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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노마와 현덕동화나라 - 빛나는 어린이 문학 3 ㅣ 빛나는 어린이 문학 3
현덕 지음 / 웅진주니어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현덕의 동화는 과거 어려운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시대적인 이야기를 곁들여주어야 한다. 현덕의 동화를 보면 찰거머리같던 가난이 부끄럽기보다 하나의 공동운명으로 묶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싶은데 현덕은 그 중심에 천진한 아이들을 두고 보여주었던 건 아닐까 싶다.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것으로 억눌림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을 딛고 일어날 힘이 부족해보이더라도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며 사는 소박한 모습에 정겨워진다.
현덕의 동화에는 고정등장인물이 있다. 노마와 똘똘이, 영이 그리고 기동이다. 이 중 기동이는 약간 따돌림을 받는 듯하다. 상대적으로 부잣집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기동이가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알아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어른들의 선입견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네 개의 짧은 동화가 들어있는데 <둘이서만 알고>에서 왠지 기동이는 다른 친구 둘만의 어깨동무 밖에 있지만 결국 맛있는 배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나씩 받고 즐거워한다.
현덕이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은 살아있다. 현덕은 최대한 말을 줄이고 아이들의 말투를 고스란히 살려낸다. 옛말투를 써서 더 정겹게 느껴진다. 그리고 반복어를 리듬감 있게 사용하여 소리내어 읽어보면 흥이 난다. 아이들의 성격이 말 속에 느껴지는데 더구나 이 책에서는 신가영님이 아이들의 얼굴을 잘 그려냈다. 심심해하는 표정, 으스대는 표정, 걱정되는 표정, 반가운 표정, 모두모두 수채화처럼 맑게 그려놓았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요즘 아이들의 옷과 다르고 영이의 머리는 앞머리는 동그랗게 내리고 귓불이 다 드러나도록 짧게 잘려있다. 아주 귀엽다. 뒷덜미는 파르라니 깎여있었을 테다. 그 시대 초가집과 그 집 안의 가난하지만 따스한 풍경, 처마끝에 달려있는 고드름, 지붕 위 박덩굴, 창호지 창살에 비치는 아이의 눈이 소박하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영이의 머리 위로 날리듯이 묻어있는 솜같은 눈의 촉감이 보들보들하니 만져지는 것 같다.
현덕의 동화는 아이들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큰소리>에서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만의 재주를 뽐내다 못 할 것 같아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하는 마음이 표정과 함께 잘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고 더 놀리기 시작하는 친구들. 마침 저녁밥 먹으러 들어가자며 나온 엄마는 구세주다. <암만 감아두>에서는 다른 때같으면 백개도 먹을 것 같은 귤이 밖에서 놀자고 불러대는 친구들의 목소리에는 비길 수가 없는 노마의 마음이 보인다. 친구들이 눈이 오신다며 밖에서 놀자고 부르는데 실을 조금만 더 감자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노마의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된다. 하지만 엄마의 표정은 다 안다는 듯이 웃고 계시니 엄마가 더욱 야속할밖에..
<조그만 어머니>에서 영이는 어린 동생을 돌보는 착한 아이다. 기다리는 엄마가 늦도록 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영이의 마음이 착하기 그지없다. 형제가 없는 아이는 여기 나오는 영이의 어린 동생을 보더니 자기도 이런 동생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뾰로퉁해있는 어린동생이 참 귀엽다며..
현덕동화나라는 시대가 바뀌어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놀잇감을 찾아내는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 그리고 아이들의 선한 마음결이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은 어느때이든 활력이 된다. 특히 뭔가 복잡한 감정에 얽혀들어 불만스러운 어른들에게 청량제가 된다.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잘 놀지 못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된다거나 먹을 것이 풍부한 지금 먹을 것으로 투정을 부린다거나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께 투정만 부리는 아이가 있다면, 이런 동화를 보여주면 어떨까싶다. 아이랑 한 문장씩 읽어가도 좋다. 댓구처럼 반복되는 말들이 노랫말처럼 문장에 흥을 주며 기분까지 올라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