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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평등한 퀴리부부
에브 퀴리 지음, 장진영 옮김 / 동서고금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깊고 강렬한 눈빛을 한참 들여다본다. 뭐라할 수 없는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두꺼운 이 한권의 전기를 다 읽고 난 후, 표지의 퀴리부인과 한참을 마주했다. 한 여인의 길지 않은 생에 각인된 빛나는 이야기들을 담고있기에 이 책의 두께는 오히려 부족할 지도 모른다.
방사능 신물질 라듐의 발견자, 노벨 화학상과 노벨 물리학상 두차례 수여. 이것이 퀴리부인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두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기술한 이 전기는, 한 가녀린 여인의 타고난 숭고한 정신이 어떻게 위대한 업적으로 인류의 역사에 승화되었는가를 담담하면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마리 스클로도프스카의 타고난 고집과 소박함 그리고 천재성은 식민지 조국과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묻혀있는듯, 마리 스스로도 남들에게 표를 내지않는다. 무엇보다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와 진한 형제애는 자신의 지적욕구를 언니를 위해 희생하며 비굴한 생활을 견디는 고통을 감내하게 한다. 17세의 마리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불의에 대항하려는 실증적 이상주의자가 된다. 향학열에에 불타던 이 소녀는 '보다 나은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인류 전체의 생활 속에서 자기 책임의 몫을 자각하고, 자신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40년 후 마리의 글로 회상되고 있다.
문학에도 상당히 애정이 있었던 마리는 결국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부분은 과학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수줍어하면서도 용의주도하고 강한 그녀의 성품은 파리에서의 새 삶이 가져다주는 온갖 어려움 앞에서도 쉽게 굴하는 법이 없다.
남편 피엘과의 만남은 '특별한 애정, 아니 어쩌면 신비한 예감이면서 동시에 한 팀이 되고자 하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의 천재성을 직관하였고 공동의 노력으로 위대한 발견을 한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이 훌륭한 공동연구에서 서로에게 주어진 부분이 완벽하게 평등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명확한 증거'로, '훗날 남편을 잃은 후에도 새로운 과학이 주는 부담에 굴하지 않고 책임감있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그 발견을 꽃피웠다는 점'을 들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마차사고로 자유사상가이자 외로운 천재인 피엘을 잃고서도 마리 퀴리는 두 딸의 어머니로서 자애로움과 견실한 삶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여성 최초의 소르본대학 교수이자, 더 훗날 파리 과학학사원의 최초의 여성이 된다. 타고난 겸손과 정확함을 미덕으로 연구원생들을 지도한다.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묻고 채찍질하면서 자신의 건강따윈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녀가 보인 제 2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인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놀랍다. 자신의 안전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한정의 사랑과 책임감으로 부상자들을 상냥하게 대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했다. 몇 시간씩, 때로는 며칠씩 걸려 부상자를 위해 어두운 방사선실에서 지냈다. 그러나 이미 쇠약해진 그녀의 몸에 끼치는 X선이나 라듐의 '잔혹하고 혹독한 영향'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훗날 오랜 세월 노출된 방사선의 폐해로 세상을 뜨게 되는 날까지 오직 인류에 공헌하는 길에만 눈을 밝혔다. 그녀의 많은 미덕중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부분이었다.
명예나 부의 축적과는 친해질 수 없는 천성적인 소박함은, 전 생애에 일관된 불타던 향학열, 특히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더 뜨겁게 했다. 그것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숭고함이었다.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피로를 주는 자들에게 한마리 퀴리의 단호한 말은 무미건조하기보다 오히려 감동적이다.
'과학에서는 오로지 물질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하는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인간, 마리는 그 이름 이상의 고귀함으로 내 마음에 아로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