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1- 26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세상을 두루 접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놀랄 만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끼리 엉겨붙고 들러붙어 있어, 시야가 우리네 코 길이로 짧아져 버렸습니다. 어떤 이가 소크라테스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라고 대답하지 않고 "세상"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보다 높고도 너른 사고를 지닌 그는 세계를 자기 도시로 품고, 자기 발밑밖에는 보지 않는 우리와 달리 인류 전체에 자신의 삶과 교분과 애정을 주었습니다. - P292

선생은 학생에게 진정한 덕의 가치와 숭고함은 그 실행이 용이하고 유용하고 즐거운 데 있고, 힘든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어른이나 아이나, 세련된 자들이나 순진한 자들이나 행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절제는 덕의 도구이지 덕의 힘이 아닙니다.
공덕이 가장 총애하는 사람, 소크라테스는 힘이 드는 것은 기꺼이 피하고 덕의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길에 자기를 맡겨 두었습니다. 덕은 인간적인 쾌락의 유모입니다. 덕은 인간적인 쾌락을 정당화함으로써 쾌락을 확실하고 순수하게 만듭니다. 쾌락을 조절함으로써, 쾌락이 지닌 싱싱함과 풍미를 유지시킵니다. 덕은 자기가 거부하는 쾌락을 잘라내 버림으로써, 남겨 준 쾌락에 더 예민해지게 만듭니다. 게다가 덕은 천성이 원하는 쾌락은 무엇이나 풍성하게, 물리도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술꾼을 만취 전에 멈추게 하고, 포식가를 소화불량 전에 멈추게 하고, 호색가를 대머리가 되기전에 멈추게 하는 섭생을 쾌락의 적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포만할 때까지 누리게 해 주지요. - P301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린아이의 교육에선 욕구와 열의를 북돋워 주는 것만 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책을 잔뜩 짊어진 당나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매질을 해서 학문을 잔뜩 우겨 넣은 주머니를 아이들에게 주고 잘 간수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문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아 두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과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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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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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카드를 어떻게 섞고 “발췌하고 채취하는지”에 따라 운명의 지도가 달라질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 사주 풀이에 관심이 집중한다면 이 책을 봐서는 모자람이 크게 느껴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기본 작동원리만 알면 된다는 식이면 충분히 좋다.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 줄 운명을 찾기 위해 점집을 찾거나 사주를 보는 식이면 그게 바로 미신이라는 저자의 강의 말씀은 뒷장 QR코드로 연결된 영상강의에서 들었다. 개운에 꽂히지 말라. 개운은 막힌 운을 트는 것이지 운을 바꾼다는 게 아니다. 개운의 종류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라. 운신의 방법 두 가지는 비전과 일상.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하늘의 별과 별 사이의 지점을 쳐다보는 존재로서의 나. 그걸 탐구하라. 신영복 선생의 감옥 이야기 등등 호쾌하고 거침없이, 여전하다.
“지혜”를 위해 공부해야 삶이 나아진다는 건 진리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생각해보라. 당신이 명확하게 기억하는것, 자신이 실제로 거기에 있는 듯이 보고 느끼고 나아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것, 어쨌거나 당신은 당시에 실제로 거기에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에 깜짝 놀랄 일이 있다.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당신의 몸에 있는 원자는 단 하나도 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거기에 없었다. (………) 물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흐르며 순간적으로 모여서 당신이 된다. 따라서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당신이 아니다. 그것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쭈뼛 일어서게 하지 않는다면, 그럴 때까지 다시 읽어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 570쪽) - P142

그래서 ‘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과 의식의 상태에 있는지를. 가장 간단하고도 근본적인 훈련은 호흡관찰이다. 호흡을 면밀히 관찰하노라면 온갖 잡념과 망상이 흘러가는데, 그것들을 잘 보기만 해도 무차별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이치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집중이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뜻으로 ‘지금, 여기‘와의 완벽한 일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집중력 자체가 자신의 행위와 말과 생각을 통찰하는 ‘마음의 근육‘에 다름 아니다. - P146

