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거인 - 문화마당 4-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최윤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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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윤정의 글은 겸손하지만 단호하다. 나름의 참신한 시각을 꼭 붙잡고 시종일관 그 시선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에 이어 두번째 어린이책 비평서라고 할 수 있는 <슬픈 거인>이라는 제목 자체가 나의 공감을 충분히 불러 일으킨다.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주고 싶은 생각이 어린이 책을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동무로 선택하게된 동기도 바슷하다고 할까. 작가의 목소리 중, 페미니즘에 대한 것은 커가는 나의 딸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그런 바람직한 책들을 손에 쥐어주며. 책울 선별하여 주고픈 나의 마음을 무색하게 한 것은 프랑스의 경우였다. 그곳 도서관에는 권장도서 목록같은 건 애당초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골라 읽는다고 한다. 권장도서 목록에라도 의존하여 좋은 책을 골라 주려는 우리네에 비하면, 너무 부러운 도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완역이 아닌 번역 작품이 얼마나 위험한 사탕 발림인가는 구체적 사례들을 짚어가며 그 유해성을 폭로한다. 명작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만 보려는 무지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독후감상문이나 내용요약등의 책의 언어화를 채근하곤 했던 내가 한방 야단을 맞은 셈이다. 아이들이 주위의 말을 듣기만 하다 어느 순간 저장된 언어들이 입을 통하여 쏟아져 나오듯, 독서와 독후활동도 그러한 관계로 본다. 정말 '독서지도'의 어려움과 위험은 여기에 있다고 피력해 놓은 마지막 장의 견해는 깊이 공감이 되면서, 또 다시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다음 목소리가 기대된다. 좀더 미래 지향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어린이 책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어린이 책 한 권을 들고 앉는다. 동화 작가들이 어린이에게 좋은 선물 하나 한다는 생각으로 동화를 써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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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아저씨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4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4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 / 마루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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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국적인 폭설로 피해가 크다는 뉴스를 접해도, 이 곳 부산은 눈이 오리라 생각에 넣지도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꿈이 아니었어요. 13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그것도 전화 한 통을 받고서야 베란다 밖을 내다 보니... 그야말로 은세계...하늘에선 아직도 솜뭉치를 뜯어 날리는 것 같은 하얀 눈이 포근포근 내려 쌓이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은 벌써 나가서 눈사람 만들거라며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채 신발을 신고 있고요. 단단히 끼어 입히고 나가, 눈썰매도 타고 눈뭉치도 만들고 사진도 찍어주고... 볼이 바알갛게 얼어서 집에 들어와 <눈사람 아저씨>를 펴들고 아이들이랑 앉았어요.

<눈사람 아저씨>는 글자없는 그림책이예요. 만화 컷처럼 나눈, 크고 작은 네모 칸의 그림이 장면마다 눈을 뗄 수 없게 하지요. 마치 만화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글이 없으니까 그림에 푹 빠질 수 있는 걸 더 허용하기도 하구요. '글자가 없어서 참 좋다' 다 보고 난 후 8살 아이가 한 말이예요. 눈사람 아저씨의 손을 잡고 주인공 아이가 밤하늘을 나는 장면은 환상적이죠. 3살 작은 아이는 이 장면에서 눈을 못 떼요. 밤새 눈사람 아저씨가 추운데 밖에서 잘 있나 걱정되어 내다 보는 아이의 마음이 곱기도 하지요.

하루종일 눈과 함께 노느라 곤했던지 그날 밤 잠든 아이들은 코까지 골더군요. 그 날, '눈사람 아저씨'를 만들진 못했지만, 꿈에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또 눈사람 아저씨랑 어떤 신나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 엷은 미소도 띄우고 있었구요. '엄마 눈이 나한테로 막 뛰어와요.' 작은 아이가 낮에 제게 한 말이예요. 시인같은 고 작은 입에 살짝 입맞추고 <눈사람 아저씨>를 머리맡에 가만히 놓아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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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9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황의방 옮김 / 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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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삼형제'? 다 아는 얘긴데 하고 넘어가면 아주 중요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실수를 하는겁니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여태껏 돼지 삼형제의 입장에선만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던 그 옛날의 신문 기사가 늑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내용이었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책의 앞뒤 표지는 신문 기사로 온통 덮혀있구요. 이야기를 다 듣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늑대가 '커다랗고 고약한' 성품이 아니지요.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고 친구에게 설탕을 나누어 줄 줄도 아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런데, 돼지 삼형제는 늑대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문도 안 열어주고 늑대와 할머니에게 좋지 않은 말까지 해버리죠. 하필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돼지가 부른 경찰들이 달려오고, 감기에 걸려 재채기가 나와 허술하게 지어놓은 돼지의 집이 날아가버리는 장면을 보게된 경찰과 기자들은 독자의 흥미를 끄는 쪽으로만 기사를 내 보냅니다. 늑대의 진짜 사정과 진심을 들어 줄 귀는 아무 곳에도 없지요.

