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에 무얼 심지?
최영순 지음 / 해토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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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좋아하는 주제였다. 선과 마음 공부. 그걸 쉽게 만화로 그릴 수 있는 천재가 나올 수 있으려나.. 하는 의아한 기대. 그러나 결론은, 아직은 실망. 이었다.

마음 공부에 있어서, 늘 깨어서 나를 살피고 나의 욕심 주머니를 비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으랴마는, 책을 만날때마다 더 좋은 책을 만나고 싶은 욕심은 줄이기 어렵다. 그게 마음 공부 덜 된 내 모습이고, 결국은 아직 어리석음이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아름답고, 술은 반쯤 취했을 때 즐겁다. 난 늘 술을 마시면서도 반쯤 취했을 때의 즐거움을 취하지 못했던 걸 이제야 반성한다.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나서의 그 막막한 자괴감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이제야 그 무명을 알게 된 거다. 알고 있음을 넘어서는 깨달음의 순간, 나는 기쁘다.

술집여자와 스님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수도를 하면서도 늘 아름다운 여인, 쾌락... 에 마음을 빼앗겼던 스님보다도, 환락의 술집에서도 늘 수도와 진리를 우러렀던 여인. 결국 중요한 건 어디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이다.

석공 작품의 눈과 코. 석공은 돌을 다듬으면서 코는 넉넉하고 눈은 조그맣게 시작한다. 코는 줄여가야 하고 눈은 키워가야 하므로. 코를 늘리거나 눈을 줄일 수 없는 일이므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되는 일도 마찬가지리라. 사람의 재질을 잘 살펴 키울 부분과 줄일 부분을 미리 생각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2월이다. 새로 만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올해는 좀 넉넉하게 품어줘야지 하고 늘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상처만 주진 않았던지... 올해는... 해 본다. 다시 한 번.

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의 약한 마음과, 나의 잡다한 욕망과, 나의 추잡한 인간사를 늘 경계해야할 경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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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류시화.정채봉 엮음 / 샘터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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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샘터라는 책이 있었다. 지금의 좋은 생각 같은 류의 책. 거기 실린 글들처럼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책이다. 그래서 작은 이야기라고 부른 모양이다.

사람들이 삶이 애절해 보일 때, 거긴 죽음이 항상 붙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더 이상 해 줄게 없을 때, 남은 이는 글을 쓴다. 그 노래는 애절해서 절창이다.

더 애절한 노래는 우리를 남겨두고 가는 이들의 글이다. 이런 글은 아무리 짧아도 우리를 짠하게 한다. 우리의 삶의 시간들이 죽음의 시간들에 조금씩 점거당할 때, 우리는 나 자신의 진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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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4-04-1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도서관 한자리를 차지하고 한달에 한번씩 바뀝니다.
제가 샘터 애독자 거든요..... 거기서 이해인수녀님, 정채봉님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글샘 2004-04-2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세실님.
아직도 샘터가 나오는군요.
저는 샘터란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대학 시절 우리 사범대 건물 뒤쪽의 '샘터'가 있었고,
이형기의 낙화란 시에 보면 마지막에
샘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도 사랑한답니다.
이해인 수녀님, 정채봉 님의 글들도 샘터란 말에 어울리게 잔잔하고 달콤하고요.
반가웠습니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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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그의 시대를 상실의 시대라고 한다. 그가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 자아의 상실? 목적의 상실? 희망의... 즐거움의... 낭만의... 순수함의...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상실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싫어한 가장 큰 이유는 한창 하루키가 유행이던 시절, 그의 날개잃은 새라는 장편을 읽었는데, 정말 짜증나는 환상과 몽상과 공상과 정신분열적인 소설이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읽으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정말 지겹게도 오래 읽었다. 바빠서 화장실에서 하루 열 페이지 정도 읽는 날도 있어서 그랬지만, 역시 나는 하루키가 싫었다. 그래도 다 읽은 건, 학생들이 종종 이 책의 독후감을 썼기 때문에, 정말 지도의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일본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볼 순 없어서) 개인적 성향에 염증을 느꼈다. 성적인 집착, 변태성욕적 고착, 퇴행적 추상적 사고, 파편화되고 고립된 자아. 그런 것이 그의 말들에서 곳곳에 배어있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친구의 죽음에서부터 허무를 끌어내어,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다. 그저 실망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며 미도리에게 털어놓는 파편적 인간상으로 전개되다가,

