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 - INDIA
강석경 지음 / 민음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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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2학년 때 강석경의 소설이 무슨 상을 받았다. 그런데, 난 그 소설이 너무 싫었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아는 이들은 알 것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청춘의 대학 생활을 최루탄 가스 아래서 질식할듯이 병들었던 젊음이었다. 그래서 어떤이가 이 책을 권해 주었을 때, 작가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은 상당히 예뻤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특징, 쥐뿔도 없는 것이 겉모습은 그럴 듯 한 거.

사진도 시원스레 색상도 예쁘다. 그런데, 막상 기행문과 딱 들어맞는 사진은 거의 없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 보라,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어 보라. 설명에 적합한 사진이 바로 옆에 착 붙어 있어 글을 얼마나 살려 주는지를... 그의 글을 읽다가 짜증이 책 밖으로 튀어나왔는지, 며칠을 읽지 않고 꽂아 두었다. 그 동안 인도사학자 김옥순님의 글을 읽었고, 근 열흘만에 마무리를 지으려고 잡은 책은 술술 넘어 갔다. 그새 익숙해 진 탓이리라. 우리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렇게 얼마나 잘 익숙해 지는가. 악담은 길수록 나쁜 법.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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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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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이란 이름은 자주 들어 왔지만, 막상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난 이상하게도 베스트 셀러나 느낌표! 책으로 선정되거나, 서평이 좋은 글들은 잘 읽지 않는 습벽이 있다. 아마도 대학 다니던 시절부터 신문을 맨 첫장부터 읽지 않고 맨 뒷장 맨 아랫단부터 읽던 습관이 이런 행동으로 굳었는지도 모르겠다.

노통이란 특이한 이름 때문에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 봤더니 앳되어 보이는 소녀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서평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작가, 새로운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가 읽지 않는 부류의 작가로 충분히 찍힐만 했다. 젊은 나이에 이름을 얻은 것은 천민 자본주의의 속물 근성이 더께앉은 상혼을 감추기 위한 뉴 페이스일 가능성이 많은 법이니까.

처음으로 읽은 <오후 네 시>는 기대 이상이다. 마치 귀여니의 <그 놈은 멋있었다>를 치기어린 장난으로 여기다가 읽고서는 의외로 놀랐듯이. 우선 그의 글쓰는 방법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에밀과 쥘리에트란 노부부의 평화롭기 그지없는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다가, 점점 그로테스크해 지는 이웃(베르나르댕)의 출현과 오후의 두 시간, 베르나데트 부인의 엽기적 묘사와 식성은 마치 교향곡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조용하게 시작한 전원 교향악으로 시작해서 새소리, 시냇물소리 들려주다가, 마왕의 울림같은 긴박감이 고조되다가, 운명으로 마감하는 듯 한, 감미로우면서도 장엄하고, 때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음악이자, 소설이자, 인생이 아닐까.

원 제목은 카틸리니의 국가 전복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에서 따온 논박, 야유를 가리키는 'Les Catilinaires'다. 천사와도 같은 소심한 주인공이 상황에 밀려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엽기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대목은 우리에게 감추어진 무의식들을 의식의 세계로 드러내려는 듯 전율하게 만든다.

그의 글들을 프랑스어로 읽었더라면, 그리고 프랑스 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었더라면 좀더 재미있게 읽었을 수도 있었을 걸... 하는 생각이 아쉬움과 남는다. 다른 작품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가다. 귀여니처럼 늑대의 유혹을 읽고 절필을 당부하지 않게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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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 - 전 전교조 위원장 김귀식 교육 수상록
김귀식 지음 / 우리교육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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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창립되던 1989년의 여름. 그 피비린내 나는 날카로운 칼날은 이 땅의 교육에 피를 뿌렸지만, 그 피가 씨앗이 되어 지금은 학교가 많이 달라졌다. 교장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장하기 좋던 시절에 교사하고, 이제 교장하기 힘든 시절에 교장한다'고. 그런 얼굴을 보면 이렇게 내뱉고 싶다. '그래, 누가 너 보고 교장 하라디?'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절망스러웠다. 잠시나마 편하게 살아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전교조가 출범한 지 14년, 합법화 된 지 4년이나 되었건만, 김귀식 선생님이 비통해 했던 교실 속은 아직도 그 싸움이, 그 경쟁이 그대로 있으니 절망스럽다.

어디에서 희망의 꽃 한 송이 찾아볼 수 있을까. 아직도 자율없는 자율학습에, 보충없는 보충학습이 그대로 횡행하는데, 예전처럼 교장이 보충수업 관리비 안 타간다고 전교조는 할 일을 다 했는가? 교무회의 시간에 교장이 권위적인 목소리로 지시하는 일이 줄었다고 전교조는 참교육이 실현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지난 봄, 어떤 맘 약한 교장 한 사람이 죽었다. 그걸 두고 교장단은 똘똘 뭉쳐 난리를 쳤고, 조중동에서는 악마같은 교단의 사탄, 전교조를 저주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가련한 것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조권이 없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식물 꽃은 피는데 사람 꽃은 피지 못한다. 나는 노래방 가면 맨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다. 이 노래를 부르면 그 박진감 넘치는 박자와 우리말이 어울리면서, 심장의 고동이 점점 커지는 느낌과 함께, 정말 사람이 아름다워 보인다. 일종의 마약인가. 깨고 나면 허무하기 그지 없는 마약.

