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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나온 할머니 ㅣ 보림문학선 2
이바 프로하스코바 지음, 마리온 괴델트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집 작은공주는 일곱살이다. 생일이 빨라 또래보다 성숙하고 덩지도 크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것 같은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문득 아이가 보살피는 또 다른 머요할머니들이 생각난다. 아이는 인형들을 종류대로 데리고 학교놀이도 하고 목욕도 시키고 재우고 먹인다. 바쁜 척 하며 저랑 잘 놀아주지 않는, 아니 노는 방법을 잘 모르는지도 모르는 이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나름대로 찾은 방식이다. 아이는 동생을 하나 낳아달라고까지 하며 보살피고 애정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을 바란다.
<알에서 나온 할머니>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점을 건드린다. 아이건 어른이건 외로움을 느낀는 건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지못해서라기보다 사랑을 줄 대상이 옆에 없을 때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아낌없이 손자에게 사랑을 퍼부어주는 대상이다. 우리 아이는 할머니손은 요술손이라고 하며 뭐든 요구하면 다 들어주시는 할머니랑은 무조건적 사랑을 나눈다.
머요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와는 다르다. 말도 아이처럼 서툴고, 체격도 아주 작고, 목욕하는 법도 모른다. 게다가 장난을 좋아하고, 노래도 잘 하고, 인사도 잘 하고, 뛰어오르기도 잘한다. 수영은 본능적으로 잘 한다. 질문이 많아서 엘리아스가 이름을 머요할머니라고 지었다. 분명 아이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아이이긴 초등1학년 엘리아스도 마찬가지이지만 엘리아스에게 머요할머니는 마냥 보살피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가르쳐주어야할 것도 많은, 동생 또는 아기같은 존재이다. 엘리아스가 하는 욕까지도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하며 재미있어하는 머요할머니는 천진난만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각자의 일로 아이랑은 전혀 놀아줄 시간을 못 내는, 아니 안 내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엘리아스는 고립되어있다. 외로워하는 엘리아스는 다른 친구들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4명이나 있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단 한 명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애 앞에 어느 날 등장한 것은 노오란 알이다. 그 것을 깨고 나온 것은 새가 아니라 할머니. 하지만 이 할머니는 새처럼 작지만 분명히 날 수 있는 날개를 등에 달고 있다. 이 날개가 엘리아스의 기분을 날 수 있게 하고 엄마 아빠의 생활까지도 다른 방향으로 날 수 있게 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머요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날기 연습을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할머니의 비행은 날로 익숙해진다. 어느 주말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고 학생들 모두 직접 만들고 그린 연으로 대회에 참가해야한다. 못 생긴 연이라도 좋다. 엘리아스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나는 연을 꿈꾸지만, 연은 좀처럼 날아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런데 연이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뭇살을 잡고 끌어올리고 있는 머요할머니의 파란앞치마를 본 사람은 엘리아스뿐이다.
자신이 그렇게 노심초사 돌보았던 머요할머니는 자신의 못 생긴 연을 날아올려주는 바람같은 존재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흩날리는 머릿결로도 느껴지는 바람. 잡을 순 없지만 코로 스미는 그 향기로 느껴지는 바람. 발걸음이 무거울 때 뒤에서 소리없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내가 아무리 날아오르려고 발버둥쳐도 바람이 그 손을 내밀어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뤄내기 힘든 것처럼, 바람은 엘리아스의 외로움과 자괴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생활을 좀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엄마 아빠는 이제 자신의 일에서 눈을 돌려 아이를 볼 줄도 알고 아이랑 느긋한 토요일 오후시간을 보낼 줄도 안다. 엘리아스는 어떤가. 머요할머니에게 퍼주었던 애정을 이제 소중한 우정으로 간직하며 대상을 기다릴 줄 알만큼 성큼 자라있다. 머요할머니는 연과 함께 저멀리 날아가버린 것이다. 엘리아스를 희열의 꼭대기에 올려놓고 그 순간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커가면서 언젠가 엘리아스가 또다시 외롭고 지치고 쓸쓸할 때면, 할머니는 엘리아스에게 남기고 간 2.5cm구두를 신으러 돌아올 것이다. "안녕~,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