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자림 >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신  현  림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

  슬픔은 미친 종처럼 울고 슬픔은 끝없이 나는 연

  저 환장한 연을 잡았으면

  내가 너 대신 아팠으면 너를 안고 나는 갈매기였

으면

  아우야, 추운 너를 안고 어머니가 금강산을 날으셨

구나

  애인아, 그리운 너를 안고 나는 바닷속을 달렸더구나


  마음으로라도 날고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날들

  열린 차창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던 날들

  불탄 아현동 사람들이 무덤으로 던져진 어제

  저녁이 오기도 전에 식탁의 빵들은 부패했다

  장송곡보다 무거운 원피스를 입고 너는 꿈 속 강변

을 헤매고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는 유행가가 싸락눈으로 날린다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토실토실한 쓰레기나 불리며 살고

  작별의 꽃을 던지며 사나니

  술잔은 자꾸 죽음을 향해 기울어지더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 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 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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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림

마음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걷는다

숨어있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

내 허물은 얼마나 돼지처럼 뚱뚱했던가


난 그걸 인정한다

내 청춘 꿈과 죄밖에 걸칠 게 없었음을


어리석음과 성급함의 격정과 내 생애를

낡은 구두처럼 까맣게 마르게 한 결점들을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나의 등잔이 타인을 못 비춘 한시절을

백수일 때 서점에서 책을 그냥 들고 나온 일이나

남의 애인 넘본 일이나

어머니께 대들고 싸워 울게 한 일이나

실컷 매맞고 화난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순 일이나

내게 잘못한 세 명 따귀 때린 일과 나를 아프게 한 자

마음으로라도 수십 번 처형한 일들을


나는 돌이켜본다 TV 볼륨을 크게 틀던

아래층에 폭탄을 던지고 싶던 때와

돈 때문에 조바심치며 은행을 털고 싶던 때를

정욕에 불타는 내 안의 여자가

거리의 슬프고 멋진 사내를 데려와 잠자는 상상과

징그러운 세상에 불지르고 싶던 마음을 부끄러워한다.


거미줄 치듯 얽어온 허물과 욕망을 생각한다

예전만큼 반성의 사냥개에 쫓기지도 않고

가슴은 죄의식의 투견장도 못 된다

인간의 원래 그런 것이라며 변명의 한숨을 토하고

욕망의 흔적을 버린 옷가지처럼 바라볼 뿐이다


고해함으로써 허물이 씻긴다 믿고 싶다

고해함으로써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싶다

사랑으로 뜨거운 그 분의 발자국이

내 진창길과 자주 무감각해지는 가슴을 쾅쾅 치도록


나는 좀더 희망한다

그 발자국이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를 깨워 울게 하도록

 

<세기말 블루스>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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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와 국자 전쟁 - 3 소년한길 동화 3
미하엘 엔데 지음, 크리스토프 로들러 그림, 곰발바닥 옮김 / 한길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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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또 한번 읽었다. 6월이면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하여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하는 책들을 함께 읽게 된다. 이런 주제로 나와 있는 어린이 책이 많이 있지만 미하엘 엔데의 이 책은 독특한 상상력이 재미를 더 하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삽화가 환상적이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냄비와 국자 전쟁은 결코 나뉘어져서는 행복할 수 없는 것들의 전쟁과 합일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냄비와 국자처럼 함께 있어야 더 좋은 것들을 말해보게 하니까 단순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이외에 '남자와 여자'를 꺼낸 아이가 있다. 기특하다.

냄비와 국자는 왼쪽과 오른쪽의 나라를 상징한다. 이 두 나라를 이간질하고 고소해하는 심술궂은 마녀는 이 나라에 각각 국자와 냄비를 선물한다. 외세의 침략과 선물공세를 두고 이렇게 비유한 대목부터 눈길을 끈다. 국자와 냄비를 가진 왕과 왕비는 서로 자기 것을 꼭 쥐고 나누어 쓸 생각은 없이 남의 것을 탐내기 시작한다. 서로 바꾸어보자고 협상을 하기도 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긴 마찬가지다. 결국 비밀요원을 고물장수로 변장시켜 도둑질을 하게 한다. 물건은 도로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욕심은 욕심을 낳고 급기야 전쟁이 일어난다. 상대가 가진 것을 무력으로라도 빼앗을 생각에 이른 것이다. 나라는 잿더미가 되고 백성들은 배고픔에 시달린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고집만 부리려는 왕과 왕비의 마음은 다른 나라와 서로 대화를 할 기회조차도 앗아간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져 돌아갈 생각만 하니까 서로 만날 수 있기란 하늘에 별 따기 같다. 이들은 산꼭대기에서 만나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고 그곳에 올라가보니 뜻밖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어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책 표지의 그림을 보면 상상해볼 수 있다.

3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보며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뉘어있는 우리의 현실과 빗대어보았다. 아이들과 나누어보기에 적당한 정도에서 그 원인과 통일에 대한 생각까지 가볍게 나눠보면 좋겠다. 아이들은 대체로 마녀의 계략대로 노는 어른들이 어리석고 아이들이 오히려 지혜롭고 착하다고 말한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부르기 어려워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내용의 흐름(냄비와 국자가 바뀌었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합쳐지기까지)과 상징들을 잘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하일 엔데다운 고급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근사한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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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서평단 모집]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에 리뷰를 써주실 분을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편집팀 김세진입니다.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에 리뷰를 써주실 독자 10분을 찾습니다. 2권으로 된 책이라 받아보셨을 때에는 다소 부담이 되시겠지만, 술술 읽히는 여행기라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출간된 적이 있는 책으로, 표지와 편집디자인 등이 새롭게 바뀐 것입니다. 두 작가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여행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많은 참여 기다립니다.

*  서평단에 참여하길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면 됩니다.
*  신청해주신 분들 가운데 10분께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신청은 6월 19일 월요일 오전 10시까지 받습니다.
*  서평은 2006년 7월 20일까지 올려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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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문덕수 - 白島에서


                                 백도에서

                                            - 문  덕  수 -


                    새벽 꽃물살
                    한 발짝씩 설렌 뒷걸음 그만 헛딛어
                    멀리 거문도 한 자락에 붙들렸나
                    풍란은 10리 밖 향 잡으며 더욱 맵고
                    바위틈 동백꽃은 뉘 슬픔 피를 뿜네
                    갈매기 가마우지 흑비둘기 못다 핀 꿈이더냐
                    짙은 태고의 운무 속을
                    상백도 하백도 신기루로 비치더니
                    한겹한겹 스스럼없이 제 몰골로 발가벗더라



                    매,거북,석불,쌍돛대,남근
                    각시,쌍둥이,삼선,병풍,오리섬
                    벌리고 오므리고 안고 없고 비키며
                    설흔아홉 아니 아흔아홉 빙빙 돌다가



                    뒷걸음질 꽃품 한올 물이랑에 걸렸나
                    쪽빛 천년을 남몰래 멱감다 들킨 볼모
                    언제 풀리리, 저렇듯 제 몸 깍고 다듬는 영겁의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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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6-2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2006-06-2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곳에 가보고 싶어져요. 백도... 수암님,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