의 몇몇 문제와 제작비 문제로 인해 아직 완성을 못 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이 책은 한 인물이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살려나가고 어릴 적 가슴에 심었던 꿈을 어떻게 이루려고 노력하는지를 보여준다. 박재동은 어릴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상당한 열정과 고집이 보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묻어나면서도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재능을 보고 어려운 경제환경에서도 믿고 밀어준 부모님들, 그의 재능을 높이 사서 회비를 받지 않고 그림지도를 해준 신창호 화백, 그리고 어려운 고비에서 좋은 길로 인도해준 친구들과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믿어준 아내에 이르기까지 만화가 박재동은 재능만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라는 복까지 얻은 사람 같아 보였다.

인물의 그릇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교미술교사로 재직 중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가 "선생님의 그림은 독특하긴 한데 뭔가 빠져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역사가 빠져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말을 한다. 여기서 박재동은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라 네가 나의 스승이다. 그려도 그려도 뭔가 허전한 게 있었는데 이제야 그걸 알겠다." 라고 대답하며 침체기에 빠져든다. 제자의 말에 이렇게 수용의 자세를 보이며 거듭날 수 있는 회초리로 삼은, 인물됨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일을 계기로 박재동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 것 같다.

이후 박재동은 한겨례신문의 시사만화가로 활동하며 만평을 쓰고 그린다. 가로세로 9센티미터 크기의 네모 안에 강한 인상의 이야기를 그려내야하는 일이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고 간접적으로 술회한다. 이 책에는 그 때 인기있었던 시사만평도 몇 실어놓았고  환경문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 여러 곳 소수자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 아이들에게<십시일반>에 나와 있는 박재동의 그림도 덤으로 보여주었더니,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만화가 그 책에 나와있는 걸 보고 흥분하며 좋아했다.  당장 그 만화책을 사겠다고 책 제목을 적고 책값을 물어보고 야단이다. 빌려주겠다고 해도 살 거라고 우긴다.^^

박재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릴 적 '요술소년'과 '피노키오' 만화영화를 보면서 '움직이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작업의 세계에 빠져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재능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 그리고 한 길로 가는 고집스러움외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할 것이 있다면 노력, 열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함을 느낄 수 있다.  어릴 적부터도 박재동은 그림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스크랩을 해두어 훗날 만화를 그릴 때 그것들이 상당히 도움된다고 한다. 열정이라면 대표적으로, 밥도 안 먹고 잠도 아껴가며 다락방에서 장편만화를 그리는 일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들 수 있다. 그 스케치북을 아버지가 다 쓴 것인 줄 알고 버렸을 때 얼마나 아까웠을까.  제자의 일침으로 깨닫게 된,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귀였다. 

이 책은 박재동이 담당한 삽화와 함께,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그렸던 여러가지 그림과 만화, 서양화, 최근에 그린 인권만화들과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 중  오돌또기 식구들과 함께 만든 '사람이 되어라' 의 필름 컷 몇 장면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책의 뒷편에는 간이 '만화박물관'을 만들어 만화에 대한 짧은 정보를 보기좋게 실어놓았다. 행간도 넓고 읽기에 좋은 쉬운 문체로 초등 4학년 이상이면 읽기를 권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품절로 되어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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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제가 봐도 될까요?
보고 싶어지네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7-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은 좋은 책들을 많이 알고 계신것 같아요, 저두 좀 많이 추천해 주세요^^
조카들이 읽을만한 동화책, 제가 읽어도 좋은책들,,헤헤~^^

프레이야 2006-07-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보셔도 되지요. 재미나요.. 근데 알라딘에는 품절이던데요..
삼순님 조카들 나이는요??