이어지는 또 하나의 전도. 상처라는 담론 속에서 자신은 결코 주체가 아니다. 상처를 입힌 자들만 클로즈업된다. 나는 그저 ‘당했을 뿐이다. 얼떨결에, 난데없이! 그렇다면 이상하다. 왜 이 상처의 서사에선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걸까? 무섭고 약해서 그랬다고 한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왜 그토록 어리석었을까? 혹은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것일까? 요컨대 상처라는 담론 안에는 자신에 대한 관찰이 놀랄 만큼 빠져 있다. 그래서 그 과거는 여전히 현재에 개입하고 미래를 창조한다. 니체는 ‘양심의 가책‘ 혹은 원한감정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오래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바가 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P210

아주 간단하다. 자승자박! 자업자득! 즉, 길이든 흉이든 결국은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도 자신의 내부에 단서나 원인이 없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운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동일한 욕망과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는 리듬과 강밀도, 이것이 바로 팔자다. 해서, 팔자를 고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단서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동양사상이 내적 성찰과 통찰의 힘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데, 이렇게 말하면 대개 억울해한다. ‘왜 나만 갖고 그래? 그게 왜 내 탓이야?‘ 혹은 ‘그러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야. 나를 그렇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지, 내가 뭔 죄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번 찬찬히 따져 보자. 이런 논리는 상당히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삶에서 나를 소외시키는 방식이 아닌가.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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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예정되어 있던 부산불꽃축제가 예상대로 무기한 취소되었다. 특수를 노렸을 카페 등 손해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많은 인파로 매해 교통마비도 대단했다.
지난달도 걸음수는 없이 그냥 읽은 책만 보관해 두었다. 읽는 중인 책도 포함해 나름 작은 기록이 되네. 낮에 잠시 아파트 공원에 나가 보았다. 별로 걷지는 않았고 나무 아래 쌓인 낙엽과 햇살의 그림자를 담아 보았다.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도 수피의 결과 그림자가 달리 보인다. 지금 나의 계절도 늦가을. 좋은 계절이구나. 주말에 지리산 펜션에서 일박이일 하고 왔다던 초등 동기의 남편 부고가 갑자기 날아왔고, 매몰된 광산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주말에 교수님 출판기념회에서 넷이서 윤송하기로 되어 있어 카톡방 만들어 의논하고 내가 리더라 주도하는 것도 있다. 6분 이내로 시간을 맞추려고 음악을 고르고 완급 조절해 혼자 낭송해 보다 먹먹했다. “그는 무엇보다 만난 적도 없는 이웃의 눈물을 헤아립니다.”
내일은 애호박 넣고 수제비 끓이려고 반죽을 해서 비닐에 넣어두었다. 티비에서 가수 현미가 “보고 싶은 얼굴”을 부르고 하루하루 삶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삶은 제각각 다르고도 비슷하다.


#
고미숙의 “나의 운명 설명서”에서 적재적소에 발췌된 문장들도 의미 있다. 여기 다 옮길 순 없지만 여러 갈래로 다리가 되고 하나로 다시 모아지는 사유들을 만나 반갑다. 자신을 이해하고 종횡무진 20년째 고전공부 공동체를 이어가며 운명을 차고 나가는 저자의 시원시원한 글이 긍정에너지를 준다. 어디로 튀든 고미숙 샘 결론은 우주적 존재로 태어난 우리 몸! 몸과 하나되는 공부로서 낭송과 글쓰기! 뒷장 QR코드로 들어가면 고미숙의 영상강의로 연결된다. 강원도 집에서 촬영, 귀에 쏙 들어온다.


#
복잡한 추론 과정이 있긴 하지만 내용인즉슨 과거에서 부터 현재를 추적하지 말고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가. 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한다. 이것이 양자역학이 말하는 시간 법칙이다. 개인의 삶도 그러하다. 인생에는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 현재가 과거를 조작하고 미래를 창조한다. 지금 여기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과거가 끊임 없이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과거와 미래에 끄달리지 말고 오로지 현재 집중하라는 뜻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누구든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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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02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6권이나 읽으셨군요 ^^
오늘도 그렇고 요새 사건 사고가 많아서 참 걱정입니다 ㅜㅜ

안타깝네요. 책도 잘 못읽겠더라구요

프레이야 2022-11-02 12:18   좋아요 3 | URL
그렇네요 새파랑 님 마음이 산란하고요. 집중 좀 해야겠어요. 각자도생. 마음 잘 모으고 모두 잘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렇게 결국 방관자 입장이네요. ㅠ
 

http://bookple.aladin.co.kr/~r/feed/824193
15년전 오늘의 포스팅이라며 북플에 뜬다.
———

I‘m Nobody / Emily Dickson
11월, 무명씨의 또하루를 시작하며~
남은 두 달을 생각하며~


I‘m Nobody


Emily Dickinson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 - Nobody - too?
Then there‘s a pair of us!
Don‘t tell!
They‘d banish us - you know!


