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1 한길그레이트북스 128
홋타 요시에 지음 / 한길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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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타 요시에란 작가를 처음 접하면서, 시오노 나나미 생각이 많이 났고, 일본의 '오타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역시 선진국이란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가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겐 낯선 나라 에스파냐.
우리는 플라멩고와 투우로 유명하지만, 플라멩고도 에스파냐의 정통은 아니란다. 하기야 그 나라의 전통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에 대한 애정이나 홋타 요시에의 에스파냐에 대한 집착은 유사한 측면이 많다.

다른 점이라면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 맛깔스런데 비해 홋타 요시에의 글은 다소간 현학적이고 파편적이다. 글에서 우러나는 맛이 좀 떫떠름하다.

에스파냐의 지도를 한 장 그렸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읽으면서 들었던 북부지방의 지명들이 그나마 친숙했다. 아라곤 지방과 카스티야, 레온과 갈리시아 지방이 나오고, 순례길이 나오면 반가웠다.

지적 허영이라고 할까. 허영이란 질병은 인간을 다소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또 다른 허영을 만들고...

고야의 그림은 좀 우울하다. 그의 아내 그림은 더 우울하다. 스무 명의 아이를 낳아 한 명만 성장한 어머니의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질병과 귀먹은 이의 짜증이 그의 자화상에서 배어나온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실제로도 분명히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결과가 되는 수수께끼 그 자체인 에스파냐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와 흡사한 일면이 읽는 맛은 씁쓸하다.

영어를 잘 해야 되고, 컴퓨터를 잘 해야 되고, 집집마다 인터넷으로 게임 중독에 빠지고, 휴대폰을 귀에 달고 다니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그림자에 가려진 밑빠진 독 같은 우리 나라에는 없는 인문학의 인프라가 새삼 부러워지는 책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돈 안 되는 분야에도 오타쿠가 많아지고 그것이 인프라가 되어야 '양적 증가를 통한 질적 변환'을 이룰 때도 올 것인데... 정지용의 말마따나 메마른 입술만 쓰디쓰다.

홋타 요시에와 따가운 햇살과 황야를 배경으로 노천카페에서 한담을 나누듯 읽어야 하는데, 좀 지루하고 졸리고 어렵기도 했다. 간혹 매혹적인 통찰력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네 권을 읽는 동안 경쾌함보다는 늘어진 느낌이고 적당히 자리를 마무리하고픈 생각이 드는, 궁합이 맞지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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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역사 인물 찾기 2
카테리네 크라머 지음, 이순례.최영진 옮김 / 실천문학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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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163쪽, 괴테의 글)

케테 콜비츠의 관심사는 인간이다. 당시 풍미하던 유미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을 그릴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였다. 그러다 보니 사회운동가 취급을 당하자, 다시 리얼리즘에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를 말한 용기있는 화가였다. 사람만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전향이 아니므로 아름다웠다.

그는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는다. 전생에 가장 큰 원수가 이생에서 부모를 앞두고 세상을 뜬다고 했던가. 어미의 가슴에 난 생채기는 '니 비더 크리크(전쟁은 이제 그만)'를 외치고 있는 청년을 그려낸다. 그리고 슬픔이 깊어지면 고통을 감내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 그의 숱한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심연을 이해할 수 있는 자, 아마도 자식을 잃어본 어머니의 그것이 아닐까?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의 글씨도 예술이다. 영어와는 다른 독일 글씨의 힘이 잘 살아있는 아름다운 문자의 세계를 열어 준다. 그 글씨로 적힌 일기를 읽고 싶다. 123쪽의 헤르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컴퓨터를 쓰면서 점점 악필이 되는 내 글씨가 가엾다.

이 책을 십 년 만에 다시 읽었다. 우연히 서평을 보니 풀꽃선생도 같은 책을 오랜만에 읽으신 모양이다. 뜻밖에 만나는 우연이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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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사라진다면 - 2023년, 영어 식민지 대한민국을 가다
시정곤·정주리·장영준·박영준·최경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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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올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이 글의 저자 중 한 분의 대학원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 비슷한 종류의 레포트도 제출한 적도 있었던 문제였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컸다. 그러나 이 책이 잘 팔릴까? 하는 의구심은 이 책을 사면서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올라가는 걸 보고 심장이 뿌듯해 옴을 느낀다. 영어공용화 논쟁이 불거진 지 5년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이 책은 어느 한 사람의 능력으로 종합하기 어려운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짓고 있다.

영어공용화가 줄 혜택이 많다, 폐해가 많다를 논하지 않고, 충분히 일어날 만한 상황을 픽션으로 처리하면서 논쟁을 벗어난다. 그러면서도 절반은 자료로 처리함으로써 그 픽션이 넌픽션임을 역설하는 기막힌 방법을 쓴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산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무리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복거일과 대등한 비중으로 논의되었던 것 같아 불쾌했다. 이제 그 논의의 불합리함이 명확히 드러난 기분이다.

