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하엘 엔데의 마법 학교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4
미하엘 엔데 지음, 카트린 트로이버 그림, 유혜자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미하엘 엔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이 책을 초등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별로 재미 없었다고 말하는 아이도 여럿 있었다. 우선, 해리포터 시리즈가 연상되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그다지 극적인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연히 여행을 하게된 소원나라의 마법학교 견학체험담이라고 할까. 그곳에서 또한 우연히 알게된 머그와 말리라는 아이들이 질버 선생님에게 배우는 여러가지 마법의 과정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단지 마법에만 촛점을 두고 보는 아이들은 그저 싱거운 이야기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1995년에 내놓으면서 자신이 일관되게 말해온 진정한 바람, 진실한 마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3학년 아이들 정도의 나이에 이런 깨달음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설명을 해도 피상적으로 들릴 뿐이고 사족으로 들릴 것이다.
어른인 나의 눈으로 볼 때 이 책은 작가의 세상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속속들이 녹아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과 진정 바라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과의 사이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리가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하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게 우리네 삶의 현실이다. 사회성이라는 덕목을 우선해야함에서 생기는 자아와의 괴리감, 패배감, 열등감 그리고 그 모든 위선을 우리는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이런 의미에서, 진정 바라는 것은 정말 마법이 이루어지는 환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마법 학교에서 배워주는 마법을 거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이다.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상상'을 할 수 있어야 눈앞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전제되지 못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자신과 타인이 모두 곤란에 빠진다. 상상력의 고갈과 어설픈 상상이 낳을 수 있는 결과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물건을 다른 것을 변신시키는 마법 속에 들어있는 깊이 있는 철학은 꽤 매력적이다. 이 마법은 '마법의 다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법의 다리란 한 물건이 다른 물건과 갖고 있는 공통점을 파악해 두 물건 사이를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끈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사과는 포크다'라는 주장이 성립된다. 온 세상의 물건은 서로서로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이 진실 안에서 하나가 된다' 라는 진리가 증명된다.
가장 긴장되는 장면은 머그와 말리가 괴상하고 흉한 생물을 만든 것이다. 발은 다친 작가아저씨를 구하려고 만든 생물이 의외의 결과로 나타나고 이 생물은 머그와 말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달아난다. "모든 피조물은, 그것을 만들어낸 창조자를 변화시킨다." 삽화도 환상적이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슬픈 것은, 소원 나라를 오래도록 여행하는 동안 작가는 마법을 단 한 가지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주 시시한 마법조차도 말이다. 이유는 소원나라 사람은 아무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법 학교는 소원을 비는 힘이 아주 강한, 특별한 아이들만 다닐 수 있단다. 무엇인가를 아주 오랫동안 가슴 깊이 소원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학교에 입학할 자격은 고사하고 소원 나라 사람조차 되지 못하는 건, 작가나 나나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슬픈거인'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