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_ 자기만의 방(1929-1935)
이 평전은 많은 부분 보부아르의 회고록과 일기를 참고해서 쓰고 있다. 회고록에 기술하지 않았거나 완곡하게 쓴 부분은 일기장에서 자세히 언급된 경우가 많았다. 안에서 보는 나와 밖에서 보는 나, 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못했던 게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인다. 일기장도 백 퍼센트 순수한 나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세간의 추측과 오해가 오히려 당연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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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들을 봐주지 않기로 평생 정평이 나 있었던 보부아르가 교사로 일하며 이 시기에 쓴 원고는 아무것도 출간되지 않았지만 어떤 글을 쓰든 “타자의 신기루” 그리고 정직 자유 사랑의 관계라는 늘 똑같은 주제로 돌아왔다. 그들은 열렬히 대화했고 눈물과 결핍, 오해와 이해로 점철했으며 감정에서든 글에서든 서로 날카로운 조언과 비평을 반겼다. 사르트르가 편지에 썼듯 “일심동체”적 믿음이 있었다.
2년의 계약을 깨고, 헤어져 있는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사르트르가 결혼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보부아르는 당혹스러웠고 거절했다. 이건 보부아르를 위해서였는데 영리한 그녀는 계산을 했다. 부르조아 제도에 대한 생각을 바꾼 유일한 이유는 출신문제. 아이를 남는 것은 “아무 목적도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는 세계 인구의 증식으로 보였다.” 계약 기간을 늘리고 자주 만나는 걸로 했다. 이 시기, 서로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두 사람이 받아들이는 생의 의미는 좀 달랐다. 마르세유에서의 이 때를 보부아르는 괜찮아 하면서도 가장 불행해 했다. 사르트르는 우울이 찾아왔다.
보부아르는 이미 알고 있던, 후설의 현상학에 감명받은 사르트르는 철학을 일상으로 돌려놓고 경험을 쓰는 데에 뿌리가 되게 하고 싶었다. 이는 “생생한 현실”을 쓰고 싶었던 보부아르의 생각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사르트르는 경험을 살아 내는 대신 글로 쓰려 했고 그 점이 Beauvoir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에 대한,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한” 충실성에 거슬렸다. 사르트르는 세계를 관찰과 반응을 너머 언어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보부아르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런던을 고작 12일 여행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게 보부아르 생각이었다.
보부아르는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고 버지니아 울프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 사르트르가 우연성에 대한 철학적 집필로 고심할 때 소설로 써보길 권했고 탐정소설을 좋아한 사르트르는 자신을 앙투안 로캉탱에 투영하여, 르아브르를 배경으로, 철학적 질문을 담은 소설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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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부아르의 비판은 상세하고 깐깐했지만 그게 바로 사르트르가 ‘변함 없이’ 그녀의 조언을 수용하는 이유였다. “(172)
시간 나는 대로 여행을 함께 다닌 두 사람. 11월의 르아브르 해변 카페에 이십 대 두 사람이 앉았다. 그 자리에서 절대자를 향한 오래된 갈망과 지적 욕망과 삶의 노력이 속상해 “한바탕 눈물 쏟는” 보부아르를 상상해본다. (아마도 바다는 흐렸을 것이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잠시 가닿았던 르아브르 해변은 7월이었어도 흐렸다)
다음날에도 보부아르는 심란해 사르트르와 논쟁을 벌이고… 격론하고 상대에게 자기주장을 직설하면서도 금이 가지 않는 관계 그런 타자와의 관계라면 말년에 최고의 관계였다고 회고하고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사르트르는 모르겠지만 보부아르는 그가 자기 생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사르트르 사후 보부아르는 ‘작별의 의식’을 쓰고 사르트르 삶의 증인이 된 셈이다. (이 책 표지 참 깔끔하다. 전에 읽다가 접어두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야겠다)
감정적 결핍에는 서로 같은 거리로 더 깊이 다가가지 못한 면도 있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아직은 이십 대) 상대의 기호에 자신을 맞출 필요도 예쁘게 보일 필요성도 느낄 이유 따위 없이,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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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보부아르의 일기에 벌써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에게 명령한다. “보부아르 양이 되지 마. 내가 되자. 외부에서 부과하는 목표, 충족해야 하는 사회적 틀에 연연하지마. 나에게 작용할 것이 작용하면 그걸로 다 된거야. “ -140쪽
르아브르 해변에서의 논쟁에 “사르트르는 술과 눈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없다면서 그녀가 형이상학이 아니라 술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술이 장막을 걷어 진실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172)”
1935년 2월 사르트르가 환각증과 우울증을 인정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철학대로라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니까 광기도 본인이 미쳤다고 믿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고 냉담하게 지적했다. (173)”
막상막하 천생연분.
- 맨아래 사진은 2016년 칠월 초 흐린 르아브르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