'우리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신분열적 자아의 반영을 보이면서,

'나는 내가 이 기묘한 혹성 위에서 삶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엇인가 이상한 감동을 느낀다'며 객관화된 거울 속에 비친 굴절된 나를 바라보더니,

'인생은 비스킷통,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된다.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인생론으로 마감한다.

그가 바라본 인생은 이렇게 부스럭거리고 가벼운 비스킷이기에(시쳇말로 쿨~~한) 한없이 외로워보이면서도 주변의 죽음과 성적 욕구들과 제자리에 놓이지 못한 것 처럼 보이는 고장난(out of order) 인생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난 그가 별로 상실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엔 별로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순수, 희망, 꿈, 목적, 즐거움, 아스라한 환희와 희열감, 성취감... 이런 것들은 인간의 존재와 역사에 본래 부재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이런 것들을 '추상명사'라고 부른다. 추상명사는 결국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이란 뜻이니까.

쿨하게 가슴은 뜨겁게... 하고 노래부르던 어느 가수의 노래가 우리 가슴을 싸늘하게 찍어 내리는 이유는 예전처럼 착각하고 살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 주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잃을 것이 없는 것이 인간인데, 지금 우린 잃고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 백년 전 사람들도, 천년 전 사람들도, 아니 그 이전의 사람들도 - 모두 상실감과 영원한 노스탤지어(향수)의 손수건 한 장씩은 가슴에 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백년간의 고독은 결국 세대를 이어 되풀이되던 것이기에.

하루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판기 커피를 맛있게 감상하다가 바로 커핏잔을 구겨버리는 모습이 떠오르며 입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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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2004-03-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확하게 짚어 내고 있습니다. 저는 상실의 시대를 읽지 않았지만, 인간이 원래 상실할 것이 없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원래 텅빈 가슴을, 텅 빈 채로 이미 완성되었음을,
보는 지혜가 "상실"되었을 뿐이라고 봅니다.

sayonara 2004-04-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줄이 꼭 저를 보고 하신 말씀 같네요.
날카롭고 독특하고, 잡지나 신문의 구태의연한 서평에서는 읽을 수 없는 소중한 글이었습니다.
 
즉흥연기 - 연기와 숨어있는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
키스 존스톤 지음, 이민아 옮김 / 지호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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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하나 더 주고 싶은 책을 하나 만났다. 어디서 이 책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긍정했고, 기뻤다. 지음이란 말이 있다.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음이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연극의 즉흥 연기를 위한 안내서이면서도, 인생의 안내서, 인생이란 연극같은 게임의 법칙을 이해시키는 심리학 지침서라고도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읽어보아야 안다. 이 책은 연극에 관련된 책으로만은 읽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 이유는 작가의 사고가 창의력 덩어리로 뭉쳐있고, 정말 열린 사고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왜 예술가들은, 진정 열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이코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행하는 의사 소통 과정을 다른 사람들은 낯설어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책에서 지위 거래 놀이만 읽어 보아도, 세상 사는 처세에, 그리고 특히 남을 가르치거나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많은 직업들에 큰 교훈을 줄 것이다.

난 그의 열린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우리 닫힌 교실을 맨날 보면서 갑갑했던 나의 시야를 툭 틔워주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던 것이다. 내가 지난 2년간 연극부를 맡으면서 느꼈던 경이로운 체험의 원인들을 이제야 원리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왜 연극부 아이들은 맨날 문제아인데도 아름다웠는지를...