How Dreary - to be - Somebody!
How public - like a fog -
To tell your name-
the livelong June-
To an admiring bog!


--------



무명인




난 무명인입니다! 당신은요?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요!
쉿! 말하지 마세요.
쫓겨날 테니까 말이에요.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Emily Dickinson


미국 시인(1830~1886). 자연과 사랑, 청교도주의를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담은 시들을 남겼다. 평생을 칩거하며 독신으로 살았고, 죽은 후에야 그녀가 2000여편의 시를 쓴 것이 알려졌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 중




———

자꾸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속속 전해지는 뉴스와 증언들은 차마 다 보고 듣기 힘들 정도다. 이십 대가 많다보니 그 또래 부모 입장에서 차마 무슨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 년 전 가을, 지인의 부탁으로 초등학교 영어 방과후 수업을 맡은 적이 있다. 몇 달간이었지만 십인십색 아이들과 정이 들어 헤어질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월 말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그 주에는 핼러윈 특집 수업을 하였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날의 의미는 제쳐두고 전주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은 사탕을 받고 소품을 만들어 분장하고 깔깔거렸다. 그게 다였다. 나는 아이들 구미에 맞게 분위기를 맞춰 핼러윈데이와 연결되는 단어카드와 소품들, 간식을 준비하고 재밌는 영상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그 모든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했을 것이다. 놀이수업이었다고 해도 그마저 주입식이었다. 그 아이들은 몇 년 후 이태원에 놀러 갈 수도 있다. 이태원에 간 청년들은 예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의미도 모를 수업을 받았을 아이들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 유치원 때도 그런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남은 소품 중 주황색 호박 플라스틱 바구니가 지금 우리 집에도 하나 굴러다닌다. 그것과 똑같은 게 쓰레기 나뒹구는 그 거리 구석에 오두커니 남아 있는 뉴스 화면을 보았다.
내 아이가 그곳에 없었다는 것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참담하다. 국민으로서 분노한다. 유실문 센터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손길을 기다리는 짓밟힌 신발과 가방, 에어팟과 안경 들, 팔 년 전의 아우성이 환청처럼 들린다. 안전불감증과 무책임, 천박한 인식과 이기주의, 비방과 혐오가 만연한 나라에서 눈을 감고 다시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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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1-01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작가님 글 참 좋아했었는데 ㅠㅠ 그리운 작가님입니다. 저는 뉴스를 못 보겠더라고요. 그냥 아무렇지 않은척 일상을 살아내는게 참 힘든 세월입니다.

프레이야 2022-11-01 11:49   좋아요 2 | URL
네. 아무렇지 않은 척할 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어요. 팔년전의 트라우마가 당시 한달은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도 오래도록.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장영희 샘 글 좋아합니다. 김점선 화가의 그림과 잘 어울리고 쾌활함이 있지요. 두 달 남았네요 올해가. 날마다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명복을 빌며… _()_

새파랑 2022-11-0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15년전이라니 까마득하네요 ~ 프레이야님 북플의 산증인이십니다~!!

저도 이젠 뉴스를 안보게 되더라구요 ㅜㅜ

프레이야 2022-11-01 21:06   좋아요 1 | URL
가끔 20년 전의 글이 뜨면 저도 놀라네요. 의인들 이야기는 그와중에 또 마음을 울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1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작가님의 글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이... 지금은 다 정리해서 없어서 아쉽지만^^;
저는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데 특히 어제는 많이 힘들더라구요. 감정적으로 바라보려니 더 힘들어서 지금은 이성을 가동중입니다.

