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절판


난 미래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냐. 평범함에 대해서라구. 학교를 고르는 건 정말 불가능해 보여. 왜냐면 그건 잘못될 첫 번째 결정, 첫 번째 장소로 보이니까.-14쪽

물론 내 첫 번째 우상은 프로이트였다. 그가 발견한 것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시작' 때문에,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계급 사회에 도전한 것 때문에.-30쪽

우리는 전형적인 새 룸메이트 관계였다. 상호의존적이지만 약간 거리가 있는 관계. 결핍에 의한 우정 같은 것. 이런 우정은 방사성 낙진 대피소에서도 생길 만한 것이다.-44쪽

헨리를 그런 모호한 단어로 설명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헨리는 내게는 정말 진짜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얼굴과 말뿐인 사람들,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나와 함께 어떤 일을 하기도 하지만 절대 확실히 그려 낼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건 그림과 조각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 그래서 나는 테드에게 헨리가 그런 허상 같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면서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45쪽

사실 난 여기서 발견한, 정치엔 무심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있는 이 창조적인 유형의 인간들에게 익숙해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52쪽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 것을 낚아채가서 먼저 읽거나 먹어 치우는 형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분명 중산층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가난의 고통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동생이 됨으로써. 가난 방지 프로그램 회의 같은 데서는 맏이들은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59쪽

군중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 피곤한 발바닥 밑으로 전해져 오는 지하철의 어렴풋한 진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그 진동에 대해선 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인식하고 있다. 발 밑에 보이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하나의 도시가 있다는 것을.-62쪽

섹스, 혁명, 과학. 아마도 이 곳에서의 내 인생의 세 가지 기초 필수품.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4년밖에 없다. 그것들이 그렇게 기본적일까? 헨리는 아마 아니라고 할 것이다. 헨리는 인생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할 것이다. -93쪽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나는 영영 준비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사회는 나를 협박한다.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게 삶인가? 방향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로지 야망만이 있는 것이?...... 버스는 더럽고 낡고 불편했다. 내 늙은 할머니와 있을 때처럼. 나는 반감을 느끼고, 반감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112쪽

나도 내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뒤의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전화번호나 양말 바구니 뒤에 놓여진 아파트 열쇠 같은 것이 없는 삶은.-136쪽

그럼. 그 만족시킬 수 없는 입맛하며 긴 머리카락에 빨랫감도. 맞아, 빨랫감 꼭 가져오렴! 난 네 양말과 더러운 속옷도 그립거든. 네 불쌍하고, 지치고, 배고픈 빨래 덩어리 말이다.-147쪽

아일랜드에서는 꿈에 아기가 나오면 운이 나쁘다고 한다. 그건 죽음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53쪽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모습에 구토를 느꼈다. 그들은 절대 올려다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역의 천장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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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0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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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이 이런거야?>는 '바람의 아이들'에서 청소년 책의 시리즈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라고 약간은 투덜거리며 방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헨리와 데이비드는 외모나 취향에서 조금은 다른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데이비드가 여때까지의 삶과 '안녕'을 고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버리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쓴 짧은 시를 발견한다. 여기에 나열되어있는 단어들은 단절되고 파격적이기도 하여 데이비드의 혼란과 설렘의 양면적 심정을 보여준다.

헨리와 데이비드가 대학교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고민을 하는 대목은 오래전 나의 그 시절을 반추하게 했다. 나는 이들처럼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 성적에 맞추어, 평소 해보고 싶었던 과목에 눈을 두고, 그렇게 결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첫단추부터 잘못'일 수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커리큘럼과는 다른, 대학교의 학부과정을 비춰주는 과목 중 하나가 헨리가 들어야했던 과목, '창의적 움직임'이다. 나중에 보니 이것은 발레수업이었다. 이 외에도 군데군데 재치있는 문장으로 역설적인 웃음을 불러낸다. 팝과 클래식의 음악, 고전작품 등도 언급되며 폭넓은 견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책날개에 소개되어있는 것처럼 대학입시와 대학의 실상에 관한 책이라고 보기엔 거리감이 있다. 차라리 이 책을 혼돈과 치기의 시절에 관한 일면적 체험 정도라고 보면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책임 앞에서 얼마나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좋은 시간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던가.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대학 1학년 시절이다. 그 시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픈 데이비드가 느끼는 것처럼 인생에 공백으로 남아 존재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정한 학문에 대한 열정 그러나 부적절한 방법, 진지한 사랑과 견실한 우정에 대한 갈망 그러나 진실에의 몽매함,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에 대한 무지함과 지적욕구 그러나 막연함. 이런 것들이 늘 대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푹 젖어들지 못하고 겉돌게 했던 것만 같다.