지금 우리 교실에선, 어느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하는 표현을 가르칠 수 없고, 우리의 삶의 지평을 넓히는 문학을 생활화하도록 지도할 수 없다. 읽고 답 찾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과정을 답습할 뿐.

답 보. 제자리걸음만 죽으라고 하는 사람은 수인일 것이다. 답답한 감방에서 왔다갔다 어슬렁거리는 야수의 눈빛을 한 수인. 동물원의 야수들은 비굴한 야성을 지니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우리 나라는 OECD 국가중 최고의 교육비를 지출하는 나라라고 신문에 난다. 이젠 이놈의 나라 교육열도 진저리가 날 만 한데...

이런 사회에서 교사가 진실을 가르친다고 해서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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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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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를 생각하면 보거스의 우스꽝스런 표정이 생각난다. 외모는 두꺼비같지만 자상한 그에 비하면, 보보스는 정 반대의 개념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행세를 하지만, 속으로는 부르조아적인 부류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양반 비슷한 뭐 그런거 말이다. 자기는 부르조아와 다르다고 한다. 부르조아의 삶은 대부분 유전적인 것이라고. 그러나 보보스의 삶은 개성적인 보헤미안 기질이 많단다. 웃기는 짜장이다.

정보 시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엘리트, 좋아하신다. 정보 시대를 지배하는 건, 역시 돈이다. 빌게이츠가 청바지를 입어서 멋진 것이 아니고, 돈이 많아서 멋져 보이는 거다. 옛날엔 귀족들(와스프)이 청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건 상당히 집안과 관계 있기 때문에. 그러나 사회가 변하지 않았는가. 핵가족 시대로. 집안의 배경보다는 돈이 배경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작자의 (책날개를 보라, 그의 얼굴은 보거스보다 코믹하다. 마치 닌자거북이의 한 별종같다) 보-보는 보수-개혁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체를 보면, 보수는 그대로 있고, 개혁의 자리는 없어 졌다. 그 주변 상황이 조금 달라 져서 빛의 파장에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세상이 돈을 물려주고, 그 후손들이 계속 잘 살고, 또는 우연히 큰 돈을 만지게 되고, 돈으로 지위를 얻고, 명성을 날리는 천민 자본주의 국가인 이상, 이런 성공을 위한 야망의 헛된 시나리오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뉴욕 타임즈, 북리뷰, 워싱턴 포스트, 타임 에서 압권이니 지침서니 하고 떠벌이는 것은 자기들을 추켜주는 내용에 반해서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정조임금 사후로 혼란기 100년, 식민시기 50년, 전쟁후 회복기 50년을 억지로 살아내고 있는 나라에는 보보스는 커녕, 보수 친일세력만이 득세하고 있을 뿐이다. 그 보수 친일세력의 권력, 언론 등의 실체를 사회과학적으로 밝인다면, 천민 자본주의, 그것도 식민지 매판 자본의 구조적 결함 투성이인 그것임을, 실상을 볼 일이다. 스스로 보보스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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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보보스라고 착각하는 중생들...^^
 
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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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슴에 무지룩하게 얹혀져 있던 것의 실체를 알고 나니 맘이 훨씬 홀가분해 졌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불합리한 사고를 합리적인 사고로 전환시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여날 때가 있는가 하면, 정말 무거운 중량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무의식과 의식을 통틀어 원죄처럼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요즘 왜 이렇게 살까. 하고 참으로 오랫동안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80년대의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고 포스트 모던한 90년대를 살아오면서 통쾌한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고, 뭔지 모를 거미줄이 마음속에 켜켜로 쌓인 느낌이었다. 김규항의 B급 좌파를 읽으면서 내가 본 것을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왜 내 눈에는 벌거벗은 임금님만 보이는 걸까를 헛되이 고민한 줄 알겠다.

포스트 모던한 시대의 소설들에서 내가 느꼈던 열패감은 전향한 박노해를 까는 그의 시선으로 볼 때 지극히 정상적인 합리적 사고였던 것이다. 내가 대학 시절 가장 존경했던 박노해가 감방에서 나오면서 보여준 변화는 김지하의 그것보다 훨씬 혁명적이어서 그의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아직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꽂아 두고 있었다.

구사대도 모르는 교양인을 비판하는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고3 제자가 '선생님 그 책 읽어 보셨어요?'하고 물어서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추천서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물어본 거였다. 그 아이의 시선에 덮인 또 하나의 그물.

우리는 늘 내 시선과, 남의 시선으로 같이 살아간다.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선만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폐적 성향을 보일 것이고, 남의 시선만을 의식한 삶은 '홧병'으로 귀결되기 십상일 듯.

이런 말이 있었다. 새는 좌우의 양 날개로 난다.고. 마치 이 말은 우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양 들릴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처럼 보수 극우가 오랜 세월 득세한 무덤과 같은 세상에서는 작가같은 B급 좌파 조차도 엄청난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새는 극우만으로는 날 수 없다. 좌파의 건강한 시각이 건강한 국가의 견제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파시스트를 저주하고, 중산층을 까고, 지식인을 비꼬고, 근로 대중을 지지하는 작가의 삶도 진보적 이념에 못미치는 보수적 삶을 산다고 B급이라 이름했단다. 그의 글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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