프레이야 2022-11-01 21:10   좋아요 1 | URL
장영희 선생님의 온기 있고 긍정적인 글이 이런 때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네요. 감정적으론 어제보다는 오늘 좀 낫습니다. 마음이나마 모두 모아 드리고 싶습니다. 다 같은 마음이겠지요.
 

10년 전 읽었던 기억이 아스름하다. 개정판이 나왔다. 10년이 흘러 계절이 훅 바뀌는 시점에서 다시 읽는다. 사주명리학과 주역에 관심이 많고 눈이 맑은 자칭 선무당 친구에게 선물해야겠다.


# 차서 - 시간적 순차와 공간적 질서를 오버랩시킨 개념이 곧 ‘차서‘다. 예컨대, 벚꽃이 피면 봄이다. 그때 봄이란 벚꽃이라는 공간적 표지와 벚꽃이 필 수 있는 절기라는 시간의 흐름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차서라고 한다. (51)

시작이 있으면 중간이 있고, 그다음엔 끝이 있다. 시작과 중간과 끝, 시간적 순서는 반드시 공간적 질서와 함께한다. 시간은 공간의 다른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공간의 ‘휘어짐‘이고 공간은 시간의 ‘주름‘이다. 시공간의 리듬, 그것이 곧 ‘차서‘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에는 차서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차서가. - P50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이 차서를 어그러뜨리는 체제이다. 순환과 비움이 아니라, 소유와 증식만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자기에 대한 존중감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가 된 다음에, 먹고살 만해진 다음에도 계속 부를 증식하고자 한다면 그건 바보거나 광인이다. 자연스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를 일구고 나면 선비를 기르기 위해 삼대가 적선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지혜다. 뒤에서 배울 터이지만 재성(재물운)이 관성(관)과 인성(명예와 공부운)으로 순환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는 반드시 정신의 가치와 함께 가야 한다는 걸, 그래야 쉬임 없이 만물을 낳을 수 있다는 걸 터득했던 셈이다. "태양은 조건 없이 베푼다"(조르주 바타유) 혹은 "베푸는 것은 하느님과 같은 일이고/쌓아 두는 것은 지옥이라네" (비노바 바베) 등의 경구도 같은 이치의 소산이다. - P61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문명의 폭주 속에서 나를 잃어버렸다. 나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맞으려나. 감정, 자의식, 스펙, 대체 무엇이 ‘나‘인가? 그 어떤 것도 허망할 따름이다. 그래서 괴롭고 아프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일찍이 자신에 대해서 탐구해 본 적이 없었다.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어 이방인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해하고 혼동할 수밖에없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프리드리히 니체, 「서문」, 『도덕의 계보』, 청하, 1982, 21~22쪽)
결국 자신과의 소외는 자연에 대한 무지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 - P63

굴드는 말했다. 과학이란 "자료와 편견 사이의 대화"라고. 과학이 이럴진대 운명학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음양오행은 하나의 매트릭스다. 음양오행을 터득하면 세상만사가 다 보일 것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딱! 자기의 내공만큼만 볼 수 있다. 또 그만큼만 삶의 현장에 개입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개입할 수 있는 그만큼이 곧 운이고 명이다. 그래서 꼭 도사가 되거나 심령술사가 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용법이고 발심이다. 내 운명을 우주적 인드라망 속에서 보겠다고 하는. 그 명을 오로지 나의 힘으로 운전해보겠다고 하는. - P66

나의 욕망은 곧 사회적 인과의 결과물이다. 나의 질병은 곧 시대적 징후의 산물이다. 나의 욕망, 나의 질병을 탐구하고 해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자들에게 그것을 전파하고 순환시킬 수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다. 한꺼번에 다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그것은 이미 그 안에 사람들을 도구화하고 자기를 소외시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너무 협소하다고? 그렇지 않다! 어떤 개인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의 존재성 자체가 사회적, 우주적 인연의 산물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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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 무당 친구! ㅎㅎ
그 친구는 작가인 프레이야님을 친구로 ^^
[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에는 차서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차서가]

11월! 프레이야님
바쁘게 개정판 준비 하고 계실지도 ^^

프레이야 2022-11-02 00:49   좋아요 0 | URL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일주론으로 빠지는… 11월이라뇨 시간 참 잘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