데이비드가 느끼는 이와 비슷한 감정들이 나른하게 서술되다가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헨리와의 확고한 관계가 세상의 모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비드에게 어느 날 테드와 여자친구가 들어온다. 데이비드가 느끼고 있지만 꼭 집어 토로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것들에의 충격은 급진진보주의자라 불릴만한 룸메이트의 죽음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는다. 세상도 사람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었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토록 친했고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헨리에게서마저 소원함을 느끼고 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야기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는 데이비드. 그는 진짜 삶은 언제부터냐고 묻기를 중단해야할지 모른다. 진짜 삶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내리는 지하철 역에 나도 따라 내릴 수 없는, 나는 다음 역 혹은 몇 구역을 더 가서 내려야하는, 그런 상황이 우리 삶의 실체가 아닐까.

데이비드가 쓴 시, '안녕'은 '깨어짐, 부서짐, 무너짐, 파열, 파괴'로 끝난다. 이는 부활, 재탄생의 의미로 이어짐을 독자는 기대하지만, 작가는 종결부분에서 그런 기대를 깬다. 그저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영혼의 방황을 하는 데이비드를 홀로 남겨둔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삶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이 이런 거야?>는 '삶이 이런 거야?'로 대체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혼잡한 도시의 지하철 역 천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별자리를 보는 사람이다.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천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라고 느끼기도 한다. 역시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상이 천국이지싶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들뜨지 않는 어조로 희망을 주고 있다.

ps: 이 책의 역자는 <프루스트 클럽>의 저자이기도 하다. 툭툭 끊기는 듯한 문체를 의도적으로 써서 데이비드의 혼란과 단절감을 나타내려한 것인지 원래 그런 문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프루스트 클럽>에서도 비슷한 문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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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이는 오늘 초등학교 졸업식에 앞서 한 가지 수료식을 했다.

6학년 한 해동안 교육청 주관 과학영재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이면 차로 30분을 가야하는 초등학교에서 2시간 가량 수업을 했다. 토요일마다 어떤 엄마랑 번갈아 가며 아이들 두명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서 기다렸다가 데려오기를 일 년을 했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힘들지 않은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버스가 한 번만에 가는 게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렇지도 못하고 전철 코스도 아니고 여학생 혼자 택시를 태워보내기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희원인 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더니 더이상은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2월에 중학교 프로그램에도 응시해볼까 하여 의향을 물었더니 단호하게 반응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남들보다 조금더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한다는 점이 싫은 건지 과학에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건지, 둘 다인지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 교육청강당에서 치른 수료식에서는 수학, 과학, 정보, 창작 분야의 초등6학년, 중학3학년 학생들이 모였다. 수학부분의 우수성적학생은 두 명이 모두 희원이 학교 아이였다. 마지막 순서로 창작영재 여중학생이 나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에머슨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며 제법 다부진 글을 발표했다. " 세상에 위대한 그 어떤 것도 정열이 담기지 않은 것은 없다." 라는 말과 함께 저희들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란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여 시작하였고 즐겁게 공부하며 시각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이런 점이라고 했다.

수료식을 간단히 마치고 2월의 맵싸한 바람을 맞으며 희원이와 나는 막간의 데이트를 했다. 나는 집에 와 수업을 해야했고 희원인 학원에 가야했다. 난 달콤한 초콜릿이 듬뿍 덮인 도넛이 먹고싶어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상가에 있는 도넛매장에 들어가 우리는 마주했다. 오똑한 콧날을 하고 단발머리가 찰랑이는 큰딸은 어느새 나보다 몸이 커져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성장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삶일 거야. 아까 그 언니가 쓰고 읽은 글 잘 들었지. 희원이도 읽고 쓰는 걸 게을리 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실 과학보다는 글쓰기(창작)쪽에 더 소질이 있다고 엄마는 생각하거든. 네가 게으름을 부려서 그렇지. 영재과정이다 뭐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 스스로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의 폭을 넓혀가면 좋겠다. 한 해동안 열심히 했으니 축하해. 꽃다발 대신 도넛~ 괜찮지?