나도 몇 년 전에 정보화 사회에 발맞춰서 홈페이지를 하나 만든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개점휴업상태에 들어가 있지만. 결국 정보화라는 것은, 뭐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배우는 게 아니었다. 기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컨텐츠(내용)였다. 꼭 필요한 홈페이지라면 몇 만원만 주면 대행해 주는 회사가 천지로 깔려 있다.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건 영어라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 문화, 우리가 가진 것의 내용이다.

남북 공동 문화 행사를 할 때 늘 좀 부끄러운 것은, 그들은 아직도 한복(개량되긴 했지만)을 입고, 한국식 미인들의 쪽찐 머리에 어울리는 웃음을 달고 나오는데, 우리쪽은 늘 서양의 드레스를 입고, 우리도 알아듣지 못할 조수미식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었다. 우리가 영어가 중요하다고 기를 쓰고 난리 법석을 치지만, 우리의 영어 실력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이런 컴플렉스를 영어공용어화로 이겨낼 수는 결코 없다.

우리처럼 어려운 역사를 가졌던 나라도 드문 현실을 인식하고,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재기를 위해 각국의 언어 교육을 폭넓게 시킬 일이다. 제1외국어 외에도 독일어, 프랑스어도 살리고, 일어, 중국어는 물론 널리 가르치고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도 재미나게 학습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수학 학원을 다시 가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세계인을 기를 수 있는 풍토, 이런 것이야 말로 과거 한국식 민주주의 운운하던 퇴영적 민족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길이 아닐까.

우리 나라가 힘을 가지는 유일한 길은 우리 민족의 머릿속에 다양한 지적 재산이 가득한 길 뿐이다. 언어같은 도구는 그 다음 문제이며, 지적 재산이 풍부하다면 어느 나라에서인들 우리 말을 배우려 하지 않으랴. 다시 문제는 컨텐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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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만루홈런 2006-07-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홈페이지를 여러 개 만들다 보니 기술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데도, 글쎄 사람들이 찾아오질 않더군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바로 컨텐츠의 문제였습니다..

화려함과 역동성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정작 내용물은 신경쓰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클릭이 뜸해질 수밖에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해서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술을 극복하는 것은 정말 알찬 참신하고 끌릴만한 컨텐츠이니깐요..

군대에서 너무 보고 싶었던 책인데,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읽어야 할 인연인가 봅니다.. 빠른 시일 안에 읽어야겠습니다.

'알라딘' 이 사이트도 어떻게 보면 '나의 서재' 란 컨텐츠 하나로 이만큼 성장한 것은 아닐까요? 전 알라딘의 강점을 '나의 서재' 로 보거든요, 단순히 책을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눔으로 인하여 더욱 쉽게 책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 사이트, 가격비교 사이트에서는 늘 최저가에 뜨지는 않지만 이곳만의 무언가는 수시로 이곳에 접속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살아있는 인터넷 서점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이러고 보니 알라딘 관계자 같은데요..^^; 저 아닙니다..)
아무튼 콘텐츠의 중요성은 몇번이나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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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한강'을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다. 이 책 책날개를 보니 여자인 것 같다. 다른 이들의 소문을 인터넷으로 보고 한 번 쯤 읽어볼까 생각했는데, 읽고는 역시 실망이 크다. 차가운 손을 가진 사람들과 그만큼 차가운 관계를 통해서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를 묘파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차가웠다.

오히려 그녀의 편집증적 살빼기가 실감나게 다가왔다. 오로지 살을 빼서 남들에게 날씬하게 보여야 한다는 내적 집착이 모든 인간관계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추월해서 존재하는 현실이 실감나는 현실. 폭식증에 걸려 죽도록 먹고, 토하고 다시 먹고 토하고, 위산과 양치질에 이는 망가지지만 피폐해져만 가는 정신은 살찌지 않았다는데 안심하는 게 아니라, 쪘을까봐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비정상적 식습관과 정신상태를 진단하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다시는 한강을 읽고싶은 맘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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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남궁문 지음 / 예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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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때던가. 유치환의 '깃발'을 보고는 한참동안 멍-하니 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지금도 나는 유치환의 깃발의 첫머리를 가장 사랑한다. 이 시가 비록 작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 지라도 난 인간의 끓는 피의 이미지를 이보다 잘 잡아낸 시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계속 가슴 뛰는 청년이었다. 그가 산티아고의 철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1000킬로를 걸었던 그 가슴 벅찼던 행로 내내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었던가를 생각했다. 그가 마음에 품었던 7쪽의 철십자가는 사라지고 181쪽의 철십자가에서 실망했다지만, 그렇자고 산티아고 가는 길의 의미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그 고독한 순례길은 '진정 나를 찾아가는 보헤미안들의 향수 담긴 길이리라.' 스페인어를 애써 배워 둬야겠다. 어느 일본인 청년은 스페인 말도 영어도 못했지만 이 길을 씩씩하게 갔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말이 통하는 사람들도 조금 만날 수 있다면... 인도를 읽으면서 인도로 달려갔던 마음이 자꾸 줄어 들고 있었는데 - 두려움과 소심함으로- 이제 달려 가고 싶은 곳이 다시 생기다.

이 길을 가르쳐준 남궁문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은 조금 낯설다. 책값도 좀 비싼 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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