소나무집 2006-07-09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재동 님을 좋아하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로드무비 2006-07-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누릅니다.^^
 
 전출처 : 水巖 > 아이 사랑에도 ‘뜸 들이기’ 필요


<멋진 아빠되기>
아이 사랑에도 ‘뜸 들이기’ 필요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
요즘은 생경한 말이지만 보릿고개란 1960년대 배고픔의 대명사였다. 봄이 되면 쌀은 다 떨어지고 기대할 것은 보리가 빨리 익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쌀이란 과잉생산으로 농민의 한숨소리가 섞여있고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든 아이에게는 천덕꾸러기가 된 듯하다. 밥을 싫어하는 아이가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 엄마들의 걱정이 많다. 심지어 밥을 들고 쫓아다니는 일도 있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는 정성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실마리는 늘 엄마가 제공한다. 식사 전에 충분한 간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통제력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일단 맛이 있으면 생각없이 계속 먹게 된다. 결국 간식으로 시작한 것이 식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과잉 사랑이 빚은 결과다. 그러나 간식을 많이 줄이거나 없애면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밥을 잘 먹게 되어있다. 배가 고픈데 견딜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밥을 짓는 것도 노하우가 있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강력한 화력만으로 하다가는 3층밥이 되기 십상이다. 꺼질 듯, 말 듯한 약한 불과 약간의 기다림이 바로 밥맛을 만든다. 약한 불은 얼핏, 최선을 다하지 않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밥을 익게 하는 것은 강력한 불이지만 맛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뜸이다. 밥을 짓는 일조차 강약과 완급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며칠 전 주부 리포터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의 남편은 쉬는 날이면 아이와 잘 놀아준다고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갔단다. 그러나 즉흥적인 출발로 인해 네 곳이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매진되어서 결국, 서점에서 책을 사주는 것으로 갈음했다고 한다. 물론 필자도 지난달 23일 아이들과 영화를 관람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이미 12월 초에 했고 캘린더에 표시도 했다. 아들은 일주일 전에 “아빠, 극장가는 것 잊으면 안돼요”라고 확인을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예매는 3일 전에 밤 11시로 했다. 영화가 끝나자 거의 2시, 찬 새벽공기를 마시며 잠에 취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란 반드시 잠자는 시간뿐 아니라 영화도 볼 수 있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란 것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적극적인 양육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때론 소탐대실이거나 언발에 오줌누기와 같은 상황도 벌어진다. 그러므로 무한한 사랑과 맹목적인 사랑은 자유와 방종처럼 구분되어야 하며 걱정과 기우(杞憂)도 살펴야한다. 필자는 한동안 아내에게 ‘뜸아빠’로 불렸음을 고백한다. 아내의 요구에 즉답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별명이 번개탄인 아내에게는 벅찬 일이며 아마 마음고생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필자의 저서인 ‘아빠의 놀이혁명’이 발간되자 그 별명이 사라졌다. 미묘한 그 간극을 이해했을까?

뜸이란 절제된 사랑이다. 받는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다. 뜸이란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전체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기에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뜸이란 기다림의 미학이다. 그동안 엔도르핀이 다량 생성되어 흥행의 성공을 보장한다.

결국 아빠를 더욱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더구나 아이의 인성도 뜸들이는 밥처럼 자연스럽게 익어간다.

권오진 ‘아빠와추억만들기(www.swdad.com)’단장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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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지음,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기와'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흔 가까이의 세월을 살아오며 보통의 여성보다는 좀더 많은 상처를 받은 듯하다. 이 책은 파란이 많았던 이런 시인이 길을 떠나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독백이다. 일종의 기행사진에세이 종류로 넣고 싶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이 떠올랐다. 김훈의 글에서 느껴졌던 맛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여성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섬세한 감정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시인은 자신의 사생활도 고백하며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출가하는 어느 여성, 세속의 것을 다 비우고 떠나는 그 사람의 가방안에는 생리대가 가득했다는 글에서, 여성이라서 짊어져야하는 짐 같은 것에 대한 시인의 애틋함이 보인다. 시인은 자신도 버거워했던 그런 것들에 신물이 나면서도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여행의 사진 못지않게 둘다 사진이 멋스럽게 곁들여져있어 글의 인상을 도드라지게 해준다.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은 전국의 유명 비구니 사찰 열세 곳을 찾아간다. 시인은 비구니 사찰을 골라 다니며 비구니들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다. 사찰의 유래도 설명해놓았고 비구니들과의 선문답 같은 이야기 그리고 그저 도란도란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를 글로 전한다. 역시 상처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 약인 것 같다.  산사의 풍경묘사에서도 시인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뜨거운 마음이 엿보인다.