희원인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요새 사춘기인지 불만도 많고 표정이 우울할 때도 자주 있다. 그런 과정들이 뭐란 걸 조금은 아니까, 안달이 나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와 정서적으로 밀착되지 못한 나이기에, 내 딸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엄마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긴 하다. 오늘처럼 희원이가 포함된 그룹 수업을 할 때이다. 오늘 저녁 <마두레르를 위한 세상>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주제의 이 책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음 주에 글쓰기 과제를 통해 희원이가 어떤 생각으로 여물어지는지 엿볼 수 있을테니, 은근히 기대된다. 일기장도 5학년 2학기 때부터는 절대 보여주지 않으니, 이런 기회마저 없으면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희원이와 나는 도넛 3개를 나누어 먹었다. 학원도 가기 싫어할 때가 종종 있지만 어차피 피하지 못하고 해야할 일이라면 즐겁게 주도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희원아, 요새 기분이 우중충하다면 달콤한 그 맛에 기분도 달콤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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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도 빨리 오는군요. 그래도 도너츠 데이트라 멋있네요^^

sooninara 2006-02-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아이들과 저렇게 보내고 싶은데..왜 아이들과 이야기만 하다보면 열부터 내게 되는지..ㅠ.ㅠ
어머님이 일년간 데리고 다녀주는것이 얼마나 큰일인데요.
과학에 흥미가 없다니 아쉽네요.

세실 2006-02-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졸업 축하드립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군요~~
지금도 딸아이와 가끔 친구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6학년이면 친구?

프레이야 2006-02-1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싶은데 역부족이에요. 성질부터 앞서구요. 다 들어주자니 그것도 맘에 걸리구요. 좀 참고 내버려두렵니다. 저 요새 초코발린 도넛 자주 먹는데 심리랑 상관관계가 있남요?? 님들~ ㅎㅎ

글샘 2006-02-1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요즘 D 도넛에 푹 빠져 있답니다. 아내가 애 준다고 사 놓으면 제가 다 집어 먹는다고요... 커피 앤 도넛... 우리 아인 월요일에 졸업이랍니다. ㅎㅎ
그거 있잖아요. 교육청에서 하는 영재학교... 그런 거 아이들이 재미없어 해요. 저도 전에 영재학교 강사 해 봤는데, 영 허술하답니다. 그저 책 많이 읽게 하고,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마음이 말랑말랑한 아이로 기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주 2006-02-1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울 애랑 달콤한 도넛 먹자며 데이트 신청 해 볼래요^^

프레이야 2006-02-1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동감이에요. ^^ 마음이 말랑말랑, 달콤...
진주님, 근데 자주 먹어 살이 쪄요^^
 
엄마 아빠가 없던 어느 날 - 저학년을 위한 들꽃동화 01
케테 레하이스 지음, 수잔 오펠-괴츠 그림, 김완균 옮김 / 해와나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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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1학년 아이들과 읽었다. 삽화가 눈길을 끄는 책이다. 연필 스케치를 한 것 같은 삽화에 심리와 동작의 움직임이 살아있다. 특히 형 토미와 동생 부츠의 표정은 퍽이나 재미나다. 예기치 못한 일들 앞에서 난처해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는 형 토미와 그저 철없이 신나기만 한 동생 부츠의 얼굴이 대조적이며, 귀염성스럽다.

이 책은 이런 상황에서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래?' 라며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함께 보는 부모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셈이다. 우리는 늘 어떤 일도 거의 예기치 못한다. 예상하고 계획하여 일을 해나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저 어떠한 것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벌어지기 십상이다. 단지 그 일들의 물밑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었나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행동의 기저에 있는 동기가 중요하다.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는데 있어 아이들에게 솔깃한 동기를 부여한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사실 엄마 아빠가 잠시 없는 동안 토미에게 벌어진 일들은 그때 갑자기 일어난 일들이 아니다. 되짚어보면 그 이전부터 그런 일들이 벌어질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상황으로 먼저 보여준다.

문제는 그놈의 '여섯마리 부엉이 접시'였다. 토미가 가장 좋아하는 이 접시를 토미는 부주의하게도 여러번 깨고 만다. 그 때마다 아빠는 새 것으로 사다 주었지만 어느 날부터는 다시 이 접시를 갖지 못하게 된다. 마트에 더 이상 그 접시는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미는 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고 싶어 병이 날 지경이다. 어떻게 하면 토미는 그 접시를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아니, 토미는 기회를 늘 엿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토미의 작은 소망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엄마 아빠를 감동하게 만들어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아이다운(?) 발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아이들의 발칙한 심리를 잘 포착하였다는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 동기가 그리 불순한 건 아니다. 그것 때문에 토미의 형다운 생각과 선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게 된다. 아빠를 대신하여 쓰레기봉투를 치우려 하고, 동생이 깨진 병조각에 발을 다칠까 노심초사하고, 우는 아기동생을 위해 우윳병을 찾고, 벽에 묻은 잼을 닦아내기 위해 걸레를 빨아야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일은 토미가 의도한 것과는 달리 점점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물난리가 난 집안에 성큼 들어서지도 못하고 입구에 서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보라. 작가는 이제 어른들의 심리를 그대로 그려낸다.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맏이에게 야단만 실컷 하고, 아이를 이 모양으로 키웠다고 서로 탓을 하며 싸우고, 토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엄마 아빠 때문에 속이 상해 흐느낀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희미하게 듣고 아이방으로 가려는 엄마와 아빠간의 대화, 그리고 이들의 갈등이 간단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결국 아빠도 엄마도 마음은 한 가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토미를 침실로 데려와 가운데 눕히고 위로하고 사랑의 뽀뽀를 해준다.