------- 나는 그의 이런 말들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 여기에 기록한다. -------

예술이란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이며 어른이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교사는 아이들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시범을 보여주어서도 안 되며 이것은 옳다, 저것은 나쁘다 등등 가치 판단을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믿었다.(27쪽)

학생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학생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경험하게 하느냐가 교사의 재능인 것이다.(28)

창의력이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한 아이들을 미워했다. 아이가 창조적이면 다루기가 더 어려울 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아이를 미워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29)

죽은 듯이 기가 죽어 있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이 아닌 다른 것을 요구하면 이 아이들이 갑자기 빛이 나면서 똑똑하게 보인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30)

대부분의 사람은 사춘기 때 자기 재능을 잃어 버린다. 나는 차츰 어린이가 미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발육 불능 어린이라고 생각한다.(39)

토론에서 나온 생각치고 기발한 것은 없다... 최상의 논쟁은 평론가의 재능을 보여 줄 수는 있어도 그런 데서 나오는 해결책 중에 탁월한 것은 없다.(40)

(44쪽의 경험은 연극을 해본 사람 아니면 전혀 모른다.)

많은 교사가 몇 명의 학생한테만 눈길을 집중시키곤 하는데, 이러한 행동은 반 전체의 정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48)

ㅇㅇㅇ 선생님은 전부 다 좋아했고 벌을 주지 않고, 훌륭하게 기강을 잡으면서도 매우 인간적이었다. 그 선생님은 우리한테 장난을 치다가는 이내 수수께끼같은 평온에 젖어들었다. 길에서 보면 꼿꼿하지만 편안하게 걸었고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었다. ... 지위 놀이의 대가로 자신의 지위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줄 알았다... 먼저 자신의 지위를 변화시킴으로써 어떠한 상황도 수월하게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63)

사람들이 정말로 듣고싶어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낭패를 보았으나 동정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건들이다.(67)

모든 목소리와 몸짓에는 어떤 지위가 암시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된다.(137)

많은 교사가 어린이를 미성숙한 어른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성인을 위축된 어린이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우수하고 보다 존경받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잡힌 많은 어른들은 원한에 차고 비창조적이고 겁에 질리고 상상력 없는 아주 적대적인 사람들이다. ... 그들은 교육과 양육에 의해 상처입은 사람들...(149)

모차르트가 독창적이 되려고 애를 썼다고 가정한다면...(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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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2004-03-0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좋은 책입니다. 꼭 사서 읽고 제 책장 맨 위에 꽂아 놓을 겁니다.

세상이란 거짓, 그리고 자기방어
철이 일찍 든다는 건
그런 세상에 적응해서 진실을 가리는 커튼
깊은 밤 별빛 달빛 후광아래
닫힌 커튼을 걷으면
아이는 웃음 짓고
혹은 홀로 삐쳐 쓸쓰러워하기도 하는
철이 든 아이
해가 뜨면
가면과 짙은 가운 걸친

굳센 철가면이 된다.

제가 전에 썼던 글입니다.

토깽양 2004-05-1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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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변절하고 생명을 얻을 것인가, 생명을 버리고 대의를 좇을 것인가. 사람들은 노동의 새벽에 새벽시린 가슴위로 찬 소주를 붓던 노동 해방의 시인, 노해를 변절했다고 한다.

그는 애써 스스로 빙산이고자 한다.

빙산은 거친 바람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진행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르지만 빙산만은 엄청난 힘을 지닌 태풍의 진로마저 거스르며 제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빙산은 자기 몸체의 대부분을 바다 속에 두고 있기에 바다 표면의 바람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을 르르는 해류의 흐름만을 따른다...고.

그러면서 실크로드에 가고싶다고 했다.

보이는 것의 전부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지평, 시선의 끝까지 이어진 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에 종말의 저녁처럼 붉은 노을로 해가 지고, 태초의 아침인 양 시뻘건 태양이 떠오르고, 아, 산다는 건 이토록 단순하고 강렬한 것인가. 이토록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허무인가....

그의 열망의 생명 의식은 유치환의 '생명의 서'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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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을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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