사실, 글보다 사진이 한층 더 눈을 사로잡았다. 비구니의 맑은 얼굴마냥 사진이 참 담백하다. 김홍희님은 마음에 '나'를 담지 않고 셔터를 누른 것 같다. 두 장을 차지하며 넓게 펼쳐지는 풍경사진들 속에는 한결같이 '빛'이 있다. 어느 땐 비구니가 벗어놓은 단아한 흰고무신짝에, 어느 땐 단장한 색시마냥 색을 풍기는 문살에, 그렇게 '나'대신 '빛'을 실었다. 그 빛에 가만히 눈길을 주고 있으면 아련한 그리움이 구슬픈 가락처럼 들려오는 것 같다. 사물의 한 곳에 매달린 빛이 너무 아름다워 서러워진다.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그 사진들이 어찌 좋은지 한참을 머물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기와 시인의 글도 읽어내려가며 자꾸 눈에 걸린다. 공감되는 부분에서는 멈추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그래서 또 걸린다. 그녀의 길에는 다른 시인들의 싯구와 자신이 지은 싯구도 동행한다. 그 싯구들에 시인은 또 자신의 생각을 하나 더 걸어둔다. 좋은 시들을 감상하는 시간도 덤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류의 기행에세이가 넘었으면 하는 약간의 벽이 자꾸만 보이는 건 왜일까, 나도 그만큼 변했다는 증거인지 모르겠다.

무상은 헛됨이나 공허함이 아니라 변화임을 강조하듯, 우리는 변하는 것을 위한 준비를 하는 생을 살고 있음이다. 머물러 있지 않는 나. 그러니 '나'는 버려라. 변화하는 '나'만 있을 뿐... 시인이 던지는 화두와도 같은 글귀와 그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자신과의 화해를 청하는 대목들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나'와 '너'라는 인칭이 없어질 때 비로소 우주의 우주가 된다는 글귀 또한 울림이 있다. 아상이 많아 칭찬에 인색한 사람을 이야기하다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인의 생각은 강물처럼 유연하게 흘러흘러 가는 것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들을 곳곳에 설명하듯 들려주는 것은 좋았는데, 여기 소개된 사찰들을 찾고 싶은 사람을 위해 지도라도 곁들여주었으면 좋았겠다. 고즈넉한 그곳에 가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허공을 온종일 날아다녀도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새처럼,

항상 웃고 있어도 시끄럽지 않은 꽃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호수 밑을 뚫어도 상처 하나 남기지 않는 달빛처럼 비우고 또 비워 가벼워져야 하건만,

작은 몸짓 하나에도 이처럼 잔뜩 힘이 들어가서야 어느 천 년에 구름 되어 열반에 들 수 있을까...(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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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젠가 말씀을 드린적이 있던가요?
님의 리뷰를 읽으면 색이 떠올라요...
그 책의 색이...
오늘은 햇빛입니다
아침의 찬란한 빛이 생각이 되네요..^^ 밝은 기운 듬뿍 얻어갑니다...

프레이야 2006-07-0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사진을 보면 정말 그런 빛이 느껴져요.. 밝은 기운 듬뿍~ 감사해요^^

씩씩하니 2006-07-3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버려라 변화하는 나만 있을 뿐,,,
어쩌면 이렇게 가슴에 꼭 와닿는지요...
너무 아름다운 책 같애요,,서점에 들러볼까봐요~~~

프레이야 2006-08-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이 책은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느낌이 참 좋아요. '나'아닌 나와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서점에도 있던걸요^^ 와.. 근데 님 이미지 넘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