토미의 흐뭇해하는 표정과 그 다음날 얻은 '일곱마리 부엉이 접시'를 상상해보는 것으로도 독자에게 행복이 전염된다. 마지막 문장은 더욱 재치있다. 이제 '여섯마리'가 아니라 '일곱마리' 부엉이 접시를 더 좋아하게 된 토미. 이런 보상으로 토미는 동생을 돌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멋진 형이 완벽하게 된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을 동생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이런 덤을 얻기 위해 '여섯마리 부엉이 접시'는 잃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일곱마리 부엉이 접시' 로 더욱 마음밭이 자란 토미는, 아직은 그 접시를 깨지 않고 있지만, 다음에 또 이것을 잃고 다른 보상으로 쑥 커질 것이다. 

삽화 곳곳에 토미가 좋아하는 부엉이와 부츠가 좋아하는 생쥐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엄마 아빠가 없던 어느 날>은 아이와 엄마 아빠가 함께, 유쾌하게 읽으며 가슴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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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치과 이야기 - 치카치카 치과 탐방, 개구쟁이 스터디클럽 6
우리케 게롤트.볼프람 헤넬 지음, 아네테 피에니크 그림, 김완균 옮김 / 해와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치과라고 하면 누구든 가고 싶지 않은 곳 중에 하나다. 아이든 어른이든 이가 아프면 즉시 치과를 찾는 사람은 드물다. 치과에 가기까지 시간을 미루고 있다가 증세는 더 심각해지기 일쑤다. 결국 통증이 수시로 찾아오고 어느 날 밤에는 그 통증에 잠을 못 이루게 될 즈음에야 치과를 찾아간다.

여느 병원처럼 치과도 병원이니 두려운 건 마찬가지이지만 치과의자에 앉으면 더욱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의자에 앉는 순간 등받이가 뒤로 누우며 꼼짝없이 그 의자에 붙박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순간, 무섭다기보다는 신나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의자가 치과의사의 눈높이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니 무슨 놀이기구쯤으로 여기지나 보다.

<재미있는 치과 이야기>는 저학년 아이들을 위한 지식,정보책이다. 일전에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작과정과 방송국 탐방기를 실은 이 책의 시리즈를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2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보았다. 아이들은 치과에 갔던 경험이 있고 충치치료를 받아본 경험도 있어 이 책을 더욱 흥미있어했다.

리사 할아버지의 틀니가 제자리에서 빠지는 바람에 리사와 가족들이 모두 치과를 찾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치과에 들어서면서부터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게 하는, 펼쳐보는 책장은 보기에 시원하다. 치과에서 필요한 도구와 장비들, 기공사까지 볼 수 있다. 옛날엔 친절한 치과의사가 없었다는 할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이곳의 치과의사는 젊고 예쁜 여자의사이다. 직업에 대한 성별구분을 하지 않고 제시한 점이 좋다. 게다가 섬세한 손놀림과 환자에 대한 보살핌과 부드러움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래전에는 이발사겸 외과의사 또는 대장장이가 치과의사를 대신하여 썩은 이를 집게로 뽑았다는 대목에서 아이들은 신기해하기도 했다.

치과가 없던 시절, 충치로 어느 날 갑자기 죽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후약방문 보다는 예방이 최고임을 강조하며 치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치과에서 쓰는 전문 용어나 도구의 이름 그리고 기공사라는 직업까지 다소 생소한 이름들 때문에 어려워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좋다. 책 뒤의 '이런 게 궁금해요'라는 꼭지에서는 치아와 관련된 가벼운 상식들에 대한 답을 해놓았다. 그리고 올바른 양치법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삽화가 밝고 선명하다. 글도 간략하며 이해하기에 쉽게 풀어 써 놓았다. 재미와 함께 지식을 주고 주변의 사람과 주변의 것들 모두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더구나 건강한 치아를 위해 해야되는 생활 속 습관들도 익혀주는 일석삼조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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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2-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치과가 무서워요....ㅎㅎ
스켈링하러 가야 되는데, 맨날 하루하루 미루고 있어요. ^^

프레이야 2006-02-25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저도 병원가는 거 싫어하지만 치과는 제일로 그래요. 스케일링도 딱 한 번 하고 안 하고 있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지금 해는 지고 빗방울이 한두방울 내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