옛이야기를 재창작하여, 기발하게 구성해 놓은 발상과 그림을 너무 재미있어하며 웃다가 끝에 가면 '아하!!'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겁니다. 진실 앞에 눈 감아 버리고 왜곡되거나 표면적인 사실만으로 채워진 신문기사를 보고살아온 우리 세대가 아닌가요. 지금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에 시선을 줄 때는, 입장과 각도를 달리 해가며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려는 노력과 안목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들이 책을 접할 때도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 그림책은, 그래서 연령층도 그 폭이 넓어도 되게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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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오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양장) 비룡소의 그림동화 51
낸시 태퍼리 글 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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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엮어갈 수 있기에 충분한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인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 아침, 호랑나비를 좇아 무작정 보금자리를 벗어나 따라나선 아기 오리는 걱정하는 형제 오리들과 엄마 오리를 요리조리 따돌리며(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연못을 뱅뱅 돌아 나비만 보고 간다. 연꽃 위에서, 나무 둥지 뒤에서, 돌 뒤에서, 물풀 사이에서, 다리 아래에서도 용케 눈에 띄지 않던 아기 오리는 거북이 눈에 띄어 엄마 오리에게 돌아온다. 일곱 형제 오리들 뒤를 따르는 아기 오리는 여전히 목을 빼고 하늘을 쳐다보며 뒤를 좇아 나는호랑나비에 넋을 잃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사실적이면서 친근한 느낌의 동물들과 배경이 인상적이다. '아기 오리야, 어딨니?' 하며 한 장 한 장에서 아기 오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세살바기 아이는 아주 재미있어 했다. 손가락을 짚어가며 오리들을 세어 보는 것도 덤으로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여러 동물들로 구경할 수도 있다.

마지막 장면은 참 편안하고 포근하다. 어둠이 내린 연못가 보금자리에 엄마오리와 아기 오리들이 곤히 잠들어 있다. 푸르스름한 하늘엔 작은 별들, 날벌레들이 여린 풀들 위를 날아다니고, 개구리 한마리가 오리 가족을 부러운 듯 지켜보고 앉았다. 오늘 하루 아기를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다 이제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잠을 청하는 엄마와 형제들. 그리고 호기심으로 돌아다녀 피곤한 아기 오리도 따뜻한 엄마 품에서 이제 단잠을 잔다. 우리 아이도 하품을 하네요. 오늘 하루도 잘 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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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곰의 가을 나들이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6
데지마 게이자부로 글 그림, 정근 옮김 / 보림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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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많은 비중을 두고 그림책을 고르게 되는데, 이런 그림도 있구나 하고,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목판화로 이렇게 세밀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그려내다니요. 이 책의 곰은 흔히 그림책에서 연상하기 쉬운 귀엽고 순한 인상이 아닙니다. 화려하면서 힘이 느껴지는 선과 색의 조화가 살아있는 것 같은 곰과 물고기의 형체와 함께 강한 인상으로 박힙니다.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나선 연어잡이. 아기곰에게는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일까요? 노란 달빛이 흘러가는 강물에 비쳐 아른거립니다. 강가에 앉아 연어떼가 오기를 기다리는 아기곰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기까지 합니다. 엄마곰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아기곰은 자기 힘으로 물고기를 물고 물에서 나옵니다.

- 자기 힘으로 잡은 연어 맛이란! -

이제는 아주 자신감을 얻은 '씩씩한' 아기곰은 강물에 반짝이는 달빛까지 커다란 물고기로 보입니다. 달빛 어린 강물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아기곰을 보세요. 살아있는 것 같아요. 아기곰의 꿈에서도 정말 커다란 물고기가 별처럼 반짝이며 밤하늘을 유유히 헤엄쳐 갑니다.

하늘도 별도 달도 강물도 모두 하나가 되어 아기곰의 가을 나들이를 멋진 경험으로 만들어 줍니다. 아이와 함께 자연 속에서 이런 류의 나들이 한 번 어떤가요? 자연과 하나 되면서 자연에서 힘을 배우는 아이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요! 이 책의 목판화처럼 그렇게 힘이 느껴지면서도 간결하고, 무거운 듯 하면서도 섬세하고, 장중한 것 같으면서 화려한, 개성있는 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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